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2014 강정대구현대미술제

대구현대미술의 발판을 넘어

<강정대구현대미술제>가 어느덧 3회를 맞았다. 2012년 물문화관 디아크(The Arc)와 시민공원이 강정고령보 근처에 자리 잡으면서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첫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활 모양의 디아크가 위용을 뽐내는 문화공원 일대는 첩첩이 둘러싼 산을 배경으로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이루고 있다. 올해 <강정대구현대미술제>는 지난 8월 하순 ‘강정에서 물·빛’이란 타이틀로 개막해, 9월 21일까지 성황을 이루며 거의 한 달간 진행되었다.
미술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1970년대 바로 이곳, 강정의 낙동강가에서 펼쳐진 <대구현대미술제>를 기억할 것이다. 1970년대 이강소, 이건용, 김구림, 박현기, 최병소 등 주로 대구 출신 젊은 작가들이 국제미술계의 선진적 경향을 수용하여 한국미술에 ‘아방가르드’의 작위를 부여했다. 미술관 밖에서 벌이는 퍼포먼스나 이벤트, 설치미술, 개념미술은 1970년대 뉴욕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새로운 충격이었고 예술적 반란이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그것도 타블로나 오브제 위주의 전통미술 방식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져갈 개념예술 형식으로 선보였다는 것은 지금도 대구미술인들의 예술적 자긍심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강정에서 물·빛’에 출품된 20여 점의 작품은 디아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원 곳곳에 위치하면서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정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성과 공간성의 무게도 만만치 않거니와, 디아크 문화공원에 장소특정적으로 설치된다는 조건 때문에 참여 작가 대부분은 전시 주제만큼이나 장소의 역사성을 의식한 것 같다. 출품작 중 다수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급성장하던 시절을 오늘에 비추어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술문명의 상징인 디아크와 지금은 섬처럼 떠있는 옛 토지 사이의 공간에 사직단을 쌓아 현대적 제식 행위를 한 김광우, 농경지대였던 강정이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한 모습을 반추하며 강정자리라는 별자리를 설치한 차현욱, 팝송가사를 차용하여 아방가르드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변화한 강정 강변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김승현, 디아크의 초현실주의적 형태와 대조적인 원초적 형태의 알을 세 가지 다른 재료로 제작하여 산업시대 ‘백일몽’의 표상인 디아크를 배경으로 설치한 황성준 등은 시간의 간격만큼 변모해온 강정과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돌아본다.
그런가 하면 과거보다는 현재에 방점을 두고 지금 여기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들도 꽤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타인의 피를 섭취하며 생존하는 일군의 모기들로 추상화한 강대영이나, 대지의 기운을 흡수함으로써 거대하게 자라난 말의 역동적인 형상을 통해 욕망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질주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황우철은 다소 직설적으로 동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간접적인 표현방식을 택한 나현은 디아크 뒤편에 네 개의 환기장치를 설치했는데, 인공적 아름다움을 지닌 시민공원 뒤편에 감춰진 자본주의적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모습을 5미터 상공의 나룻배에 앉은 피노키오의 모습으로 표현한 김봉수와, 일견 꽃처럼 보이는 화분들을 채우고 있는 현대적 건축재료 콘크리트의 양면성에 주목한 최두수도 우회적인 방식을 취해 동시대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꼬집는다.
2012년의 ‘강정랩소디’와 2013년의 ‘강정가다’에 이은 ‘강정에서 물·빛’은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행사들이 단기간의 이벤트적 성격을 띠었다면, 이번에는 주제의식을 지닌 꽤 안정된 전시행사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동식물을 막론한 모든 유기체는 물과 빛이 없다면 탄생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물과 빛’의 화두를 장소성과 어우러지게 구체화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가령 조숙진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강렬한 영상을 장소특정적 설치를 통해 보여주었고, 김성수는 마치 풍향계처럼 강바람을 따라 회전하는 채색 나무조각들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구현대미술제>가 부활하고, 성공적인 전시행사로 진행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도 없지 않다. 비록 달성문화재단이 지원하는 공공 문화행사일지언정,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우리는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들과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역사적 의의가 큰 이 미술행사가 과거 선배들의 실험성, 도전성, 급진성을 계승할 방법이 없을까?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 국내외 20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창조의 열정을 불살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의 <강정대구현대미술제>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까지 개최된 <강정대구현대미술제>의 진화 단계를 돌아보며 이런 아쉬움을 잠시 유보하고, 앞으로 미술계에 던져줄 신선한 충격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강미정·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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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철 <세속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욕망은 진화한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