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봉수-상상력의 기원

고봉수-상상력의 기원

금호미술관 2.13~23

냉철한 이성주의 예술가 고봉수가 현대미술에 딴죽을 거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차가운 이성주의 문맥을 벗어나 발칙한 상상하기를 통해 이성의 객관성과 보편성의 틀을 깨고 예술적 상상의 자유로움과 확장성을 작품에 담아내는 전회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작품세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하면서도 심도 있고,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날카로운 풍자와 상상력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르네상스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작품에 담긴 신화소와 아우라를 패러디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한 전략을 다시금 비틀고 그 메마른 의미를 되살려낸다. 기법적 측면에서 조각장르의 한계였던 중력과 형상이 제한하는 시공간, 미디엄이 차지하는 고정관념 등을 재구축하고 타 장르 혹은 금기시되었던 미디엄의 이질적인 특성들을 과감하게 결합시키는 초현실주의적인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등장시켰다. 더불어 내용적 측면에서는 전작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거기에 탐미적 인체 형상과 초라한 실존적 형상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충돌시킨다. 해서 그의 작품은 익숙하고 친숙했던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들이 어색한 지점에서 조우하며 낯설 고 엉뚱하지만 현재의 유행적-양식화된 스타일을 조롱하며 실소를 유발하게 하는 코드를 생성한다. 미추(美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이 추구했던 세계마저 파기시켜버리는 통렬한 블랙코미디 작품들은 과도하게 치장되고 포장된 현대미술의 골격이자 그 징후로서의 살들을 벗겨내버린다. 작가는 오랫동안 예술과 상상력의 역학관계를 깊숙이 사유했고,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궁극적 단순명료함과 묵언적 형태 속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이제 비밀스럽고 내밀한 내러티브를 부활시킴으로써 현대인의 상상력을 추동하고 고정화하는 세계-추상 혹은 상상소의 근원을 다시 직시한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난점인 제한된 상상력에 대한 반발이자 현혹되기 쉬운 유행 현상에 대한 공격이다. 그리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주요 덕목이 창발적 변용과 신선한 충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적 사고와 사유는 항상 턱없이 부족해 상상력과 사유의 부재를 초래하며 결과적으로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과잉생산되는 현 시점에 대한 부정의 메시지 역시 읽어낼 수 있다.
작가 고봉수의 차별성은 전시테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오늘의 상상력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되묻는 지점이며, 현대의 무차별적 패러디 현상과 상상력 부재의 근원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점이다. 예술세계의 페르소나가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내밀하고도 절대적 자유로서의 상상력은 그의 작품을 관류하는 힘이자 예술정신의 기원이며 사유함의 향(香)이다.

황찬연・예술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