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아르코미술관
2018. 7. 5. – 9. 9.
조각이 지닌 권위와 견고함을 탈피하고자 유약한 소재인 비누를 이용해 문화 생산물을 재현해 온 신미경의 작업은 20여 년 동안 구축해 온 몇 가지 시리즈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시리즈 및 프로젝트는 총 7가지이다. 전시는 국내 공공 미술관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으로, 신미경의 대표 작업 중에서 주로 국내 미발표작과 신규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부식된 도자기를 포함한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가 새롭게 소개되고, 기존의 관객 참여 작업으로 알려진 ‘화장실 프로젝트’(화장실에 비누 조각상을 설치하여 관객들에 의해 닳아가는 과정을 작업으로 치환한 작업) 및 풍화 프로젝트를 위한 외부 설치 비누 조각을 선보여 야외–화장실–전시장을 아우르며 물리적, 방법적 전시 형태를 확장한다. 나아가 신작의 제작 과정 및 설치 과정을 담은 영상 도큐멘테이션과 작업의 이해를 도모하는 서적들을 함께 전시하여 작가의 작업세계를 일괄할 수 있는 보다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전시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특히 ‘비누’라는 재료적인 측면이 부각시켰던 독창성 외에, 작업의 내용적 토대가 갖는 무게감이 더욱 드러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동안 전시된 결과물로서의 작품들이 지닌 장식성과 아름다움 이면에 감추어진 다양한 내용적 함의가 더욱 전면에 부각되도록 전시의 전반적 방향을 하나의 주제로 수렴시켰다. 이를 위해 각각의 작업을 모두 아우르는 전시의 큰 틀을 ‘폐허풍경’으로 제시하여 개별성을 지닌 작업, 혹은 시리즈가 하나의 주제 안에서 유기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구축하였다.
전시장 1층에는 비누 건축물이 설치되었다. 비누 벽돌로 쌓은 폐허 구조물은 일종의 규모가 큰 유물로서, 어느 순간 멈춰버린 시간을 암시하는 일종의 ‘화석화된 시간’을 은유한다. 이와 더불어 주변에 마치 폐허 건축물에서 발굴한 유물처럼 토기 형태의 비누 도자기나 부서진 비누 조각, 풍화로 닳아버린 조각, 오래되어 금이 생긴 건물 조각, 미이라 같은 인체 형상 등을 전시장에 배치하여 시간성을 시각화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전시장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층들이 쌓인 다감각 공간으로 탄생시킨다. 이는 전시장 2층에 펼쳐지는 부식된 도자기 및 닳고 마모된 비누 조각들을 통해 그 주제와 내용적 측면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이렇듯 ‘문명, 시간성, 경계, 유물’과 같은 몇 가지 키워드들이 ‘폐허풍경’이라는 주제 아래 작품 전체가 어우러지며 전시의 내용이 구성된다. 이를 통해 작가의 기존작업과 신작들이 개념적, 형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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