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동근 · 팀 프랑코 Double Mirrors
2022.08.26. – 09.16. 더레퍼런스
천수림 | 사진비평
〈Double Mirrors〉 더레퍼런스 전시 전경
삶을 있는 그대로 포획할 수 있을까.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다문화 가정, 결혼이주여성, 탈북 이주민들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동근과 한국에 거주하며 탈북민에 대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계 폴란드인 팀 프랑코(Tim Franco)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은 그의 저서 《진실의 색》에서 “삶은 그렇게 ‘있는 그대로’ 그림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이 이미지가 되는 순간, 그것은 삶 자체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타자가 된다. 그것은 진짜이면서도 섬뜩하고, 원본이면서도 복제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스스로의 도플갱어 (doppelganger)이다. 있는 그대로의 다큐멘터리의 삶은 다른 모든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삶 자체만은 될 수 없다” (히토 슈타이얼 지음 안규철 옮김 《진실의 색》 워크룸 2008 p.166)고 했다.
더레퍼런스에서 진행 중인 〈Double Mirrors〉는 ‘삶을 있는 그대로 포획할 수 있을까’라는 다큐멘터리의 근본적인 질문 사이를 미끄러져 나간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먼길을 돌아온 탈북민들이지만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 이동근의 시선은 본능적인 ‘센티멘탈’을 자극하고, 한국으로 도피한 탈북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 중국 - 동남아 - 한국으로 이동하는 탈북 여정과 경로에 주목한 팀 프랑코의 시선은 차갑고 건조하다. 이중거울이란 뜻의 ‘더블미러’는 내부와 외부, 혹은 내부인과 외부인의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 우리가 탈북민을 대하는 타자의 시선 앞에 세워둔다.
전시장 안에 서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은 파이프 비계와 가운데 동그랗게 마련된 무대가 눈에 띈다. 이동근의 사진집 《IN THE SPOTLIGHT》에서 영감을 받은 무대장치이기도 하다. “무대에 올랐을 때 비로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북한식 한복을 입은 가수이자, 악사들의 이야기에서 착안했다. 이동근은 2012년부터 7년간 탈북민으로 구성된 북한예술 전문공연단의 공연 여정을 동행하며 무대 안팎의 삶을 추적해왔다. 〈아리랑예술단〉 연작은 남한의 공동체로 편입되지 못한 탈북예술인들의 타자성에 주목한다. 〈아리랑예술단〉은 북한에서부터 활동하던 전문예술인과 이들로부터 배운 일반 탈북민들로 구성된 복수의 공연단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아리랑예술단〉의 단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린 시절 청소년을 위한 과외교육 기관인 소년궁전에서 춤과 노래 악기, 언변술 등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거나, 북한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남한으로 이주한 후 생계를 위해 춤과 노래를 배운 이들이다. 포트레이트 연작은 공연무대를 위해 북한식 복식으로 한껏 꾸민 모습을 유형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단원들 각각의 사연과 처절한 탈출기는 키치적인 모습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공연단은 ‘사단법인 ××도 방법연합회’, ‘××수박축제’ 등 지방자치단체의 축제와 시골 장마당의 작은 공연까지 전국을 순회했다. 이동근은 한국 외에도 중국의 투먼(도문)과 훈춘, 개산툰과 삼합, 남평 등 두만강을 경계로 둔 도시를 따라 이들이 거쳐 온 도시들의 풍경을 담았다. 고향을 갈 수 없는 예술단원들은 두만강 건너편 도시인 온성, 경원, 종성, 회령, 무산이 보이는 곳을 찾아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여정들을 동행, 추적한 이동근의 시선을 두고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은 ‘삶’과 ‘삶 비슷한 것’ 사이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을 해석하고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런 시선은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의 여정을 다룬 전작 〈초청장〉보다 더 키치적인 게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 이주여성은 여전히 차별 속에 놓여 있다. 북한 생활과 탈북체험을 홍보하는 방송에 출연하는 문화상품화부터, 무대에서는 북한의 대중가요 레퍼토리로 남한 관객들이 바라는 관음증을 충족시키고 있다. 남한의 우월성을 충족시키는 발화자의 역할과 일상적 차별까지 감수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서 가장 자주 불리고 인기 있는 노래는 〈반갑습니다〉다. 이들에게 ‘진짜 삶’은 가능했을까.
전시장에 설치된 또 다른 영상작품 〈반갑습네다〉는 현재 탈북민으로 이루어진 예술단에서 노래와 공연을 하는 네 명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대한민국드림이라는 꿈을 꾸고 탈출한 사연들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신매매로 중국 시골로 팔려갔던 사연, 평범한 자유를 꿈꾸던 젊은 시절과 부모님 약값이라도 보태고 싶었던 효심까지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동근은 영상 안에서 누이의 이름을 부르듯 각자의 이름을 표기하고 있는 반면, 팀 프랑코는 탈북민들을 ‘無人’, 비인격으로 지칭하고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비인간은 증발된 사람이며 기록은 지워졌다. 이처럼 팀 프랑코가 관심을 둔 탈북자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증발’을 선택한 이들이다.
팀 프랑코는 10년 동안 상하이에 기반을 두고 중국의 도시화와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이 작품은 〈Monography Metamorpolis〉로 출판되었고, 세계에서 도시화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진 충칭 (Chongqing)의 농촌 이주에 관해 5년여 동안 촬영했다. 그는 《Time Magazin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Times》, 《National Geographic》, 《Le Monde》, 《Geo》 및 《6 Mois》와 협력해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는 2016년 서울 이주 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며 탈북민들에 대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연작은 앞서 영국의 벨파스트사진축제 2021(Belfast Photo Festival)에서 공개되었다. 남한으로 향하는 이들은 중국과 몽골, 라오스, 태국 국경을 넘는데 그 여정이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실패할 경우엔 강제로 북한의 노동수용소로 돌려보내질 수도 있다. 힘겹게 당도한 한국에서는 다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팀 프랑코가 북한의 과거와 남한의 미래 사이에 놓여 있는 이들을 팀 ‘무인( 無人)’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팀 프랑코는 이런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포트레이트 인물 연작에 폴라로이드 필름의 화학 처리면으로 버려지는 표면의 흐릿한 효과를 이용했다. 이 인물 연작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Christian Boltanski)가 옛 인물사진을 확대해 흐릿해진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기억’의 속성을 활용한 점을 연상할 수 있다. 팀 프랑코는 과거뿐 아니라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미래를 검고 푸른 얼굴로 표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Unperson〉이라는 사진집으로 출판되었다. 팀 프랑코는 탈북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중국, 동남아, 한국으로 이동하는 경로에 주목했다. 가장 가까운 2km 남짓 비무장지대 외에도 1,300km 이상의 거리를 거쳐야 했던 누군가의 여정은 풍경 연작 밑에 숫자로 명시되어 있다. 백두산과 베이징, 선양, 구이양 등의 풍경 사진 아래 파이프형 비계 설치에 표기된 숫자는 북한, 중국, 몽골, 라오스, 태국 등 서울까지의 거리 수천 km를 표기한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파이프 비계로 구획된 공간을 함께 걸어감으로써 이 거리에 무심코 동참하게 된다.
이동근과 팀 프랑코는 ‘탈북민’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히 닮았다. 하지만 이동근은 좀 더 따뜻한 내부자의 시선을, 팀 프랑코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 점은 반드시 내국인이나 외국인이어서일까. 냉엄한 분단현실을 보는 뜨겁거나 객관적인 시선 사이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서성대고 있을까.
이동근 〈아리랑예술단 2018 - BS - 7540〉 디지털 프린트 34×50cm 2018
팀 프랑코 〈Broken bridge on the Yalu River bordering China and North Korea〉 디지털 프린트 107.7×130cm 2017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