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정욱 ·남진우 낭만주의자의 신비극
2022.08.31. – 10.07.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오세원 | 씨알콜렉티브

김정욱의 회화 작품(사진 왼쪽). 남진우의 파괴자와 수호자 시리즈(사진 오른쪽) 전경
사진 제공: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인간의 감정과 개성을 중시했던 유럽 낭만주의 화가들은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공상의 세계를 탐미했다. 혁명과 혼돈의 시대에서 이들은 인식론적  ·  존재론적 불안과 불완전함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난세를 구원할 영웅을 환영하면서도 자연으로 도피해버리는 반동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기괴와 로맨틱이라는 상이함을 가로지르거나 고통을 넘어 광기와도 같은 예술적 특징을 보였다.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산업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로망을 품었으며 역사화보다는 풍경화나 초상화를 새로운 양식으로 등장시켰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구축된 화면 속 자연과 인간의 표현들은 외재성과 내재성의 동일시라는 동어반복하에 공고해진 내면세계였다. 이런 측면에서 낭만주의자라고 하면 소위 현실도피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당대 급부상한 부유층이 초상화나 풍경화를 예술가에게 의뢰하면서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경계를 확인하거나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에 대한 과시욕을 충족하고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는 예술가라는 존재가 사회적  ·   문화적 재생산의 산물임을 환기해 주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김정욱과 남진우, 두 작가의 작업을 낭만주의자의 내면 표현과 중세 연극기술자들이 실연에 참여했던 신비극 형식에 빗대었다. 두 작가의 작업은 대조적인 색채와 질료의 차이라는 외견적 다름을 차치하고,
강화된 내러티브로 다차원 공상의 세계를 구성하여 신비한 공간을 펼쳐 보여준다. 이들의 초상화이자 풍경화는 드라마틱하지만 낭만주의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가상 안에서 만화 캐릭터나 히어로물의 주인공으로 주체를 삭제함으로써 또는 도피시킴으로써 생명력 넘치는 존재를 확인하며 연극성을 획득한다.
김정욱은 전통적인 한국화의 채색기법과 발칙한 모티브 사이의 이질감으로 당대적 의미를 획득하기도 했지만, 그의 시그니처(signature)인 캐릭터의 크고 검은 눈은 끝이 안 보이는 심연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 광활하고 빛나는 우주, 즉 미지의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묵직한 채색과 세필의 묘사가 우주와 조우하며 교신하지만, 응답은 없다. 절대적 외부는 작가 자신의 주관적 틀 안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주체를 매개해야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그의 인물 형상이 사이보그와 같은 이미지로도 변주하고 있는데, 최근의 포스트휴먼 담론으로 접근 / 사유가 가능해 보인다. 작가를 따라 낯선 절대 바깥을 힐끗 들여다보게 될 순간을 고대하면서 어딘가 떠돌고 있을지 모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히트곡,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의 메이저 톰(Major Tom)을 소환해본다.
남진우는 악당(villain)이자 괴물로서의 대왕오징어의 비호를 받으며 공조하는 또 다른 악당인 자신을 화려한 종교화 안에 배치시킨다. 그는 영웅과 악당의 숙명적 관계를 “적대적 공생”으로 보고 인과응보의 관계를 뒤집으며 빌런을 응징할 권한을 누가 영웅에게 부여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의 개인사적 상황과 맞물려, 우리는 “당하는” 자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비롯된 독특한 공상을 트라우마의 상흔이나 자기방어적 기제로 상상해볼 뿐이다. 화려하고 기술적인 묘사와 함께 다층적인 상징이 로맨틱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면엔 사회적  ·  문화적 기억이 담론적 산물로 구조화되는 과정을 비틀고 있다.
이번 전시 기획은 유럽 낭만주의자들과 같은 극적이고 격한 감정의 표현은 아니지만, 김정욱과 남진우 두 작가의 비인간적 존재들을 상상하면서 시대에 따라 진화한 개성과 정서에 대해 사유하도록 돕는다. 이번에도 두 작가의 작업 또한 현실 도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차이를 통해 견고해진 물질성과 비물질화된 의미체계들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는 아니지만, 더욱 공고해지는 문화적 재생산과 담론의 우리 안에서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정치적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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