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주형 – Grid Landscape
이주형 __ Grid Landscape
갤러리 인덱스 10.8~20
이주형은 근작 <Grid Landscape>(2012~)에서 작가 특유의 고즈넉하고 적적한 풍경을 내놓는다. 수평과 수직의 선분 사이로 비치는 하늘과 산과 강은 같은 것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풍경인 것 같지만 언젠가 그 장소에 한 번쯤은 서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을 안겨준다. 창의 프레임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풍경이다. 카메라의 프레임과 창틀, 두 겹의 프레임을 통해서 돌연 삶의 한 모퉁이를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창문 앞에 서 있었을 개별 존재들의 긴 여운을 모아낸 듯 미묘한 밝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지의 경제성을 존중하는 작가이기에 단정하게 다듬은 화면은 과장됨이 없이 균형 잡힌 형태 속에서 단단하고 압축된 풍경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풍경 연작은 창의 블라인드와 커튼,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 드러내면서 감추고, 투과되면서 스며들고, 흐르면서 차단되는 빛의 변주는 수평과 수직의 틈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이뤄진다. 부분이 전체가 되고 전체가 부분이 되며 매우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분명 어떤 ‘장소’를 염두에 둔다. 그 ‘장소’란 원근법의 도움으로 뒤로 물러나 하나로 고정되는 시각적 환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현시(現示)되는 세계이다. 유일무이한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바라본 ‘이 풍경’인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유리 창문 너머의 ‘한 풍경’이 아니다. ‘이 풍경’이 ‘한 풍경’이 될 때 내게만 단독적인 풍경은 수만의 풍경으로 희미해지지만, 내게만 보이는 ‘이 풍경’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바람과 햇볕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표상이 된다. 어쩌면 풍경(風景)사진은 이 단어의 함의처럼, ‘바람이 만들어낸 경관’ ‘바람과 햇볕’이 담긴 사진일지도 모른다. 바람과 빛을 포착한다는 것은 창의 바깥과 안의 충돌이 빚어낸 흔적을 기입하는 일이다. 그리드로 분할되어 형과 색을 최소화한 미니멀한 이 풍경이 갇혀있지만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어 보이는 이유이다. 바깥으로 향하면서 안으로 열려있고, 바깥이 들어오게 하면서 안을 비우는 것. 풍경을 개념화하고 일반화하기에 바쁜 시각 위주의 우월한 주체는 오직 ‘TTL’(사진용어 Through The Lens)에 의한 빛의 양을 계산하겠지만, 이주형의 시선은 개방된 조리개처럼 빛의 밀도를 최대한 집적했다. 땅의 경관을 뜻하는 영어의 ‘Land Scape’의 한정된 의미만으로는 이주형의 사진은 도무지 해독되지 않는다. ‘이’ 풍경은 ‘그’ 장소에 있어야 비로소 열리는 풍경이기에.
최연하·스페이스22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