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안 재즈의 독립선언문
황덕호│재즈 칼럼니스트
전기 사운드와 록 비트가 뒤섞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1969년 문제작 <마녀들의 연금술 (Bitches Brew)>이 거의 완성되자 프로듀서 티오 마세로(Teo Macero)는 그때까지 마일스에게 대단히 우호적이었던 평론가 랠프 글리즌에게 홍보용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음악을 듣고 글리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즈가 죽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군요.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단지 글리즌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기존의 재즈팬은 재즈의 아이콘이던 마일스의 변모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며 서슴없이 재즈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그것은 음악에서 벌어진 친부살해였다. “아들인 록이 아버지인 재즈를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마녀들의 연금술>에 대한 글리즌의 반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록과 솔(soul)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고 1967년부터 그가 주관해오던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에 블루스, 록, 소울 음악인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글리즌의 취향 변화는 그의 세대(1917년생) 안에서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이러한 취향 변화로 그는 몬터레이 페스티벌의 공동 설립자인 지미 라이언스 (Jimmy Lyons)와 갈등을 빚었다). 사조의 흐름에 민감했던 글리즌은 아들 세대(1940년대 생)의 취향으로 옮겨갔으며 그가 라이너노트(음반 안에 삽입된 해설문)를 쓴 마일스의 <마녀들의 연금술>은 단번에 50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는 재즈음반으로서 전무했던 기록이었다.
그런데 재즈의 이러한 변화를 진정으로 기쁘게 바라본 것은 예상 외로 유럽의 재즈뮤지션이었다. 1930년대부터 자생적인 재즈 음악인을 배출하기 시작한 유럽은 1960년대가 저물 때까지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인들처럼 연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블루스와 스윙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1950년대 말 모든 형식을 거부한 프리재즈가 등장하고 10년 뒤에는 재즈가 다른 음악들과 뒤섞이게 되자 유럽 재즈 음악인들은 재즈가 기존의 단일한 모습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재즈를 위한 다른 재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색소폰 주자 얀 가바렉(Jan Garbarek)의 말대로 자신들은 블루스를 제대로 연주 할 수 없었기에 자신들만의 음악적 전통을 찾아 나섰다. 그러한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어(Manfred Eicher)는 1969년 독일 뮌헨에 자신의 음반사 ECM을 설립했다.
슈투트가르트 태생의 베이스 주자 에버하르트 베버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재즈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3년 ECM 레이블을 통해 자신의 첫 음반 <클로에의 색깔 (The Colours of Chloë)>을 발표했을 때 그 음악은 미국 재즈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독특한 색채를 지녔다. 그것은 유러피언 재즈의 완성된 독립선언문이었다. 과거에는 정통 비바퍼(bebopper)였지만 새로운 음악을 찾아 일본을 경유해 독일로 들어온 색소폰 주자 찰리 마리아노(Charlie Mariano)를 영입해 1975년에 결성한 베버의 그룹 컬러즈는 1977년 작 <조용한 발>을 통해 그 선언문의 마지막 구두점을 찍었다. 이제 재즈는 연기 자욱한 음습한 지하클럽에서 나와 넓은 지평선의 대지 위로 나왔고 널따랗게 펼쳐진 음의 여백은 그 대지를 감싼 하늘같았다. 재즈는 이제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고 에버하르트의 아내 마야 베버(Maja Weber)가 늘 그렸던 커버 그림들은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주었다. 그것은 유럽이라는 지역의 감수성이자 당시 프로그레시브 록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한 세대의 감수성이었다.
베버는 지난 200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 연주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그래서 2012년에 발표된 베버의 최근작 <이력서(Resume)>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의 실황녹음들을 모아 놨는데 부클릿에는 마야가 그린 몇 점의 그림과 함께 그녀가 2011년 세상을 떠났음을 전하고 있다. 영원히 젊었던 베이비부머 세대 혹은 68세대가 어느덧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