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FOCUS Aéroport Mille Plateaux

이 자리는 당신 것일 수 없다

실제와 상상,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이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천개의 플라토 공항〉 (7.23~10.18)에서 이들은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공항 터미널로 탈바꿈시켰다.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모호해진 〈천개의 플라토 공항〉에서 작가들을 직접 만나 ‘미지의 여행’을 함께했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업은 시적이고 은유적이다. 이들의 작업은 전시장에 놓인 개별 오브제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공간의 정체성을 흔들어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미술관을 병원으로 만들고(〈Please keep quite!〉 2003), 사막 한가운데에 명품 매장을 세우고(〈Prada Marfa〉 2005), 수영장에 익사한 모형으로 컬렉터의 죽음을 알리고(〈The Collectors〉 2009) 미술관을 한 개인의 주택으로 전환(〈Tomorrow〉 2013)하는 등 장소의 규범을 깨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을 공항 터미널로 치환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그들이 해석한 공항은 ‘장소에서 장소로 이어지는’ 비-장소적인 공간이며 누구의 소유일 수 없다.

전시장 (4)

〈 Departure 〉(오른쪽) 혼합재료 200×300×15cm 2015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 준비기간은 어느정도 였는가. 그동안 홍콩 도쿄 등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적은 있지만 미술관 전시로는 이번 개인전이 아시아 최초다. 준비기간만 2년 이상 걸렸다. 2013년과 2014년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사전 답사했다. 공간을 둘러보자마자 공항을 떠올렸다.
무엇이 공항을 떠올리게 했나. 비행기 엔진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전면유리로 지은 공항 터미널처럼 투명유리로 된 건물, 비행기 동체의 포물선 같은 곡면 공간, 중앙이 비어있어 안쪽 전시장에서 반대편이 보이는 구조, 일반 전시장처럼 가벽으로 구획되지 않은 점이 신선했다. 갤러리 바로 앞에 위치한 공항버스 정류장도 공항을 떠올리는 데 한몫했다. 미술관과 공항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찾아가는 장소라는 유사점이 있다. 관객/여행자가 공간을 스쳐가며 ‘이행(transition)’이 일어나는 일종의 ‘비구역’이다. 또한 공항은 가지 못하는 곳, 허락되지 않는 행동 등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미술관 역시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공간인 척해도 실상 많은 영역에서 통제를 가한다.
들뢰즈&가타리가 서술한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Mille plateaux : capitalisme et schizophrenie)》과 이번 엘름그린&드라그셋이 꾸민 〈천개의 플라토 공항(Aéroport Mille Plateaux)〉 사이의 언어유희가 돋보인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보충설명 부탁한다. 언어유희로 완벽히 맞아떨어질 뿐 아니라,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 전달을 배가했다고 본다. 물질적인 생각에 기반을 두면서 그 속의 생각이 모여 한층 더 깊은 차원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천개의 고원》을 읽었다. 들뢰즈&가타리가 이 책에 대해 “결론을 제외하고 각 고원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 작업도 논리로부터 벗어나있다. 각 작업은 수많은 레퍼런스의 중첩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시장에 있는 관객, 장소, 사물이 때로는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때로는 교집합을 이루며 리좀(rhizome)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무엇보다 공항의 기반시설과 미술관은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리좀적 성격을 지닌다.
로댕의 〈지옥의 문〉이 중앙에 있어 전시 디자인하는 데 어렵지 않았나? 공간을 꾸미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로댕의 〈지옥의 문〉이 있는 공항 터미널로부터 커미션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전시장을 채워나갔다. 전시를 준비하며 ‘물리적 특성(physical feature)’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우리는 전시환경에 맞게 기존에 선보였던 작업을 다시 설치함으로써 그 의미를 재맥락화해 매번 다른 감각을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에 설치된 〈모던 모세〉(2006), 〈미수취 수하물〉(2005) 등이 그 예로 건축과 상황에 대한 ‘혼동’을 표현했다. 여행가방을 X-ray로 투과해 내용물을 보인 〈2010년 1월 1일로서〉를 보면 생활용품 사이에 2010년 반입이 허가된 HIV(에이즈 바이러스)약이 있다. 세부적인 디테일에 정치적 표현을 담아 전시장 밖의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결국 건축을 통해 물리적, 가상적 패쇄성의 환경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규제하는지를 고찰한 셈이다.
매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동선을 만들어냈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탄탄한 스토리 보드가 있는 것 같다. 실제 공항 터미널의 동선에 따르도록 했고, 전시장에는 공항에서 들리는 안내방송도 나온다. 그럼에도 공항의 리얼리티는 없다. ‘1960년대에 상상한 2015년의 공항’을 전제로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판타지즘’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1960년대와 현대의 디자인이 혼재하도록 꾸몄다. 대표적인 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콩고드 여객기 의자다. 다양한 기다림이 존재하는 공항처럼 1960년대의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게 했다.
관객이 전시의 구성요소처럼 느껴진다. 관객의 역할은 무엇인가. 관객 없이는 어떤 작업도 성립할 수 없다. 때때로 관객이 작가보다 더 뛰어난 해석을 부여할 때도 있다. 결국 작업은 우리 둘(엘름그린과 드라그셋)사이, 관객과 작가의 대화를 통해 존재한다. 물리적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현대인의 사회활동은 노트북 앞에서 이뤄진다. 현대미술가가 사람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지금 여기’ 와 ‘물리적 감각’이다.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작업 내부에 은유적으로 숨기는 방식을 취하는것 같다. 숨겨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파괴적이고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 작업에 있어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의 작업은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격한 감정으로 표출한 편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 비해 우리는 열린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복잡한 문제를 끌어들일 때는 의도적으로 작품에 풍자와 유머를 더해 숨기거나 가리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는 거대담론, 진정한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왜?”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왜”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는가. 모든 과정은 우연이었다. 시각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엘름그린은 시를 썼고, 나(드라그셋)는 연극을 하며 감정을 예술형식으로 표현해왔다. 1990년대 초반 코펜하겐의 미술계에선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자유로운 실험과 표현이 가능한 점이 좋았다. 우리는 다른 장르간의 협업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관객을 위한 관람팁을 부탁한다. 많은 관객이 전시를 관람할 때 오독 혹은 오판할까봐 두려워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 않길 바란다. 개개인의 이야기와 감각을 곤두세우고 즐기는 것이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임승현 본지기자 사진 박홍순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은 1961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1969년 노르웨이 트론드하임에서 태어났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1995년부터 듀오로 협업하고 있다. 1997년 덴마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영국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2012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4번째 좌대 〈Powerless Structures Fig 101〉를 설치하는 등 작업, 큐레이팅, 공공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베를린과 런던을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초 베이징의 UCC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