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예술을 빙자한 상품

팔 물건이 넘쳐난다. 돈이 없어 그렇지 살 물건이 너무 많다. 대형마트의 주말풍경은 대단하다. 보기 좋게 진열된 상품과 묵묵히 주워 담는 사람, 그들은 주머니 사정을 봐가며 살까 말까 망설이지 않는다. 돈 내고 살 때와 카드로 살 때는 씀씀이가 다르다. 계산대 앞에는 물건을 잔뜩 담은 카드들이 줄줄이 서 있다. 바코드 찍히는 소리야말로 이 시대의 전위음악이 아닌가 한다. 눈 감고 들어보면 소비사회를 찬양하는 교향곡으로 들린다. 가격을 깎는 법도 없다. 말없이 카드를 내밀면 계산원 또한 말없이 계산서와 카드를 내준다. 상품을 사고파는 우리 시대의 너무나 깨끗한 풍경이다. 먹고살고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상거래가 이렇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런 상거래의 대상인 상품을 혐오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미술 분야다.
‘예술을 빙자한 상품’. 이 말은 작품이 돈만 밝히고 작가 정신이 스며있지 않은 그렇고 그런 작품을 빗댈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작품이 상품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작품은 사고파는 상품과는 다른 그 무엇이라는 거다. 상품을 사고파는 기능이 미술에서는 혐오스럽게 여겨지다니, 이야말로 어떻게 먹고살지 하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몇 억 원이 넘는 아파트도 부동산 가게에서는 ‘물건’이라 한다. 행복의 보금자리를 단순히 사고파는 대상인 물건으로 취급한다. 다 그렇다. 두부 한 모도 그냥 거래되지 않는다. 두부가 매장에 놓이는 과정 간단한 일이 아니라 한다. 두부를 만드는 공장이 있고 유통시키는 중간상이 있다. 그다음 소비자가 사서 맛나게 먹는다. 미술작품을 사서 맛나게 먹을 수는 없다만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상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크! 큰일 날 소리. 미술을 두부와 비교하다니.
TV 방송에서 미술관련 프로그램은 대부분 밤 12시가 넘어야 볼 수 있다. 가까이 하고 싶어도 너무나도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하는 이유는 시청률이 낮아서란다. 사실 나도 잘 보지 않는다. 잘 시간 빼먹고 봐야 하는데 그렇게 되질 않는다. 미술을 드라마나 오락프로처럼 시청률로 비교해선 안 되겠지만 밀려도 이렇게 밀리다니. 왜 이렇게 미술이 딴 세상 취급을 받으며 외면당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미술은 딴 나라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대형서점 미술 코너에는 서양미술을 소개하는 책으로 넘쳐난다. 너도 나도 서양미술 순례 여행기이거나 서양의 유명 작가를 소개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이미 아는 내용을 이리저리 포장해서 다시 보여주기도 한다. 한 국 작가의 작품 팸플릿을 보자. 웬 영어가 그렇게도 많은지 눈앞이 어지럽다. 세계화, 국제화를 앞세우다 보니 자기 얘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예술분야를 찾아본다. 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은 자기 얘기, 삶에 밀착된 표현을 한다. 자국 영화 상영이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많이 상영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몇 안 된다 한다. 이크! 큰일 날 소리. 미술을 영화와 비교하다니.
우리는 순수에 너무 오염(?)되었다. 자기 가랑이가 찢어져도 오직 순수다. 팔리면 ‘상품’이고 안 팔리면 ‘작품’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요새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한다. 소비성향의 끝자락에 있는 미술은 지금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 작품가격도 너무 비싸다. 미술작품이 좋아도 사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웬만큼 여유가 있지 않고서야 몇 백만 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쓰기가 쉽겠나. 판화와 같이 대중과 가까이 하는 방법을 찾아보 자.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음악도 좋지만 음반이 따로 있듯이, 두고두고 즐길 수 있거나 내가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채울 수 없을까. 그것도 아주 착한 가격으로 말이다.
작품하기도 어려운데 친구들에게 괜한 걱정을 안겨 미안하게 되었다. 다른 예술분야도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시나 소설로 먹고사는 작가 역시 극소수다. 그래도 그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꿈이나 꾸지 않는가. 베스트셀러! 신나게 팔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환쟁이끼리는 이런 말 자체를 어색해 한다. 말해 보았자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다. 한편으론 안 팔리면 ‘작품’이라는 마지막 보호막이 있어 배짱 두둑하다. 가난해도 폼 난다. 나는 지금까지 미술인이 어렵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보아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도 말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우린 신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적응 못하는 영역에서 살고 있다. 우리만 모르고 있다. 조금 타락(?)해도 괜찮다는 자기용서가 먼저 있어야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이크! 큰일 날 소리, 순수한 미술이 타락해야 한다니.

김주호・조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