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칠란드에서 왔습니까?

최정미 |미술비평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조각, 공예축전〉(2019.11.7~21 평양국제문화회관)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조각, 공예축전〉(2019.11.7~21 평양국제문화회관)

외무부 산하 문화예술기관인 이파(ifa, 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에서 2016년에 북한예술 관련 연구 기금을 받았지만, 비자가 안 나와 계획을 접어야 했다. 2018년 재신청 정보란에 많은 부분이 상황상 〈알 수 없음〉으로 남겨졌지만, 더 높은 지원금액을 신청했고,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정치보단 문화예술을 통한 교류와 정보 습득의 중요성을 알기에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해준 것이 아닌지 짐작해본다.

어릴 적 놀이공원에 갈 때보다 더 설레고 흥분된 상태로 중국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서 평양 행 고려항공 비행기에 탑승했고 약 두 시간 후 평양순안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그 순간 더 큰 흥분에 휩싸였다. 북한 가이드 두 명은 독일 가이드와 필자를 환한 웃음으로 맞으며 “도이칠란드에서 왔습니까”라고 물어봤다. ‘저머니’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도이칠란드’라고 한다. 무늬만 도이칠란드인 필자와 쾰른에서 날아온 토종 도이처 가이드는 여장을 풀지도 못한 채 거의 의무적이라 할 주요 관광지를‚ ‘아~’, ‘오~’ 감탄사를 거듭하며 방문했다.

〈평양 지하철도〉 벽화

〈평양 지하철도〉 벽화

방문 프로그램은 예술, 건축, 영화, 디자인 그리고 교육 위주로 기획되었으나 제일 기대한 곳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조선미술박물관과 만수대창작사였다. 조선미술박물관은 1954년에 건립되었으며 고대미술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전시한다. 약 1만1000m²의 면적에 800여 점이 전시돼 있는데 고구려왕의 무덤인 안악 제3호분 벽 모사품은 모사이지만 유려한 색감과 구도가 압권이었다. 이들 벽화에선 기원전 1~7세기 통치자의 삶과 사회, 정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특히 4세기 중엽에 제작된 〈행렬도〉, 〈마구간〉 외에 수산리 고분에 있는 〈주인공과 광대〉, 장천 제1호 무덤의 〈사냥〉은 간결하지만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다른 일정을 미루고 고분이 있는 황해남도와 평안남도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또한 신사임당의 〈가지〉, 김홍도의 〈늙은 사자〉, 정선의 〈인왕산〉 등 다수의 작품을 두고는 정해진 짧은 방문 시간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방문지 중 유일하게 만수대창작사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다. 여러모로 규모가 굉장해 보이는 단지에는 건축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건물들이 보였으며 필자가 들어간 작업실은 호텔 방보다도 난방이 잘 되었다. 금강산 산수화의 대가 문정웅 인민예술가,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 김철 공훈예술가, 도자기 창작가 임사준 인민예술가 등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시기획자 직업병이 들은 필자는 문정웅 작가에게 개인전 도록을 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는데 단체전 화집(북에서는 화집이라고 부른다)만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비교적 잘 소개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미술부의 수업 광경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미술부의 수업 광경

복잡한 마음으로 작업실 방문을 마치며 창작사 직원에게 도록을 요청했더니 금빛으로 새겨진 〈만수대 해외 개발회사그룹〉 241쪽짜리 도록을 건넸다. 도록은 조선화, 유화, 출판화, 조선보석화, 수예, 공예, 도자공예 그리고 기념비미술로 분류되어 있다(북한 명칭 사용). 도록에 〈만수대 해외 개발회사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것이 생소했으며 순수미술이 생활미술과 함께 묶여 있는 도록도 처음 보았다. 생소한 것이 이뿐이겠는가. 같은 한글을 사용하면서도 대화 중 가이드에게 무슨 뜻이냐고 여러 번 물어봐야 했다. 한글이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고와 이해 범주도 폭넓게 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가이드가 필자에게 어떤 종류의 예술을 전시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주로, 실험적인 작품과 개념예술을 전시한다고 했더니 그것이 무엇이냐고 한다. 머리를 쥐어 짜내며 설명을 시도했지만, 가이드는 필자가 처음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예술을 보여주고 나 또한 북녘 조선미술박물관의 소장품을 맘껏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 월간미술 > vol.421 | 2020.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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