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FEATURE | Censorship on Aichi Triennale 2019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네 번째 개막을 하루 앞두고 〈 평화의 소녀상 〉 출품 보도와 함께 점화된 논란은 결국 사흘 뒤인 8월 3일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의 공식적인 중지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리고 두 달여가 흐른 지금, 각종 언론을 통해 연일 후속 보도가 나오고 있다. 《월간미술》은 미술전문지로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발생한 전시 철회 요구 및 중단에 이른 이번 사태를 보다 근본적으로 짚어야겠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도쿄통신원을 주축으로 심층 취재에 돌입했다. 그 판단 배경은, 해당 사안으로 말미암은 논의들이 최근 악화된 한·일 간의 정치경제적 관계와 그에 따라 격해진 민족감정적인 어조들 사이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최 측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검열)당한 작가들, 두 진영의 첨예한 대립과 전시 재개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경위와 직접 연루된 작가뿐만이 아니라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들이 성명을 통해 보여준 저항을 최대한 상세히 전하고자 했다. 국적을 넘어 예술가로서 그들이 보여준 굳건한 연대는 자칫 편향된 프레임에 갇힐 수 있었던 이번 사태를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위한 초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 반복에는 불명예스러운 역사도 포함됨을 우리는 또다시 반복된 경험을 통해 상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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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회: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글: 마정연 | 미술비평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2010년에 시작된 일본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예술제다.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에 의하면 올해 8월 한 달 동원 관객 수는 예술제실행위원회에 의하면 약 25만8000명, 과거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라고 한다. 독자는 이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특히 《표현의 부자유/그 후(After “Freedom of Expression”)전》이 개막 3일 만에 중지된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일본의 언론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악’이라고 하는 한일 양국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언론도 이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다만 많은 경우, 트리엔날레에 대한 설명 없이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특정 이미지만을 반복적으로 부각하면서 정치 경제적 문제에 미술을 끌어들이는 구도 속에서 다뤄졌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본 기사는 현 시점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와 관련된 현대미술전시 내용의 변화를 되짚으며, 이번 사태가 일부 작품에 대한 검열 차원을 넘어, 예술과 사회를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문제라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려 한다.
개막 전날인 7월 31일, 기자 간담회 직후에 김서경, 김운성 작가 부부가 제작한 〈 평화의 소녀상 〉이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에 출품되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즉각 논란이 일었다(주: 2017년에 일본 외무성이 세계 각지의 소녀상 명칭을 〈위안부상〉이라고 통일했다는 이유로 일부 시민들은 이 작품을 제목과 다르게 부른다). 사무국으로 집중된 문의의 일부는 가솔린 테러 예고 등 항의를 넘어 협박과 위협에 가까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8월 2일에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전시장을 찾아 동 위원회 회장인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에게 “일본인의,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며 〈 평화의 소녀상 〉 전시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날,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문화청의 보조금 심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전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 관계를 정밀히 검사한 뒤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발언했고, 저널리스트이자 미디어 액티비스트인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 예술감독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오무라 지사와 쓰다 예술감독이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 중지를 발표한 것은 바로 다음 날인 8월 3일의 일이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항의 표시로 현대미술전 출품 작가인 임민욱과 박찬경이 작품 철회를 주최 측에 요구했으며, 일본팬클럽과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실행위원회가 전시 중지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임민욱 작가와 박찬경 작가의 작품 철회가 공식 보도된 8월 6일에는 두 작가를 포함한 72개팀/작가(현재는 88)들이 연대성명을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발표하고,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 실행위원회가 오무라 지사 앞으로 공개 질문장을 보냈다. 필자는 일본인 작가들로부터 의뢰를 받고 8월 5일 아침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연대 성명 내용을 실시간으로 한국어로 번역했다. 그들이 인터넷상의 공동 편집 문서에 수없이 썼다 지운 표현들은 국가 간 갈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대해 예술이 어떻게 발언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담은 것이었다.
왼쪽 임민욱, 〈 아듀 뉴스(Adieu News) 〉, 2019. 사진: Tetsuo Ito
오른쪽 임민욱의 〈 아듀 뉴스(Adieu News) 〉 작품 전시를 중지한 광경 ©Aichi Triennale Organizing Committee
성명으로 연대하는 작가들과 침묵으로 항의하는 작품들
필자가 《월간미술》 편집부와 상의해 처음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전시장을 취재하러 간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8월 8일, 분위기가 험악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시장은 평온하고 활기 차 보였다. 매일 여러 매체의 보도에 대응하고 있지만, 오프닝 이후의 미술 전문 매체의 취재는 월간미술이 처음이라며 홍보 담당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역시 당시는 미술작품에 대한 논란보다 양국 간의 정치적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받은 측면이 있었던 듯하다.
‘이 전시는 중지되었습니다(This exhibition is closed)’라 적힌 푯말 뒤편, 《표현의 부자유/그 후》의 전시 공간은 커다란 벽으로 막혀있었다. 일본 국내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기반해 위안부 문제, 일왕과 전쟁, 식민지 지배, 헌법 9조, 정치 비판 등 공공 문화 시설이 금기시해 온 테마를 다뤄 전시 허가를 받지 못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 《표현의 부자유/그 후》(2015) 작품과 그 후에 전시 불허된 작품, 각각의 이유로 전시하지 못한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 전시 섹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는 표현 규제의 역사적 사례를 다룬 박물관 전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해석하는 관계자가 적지 않다. 이 섹션은 큐레이터들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표현의 부자유/그 후》 실행위원회가 주관했다. 보도 자료의 참가 아티스트 일람에 개별 작가들의 이름은 명기되어 있지 않았으며, 작가 1인이 사용하는 전시 공간을 다수의 작가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개별 작가와 협의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시가 중지된 배경에 이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전시실에 CIR(1977년에 설립된 비영리 보도기관인 조사보도센터)가 출품한 6편의 단편 영상작품은 국가의 감시기술, 종교, 식생활, 난민 등 미국 사회의 그늘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이들이 8월 10일에 ‘사퇴’라는 형태로 전시를 중지했다(The exhibition is declined due to the artist’s
request)는 사실은 8월 14일에야 알려졌다. 필자가 세 번째로 찾은 9월 7일의 전시장 풍경은 8월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 참여작가 안세홍, 김서경/김운성, 오우라 노부유키(大浦信行) 명의의 항의 성명이 걸려있었다. 1986년, 도야마현립근대미술관에서 전시 후 컬렉션 된 오우라의 작품 〈 원근을 끌어안고 〉가 현 의원들과 우익들의 항의로 비공개 매각되고 작품 이미지가 실린 도록이 불태워진 사건은 일본 미술사에 가장 유명한 검열 사건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사실 일차원적인 일왕 비판이 아니라, 자신 안에 ‘내면화된 일왕’을 주제로 한 작업이었으며 이번에 발표한 영상작품 역시 그 경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 일본 관객들이 문장이 빼곡히 적힌 긴 성명을 주의 깊게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임민욱, 박찬경 작가의 작품 앞에는 작품 정보 캡션 이외에, 작가의 말과 주최 측의 입장 표명 팻말이 놓여있었다. 정중한 표현이지만 《표현의 부자유/그 후》 전시 중지를 명백한 검열이라고 보는 두 작가의 비판적 관점과 검열이 아니라 안전 관리 차원이라는 주최 측의 대조적인 입장이 명시되어 있다. 취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문의했을 때, 박찬경 작가는 다시 한 번 “테러 위협과 검열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8월 초순의 시점에 자발적으로 전시를 중지한 것은 한국 작가들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일 간의 관계와 연결 지어서 두 작가의 결단을 해석하는 이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8월 6일의 성명 발표를 주도한 일본인 작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점 역시 한일 갈등 구조에 갇혀 사건이 단순화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이었다. 8월 8일, 필자가 두 작가의 어두운 전시장 앞에서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두 작가가 사용한 단어 ‘슬픔’이었다. 닫힌 문 뒤의 작품들은 일종의 비폭력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왼쪽: 모니카 메이어, 〈 The Clothesline) 〉, 2019. Photo: Ito Tetsuo
오른쪽: 모니카 메이어, 〈 The Silent Clothesline 〉, 2019. Photo: Yorita Akane
하나의 전시 섹션과 두 작가의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8월 초의 시점에서 본 현대미술 전시에서는 신작들과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 감정(感情), 정보(情報), 인정(人情)이란 중의를 담은 〈 情의 시대 〉라는 테마를 끌어안고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일민족이란 환상 뒤에 가려진 현대 일본 사회 속 가족의 다양성과 인간의 복잡함을 표현한 다나카 고키(田中功起), 나고야 시에 거주하는 라틴계 이민자들과의 교류를 영상화한 과테말라 출신 레지나 호세 갈린도(Regina José Galindo), 페루 이민을 희망하는 베네수엘라인들과의 인터뷰를 다룬 베네수엘라 출신 하비에르 테제스(Javier Téllez), 난민 문제를 공간적으로 체험하게 하면서 멘솔을 이용해 반강제적인 감정 공유를 유도한 쿠바 출신 타냐 브루겔라(Tania Bruguera), 할리우드 배우들에 의한 재현과 당사자인 난민들의 회고를 통해 각각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자각하게 해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캔디스 브레이츠(Candice Breitz)가 그렇다. 그리고 일본이 타이완에서 행한 신민화 교육 영상 자료와 아이치에 거주하는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한 재연(reenactment) 영상을 교차시킨 후지이 히카루(藤井光)의 작업과 칠레 출신 컬트영화의 대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가 개발한 독자적인 치료법인 사이코 매직에 열광하는 군중의 모습이, 정치교육과 종교, 세뇌와 치유 사이에서 언캐니하게 공명하고 있던 것도 인상 깊었다. 또한 과거 군사정권 시대 한국의 민방위 훈련을 떠올리게 하는 무인 상태의 타이완을 드론 영상으로 그린 위안광밍(袁廣鳴), 미국이 주도하고 세계 각국이 소비하는 무인 감시 군사기술을
시각화한 제임스 브라이들(James Bridle), 오키나와의 미군부대 신기지 설치 반대 시민운동을 소재로 한 작업과 함께 폐교의 수영장 바닥을 수직으로 세워 기념비 혹은 장벽처럼 보이게 한 거대한 설치작업을 함께 선보인 다카미네 다다스(高嶺格), 타이핑의 흔적을 기록하는 소프트웨어 ‘Type Trace’를 사용해서 참가자들이 10분 동안 작성한 유언들을 타이핑의 흔적 그대로 움직이는 키보드와 영상 설치로 발표한 dividual inc. 등, ‘부재(不在)’ 혹은 ‘불가시(不可視)’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이 많았다. 이미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작품들을 의식해서일까.
그러나 상황은 첫 번째 취재 이후에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8월 9, 10일에는 오무라 지사가 예술제 검증위원회 설치를 발표하고, 《표현의 부자유/그 후》실행위원회의 공개 질문에 회답했다. 8월 14일에는 8월 12일자로 서명된 해외 작가(임민욱, 박찬욱 작가를 포함)와 큐레이터 페드로 레예스(Pedro Reyes)의 12인(이후 13인)에 의한 공개서한 〈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가 발표되었다. 이 글은 최초의 성명과 비교해 보다 구체적인 비판과 전시 중지나 변경 등의 강력한 대응을 명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8월 20일부터 이들 작가가 전시실을 폐쇄하거나 변경했다. 1978년부터 시작한 〈 The Clothesline 〉 프로젝트의 아이치 버전으로 젠더 이슈를 제기한 모니카 메이어(Monica Mayer)가 〈 침묵의 Clothesline 〉으로 전시 내용을 극적으로 변화시켰고, 앞서 언급한 갈린도, 테제스, 브루겔라, 브레이츠(주: 9월 24일부터) 이외에 피아 카밀(Pia Camil), 클라우디아 마르티네스 가라이(Claudia Martínez Garay), 레니에르 레이바 노보(Reynier Leyva Novo), 도라 가르시아(Dora García)의 작업이 변경되었다(주: 8월 13일에 서명한 우고 론디노네는 작품 변경 선언을 철회했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무라 지사가 참가 작가들에게 서한을 발송하고 〈 아이치 선언 〉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반향이 크지 않은 것은 작가들이 특정 행정기관과 직접 손잡는 방식이 아닌, 자립성이 확보된 입장을 지키며 행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8월 22일에는 서울에서 문화연대가 주최한 토론회 〈 위협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검열 사태를 중심으로 〉가, 도쿄에서 《표현의 부자유/그 후》 중지 사건에 대한 긴급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서울의 토론회에는 쓰다 예술감독과 《표현의 부자유/그 후》 실행위원회의 오카모토 유카가 참가해 발언했다.
8월 23일에는 일본 작가로는 최초로 다나카 고키가 전시 프레임의 재설정을 공식 발표해 〈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에 동참했다. 8월 24일에는 쓰다 감독이 해외 작가의 공개서한에 회답했다. 8월 27일, 국제미술관회의(CIMAM)가 미술관감시위원회 명의로 ‘나고야 시장의 요청에 의해 전시가 중지된 것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한 것을 비롯해, 성명 발표는 계속되었다. 9월 10일에는 퍼포밍 아츠 부문과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시에 일왕을 모티프로 하는 시리즈 작품 〈 공기 #1 〉을 출품한 고이즈미 메이로(小泉明郎), 후쿠시마에서 이재민들과 촬영한 작품 〈 KI-AI 100 〉으로 동 전시에 참가한 Chim↑Pom, 성정체성 문제를 다룬 작업을 발표한 큔쵸메(Kyun-Chome) 등,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일본인 작가 35인/팀(9월 17일까지 38인/팀)을 중심으로 발족한 프로젝트 〈 ReFreedom_Aichi (https://www.refreedomaichi.ne/) 〉가 발표되었다.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는 활동을 위한 클라우드 펀딩은 첫날에만 약 3000만 원, 9월 22일 현재 목표 금액 1억 원의 67%를 넘었다. 또한 이들은 모든 전시의 재개를 목표로 〈 #YOurFeedom 〉이라는 시민 참가형 프로젝트, 아티스트들이 공무원을 대신해 항의 전화를 받는 연극 프로젝트 〈아티스트 콜센터〉 설립 등을 제안했다. 9월 13일에는 《표현의 부자유/그 후》 실행위원회가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9월 21일에는 검증위원회가 주최하는 첫 공개 포럼이 개최, 생중계되었다. 검증위원회의 성과 발표, 참가 작가들의 발언에 이어 시민들이 질의했는데, 전시 재개를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참가 작가들에게 고성을 지르는 일부 시민들을 보면서 역사 인식의 차이보다, 사회 속 예술의 존재 의미, 혹은 그 의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토대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것이 사태 해결을 막는 벽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단 아이치현, 일본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왼쪽: 다나카 고키, 〈 Abstracted/Family 〉, 2019. Courtesy of the artist
오른쪽: 이번 사태가 벌어진 후 일본작가로는 처음으로 전시 프레임을 재설정한 다나카 고키의 〈 Abstracted/Family 〉(2019) 광경.
평일에는 작가의 편지를 배포하고 주말에는 일정 시간대에 전시장을 열어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를 계기로
전시 종료일은 10월 14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으로 전시 기간은 1달이 채 남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사태가 시사하는 문제들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하나, 매스미디어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문제.
8월 22일 열린 정동 토론회 마지막에, 임민욱 작가는 자신이 그 자리에 한국 작가로서 참가한 것이 아니라, 테마가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라고 들었기 때문이라며, 일본, 일본 작가들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고 발언했다. 다행히 아티스트들이 보여준 연대 덕분에, 당초 매스미디어의 보도들이 제기한 한일 간 갈등 방향으로만 문제가 축소되는 일은 없었다고 본다. 다만 ‘미온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 최초의 성명에 비해 정치가들의 이름과 문제 발언, 전시 내용 변경이란 구체적인 행동을 명시한 〈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에 다나카가 합류하기까지 일본 국내 작가들이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마음에 걸린다. 〈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라는 항의의 주체를 한국인과 중남미계/스페인어권 작가라고 국적, 지역, 언어 프레임으로 한정시키는 관점이나(주: 물론, 다나카, 브레이츠, 후지이의 합류로 이 프레임은 무효화되었다), 해외 유명 작가들이 일본 시민들의 볼 권리를 빼앗았다는 식의 간접적인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작을 발표한 경우가 많은 해외 작가들에 비해, 대부분 신작을 발표한 일본인 작가들은 전시 중지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일부 작가들의 설명은 이해할 수는 있어도 동의하기는 어렵다. 갈린도, 테제스, 다나카, 후지이 등의 작업이 신작이었음은 물론, 임민욱, 메이어 등의 작업도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중지를 포함한 전시 내용 변경이라는 결단과 행동의 무게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둘, 공적자금 사용, 공공장소, 그리고 전시 내용의 문제.
공적 자산을 활용한 공공장소에서의 전시였음이 문제라는 논리는 나고야 시장이 대변하는 보수 성향 정치가나 시민들뿐만 아니라 일부 영향력 있는 미술 관계자들의 발언이나 기고문, 나아가 검증위원회의 발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금을 사용하지 않고 민간 비영리 예술문화 기관에서 전시하면 일반 시민들이 저항하지 않을 것, 즉 자기들 눈에 안 보이는 데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라는 말이다. 8월 22일에 일부 일본인 참가 아티스트들이 나고야 시내에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스페이스를 설치한다고 발표했을 때, 필자에게는 그것이 주전장(主戦場)이 된 공공장소에서 다시 한 번 미술계 속으로 돌아가는 퇴행적 제스처처럼 보였다. 오무라 지사의 발언을 빌려 말하자면 공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양한 표현이 보장되어야 한다. 공적자금 사용을 근거로 내용의 ‘적절함’을 논하는 행위를 검열이 아닌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는가.
셋, 검열의 주체에 관한 문제.
ReFreedom_Aichi의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는 일본 내에서의 검열이 중국처럼 알기 쉬운 형태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검열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검열”이라고 지적했다. 복잡한 조직 구조가 책임의 소재를 비인격화하고, 자주 규제(self-restriction/censorship)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모든 책임은 자신과 오무라 지사에게 있다고 밝힌 쓰다 감독의 발언은 중요하다 (주: 8월 22일 서울). 다만, 책임의 소재가 즉각적인 사태의 해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한계 역시 드러났다고 본다.
넷, 미술사라는 문제.
2015년의 《표현의 부자유》 전, 2016년 《기세이노세이키 (주: ‘규제의 세기’와 같은 발음) 》전 이외에도 1996년의 《AtopicSite》전이라는 일본 미술사 속 검열의 역사가 언급되고 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표현의 자유의 분기점”이라는 아티스트들의 메시지에는 미술사에 대한 위기의식과 책임감이 담겨있다. 약 두 달간의 사건들을 정리한 글을 맺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들의 작품 안에 자기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시점이 이미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술사란, 단순히 과거에 제작 발표된 예술 작품들의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를 비추는 다양한 사고와 표현의 궤적이며, 우리는 오늘의 현실만큼 발을 내딛고 있다.
* 본 원고 작성 과정에 임민욱, 박찬경, 다나카 고키, 타냐 브루겔라, 오우라 노부유키, 고이즈미 메이로, 후쿠즈미 하루오(월간 아이다), 그리고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사무국으로부터 협력을 받았다. ●
● < 월간미술 > vol.417 | 201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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