Portrait in jazz 12

돌격대원으로 위장한 신전통주의자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1950년대 말 오넷 콜먼(Ornette Coleman), 세실 테일러(Cecil Taylor)로부터 시작된 소위 아방가르드 재즈의 파장은 그 음악을 무시하려던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지속적이었다. 평론가 존 타이넌(John Tynan)은 이 음악을 두고 ‘안티-재즈(Anti-Jazz)’라고 불렀지만 1960년대 재즈의 기수였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마저
이 기류에 합세함으로써 아방가르드는 이름 그대로 1960년대 중반 이후 재즈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은 위태로웠다. 왜냐하면 이미 비틀즈이후로 새롭게 변모된 로큰롤은  재즈 연주자 대부분이 무시했던 1950년대의 단순한 모습에서 벗어나 재즈가 청중에게 제공했던 만족감의 대부분, 그러니까 음악의 역동성과 즉흥성을 대신해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재즈는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길을 택하고 있었으니 재즈 시장의 자멸은 불 보듯 자명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재즈-록 퓨전으로 급선회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마일스가 록 혹은 솔(soul) 음악의 힘을 빌려 재즈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했던 시도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마일스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갈래를 쳐나가기 시작했다. 마일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칙 코리아(Chick Corea)가 이끌었던 그들의 밴드들은 이 시기 재즈보다는 록에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였으며 재즈와 팝 음악이 뒤섞여 재즈의 즉흥연주가 거의 질식된 스무드 재즈가 등장했을 때 재즈의 외연은 확대를 넘어 거의 해체되어가고 있었다.
이 무렵 재즈의 전통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인물들은, 역설적이게도 아방가르드 재즈 진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문 닫은 재즈클럽들을 대신해서 맨해튼 남쪽 소호가 혹은 브루클린 공장 지대의 다락방을 그들의 작업실 혹은 공연장으로 개조하여 평론가들로부터 ‘로프트 재즈(Loft Jazz)’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으면서 퓨전시대에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재즈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재키 바이야드(Jaki Byard)는 1920년대 할렘 스트라이드 피아노와 당대의 전위 재즈 기법을 연결했으며 색소폰 주자이자 작곡가인 앤서니 블랙스턴(Anthony Braxton)은 재즈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적대 음악을 아방가르드 빅밴드 음악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성격은 음악학자 존 스웨드(John Szwed)의 지적처럼, 아울러 평론가 휘트니 발리에트(Whitney Balliett)가 오넷 콜먼을 “진정한 혁명가들이 그렇듯이 원시인으로 변장한 지식인”이라고 평했던 것과 유사하게, “돌격대원으로 가장한 신전통주의자들”이었다.
그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은 테너 색소폰 주자 데이비드 머리(David Murray)였다. 그의 사운드에는 1960년대 프리재즈 세대의 마지막 인물 앨버트 아일러(Albert Ayler)와 아치 셰프(Archie Shepp)의 영향이 확연하지만 그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폴 곤잘베스(Paul Gonsalves), 벤 웹스터(Ben Webster), 콜먼 호킨스(Coleman Hawkins)의 주법을 복원함으로써 테너 색소폰의 계보를 하나로 연결했다. 피카소의 <비스킷이 있는 정물화>를 표지로 내건 머리의 앨범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비조(鼻祖)를 통해 색소폰과 재즈의 본질을 들여다본 역작으로, 데이비드 머리는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 콜먼 호킨스가 1948년에 남긴 최초의 무반주 테너 색소폰 독주녹음 <피카소>를 8중주를 위한 7악장의 모음곡으로 확대해 모든 재즈란 사조, 스타일과 상관없이 현대적이며 전위적이란 명제를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였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재즈의 역사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와 같은 순수 복고주의자들의 냉소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포함한 인습타파주의자들이 가장 진지한 재즈의 옹호자였다는 점은 부인할 길이 없다. ●

머레이2데이비드 머리 8중주단
〈피카소 Picasso〉 (DIW/ DIW-879)
휴 레이긴, 라술 시딕(이상 트럼펫), 크레이그 해리스(트롬본), 제임스 스폴딩 (알토 색소폰), 데이비드 머리(테너 색소폰),
데이브 버럴(피아노), 윌버 모리스 (베이스), 타니 타발(드럼)
1992년 9월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