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변화를 이끄는 미술
글 |황석권 편집장
포항이 시로 승격된 지 70년을 맞았다. 익히 알려졌듯 포항은 명실 공히 대한민국 제철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졌으며 산업화의 주역을 자임하는 고도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진 포항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을 장식하는 〈제로(ZERO)전〉(9.3~2020.1.27)이 한창이다. 1957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오토 피네(Otto Piene, 1924~2014)와 하인츠 마크(Heintz Mack, 1931~)가 결성한 ‘제로그룹’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일 사회에 팽배한 비관적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의 틀이나 작가 국적의 제한을 두지 않아 국제적 작가 그룹으로 정의된다. 그룹명인 제로는 피네의 말대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순수한 가능성의 공간”이란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는 포항시립미술관과 제로파운데이션이 함께 기획했으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제로그룹 전시로 위 두 작가와 귄터 위커(Günther Uecker, 1930~) 등 제로그룹 핵심 작가 3인의 작품을 포함 15명 작가 48점의 작업이 소개됐다. 1층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피네의 〈 피어나는 검은 루시 〉, 〈 피어나는 하얀 릴리 〉부터 귄터 위커의〈 못 테이블 〉은 물론 제로그룹과 영향을 주고받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1933~1963),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등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서서히 탈산업화를 준비하는 도시 포항의 의지가 이 전시의 주인공 제로그룹의 정체성과 작업의 형식을 통해 다시 한 번 조명된다. 바로 빛 혹은 운동이 남긴 흔적과 같은 비물질성이 투영된 점이다. 새로운 도시의 정체성을 ‘비움’과 ‘새로움’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보는 건 어떨까?
< 월간미술 > vol.419 | 2019.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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