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아티스트] 이진용-이것은 가방이 아니다

이것은 가방이 아니다

작가 이진용에게 구상과 추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는 스스로를 본질주의 작가(本質主義, Essentialist)라고 말한다.
비록 외형상 극사실회화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으며 그 그림은 머릿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 이진용의 이런 발언은 대상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그림을 구상회화라고 주장했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와 대척점에 있지만 일맥상통 한다. 5월 24일까지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 바톤에서 이진용의 대형 신작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손때 묻은 낡은 가방-그림은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축적과 감동을 작가 이진용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표현한 또 다른 차원의 추상회화로 읽힌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이진용은 가방과 책이라는 구체적인 사물과의 유사성 속에서 그것을 재현했다. 보는 이는 가방과 책을 모방한 그림을 통해 그 대상을 재인식한다. 그것은 거대한 벽화이기도 하고 캔버스로 이루어진 설치와도 같다. 한쪽 벽면 전체가 완전히 그림으로, 화면으로 직립해 있다. 다른 쪽 벽에는 책등을 보여주는 대형 화면이 가설되어 있다. 사각형의 캔버스 틀이 그 자체로 부풀어 올라 사물 자체가 되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배경 없이 그대로 사물이 되어 육박하는 그림은 자신의 존재감과 그 존재 위에 얹혀진 시간의 깊이와 세월의 연륜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본래의 크기보다 훨씬 커지는 데서 오는 압도감이 우선적으로 망막을 막아선다. 실제 여행용 가방과 오래된 책들이 놓여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다. 가죽 가방의 질감과 세부장식, 부착된 스티커 그리고 낡은 책등과 빛바랜 종이, 갈라지고 삭은 시간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고서의 상황성을 묘사한 그림은 탁월한 재현술에 기반을 둔다. 무척 잘 그려진 그림이다. 고영훈과 이석주의 책 그림, 강형구의 인물화, 이정웅의 붓그림 등을 연상시키는 놀라운 눈속임 기법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가는 가방과 책을 그렸기보다는 그 사물을 빌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힘, 그에 따라 변화하며 서서히 소멸해가는 존재의 허무, 비애 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보이는 대상의 묘사가 목적이 아니라 내용,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니타스적인 정물화의 흔적이 감지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물은 그 시간의 힘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것들이고 죽어가는 것들이다. 따라서 오래된 사물은 유한한 인간에게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존재다. 그것이 수집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진용은 오랜 세월동안 엄청난 사물들을 수집해왔다고 한다. 그가 그려낸 오래된 책과 가방 역시 그의 수집목록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하면 수집이란 심리적으로는 흥미요, 생리적으로는 성벽(性癖)이다. 수집은 물건을 향한 정애다.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는 그러한 정의, 기연(機緣)을 만드는 일이다.(야나기 무네요시,《  수집이야기》, 산처럼, 2008) 수집은 물건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 길이다. 무언가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척 인간적인 행위일 것이다. 수집은 합리적인 조치이기보다 훨씬 불가사의한 작동을 한다. 특정 사물을 편애하고 이를 모으는 사람은 수집하는 물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렘브란트는 명화를 모으는 데 가진 돈을 모두 탕진했다. 워홀 역시 대단한 컬렉터였다. 우리의 경우 김환기, 도상봉, 권옥연, 김종학 그리고 구본창, 현태준 등이 알려진 수집가/작가들이다. 특별한 골동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수집하고 여기에서 그 조용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귀 기울이고 그 사소한 것들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된 기호이나 감성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수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해나간 경우에 해당한다. 이진용 또한 대단한 수집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는 온갖 오래된 사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완상하면서 그것이 지닌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 아름다움은 오래된 물건의 피부에 서식하는 시간, 죽음의 자리다. 특히  정신과 물질을 담는 용기이자 전달 매체인 책과 가방이 주는 아름다움,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속에 배어있는 장인정신이 만들어내는 아우라에 매료된 그는 그러한 아우라를 그리고자 한다.
“제게 수집은 취미가 아니라 운명입니다. … 저는 옛사람들이 만든 물건에서 만져지는 장인정신과 그것들을 지녔던 사람들의 손길과 견뎌온 세월에서 무한한 감동과 전율을 느낍니다. … 이런 것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이자 역사겠지요. 저는 이런 것들의 소중함과 여기서 느끼는 감동과 에너지를 제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그가 수집한 물건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수집한 물건의 외형을 그대로 모방,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것들을 첨가 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억겁의 시간’과 그로부터 받은 ‘감동과 에너지’를 그림 밖으로 표출하고자 하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극사실적인 그림에 머물러 있지 않다고 강변한다.
“제 작품은 극사실주의가 아닙니다. 아니 사실주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습니다. 제가 가방을 그릴 때 그 가방은 제 머릿속에서 나옵니다. 제가 무수히 많은 오래된 가방에 축적된 시간을 보면서 받았던 감동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어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겁니다. … 저는 대상의 본질이나 사물의 진실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굳이 카테고리를 정하라면 저는 본질주의 작가(Essentialist)가 되고 싶습니다. … 저는 사물의 본질적인 무엇,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한 무엇 그리고  객관을 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이진용의 개인전 광경. 작가가 수집한 물건과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이진용의 개인전 광경. 작가가 수집한 물건과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기교와 철학이 겸비된 작가
주관을 부정한 객관의 세계를 그대로 응시하고자 하는 것, 동시에 그 객관의 세계에 상상력과 변형이라는 주관의 산물을 삽입하려는 시도로 이루어진, 주관/객관이 한자리에 서식하고 겹쳐지는 그리기!
흥미로운 것은 최근 극사실적인 그림에 대표적인 작가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그림을 극사실주의 혹은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보수적 기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상상력과 변형, 연출을 동원해 이전의 사실주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피상적으로는 대상과 닮아 보이는 그것이 실제로는 허구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짓의 세계,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것이다. 이는 강형구의 작가의 변(辯)과 매우 유사하다. 초상화의 경우 그 연출방식도 매우 흡사하다. 이진용의 그림은 실제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력의 산물이 된다. 수십 년간 수많은 책과 가방,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관계와 가치, 시간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기억들과 영상, 물리적 감촉에 대한 시각화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회화적 구상화’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과 가방의 이미지들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한 화가의 극단적인 추구의 결과인 셈이다. 가방과 책의 외형 그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극한의 탐구와 절제된 고도의 예술적 테크닉의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이진용에게 재현이란 단지 눈앞에 자리한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 그 자체로 귀결되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재현된 존재들로 인해 환기되는 정서나 느낌의 고양에 있다. 주어진 대상의 즉물적인 묘사 너머의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란 얘기다. 그러니 다분히 관념성이 강한 그림이다. 그가 그려낸 가방과 책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그가 상상해서 다시 연출한 가짜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기존 책과 가방을 참조해서 이루어진다. 사실 그 위에 슬그머니 허구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왜곡과 변형, 연출을 통해 리얼리티보다 더 실재적 효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시대 극사실주의를 기법으로 내세우는 작가들의 작업 알리바이로 작동된다.
“인간이 상상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 말입니다. 작품의 힘은 ‘경탄’에서 나오고 경탄은 무엇이 인간의 한계 밖에 있을 때 나옵니다. 그림에 대한 경탄은 이론이나 철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은 문자 그대로 시각예술(視覺藝術, Visual art)입니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순응과의 대담에서)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여전히 일루전/모방의 즐거움에 호소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물의 표면을 열심히 따라가보는 그리기이자 사물의 질감에 대한 편집증적 편애에 해당한다. 오로지 표면만을 애무하는 그리기는 회화의 본질적인 영역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는 사물의 감각적인 질감을 가지고 유희하는 일이고 그것들과 한 몸으로 접속되는 일이다. 새삼 미술행위가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관계되어 이루어지는 형국을 조망하고 그 눈속임에 기반을 둔 조형행위의 여러 상황을 통해 미술의 가장 오래된 본성을 부활시키고 있는 동시대 극사실적인 회화의 존재 이유 및 그 전략과 어법, 특성들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이진용의 이 같은 그림이 기존의 사실주의적 그림들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대회화로서 어떠한 의미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재현의 논리, 동일성의 법칙에서 빠져나온 비재현적 회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20세기 이후 회화는 사실상 그러한 재현의 논리로부터 달아나는 방법을 지속해서 모색해왔다. 중요한 것은 재현의 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단지 모방적인 회화의 닮은꼴을 변형하거나 약간 틀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물과 세계를 추인하는 재인과 상식, 그 특정한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도그마 자체를 문제시하는 선에서 풀려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

 

(왼쪽) 캔버스에 유채 131×194cm 2013 갤러리 바톤 전시광경

<Hardbacks #H1H05> (왼쪽) 캔버스에 유채 131×194cm 2013 갤러리 바톤 전시광경

 

이진용은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조현화랑, 박여숙화랑, LA Artcore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등에서 24회 개인전을 열었다. 부일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해 MBC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다.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김미루 – 미메시스의 능력 회복을 위하여

미메시스의 능력 회복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작가 김미루의 개인전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3.27~4.29)이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동안 도시, 돼지우리 속 누드 사진으로 충격을 던진 작가가 이번에는 사막에 몸을 던졌다. 여자의 벗은 몸을 금기시하는 모슬렘문화권의 이 사막은 옷을 입은 채로도 견디기 힘든 악조건이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영옥  이미지 비평, 연세대 문화학과 강사

하얀 스카프와 긴 장옷으로 머리와 몸을 감싼 한 여자가 사원 마당에 앉아 있다. 그녀 앞에는 우유가 가득 담겨 있는 함지박이 놓여 있다. 작은 몸의 쥐들이 함지박 둘레에 달라붙어 열심히 우유를 마시고 있다. 우유를 충분히 마신 쥐들은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가 손등을 타고 넘기도 한다. 소소하고 즐거운 놀이를 하듯이 쥐들의 움직임은 가볍고 발랄하다. 가끔씩 그녀 자신도 손바닥으로 우유를 길어 올려 입술을 축인다. 사원을 찾은 마을 주민들 중에 그녀를 여신으로 생각한 사람도 있다. 그녀 앞에서 절을 하거나 아이의 손을 이끌어 그녀의 옷자락을 만지게 한다. 그녀의 축복이 아이에게 가 닿기를 소망하면서. 이것은 아티스트 김미루가 만든 동영상의 장면이다. 그녀는 인도의 북부 비카네르에 있는 까르니마따 쥐 사원에 가서 쥐들과 함께 우유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원의 뜰은 고요하고 쥐들과 함께 우유를 마시고 쥐들의 사랑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평화롭다. 쥐들을 무서워하거나 더럽다고 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퍼포먼스가 꽤나 의아하고 기이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김미루가 어떤 아티스트인지 조금이라도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띨 수도 있으리라. 자신의 웹 홈페이지에서 김미루는 ‘쥐를 사랑하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실제로 쥐들은 그녀의 아티스트 경력에 중요한 키워드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키우며 돌본 동물이 쥐고, 쥐를 찾아 나선 걸음이 그녀를 지하 터널로 이끌었다.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언더그라운드 아트’ 작업은 그러니까 쥐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 Ted talk에서 자신의 언더그라운드 사진작업을 소개할 때 김미루는 쥐와의 이 인연을 가감 없이 전한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으로 사람들 앞에서 지하도시 탐험 여정을 설명하는 그녀는 매우 수줍어 한다. 다른 Ted 연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무대 위에서 큰 동작을 만들지도 드라마틱한 목소리 연기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거의 하나의 점처럼 제자리에 서서 가끔 비칠 듯 말 듯 미소를 띠며 일정한 톤으로 지하도시 탐험과 그 결과로 남겨진 사진들을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약간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수줍음을 타는 여자가 <Naked City Spleen>과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처럼 ‘대담한’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행했단 말인가. 그녀의 작업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말하는 방식,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그녀의 사진이 전하는 느낌들은 더 깊어지고 순전해진다.
김미루는 모든 동물에게 친화력을 느낀다. 그녀에게는 사람 또한 하나의 동물 종(animal species)일 뿐이다. 그녀가 쥐를 그리거나 찍을 때, 혹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와 함께 피부를 맞대고 엎드리거나 기면서 감정을 나눌 때, 쥐나 돼지는 ‘인간의 무엇’을 위한 은유가 아니다. 동물을 은유로 사용한 역사는 이제 너무나 오래되어 동물이 식구의 일종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과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람들 뇌리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동물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친화력’은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 그녀가 의과대학 학생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동물에 대해 그 어떤 ‘인본주의적’ 비유 관습이나 유사 생태주의적 감정을 갖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근원적이고 명료하다. 돼지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은 돼지 새끼를 해부하면서 얻은 지식, 즉 생명체로서 돼지가 인간과 매우 유사한 기관조직을 지녔다는 깨달음으로 더욱 깊어졌지만 그녀에게 인간이나 쥐, 돼지나 새, 꿀벌, 낙타 등은 모두 등가적인 가치를 지니는 종이다. 모두 동물세계의 서로 다른 구성원이다. 쥐와 돼지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인간들이 ‘더럽고 비천하다’고 낙인찍으며 가장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회피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녀는 쥐나 돼지를 ‘더럽고 비천함’ 혹은 ‘더럽고 비천한 존재로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김미루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내게  그녀의 이미지 작업에 깃든 매혹이나 영감의 많은 부분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녀의 지하세계 탐험 작업에서 쥐는 인간과 똑같이, 어쩌면 인간보다 더 오래, 인간보다 더 깊숙이 도심에 깃들어 살고 있는 도시의 거주민이다. 지상세계에서 상처받다 지하에 내려와 비로소 피난처를 발견한 노숙인이 그렇듯, 카타콤에 잠들어 있는 1300년 된 해골이 그렇듯, 폐허가 된 설탕공장 뜰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는 들개나 토끼들이 그렇듯, 하수구나 지하터널에 기거하는 쥐들도, 살아있는 유기체(a living organism)인 저 도시의 거주민이다. 해부학에서 훈련된 감각으로 도시의 피부 아래가, 도시의 보이지 않은 부분이, 도시의 무의식이 궁금한 그녀에게 쥐는 영리하고 친절한 동반자다. 인류의 역사는 무수히 많은 은유의 전략이나 전술에 기대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정한 예들을 알고 있다. 근대 후기에 서구 남성들은 (타이티로 간 고갱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비서구 여성들에게서 덜 오염되고 덜 왜곡된, 그만큼 더 원초적이고 순결한 자아의 은유를 찾았고, 탈근대에 동일성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타자성의 철학을 세우고자 했던 철학가들은 (니체나 데리다, 레비나스가 그랬듯이) 여성을 바로 그러한 비동일적인 타자성의 은유로 재발견했다. 마찬가지로 동물은 인간이 가장 빈번하게 은유로 불러내는 대상이다. 급속도로 추진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들은 동물들에게서 태곳적 인간의 원초적 동물성의 모습을 찾곤 했던 것이다. 언어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서 은유는 필연적이다. 모든 은유가 대상을 타자화한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은유는 궁극적으로 자아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혹은 반성적 자아의 보존을 위해 대상을 은밀하게 소비하고 타자화한다.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에서 벗은 몸으로 돼지와 함께 있는 그녀의 이미지들이 품은 아름다움이나 선한 충격은 김미루가 돼지에게, 돼지가 김미루에게 은유가 아닌 냄새와 촉감이 있는 몸으로 현전하기 때문이다. 철학가 김상봉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주체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꿈꾸는 관계이며, 이러한 관계를 정동적으로(affective) 감응케 하는 미학적 실천은 이토록 감응이 불가능해진 맹목적 자본합리성과 우울한 시물라크르의 시대에 윤리적 열림의 단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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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그리고 사막
도시 탐험가들에게 버려진 장소,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시간 속에서 저 홀로 스러져가고 황폐해져가는 장소는 놀이터고 명상과 정화의 사원이다. 사랑을 잃었을 때나 고립감이 심할 때, 소외와 우울로 힘들 때, 버려진 장소(deserted place)는 훌륭한 피난처가 되어준다고 김미루는 말한다. 도시 탐험 사진작업자들은 버려진 채 남겨진 장소를 그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기적인 미적 추구를 위해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화려한 성공과 미래를 약속했던, 그래서 한때는 사람들로 들끓었던 디트로이트 공장들에서처럼 폐허가 된 장소들은 도시의 이루지 못한 꿈의 역사를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희망과 꿈과 좌절이 부서져 나뒹구는 파편들처럼 그곳을 떠돈다. 그래서 폐허 자체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대신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하는 시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곳을 채웠던, 여전히 유령처럼 그곳을 감돌고 있는 집단적 소망과 심리적 애착의 숨결을 되살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녀는 버려진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이것이 진정한 기록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그 장소 안에서 장소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그녀가 <Naked City Spleen>과 <The Pig That Therefore I Am> 사진작업을 하면서 옷을 벗은 까닭은 두 가지다. 옷을 벗음으로써 특정 개별성을 지시하는 문화적 요소를 지우고 보다 보편적인 자연의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관객들이 몸으로 그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벗은 몸은 이미지와 관람객 사이에 촉감적 매개를 가능케 하는  일종의 연결고리 혹은 통로가 된다. 비주얼 포인트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폐허의 경우 이 두 가지 요인은 폐허 자체의 이중적 의미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한때 기술문명과 역사의 발전, 소비문화의 화려함을 뽐내던 1900년대 초기의 공장들은 너무나 빨리 자연으로 되돌아가버린다. 김미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자연이 먹어버린다.” 거대한 구조물들이 그렇게 쉽게 금방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사람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동안 버려진 것들과 함께하다보니 새것이 얼마나 금방 낡은 것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겠더군요. 집, 사무실, 쇼핑몰, 교회, 등등…다들 금방 낡아버리죠. 변치 않는 것에 대한 우리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지 또 인간이 세월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절감했어요.”
이러한 깨달음은 그녀에게 숭고에 대한 느낌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녀가 폐허나 지하세계를 탐험하며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그 폐허 같은 공간들이 도시의 잊혀진 기억을 참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터널이 그렇듯이 한때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 지어졌던 구조물들이 지금은 도시민들의 일상으로부터 밀려나 완전히 잊혀져버린 추방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녀에게는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그 장소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책임과, 그러한 장소를 안식처로 삼고 있는 추방자들의 삶을 기억할 책임은 하나로 겹쳐지며 그녀 사진의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구성한다. 그녀의 TED 연설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말하듯이 옷을 벗은 그녀가 없다면 그 사진들은 단지 아름답고 멜랑콜리한 폐허의 사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옷을 벗은 그녀가 있기에 그 사진들은 초현실주의적 매직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도시가 꾸었던 꿈이 어른거리고, 도시의 무의식에서 들려오는 어떤 웅얼거림이 함께 울린다. 벗은 도시의 우울. 근대 초기에 보들레르가 통렬히 감지하고 시로 표현했던 대도시의 우울은 이렇게 21세기 김미루의 폐허 사진에서 다시 한 번 멜랑콜리의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보들레르의 시 <백조>는 그녀의 사진에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 일상의 산보 길에서 새로 생겨난 카루젤 광장을 맞닥뜨린 보들레르는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백조를 떠올린다. 그의 상상력 속에서 이 백조는 다시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될 앙드로마크를, 앙드로마크는 다시 유배당한 사람들, 패배자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비애를 삼키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숭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김미루는 버려진 장소, 폐허에 가서 숭고함을 느꼈다고 했다. 으스스해서 두렵고 무서우면서도 참을 수 없이 끌리는 매혹을 느끼면서, 그토록 찬란하고 거대했던 구조물이 그토록 빨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매우 작게 느껴졌다고 했다. 초월적인 것, 고양된 것, 형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숭고함은 재현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비판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칸트에게서 불가해한 자연의 무한함과 대결하는 고독한 주체의 원형적인 모습을 가리켰던 숭고함은 포스트모던에 와서는 지배적인 담론, 관습, 의미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지표로서 많은 이론가들을 매료시켰다. 김미루의 경우에 그러나 숭고함을 드러내는 자아는 위축된 보잘 것 없는 자아가 아니라 ‘자아 자체’를 더 이상 느끼지 않는, ‘범속한 몰아’, ‘범속한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자아다. 그녀의 경우 자아는 대결하지 않는다. 형언할 수 없는 것과 그것의 사진적 재현에서 오히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벗은 몸과 함께 몸적으로 구체화된다. 벗은 몸이 ‘덜’ 사적이고 ‘더’ 보편적이기에 옷을 벗었다는 그녀의 말은 탁월하게 이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자아나 주체는 물러선다. 왜냐하면 그녀는 인간 역시 단지 하나의 동물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숭고함이 어떤 ‘장소’로, ‘지상세계’의 억압에서 오히려 벗어난 ‘지하생활자’들의 평화로운 공존의 장소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초월적인 숭고한 힘과 고독한 대결을 벌이는 자아의 모습도 물리치고, 또한 친숙하고 틀에 박힌 기존의 관습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숭고함의 정취를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숭고함에 대한 그녀의 느낌은 자아를 내려놓고, 다시 말해 기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무위의 평화와 해방에 도달한다. 평화를 찾아 사막으로 간 낙타처럼.
폐허를 찾아, 사막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는 미루의 여정은 도피도 아니고 이전 시대로의 보수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후퇴도 아니며, 오히려 현존하는 사회질서를 모방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동일성의 세계에서 유사성의 세계로 옮겨감으로써 평화로운 위반을 실천하는 그녀만의 새로운 미학이다. ●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0

<NY 1>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0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1

<Wadi Rum Jordan Arabian Desert 1> 디지털 프린트 101×152cm 2011

김미루는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톤햄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랑스어 낭만주의 문학과와 프랫 인스티튜트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 미국 제스타크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Naked City Spleen>을 시작으로 8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작가리뷰] 박찬용-투견에서 우상까지

투견에서 우상까지

폭력이 극화된 거친 세상. 작가 박찬용은 인간과 동물의 거칠고 예민한 폭력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투견> <서커스> <동굴의 우상>등은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대표작이다. 그의 예술적 여정을 종합적으로 볼 수있는 개인전이 파주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3월1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린다. 그간의 작업과 신작을 한눈에 보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우리시대의 모습을 살펴본다.

김영호  중앙대 교수

박찬용이 <투쟁 그 영원함>(가나아트스페이스, 2000)이라는 제하의 개인전을 통해 투견 조각을 처음 선보인 지도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선택한 견종 핏불(pitbull)은 인간에 의해 치밀하게 개량된 싸움개라는 점 외에도 인간을 칭하는 피플(people)과 비슷한 음을 지니고 있어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매체로 세인의 시선을 끌었다. 투견 시리즈 이후 박찬용은 서커스-박제-우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 속성으로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왔다. 이번 파주 출판도시에 자리 잡은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개인전은 동물조각가로서 그의 노정을 종합적으로 망라한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박찬용이 전시 콘셉트로 제시한 투견-서커스-박제-우상은 모두가 폭력, 욕망, 정복, 투쟁 따위로 대변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개인전은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근간으로 건축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알바루 시자가 설계)의 백색 공간과 그 안에 설치된 조각작품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조각가로서 예술노정 제1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 거대한 백색공간이 주는 영적 분위기를 장대한 시간을 머금은 동굴 콘셉트로 설정했고 <동굴의 우상>이라는 제명의 신작을 설치했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뿔을 가진 들소의 형상이며 길이와 높이가 각각 5.56m와 3.45m에 달하는 기념비적 작업이다. 제명이 <동굴의 우상>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이들 원시 짐승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거대한 힘에 대한 열망과 숭배의 심리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의 태도이다. 투견에서 우상으로 이어지는 박찬용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간의 작품 시리즈에 흐르는 의미들을 살펴보자.
우선 <투견 시리즈>는 박찬용이 동물조각가로서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결정지은 작업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2000년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인 투견 시리즈의 키워드는 ‘길든 폭력의 본성에 대한 성찰’로 요약될 수 있다. 근대사의 전환기를 살았던 마르크스가 ‘투쟁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선언한 이래 폭력이 역사발전의 수단으로 정당화되면서 수많은 만행이 저질러지기 시작했고, 국가에서 기업에 이르는 구성원들은 폭력을 혁명과 개혁 그리고 지배의 도구로 사용해왔다. 따지고 보면 폭력의 역사는 근대사 이전과 이후의 시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으며 길든 폭력성은 인간을 문명화시키는 수단이었고 그 배경에는 지배에 대한 욕망의 본성이 숨어 있다. 박찬용이 투견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폭력의 배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다. 투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우성인자 조합체인 핏불은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 잔혹한 욕망의 대리자가 된다. 핏불이 인간의 투쟁 본능에 대한 욕망을 대신하는 생명체로 개량 보급되어왔듯이 박찬용은 핏불 조각을 통해 박제화된 욕망의 역사를 구현해낸다. 차가운 알루미늄 재질로 캐스팅하고 속이 텅 비어있는 조각붙임 형식을 통해 탄생한 투견은 실재를 넘어 폭력에 대한 광적인 찬미의 외침을 묵언으로 드러내고 있다.
<서커스 시리즈>는 2006년 개인전(한길아트스페이스)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박찬용이 시도해 온 투쟁본능을 상징과 알레고리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폭력의 속성은 강한 것에 대한 지배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향을 지닌다. 자신보다 강한 것을 무력으로 제압함으로써 스스로 강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다. 야수, 미녀, 난장이로 대변되는 서커스의 3대 구성요소는 투쟁본능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열광하는 대중심리를 드러낸다. 박찬용의 <서커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맹수, 조련사, 무희, 원숭이, 차력사 등이다. 그중 길든 호랑이와 곰은 언제든 도발의 위험을 지닌 맹수다. 조련사는 이 위험한 게임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강한 것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자극하며 채찍과 쇠사슬에 의해 위태롭게 유지되는 스릴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한편, 회색 알루미늄 재질의 조각으로 캐스팅된 난장이의 형상은 열등한 인간의 상징인 동시에 힘을 잃어버린 현대적 자아의 우울한 반영이다. 때로 차력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관객에게 열등한 것들에 대한 대립물로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케 하는 대리인과 다름 없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원숭이는 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인간의 미메시스이며 그 앞에 서 있는 풍만한 몸매와 금발을 지닌 반라의 여성은 원숭이로 대변되는 진화론의 대립물로서 창조론의 상징인 이브의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박제 시리즈>는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박찬용의 작품경향으로 폭력성 고찰을 위한 새로운 버전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박제는 힘 쎈 것에 대한 열등한 것들의 도전’이다.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박제는 신비하고 강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 욕망이 실현된 산물’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벽에 걸린 극락조나 사자 그리고 호랑이 따위의 박제물들은 단순히 희귀 동물들의 사체를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의 역사를 끌어안고 있다. 조각가 박찬용의 손에 의해 태어난 박제물들은 실재 동물이 아니라 실재의 외형을 모방한 조형물이다. 그리고 이 재현의 과정에서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폭력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장치들을 개입시킨다. 가령 <박제-찬란한 아름다움>에서 사자의 갈기는 양가죽과 양털로 대체되어 있으며 때로는 소가죽과 말가죽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러한 장치는 약육강식의 법칙성 속에서 먹고 먹히는 생명들의 장엄한 순환의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각양각색의 조류에서 사자, 호랑이, 표범에 이르는 맹수의 박제물들은 귀하고 강한 것에 대한 정복의 욕망이자 승리의 표상이다. 박찬용이 성찰을 요구하는 지점은 바로 자연에 대한 승리의 전리품이 끌어안고 있는 생명과 폭력과 지배와 소유에 관한 것들이다.
욕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우상 시리즈>는 2012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작업으로서 박찬용의 동물조각이 절정에 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된 작품의 규모와 형식 그리고 이념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차원의 성과로 채워져 있어 보는 이를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2013년에 제작된 <동굴의 우상>은 이번 개인전의 백미로서 원시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들소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이다. 작가는 주술의 세계를 품은 거대한 들소의 형상에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 개념을 덧씌워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전개하고 있다. 주지하듯 베이컨은 인간을 편견으로 몰아넣는 우상을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등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 개념에서 온 것으로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개인적 편견을 말한다. 축성된 공간으로서 미술관에 자리 잡은 거대한 들소는 주술적 영험을 지닌 신상이자 동시에 그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성공회 신학자 몰(Moule)의 ‘우상숭배란 자기목적 때문에 신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결국 박찬용의 <우상 시리즈>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이자 인간적 관점, 개인적 소견, 언어적 제한, 철학적 사상 따위에 속박되어 빚어지는 판단의 오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상에서 보듯 박찬용의 동물조각은 인간의 고통과 폭력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대변하며 관객 앞에 제시되어 있다. 투견-서커스-박제-우상에 이르는 시리즈는 폭력의 기억과 욕망의 역사를 예술적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박찬용이 작업을 통해 제시하는 일관된 개념과 개성적 형식논리는 한국 현대조각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제공해준다. 또한 신생 미술관인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건축공간과 작가의 동물조각 시리즈 사이에 맺어진 상호관계의 적합성은 이번 개인전을 한국 현대조각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박찬용(2)

<서커스-막이 오르다> 합성수지에 채색 가변크기 2007

 합성수지 위에  아크릴   730×180×285cm 2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외부에 설치 전경

<동굴의 우상-코뿔소> 합성수지 위에 아크릴 730×180×285cm 2014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외부에 설치 전경

박찬용은 1964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예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여 년간 1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물과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하고 있으며 현재 파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2002년 송은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으며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송은 문화재단, 분당 율동공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World Topic]Barbara Klemm

 1969 © Barbara Klemm  © Barbara Klemm

위 <제니스 조플린,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1969 © Barbara Klemm  아래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베를린> © Barbara Klemm

Barbara Klemm.
Photographs 19682013

오늘날 포토저널리즘의 살아있는 전설인 바바라 클렘(Barbara Klemm, 1939-)의 작품세계를 되짚어보는 회고전이 마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미술관에서 열렸다.
<Barbara Klemm. Fotografien 1968~2013전>(2013.11.16~3.9)이 바로 그것.
3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그녀가 특정 저널에 소속된 사진기자를 넘어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말해준다.
《월간미술》은 바바라 클렘을 베를린에서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굴곡진 세상, 그녀의 카메라에 포착되다

신원정  미술사

다곡진 독일 현대사의 격동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한 바바라 클렘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Frankfurter Allge- meine Zeitung)》(이하《 FAZ》’)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포토저널리즘의 예술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아날로그 미학과 흑백의 감성이 치열한 사실주의와 잘 버무려진 그의 작업을 기리는 전시가 베를린에서 열렸다.
마틴-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은 제목에도 드러나 있듯 1968년부터 2013년까지 바바라 클렘의 사진작업을 집대성했다. 300여 점의 전시작에는 독일 보도사진의 아이콘이 된 유명 작품들은 물론 미공개 작업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찍은 예술가들과 풍경 사진들은 작가의 방대한 작업 스펙트럼을 증명한다. 포토저널리즘과 순수예술의 성공적인 접점에 자리하는 그의 사진이 가진 예술성과 매력을 확인하는 혹은 발견할 수 있었던 이번 전시는 특히 사진이 실린 신문지면을 함께 전시해 그림과 텍스트의 관계를 고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평생 자신을 사진기자로 생각해 온 작가가 은퇴 후 (타의로) 예술가의 위치로 포지셔닝되었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호칭과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베를린에서 작가와 만나 인터뷰했다.

.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그곳의 인쇄용판 제작부서에서 일하다가 정식 사진기자로 자리 잡게 된 거다. 거기서 오래 근무한 건 사진기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측의 태도와 특히 훌륭한 동료이자 멘토였던 볼프강 하우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부모님께서《      FAZ》를 구독하셔서 어릴 적부터 그 신문을 접해왔고, 기사보다는 사진에 훨씬 흥미가 가면서 나도 나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서서히 갖게 되었다. 사진으로 진로를 정하고 인물사진 전문 사진관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사진에 대한 갈증은 더 심해졌다.
가까이에서 본 당신은 ‘보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FAZ》의 보수적인 성향과 논조가 거슬린 적은 없었나. 당연히 거슬렸지!(웃음). 하지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내 사진의 인쇄를 허용했다는 점에서 그 정도의 진보성은 가진 신문이었다고 본다. 글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사진의 역할은 정말 크다. 독자들은 사진을 먼저 보기도 하고 기사를 먼저 읽기도 한다. 간혹 기사 내용과 사진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해석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자신의 사진과 기사 사이의 괴리를 실제로 느낀 적이 있나. 내가 찍은 사진이 특정한 메시지를 가진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어떤 사건 현장을 보고 셔터를 누를 때면 항상 나의 개인적인 인상을 최대한 생생하게 담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주관적인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매번 소위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때로 신문에 실린 사진과 그 옆에 자리한 기사 내용이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자유이다.
플래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아마 평생 두세 차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기억나는 건 솔리다르노시치(자유노조, 역자 주)와 정부 간 원탁회의 취재차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다. 입국했을 때 문득 폴란드의 하늘이 우중충해서 일광만으로 찍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공항에서 서둘러 플래시를 구입했는데 정말 유용했다.
플래시 사용을 꺼리는 건 미적인 이유에선가. 아무래도 그렇다. 플래시를 터뜨린 사진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를 싫어한다.
등장 인물들이 자신이 찍히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사진이 많다. 기자로서 존재감을 조절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었는가. 아무도 나를 못 보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물론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커다란 카메라를 눈앞에 대고 있는 사람을 어찌 못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공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주목받는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자신의 존재가 잊힐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내 존재에 익숙해져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 순간이 오면 비로소 그때 셔터를 눌렀다.
당신의 사진에서는 냉정하고 엄격한 시선과 어떤 요소도 빠짐없이 다 통제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그래서 참 독일적이라고 느꼈는데 이에 동의하는가.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내가 주로 고민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정치가 오랜 기간 내 작업의 중심을 이루다보니 내 사진이 외국에서도 수용될 수 있을지 여부였다. 프랑스나 영국 혹은 이탈리아인들이 전시장에서 내 사진을 보았을 때 과연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 흥미를 가지게 될까 하는 것.
그럼 독일적인 작가라고 불려도 괜찮다는 건가. 그렇다. 어차피 나는 독일인이니까. 아마 내가 2차 대전을 직접 겪은 구세대에 속해서 내 작업이 더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줄곧 전쟁이 초래한 결과와 특히 독일이 저지른 잘못을 성찰해왔다. 항상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하고 역사가 남긴 교훈을 절대 잊지 않으며 무엇보다 다시는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기자도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
사진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혹시 한국에도 와본 적이 있는가. 어쩌다 보니 이번 전시에는 빠졌지만 한국 사진도 있다.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1년 전쯤 현지의 인상을 전하고자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부산까지 갔었다. 거대한 불상에 압도당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전시 얘기를 해보자. 1968년을 시작 시점으로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1967~1968년 즈음에 학생운동이 발발했다. 당시 나는 인쇄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에 자극받아 사진기자의 길을 걷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2010년 카를스루헤 시립미술관에서 큰 규모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와 비교했을 때 베를린 전시는 어떤 점이 다른가. 가장 큰 특징은 처음으로 내 사진이 실린 신문 지면을 전시했다는 것이다. 그 외 일부 작품들은 베를린에서 완전히 다르게 배치되었다. 칼스루에의 전시장소가 다소 외곽지역이었던 반면 마틴 그로피우스 전시관은 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해서 만족스러웠고 더 여유 있고 흥미로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사진과 실제로 그 사진이 실린 신문의 지면을 같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건 정말 중요했다. 신문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내 사진들이 의뢰 작업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내가 단지 예술을 하는 즐거움을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특정 신문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는 점 말이다.
전시 준비에 어느 정도로 가담했나. 기획의 전 부분에 걸쳐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시작 선정과 배치에서 내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한편 건축가로 수십 년간 이곳에서 근무해온 직원의 도움도 컸다.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어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현장에는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전시작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회고전이었기에 가능하면 모든 종류의 작업을 다 조금씩 선보이고 싶었다. 그 결과 스포츠 분야만 제외하고는 – – 사실 간간이 운동 사진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 -모든 주제를 전시했다. 유명한 작품들이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작업들도 선보이고 싶어서 소장 자료를 열심히 뒤졌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생각보다 많이 찾지 못했다.
지난 2010년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수여하는 ‘막스 베크만상’을 수상했다. 회화, 조각, 그래픽, 건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에게 수여되는 이 상을 사진작가가 받은 건 당신이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무이하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난다.(웃음)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는 회화적 예술성과 미학을 사진 특유의 사실주의와 훌륭하게 접목시켰다는 것이었다. 사진기자에게 어 예술가적 자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미적 의식을 바탕으로 탄생한 사진은 강한 힘을 가진다. 훌륭한 조형미와 구도를 갖춘 사진은 그에 담긴 내용과 관점을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메시지를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 심미적인 안목이 점점 더 쇠퇴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쉽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순간 구도가 좋은지 또는 예술적인지 주의를 기울이길 소홀히 하게 된다. 너무 많이 찍다보니 점점 덜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완전히 다른 성향과 방식의 사진 찍는 법이 어느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어쨌든 사진기자들도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첨단기술의 카메라가 보편화된 현재가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경제적으로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지만 매체의 민주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시각도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게 현재의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이런 현상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의 인간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심지어 사진이 남지 않으면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눈은 항상 카메라나 휴대전화에 고정되어 있다.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인 분야에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젊은 시절의 나는 매우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건 사실 아주 환상적이었다. 주목과 견제를 받지 않아 내 할 일을 맘껏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내가 알려지고 나를 경계하는 이가 많아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싸움은 각오해야 한다.
뻔뻔하고 다소 무례한 태도도 거기 포함되는가. 난 그렇게 막돼먹지는 않았다. 최대한으로 꼽아도 한 서너 번 정도?(웃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사진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당신의 사진들이 사람들의 눈과 시각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물론. 이번 전시에서 많은 젊은이가 내 사진을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뻤다.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다른 나라의 빈곤 상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기를 희망한다. 거창하고 성대한 작업이 아닌, 내 사진처럼 작고 소박한 작품도 사람들의 의식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확인해서 기쁘다.  ●

 1993 © Barbara Klemm

<모스크바, 러시아> 1993 © Barbara Klemm

mgb13_p_klemm_21_portrait바바라 클렘은 1939년 독일 뮌스터에서 태어났다. 사진기사 견습 직후(1955~1958)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치·문화부 사진기자로 활동했다(1970~2004). 1992년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2000년 다름슈타트 전문대학 사진학과 명예교수로 초빙 받았으며 2011년에는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독일 사진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리히 잘로몬 박사상’(1989), ‘헤센문화상’(2000), ‘베스트팔렌 미술상’(2000), ‘막스 베크만상’(2010), ‘라이카 명예의 전당상’(2012)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World Report] Martin Creed

위 Work No. 1086-Mothers> 백색네온 철 500×1250×20cm 2011 © the artist,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Hugo Glendinning 아래  2013 ⓒ the artist  Photo Linda Nylind

위 Work No. 1086-Mothers> 백색네온 철 500×1250×20cm 2011 © the artist,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Hugo Glendinning  아래 2013 ⓒ the artistPhoto Linda Nylind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허위적이면서 현학적인 예술에 대한 논의는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1968~) 앞에선 부질없는 장광설일지도 모른다. 그의 개인전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
(What is the Point of it?>(1.29~5.5)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의 작업세계는 다양하다는 말이 진부할 정도다. 시각과 청각, 강약의 변주, 미적 대상과 일상의 오브제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고정화한 예술에 대한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다시, 그가 묻는다. “그래서! 예술이 뭔데?”

Martin Creed

지가은  골드스미스 대학 비주얼 컬처 박사과정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행위는 모두 창조적인 행위이다.’ 마틴 크리드(Martin Creed)가 한 말이다. 그가 이번에는 관객에게 도리어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What is the point of it?)’ 반문하며, 지난 30여 년간 자신의 예술 행보를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으로 돌아왔다. 전시는 런던 템스 강변 사우스 뱅크(South Bank)에 자리한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열렸다. 영국 내 크리드의 개인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 이번 전시는 마틴 크리드의 대표적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크리드 특유의 자기지시적인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빚어내는 다중감각적인 자극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주가 되었다.
생활 밀착형 예술가, 크리드의 일상과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하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작품들은 그의 예술성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1년 크리드에게 영국 현대미술상인 터너상 수상의 영광을 가져다준 작품은 텅 빈 갤러리 안에서 5초 간격으로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작품번호 227: 점멸하는 불빛(The lights going on and off)>(2000)이었다. 이에 분노한 한 관객이 이 작품을 향해 계란을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아이디어를 특별한 미적 경험으로 바꾸는 크리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빅벤을 비롯한 영국 전역의 종탑들이 일제히 3분간 종을 울리며 스포츠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타종 행사 <작품번호 1197>을 기획해,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다운 재기발랄한 감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레고 타워, 크기 순서대로 쌓은 종이상자와 책상, 의자, 합판, 벽돌, 철빔 등 크기별, 면적별, 길이별로 쌓아 올려 만든 피라미드 형태의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반복적인 쌓기는 크리드가 1992년부터 꾸준하게 이어온 대표적인 작업 방식 중 하나이다. 벽면 전체를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페인팅과 설치작업도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크리드의 작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1000개의 브로콜리에 각기 다른 색의 물감을 칠해 하나씩 찍어 그린 <브로콜리 프린트(Broccoli prints)>(2009~2010)와 계단 통로의 양쪽 벽면을 150개의 접착 테이프로 한 줄 한 줄 채워 완성한 <작품번호 1806>(2014)의 줄무늬가 대담한 색조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 운율을 더한다.
점점 크게, 점점 작게, 상승과 하강, 강약중강약의 시각적 변주가 보여주는 반복의 코드는 전시장 곳곳에서 청각을 자극하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음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피아노 연주, 웃음소리, 전시장 한켠에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문과 커튼, 쾅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피아노 뚜껑. 이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소리로 전시장은 쉴 틈 없이 분주하다. 테라스에 주차되어 있던 포드 자동차 <작품번호 1686>(2013)은 일제히 모든 문과 창문이 열리고, 보닛과 트렁크가 열리고, 와이퍼가 돌아가고 라이트가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경적을 울려대다가 이내 다시 얌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으로 수용되는 반복적 리듬감이 크리드 전시 전체를 연주하는 음표가 된다.
전시의 모든 음악적 요소는 크리드의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삶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크리드는 1994년부터 밴드 음악 활동을 하며 정식 음반도 여러 장 발매했다. 미술과 음악에 경계를 두지 않는 그에게는 공연도 작품이다. 전시 제목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도 사실은 크리드의 노래 제목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라이브 퍼포먼스 <작품번호 1815>와 <작품번호 1020>을 4월 8일 사우스 뱅크 내 클래식 공연장인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과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에서 각각 선보이기도 했다.
작품, 세상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되다    
크리드의 작품이 늘 경쾌한 유머만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머리 바로 높이 위에서 아찔하게 돌아가는 <작품번호 1092: 엄마들(Mothers)>(2011)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2미터 높이, 12미터 길이의 ‘엄마들(Mothers)’ 네온사인은 가속도가 붙어 돌아갈수록 더욱 위협적이다. 가장 친밀한 존재이자 거대한 존재,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엄마’라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강렬하고 심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움츠러든 머리를 숙이면 바닥에는 각기 다른 템포로 돌아가는 39개의 메트로놈(Metronomes)의 째깍째깍 소리가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격인 <작품번호 200: 주어진 공간을 반쯤 채운 공기(Half the air in a given space)>(1998)는 말 그대로 절반이 풍선으로 가득찬 방이다. 누군가에게는 풍선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유아적 유희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터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폐쇄공포증을 유발하는 숨막히는 공포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풍선방에 입장하는 관객에게 호흡곤란 증세나 폐쇄공포증을 초래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유념하라는 경고문이 적힌 안내장을 나눠준다.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면 마지막 전시실의 <구토와 대변(Sick and Shit)> 영상을 피할 수가 없다.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서 사정없이 구토하는 사람과 쪼그리고 앉아서 힘겹게 대변을 보는 사람들을 찍은 장면을 인내심 있게 바라보는 일은 거북함과 동시에 묘한 쾌감이 뒤엉켜 역설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크리드의 작품에는 이렇게 양가적 태도와 감정이 공존한다.
크리드가 ‘반복’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를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선배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무의미해보이는 행위의 반복과 변주, 그리고 익살 속에서 삶의 허무와 부조리, 인간 존재의 치열함과 불확실성을 탐구했던 베케트. ‘다시 시도하라,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나는 예술이 도통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에 열중할 뿐’이라고 말하는 크리드의 말과 닮았다.
거창한 준비와 작업 과정보다는 지금이라도 당장 방 안에서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들었다가 금세 해체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고, 아이디어나 순간의 행위 그 자체,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만드는 크리드 작품의 미술사적 원류는 사실 익숙한 것들이다. 뒤샹 이후 레디메이드 일상 용품들의 갤러리 출입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고, 플럭서스 그룹의 조지 브레히트(George Brecht)가 점멸하는 자동차 라이트와 경적으로 연주 퍼포먼스를 시도한 바 있다. 쌓기와 긋기의 반복적인 구조와 표현은 미니멀리즘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는 체액, 신체성에 대한 실험은 빈 행동주의자들의 신체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드의 예술이 여전히 유쾌한 울림을 주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이유는 그의 네온작품 <작품번호 232: 온 세상+작품=온 세상(The Whole World+The Work=The Whole World)>(2000)이라는 방정식이 지시하는 크리드의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세상의 일부이고, 세상의 전부라는 것. ●

(부분) 흰풍선 가변설치 20.5cm(풍선 지름) 1998  Courtesy Giardino dei Lauri © the artist, Image courtesy the artist

(부분) 흰풍선 가변설치 20.5cm(풍선 지름) 1998 Courtesy Giardino dei Lauri © the artist, Image courtesy the artist

· 2008 © the artist Installation view courtesy Ikon Gallery, Birmingham  photo: Stuart Whipps

· 2008 © the artist Installation view courtesy Ikon Gallery, Birmingham photo: Stuart Whipps

Martin Creed, Work no 299마틴 크리드는 1968년 영국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났다. Slade School of Art at University College London을 졸업했다. 1987년부터 작품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글에 번호는 붙여 작품 타이틀로 사용했다. 2001년 <Work No. 227: The lights going on and off>로 터너프라이즈를 수상했다. 1994년 그의 밴드 오와다(Owada)는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으며 밴드 해체 후에도 음반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는 등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Review]토탈리콜-기록하는 영화, 기억하는 미술관

토탈리콜  __  기록하는 영화, 기억하는 미술관
일민미술관 4.11-6.8

<토탈리콜전>은 미술관과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맥락에 따라 보여주기의 제시와 수용에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다룬다. 미술관과 영화관이라는 장소의 차이는 생산자(작가)에게는 형식의 가변성으로, 수용자(관객)에게는 감상의 자율성으로 요약된다. 이 차이를 좌우하는 것은 공간이라는 요소의 개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의 관건은 작품 배치와 설치에 있어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일단 블랙박스를 피하려고 한 미술관의 의도는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영상물로만 구성된 전시에서 공간의 분리는 이미지와 소리의 간섭을 피하는 손쉬운 방식이나, 영화관과 다른 종류의 지각 경험을 지향하는 기획 의도에 위배된다. 대신 주최 측은 공간을 터 작업 간의 간섭을 수용하되 이를 통제하는 쪽을 택했다. 이 경우 실질적 난점은 이미지보다 소리에 있다. 빛의 산란은 스크린의 방향을 달리함으로써 극복 가능하며, 시각의 인지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타 작업의 존재가 감상에 실질적인 방해가 되지 않는다. 반면 소리의 중첩은 관람의 주요 방해물이다. 모든 작업에 헤드폰을 배치할 때 소리의 간섭은 사라지나 관람 가능한 관객의 수가 제한되고, 스피커를 선택하면 다수의 관객이 관람 가능하나 산란 효과가 극심하다. 미술관은 음향의 유무와 비중, 자막의 존재 여부에 따라 헤드폰과 스피커를 혼합 배치하는 방식으로 이 딜레마에 대응한 듯하다. 예를 들면 스피커와 헤드폰을 혼용한 <고진감래>(2014)를 음향이 없거나 헤드폰만 배치한 작업 사이에 배치해 소리의 충돌을 피하는 식이다. 하지만 대부분 음향이 있는 작업으로 구성된 2층의 경우 미술관 측의 고육지책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방해가 현격해서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고충임이 드러난다.
한편, 개별 작업을 공간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은 기획 의도를 구현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 배치에 비해 미흡한 감이 있다. 이 전시에 참여한 9팀 중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셋이나, 그중 상영이 아닌 설치라는 차이를 분명히 구현해낸 작가는 정윤석이 유일하다. 흰 벽 대신 나뭇결이 드러나는 거친 가벽에 투사된 영상은 흔들리는 화면 및 거친 숨소리와 함께 용산참사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육화해낸다. 영화계 기반의 작업 중에서 영사기, 스크린, 관객, 공간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예는 이행준+홍철기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영사기 앞 아크릴판에 반사되어 산란되는 그림자는 빛이 만들어낸 환영이라는 매체의 근본 조건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공간의 해석에 있어 의미 있는 시도는 단채널보다 다채널 설치다. 하지만 3채널 작업인 김소영의 경우 채널들의 이미지와 소리가 서로 조응하며 합을 이루기보다 연관된 작업 세 개가 병치된 쪽에 가까웠다. 양면 스크린을 활용한 배윤호의 작업 역시 양쪽 영상 간의 대조가 뚜렷하지 않고 음향의 차이도 모호해서 설치의 효과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상영 장소는 특정한 관례를 함축한 구축된 제도의 상징이다. 미술과 영화라는 별개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이 전시는 융복합 프로젝트가 부상하는 동시대미술의 추세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장르를 규정하는 규범에 대해 재고하는 자기성찰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문혜진・미술이론

[Review]이제-온기

이제  __  온기
갤러리 조선 3.12-4.18

회화는 그녀 자신이 거주하는 세계를 가장 간결하며 필연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폐쇄적이며 섬처럼 독립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세계는 그녀 자신과 그 밖의 존재들, 사물들, 운동들의 총합이다. 그럼에도 회화는 세계를 간략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마치 세계의 표면을 가볍고 부드럽게 쓰다듬듯. 통속적이며 일상적인 그러나 별 볼일 없는 풍경이 스냅사진처럼 툭툭 던져진다.
사물들, 사건들이 던져져 있다. 그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그러나 자신의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의 대화방식처럼. 불가능한 대화 또는 말걸기. 버벅거리는 혼잣말.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벽을 더듬거리며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흔히 볼 법한 어둑하고 그늘진 애매모호한 풍경이 펼쳐진다. 평범한 일상에 편입되지 않은 또는 거부하는 사물들, 사건들이 연속되는데, 이는 무척이나 미시적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끝맺고 제한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사물과 사건은 결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회화의 고유한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그림은 바람을 담고 있고, 사물과 사건을 담고 있다. 검은 새가 불길한 전조를 뿌리면서 세계를 가르면, 검은 인물이 빛 없는 거리에 누워 있으면, 제주도와 브루클린과 종로바닥에서, 해가 지는지 빛이 엷게 번지면, 그녀들은 지나쳐 가고 자동차는 달리기를 멈추고 세계는 불현듯 다가온다. 세계가 너무 갑자기 다가오기 때문에 결코 화합하지 못한다.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삐져나온다. 회화는 그렇게 세계와 결코 만날 수 없는 순간을 담는다. 애초에 실패하는 사건이기에 세계를 담아내는 재료나 방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회화의 위태로운, 숭고할 정도로 불안한 존엄성이 드러난다.
회화는 단순한 재현의 기술, 눈속임 같은 것이 아니다. 무한히 열려있는 구멍들, 차원들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와 만나고 세계를 번역하는 불투명한 시선들, 언어들, 거의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마법적인 순간들. 회화는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아주 미묘하게 흘러가는 공기의 흐름마저 이미지로 포착되는 것. 그 이미지는 투명하기도 하고 불투명하기도 하다.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는 이미지들이 세계와의 불가능한 만남을 열어놓는다.
작가가 애써 묘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 곧 회화로 제시된다. 이렇게 엉성하고 구멍이 많은, 그리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어딘가로 흘러가버린 텅 빈 회화를 깊이 껴안는다. 몇 년 전 웃통을 벗고 정면을 바라보던 작가의 자화상처럼 회화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가슴은 있다. 그녀는 가슴으로 말하고 가슴을 향해 말을 건다. 세계와 만나는 아주 단순한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을 전달한다. 나는 그녀를 통해 회화, 풍경, 세계와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 어떤 순간, 어떤 장소를 확인한다. 아니 차라리 한 편의 시(詩)를 본다.

김노암 ・문화역서울284 전시감독

[Review]한효석-Crematorium-공중부양돼지

한효석  __  Crematorium-공중부양돼지
갤러리 아트사이드 4.10-5.1

전시장에는 얼굴 피부가 벗겨진 인물 초상화가 있고, 한켠에는 머리가 둘인 새끼돼지 형상이 금박이 된 채로 진열대 안에 설치되어 있으며, 아래층에는 덩치 큰 어미돼지와 새끼돼지들이 뒤엉킨 채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이 형상들은 그 크기와 색이 실제와 완벽하리만큼 똑같이 재현되어 있어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다. 그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장면을 실제와 혼동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에는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불덩이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이 열정의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익명인이 잠시나마 욕망과 망각의 멍에를 내려놓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작가의 글이 쓰여 있다.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하기에는 작품을 처음 대할 때의 인상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고깃덩어리 초상과 돼지의 죽음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고깃덩어리로 묘사된 인물과 눈이 마주치면 마치 얼굴 피부가 벗겨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약간의 감정이입이 가능한 정도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니 그렇다면 저 끔직한 것들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일종의 안도감을 갖게 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자행한 결과라는 것을 눈앞에 던져놓고서 우리에게 죄의식을 갖도록 하려는 것일까.
이번 전시는 <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제의 개인전 이후 작가가 5년만에 연 전시이다. 말하자면, 5년 동안 준비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살덩어리 초상과 돼지 사체로 이루어진 전시는 그때와 구성이 비슷해 보인다. 다른 점은 이전 초상화가 동양인이 주를 이룬 반면, 이번은 서양인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고, 조각에서는 돼지형상과 본인의 두상을 결합한 작품이 아닌 온전히 돼지 사체 자체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얼굴의 피부를 벗겨낸 초상화에 대해 작가는 인종이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얼굴의 본질에 대한 묘사이며, 이는 인간 존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 얼굴의 골격이나 생김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한갓 고깃덩어리여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조각에서 본인의 두상을 제거하고 오로지 돼지 사체로만 묘사한 점은 큰 변화로 보인다. 예전의 작품이 동물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나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번 작품에선 죽음을 직시하는 작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괴기스러울 정도로 생생한 돼지사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난 시간 돼지농장에 작업장을 만들고, 번식을 위해 길러지는 모돈(母豚)이 죽거나 비좁은 우리에서 새끼돼지가 죽으면 바로 실제를 본떠서 작업을 했다. 모든 죽음은 인간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최대이윤을 내기 위해 구축한 환경에 의한 것이다. 그는 돼지 사체를 통해 죽음을 얘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자행한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동물을 ‘살처분’하는 끔직한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먹거리의 풍족함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한다. 고깃덩어리에 대한 연민에서 과잉생산의 욕망이 만들어낸 돼지사체라는 결과물은 우리에게 인간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육당하고 살처분당하는 동물로부터 우리가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홀로코스트나 테러 등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재난들은 비록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그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붕괴나 추락, 그리고 어떤 침몰 등 현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잠재적인 것이 부분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면서, 동물의 생매장과 홀로코스트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한효석의 작품은 지극히 혐오스럽고 끔직하다. 그는 “미술이나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없는 것들을 끌어오는 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현대예술은 아름다움이 예술의 고유한 미덕이라는 전제을 포기한지 오래다. 결국 자신의 피를 얼리거나, 동물을 산채로 절단해 박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서 충격은 감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감상은 이제 이성이 아닌 감성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돼지 사육은 단지 거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가올 재난의 암시일지도 모른다. 재난을 재현하는 것은  현대예술에서 금기시되곤 한다. 끔직한 현실을 재현하기에 예술의 모방적인 방식은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에 대한 암시는 예술이 해야 할 임무일 수도 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예언할 수 있는 힘은 상상력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고, 상상력은 여전히 예술의 고유한 덕이기 때문이다. 한효석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에 있어 재현에 대한 윤리를 생각해 보게 된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view]이원철-Time

이원철  __  Time
스페이스22 4.3-29

1970년대 초,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세션 연주자들이 있었다. 앨런 파슨스와 에릭 울프슨인데, 그들이 1975년에 결성한 그룹이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이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진보적인 음악성과 세련된 사운드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사진작가 이원철과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술관에서 공원을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하였는데, 작가의 <The Starlight>시리즈 작품을 대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간 촬영이지만, 생경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작품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부터, 이원철의 작품을 관심 있게 보았다. 그 보다 먼저 제작된<unfinished…>시리즈는 호주 유학시절에 묘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는데, 역설적으로 삶의 마지막 의식을 치른 묘지를 ‘완결되지 않은’,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제목의 전시로 만들었다. 귀국 후에 전국의 고분을 소재로 <The Starlight> 때처럼, 야간 촬영 노출 정도에 맞춰서 생과 사가 공존하는 생경한 풍경을 특화된 감각과 공간적인 표현으로 연출하였다. <The Starlight>가 낮과 밤, 빛과 어두움, 시간성의 숨은 현상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unfinished…>는 삶과 죽음, 인간의 실존과 부재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시리즈의 미덕은,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화 같은 시각적 볼거리와 서정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원철이<Time>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로 작품의 변화와 작가가 나아가려는 방향이 명확하게 보이는 듯하다. 우선, 좋았던 점부터 말하자면, 작가가 10여 년 전부터 일관되게 탐구하고 진행해온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주제는 <unfinished…>, <The Starlight>의 연장선상에서 결론에 가까울 정도로 정답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영원성에 관한 내용이다. 화면 안에 움직이는 사물들은 장(長)노출기법에 의해 사라지듯 표현되고, 영원한 것은 시간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시곗 바늘도 영원으로 인도하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므로 그것이 제거됨 또한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London United Kingdom> 시리즈 중에 실내 기차역 같은 장면과 이름 모를 현대식 건물사이의 휴식 공간, HSBC은행 건물이 있는 담벼락 작품을 보면서 영국 출신의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가 1980년 발표한 <Time>이란 노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사진과 음악이라는 장르를 관통하며 다가오는 감흥(感興)은 분명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예술이 지니는 확장성인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최상의 단계에 이르렀음이 통했다고 하겠다.
이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8개국 도시의 풍경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개념이 시간성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장소성에 큰 비중이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문화와 건축양식의 장소성이 주제의식을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장소를 짐작하기 어려운 넓은 실내 공간의 시계들을 소재로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이국적인 풍경과 화려한 건축양식에 주제의식이 희석되지 않고, 움직이는 모든 사물이 실루엣의 잔상으로 존재와 부재를 넘나드는 여운을 보여주었을 때, 시간의 영속성(永續性)과 미학적인 깊이는 배가(倍加)되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판단이 오판이라는 가정도 해보았다. <The Starlight>, <unfinished…>에서 보여준 시각적인 볼거리를 위해 건축적인 장식미를 도입했다는 가정을 해보아도 주제의식을 약화시키는 선택이라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원철 사진의 시각적인 볼거리는 인간들이 구축해놓은 인공물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인 자연현상에 적절한 사물과 결합된 개념 있는 노출의 미학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도록에 쓴 필자의 말을 인용하여 ‘현상 너머의 실재에 대한 탐구’임을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접근해도, 이번 ‘Time’이라는 주제의 무게와 깊이를 담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진작가 이원철에게서 받았던 첫인상, 즉 현실에서 보기 힘든 동화 같은 풍경(Atopia)이나 낯선 장소(Unfamiliar place)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 데 대한 만족과 그에 따른 기대가 커서  그럴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성이란 주제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작가로서 평생을 매달려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Time>에 반복되는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Who knows when we Shall meet again,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 to the sea”(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강이 바다가 되듯 계속 흐르고 있다.), Till it’s gone forever…(영원히 끝날 때까지…)Gone forever…(영원의 끝…) Gone forevermore(언제나의 끝…)
세월의 무상함과 시간의 영속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가사 내용이다.  끝.

손성진・소마미술관 큐레이터

 

[Review]방&리-Friendship is universal

방&리 __ Friendship is universal
대안공간 루프 3.28-4.29

각종 오브제들과 언어가 뒤섞인 방&리의 전시 작품들을 엮어주는 매체는 단연 ‘빛’이다. 전시장의 입구에서 관객의 발을 멈추게 하는 거대한 무대조명은 리드미컬한 음악처럼 전시장을 환하게 비추거나 어둡게 하는데, 밝혀지고 어두워지는 대상은 그 작품 앞에 서 있는 관객들이다. 작품이 말하고 관객이 듣는 고전적인 위치를 전복시키려는 듯 조명은 관객이 선 자리를 명료하거나 불명료하게 비춘다. 할로겐 조명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제목은 <Bury your head in the sand like an ostrich>. 이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밝히기도, 숨기기도, 회피하기도 한다. 명령문으로 이루어진 제목의 작품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각성이 일어날 지, 의미가 어긋나는 불편한 느낌을 감수할지는 개별적 시간 속에 있는 개별적 관객의 몫이다.
광섬유를 이용한 작업과 LED 조명을 이용한 그들의 작업은 대체로 언어를 이용한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 <Our daily bread>, <Friendship is universal>, <Cul-de-sac>, <Elephant in the living room> 등의 작업은, 빛을 기본으로 하는 뉴미디어를 이용해 실제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당혹스러운 점은 대개 언어를 이용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딱 떨어지는 통쾌한 이유나 명확히 의도된 불일치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문장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의 관계,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는 문장과 동일한 작품에서 보이는 화면의 인터랙션, ‘elephant’와 ‘象’과 화면에서 보이는 흐린 영상들, 박제된 산양의 몸을 감싸고 있는 ‘죄’라는 글자의 네온 빛, ‘우정은 보편적이다’라는 문장에 연이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이 문장이나 단어들이 언어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 같은 기대를 지속적으로 저버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많은 매체와 많은 언어, 그것들이 기존의 좌표를 잃고, 혹은 본래의 의무를 벗어나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 같은 혼란스러움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거의 모든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정서이든 메시지든, 그들은 수렴이 아닌 발산을 전략으로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선택한 매체의 은유, 그들이 선택한 명료한 언어의 불명료성, 이러한 특성들이 차후의 작품들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지켜보고자 한다.

이윤희・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