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VIEW 2

풍-덩
블루메미술관 7.4~9.29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고찰하는 미디어아트 작품 12점을 통해 미술관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 디지털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발견하고 타자를 이해하게하는 디지털미디어의 기능과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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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1._Compound_Construction_1_2015_115_x_115cm_paint_jangji_paper_on_white_birch_plastic

이주연
갤러리담 7.3~10

아크릴, 장지 등을 이용해 입체 회화작품을 선보이는 이주연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Window of Being 시리즈와 Compound Construction 시리즈를 통해 성질이 서로 다른 재료들의 충돌과 교차에서 오는 오묘한 조화와 소통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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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김영갑
아라아트센터 6.27~9.28

김영갑의 사진을 통해 제주의 참모습을 바라본다. 전체 4부로 이루어진 전시는 그의 초기, 중기, 후기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김영갑과 그의 사진을 품은 위대한 제주의 자연,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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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혁

임자혁
누크갤러리 6.25~7.23

일상의 느낌을 밝고 신선한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임자혁의 개인전 <조금 이상한 날>. 작가는 스쳐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주목하며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이미지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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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비

김실비
인사미술공간 6.26~7.26

사회에서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기저의 정체성과 정치성에 주목하는 작가 김실비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생명의 서식지에 대한, 또 ‘거대한 외부’에 노출된 우리 욕망의 자족적 공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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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임지빈

아트플라주—레인보우 비치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6.25~7.21

바캉스 시즌을 맞이한 갤러리에 해변이 찾아왔다. 이기일 이상원 임지빈 최종운이 자신의 개성을 살린 무지개빛 해변을 갤러리에 구현해 현대미술로 만들어진 바다를 체험하며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고 휴식과 힐링의 기회를 마련한다.
임지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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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황인선
갤러리 파비욘드 6.30~7.11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지명공모수상자로 선정된 황인선의 수상자전이 열린다. 몽유도원도를 모티프로 삼고 진경산수화를 토대로 해 우리 강산을 화폭에 담은 작가는 특유의 제작방법을 통해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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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규

유석규
청원 쉐마미술관 7.9~8.2

문명에 의한 사회적 모순과 왜곡된 현실의 이중적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표현하는 유석규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를 사적 표현의 공간보다는 타자와 대면하는 공간으로 전용하려는 시도를 지속하는 최근 시리즈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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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이은영
아트스페이스 루 6.23~7.20

꽃을 소재로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 이은영의 개인전<Inflorescence>. 작가는 부조처럼 보일만큼 질료를 두텁게 사용해 거친 붓질로 세세함을 표현하며 밝고 어두움, 밀집과 여백, 형태와 행위가 공존하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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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박일선
갤러리 그림손 7.22~28

단청과 회화의 접목시킨 단청 산수화를 그리는 박일선의 개인전 <몽유 금강산>. 작가는 단청의 색과 제작방법을 이용해 금강전도를 재해석하며 전통문화 융합을 통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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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

권철
토포하우스 7.8~14

사진가 권철은 자본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을 포착한다. 삶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현실과 구조를 파헤치고 자본이 자연을, 사람을, 역사를 침식해가는 과정을 사진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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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슬라

박보석
강릉 하슬라현대미술관 6.1~8.30

반복 구조나 자기복제 구조를 뜻하는 프렉탈이론을 기초로 하여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박보석의 개인전. 작가는 프렉탈 아트 장르를 통하여, 수많은 나뭇가지와 뿌리들을 그리고 아름다운 색의 무한 반복의 미학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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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늠

한기늠
부산 해운아트갤러리 7.23~8.5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대리석 석산에 둘러싸여 작품 활동을 해온 한기늠의 개인전 <자연 속에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색적인 환경에서 느끼는 생경한 감정을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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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채민

류채민
경북 칠곡 힐링갤러리 6.1~7.30

정물과 풍경의 혼합된 구성으로 독특한 작업세계를 펼치는 서양화가 류채민의 두번째 개인전. 건물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시점의 일정한 앵글로 바깥풍경을 화면에 담아내는 작가는 정물화도 아니고 풍경화도 아닌 이색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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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153318

이성주
조형갤러리 7.15~21

1997년부터 시도해 온 촛불을 테마로 한 작품을 선보인 이성주의 개인전. 작가의 삶을 반추하듯 작품에 녹여낸 여러 가지 기법으로 그려진 촛불작품은 개인적 경험에 따른 주관적 해석과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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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운

권성운
Pialux갤러리 6.25~7.8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우리를 만든다. 우리라는 단어는 단순한 그룹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하나가 되는 진실한 공동체를 뜻한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우리는 무지개를 보았습니다>로 명명한 전시를 통해 각자 다른 시선들이 만나는 진실한 교차점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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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김영경
진주아트갤러리 7.6~8.31

스케치 하듯 간결한 표현으로 대상을 구현하는 김영경의 개인전, 작가는 공기의 흐름과 생성이 일어나는 여백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상을 향기롭고 따뜻한 시공간으로 이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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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박지나

Pause &
최정아갤러리 7.7~8.7

독창적인 감성과 시각으로 자신들이 주목한 대상과 그 안에서 생성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가는 박지나와 장인희의 2인전. 두 작가는 흘러가는 일상생활 안에서 자신이 포착한 상황을 정지된 순간처럼 기록한다.
박지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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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Lutz_Garmsen - 복사본

노마딕이미지네이션2015
대구 아트스페이스펄7.15~8.14

예술의 고유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연결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전시. 서예가 노상동과 타이포그래퍼 류현국, 단편영화 및 영상설치를 하는 러츠감센이 만나 다른 듯 비슷한 문자와 영상을 통해 유목적 상상을 펼쳐낸다.
러츠 감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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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거이헛되다-사일로 랩(SILO Lab), 묘화(Mysterious fire), 2015, Photo by STILLM45(01)

All (is) Vanity
서울미술관 6.5~8.9

삶의 허무, 허영의 덧없음 등을 화폭에 담은 바니타스 회화를 다각도로 재현한 작품을 모았다. 김태은 SILO Lab 양정욱 이병호 정현목 HYBE 한승구 짐 캠벨 샘 징크가 참여해 미디어 아트,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다채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SILO Lab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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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이소정
창원 구복예술촌 미술관 7.4~17

자연에서 보이는 사물의 흐름을 색의 중첩을 통해 선과 면으로 구성하는 이소정의 개인전. 작가는 대상을 풍부한 색조를 이용해 현대적 조형 언어로 표현하며 그 안에 현대인의 희노애락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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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박일정
갤러리 생각상자 7.3~30

회화의 평면성과 도자의 입체 조형세계를 함께 모색하는 박일정 작가는 “오래된 풍경”을 테마로 작업한다. 전통 회화를 바탕으로 흔히 보는 주변의 풍경, 무인도, 월선리 등 익숙한 삶의 풍경을 도자기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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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김정선
에이블파인아트갤러리 7.1~14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여행자의 동선을 눈으로 좇는 김정선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2013년부터 시작된 여행자 시리즈로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을 담았다. 작가는 청색 단색조로 현실과 비현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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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김상우
대구 동원화랑 7.16~31

언덕을 주제로 작업하는 김상우의 개인전 <그 언덕>. 언덕에서 느끼는 강렬한 햇빛과 그 햇빛을 받고 선 강변의 여름나무들, 소실점 너머로 사라져버린 길 등을 작가만의 붓터치로 화폭에 담아 자연의 평안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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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윤동천-

난처한 공존
가일미술관 6.20~8.20

자본주의,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면서 느끼는 공허함을 말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구본주 김상돈 송필 윤동천 전채강 정승 6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소외, 불안, 상실감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통해 공허한 내면을 드러낸다.
윤동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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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연

안정연
가나인사아트센터 7.8~14

생명체가 없는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재현된 이미지로 현대인의 심상을 표현하는 작가 안정연의 개인전. 작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통일된 시선으로 도시의 풍경을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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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

김은기
창원 그림갤러리 7.9~8.9

In solar system story를 주제로 작업하는 김은기의 개인전. 작가는 드로잉과 유화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기법을 통해 내용은 물론 작업과정에서부터 차별화된 회화로 현대미술의 자율성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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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득

조원득
57th갤러리 7.1~6

사회 속에서 인간이 갖는 감정을 인간의 몸을 소재로 표현해 온 조원득의 개인전 <묻다>. 이번 전시에서는 폭력과 억압 속에 감춰졌던 그 무엇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을 그리며 진정한 극복과 회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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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윤길현YUN_Gilhyeon_내게_믿을만한_사람이_생겼어_65x53x22cm_2014_자~

전설에 m.t 그리고 자정 30분전
전주 서신갤러리 7.8~14

제26회 전주조각회 정기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국훈호 김성석 권성수 김용주 김경일 김원용 박근우 박재석 윤상욱 윤길현 윤효은 이명훈 이상 이효문 이창희 이한우 조정 17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윤길현 작

SIGHT & ISSUE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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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김은호 <백학도> 비단에 채색 214×578cm 1920 (등록문화재 제243호) 창덕궁 대조전 서쪽 벽에 설치된 부벽화로 현재 모사도로 대체되어 있다.
아래 오일영, 이용우 <봉황도> 비단에 채색 214×578cm 1920 (등록문화재 제242호) 창덕궁 대조전 동쪽 벽에 설치된 부벽화로 현재 모사도로 대체되어 있다.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국립고궁박물관 4.28~5.31

황제의 덕을 기억하라

바람처럼 스며들어야만 이를 수 있는 궁궐의 한구석을 좋아했다. 너덜너덜한 문창호 사이로 어렴풋이 방 안이 들여다보였는데, 가난한 친구 집에서처럼 벽에는 신문지가 발려져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궁궐에 신문지는 절대 맞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창호지의 뚫린 구멍 사이로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었다. 서울역그릴에서 언뜻 보았던 부엌 같기도 한 네모진 건물 옆의 커다란 한옥은 닫힌 문 안에 또 닫힌 문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복도에서 복도로 신을 벗지 않고도 이를 수 있는 방들의 문틀 위 간벽에서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봄날, 학생들과 함께 찾은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경복궁 강녕전이나 교태전 내부 사진에서처럼 문틀 위에는 찬란한 벽화 대신 하얀 종이가 발린 공간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벽화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아무런 설명문조차 없던 햇빛 쏟아지는 대조전의 그 모습은 마음에 바람 한 줄 지나는 상실감의 풍경이 되었다. 2005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준비할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지만 정작 보존처리를 위해 벽화를 걷어낸 대조전의 대청은 낯설었다. 희정당이나 경훈각의 벽화에 비해 균열과 박락이 더 심했던 대조전 벽화는 2년 동안 복원과정을 거쳤고 대체될 모사도도 제작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복원된 대조전 벽화를 조우하며 마치 사라진 명화를 되찾아 공개하는 탐정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것은 그때의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진열실에 펼쳐진 벽화는 1920년 여름 덕수궁 준명당에서 완성되어 궁중표구사의 손에서 재단되었을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벽에 부착되어 있던 탓에 커튼 박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가장자리들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김은호 근사(金殷鎬謹寫)’ ‘오일영 이용우 등 근사(吳一英李用雨等謹寫)’라는 묵서는 발걸음을 얼어붙게 하였다. 잠시 궁중화사가 된 당대 재능있고 젊은 화가들의 필치는 희정당 벽화에 엄청난 크기로 써넣은 김규진의 글씨에 비해 얼마나 예의바르며 겸손한지.
1917년 원인이 의심스러운 화재가 창덕궁 내전 일곽에서 발생하였다. 1920년에 재건된 전각들은 경복궁의 주요 건물을 헐어서 자재를 댄 것으로 외양은 한식이지만 전기와 수도를 설비하고 내부에는 커튼박스와 샹들리에, 양식 가구를 배치하였으며 부벽화(付壁畵)를 설치했다. 희정당(熙政堂)에는 김규진이 그린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경훈각(景薰閣)에는 이상범이 그린 <삼선관파도>와 노수현이 그린 <조일선관도>를 배치했다. 대조전에는 김규진을 제외한 청년 화가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30세의 오일영과 나이가 가장 어렸지만 천재화가라 일컬어지던 16세의 이용우가 합작한 그림 <봉황도>와 김은호가 그린 <백학도>를 배접해 붙였다.
대조전 동벽, 즉 주인 좌측에는 <봉황도>가, 서벽인 우측에는 <백학도>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도>는 가로로 봉황 10마리가 배치되고 우측에 바위와 폭포, 모란, 흐드러진 붉은 꽃을 피운 나리와 두꺼운 잎의 오동나무가 있다. 가운데에는 오동나무 가지 아래 바위와 대나무, 괴석과 나리가 있고 좌측에는 하늘을 나는 봉황과 그 아래 바닷물이 넘실대고 하늘에는 붉은 해가 떠 있다. <백학도>에는 열여섯 마리의 학이 가로로 펼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좌측에는 폭포와 소나무 그리고 모란과 대나무가 표현되었다. 가장 좌측의 학 세 마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그 아래 물가와 모란 옆으로 다섯 마리가 놀고 있다. 우측의 달 가까이에서부터 학 여섯 마리는 좌측으로 날아드는 형상인데 달 아래 파도가 넘실대고 모란 가까이에는 붉은 영지가 바위 사이에 드러나 있다.
임금의 덕이 높으면 그 덕이 한갓 미물인 새와 짐승에까지 미치므로 성군(聖君)이 나타나면 봉황이 날아다닌다고 하였다. 따라서 <봉황도>는 성군과 해의 도상이 결합한 것으로 왕의 덕치를 의미한다. 민화에서는 부부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궁중 장식화로서 봉황도는 치세(治世)의 상징물인 것이다. 벽오동과 물은 왕의 정치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데 해와 봉황은 의미가 연결되지만 해와 나리꽃은 상관관계가 없다. 모란, 물, 해, 바위 등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제재 속에서 나리꽃은 십장생과 연관이 없는 소재임에도 화면의 우측과 하단 중앙부에서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나리는 일본화에 자주 등장하는 야생초로서 병풍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결국 궁궐의 제도를 지키는 엄중한 그림에서부터 도상이 약화되고, 풍경화한 것이다.
<백학도>는 학이 장수를 의미한다고 해서 십장생과 연관되어 이해되었다. 노송, 물, 바위, 달, 구름, 영지는 그러한 의미를 증명한다. 전면의 모란은 부귀를 상징함으로써 단순 십장생도에서부터 그림의 해석에 다른 여지를 제공한다.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달밤에 춤추는 학은 고고한 선비를 의미했다. 그림에서 상징은, 게다가 여러 제재가 동반할 때는 하나의 의미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궁중화에서는 일상적인 화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장식화에서는 더더욱 제왕의 덕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봉황도>와 <백학도>는 부부화평과 무병장수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 왕의 공간에 배치되는 길상도로서 덕을 칭송하는 천보구여(天保救如)의 영역에 위치한다.
어좌 뒤에 설치되는 <일월오봉도>에서 왕의 좌측에는 해, 우측에는 달이 온다. 산과 나무와 더불어 넘실대는 파도와 폭포가 함께 나타나는 <일월오봉도>는 왕의 덕을 칭송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1920년 이왕직과 조선총독부의 계획에 의해 재건된 창덕궁 내전은 정치적 공간이 아닌 순종의 거주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벽화 또한 정치적 의미를 잃었다. 그럼에도 대조전 벽화에서는 봉황과 백학을 소재로 함으로써 해와 달을 배치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의 덕이 대대손손 전하리라는 천보구여의 제재는 의미로 숨어 그림을 해독하는 이들에게는 영롱한 국가 존립의 증거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번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에서는 살문을 지나 대조전의 벽화를 좌우에 두고 관람할 수 있었다. 관람자의 시각을 위한 많은 장치는 친절했다. 벽화가 전시된 공간의 중앙 열린 부분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다른 전각의 벽화들도 만날 수 있었다. 벽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이 장면은 말 그대로 현란한 빛으로 움직이는 ‘영상작품’이었다. 어두운 공간을 밝히며 빠르게 움직이는 작품에서 근엄한 시대의 교훈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근대기 빛나는 진채(眞彩)의 아름다운 대조전 벽화는 디지털의 위력 앞에서 어스름히 빛을 발하기 위해 힘을 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접혀져 나무상자 속에서 잠들어버릴 대조전 벽화가 안쓰러운 것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은정 미술사

창덕궁 (9)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창덕궁 대조전 벽화> (4.28~5.31)에서 보존 처리된 <백학도>(사진)와 <봉황도>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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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금강산만물초승경도> 비단에 채색 205.1×883.0cm 1920 (등록문화재 제241호)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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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수현 <조일선관도> 비단에 채색 194.9×524.5cm 1920 (등록문화재 제244호) 창덕궁 경훈각 동쪽 벽에 설치

HOT ART SPACE

이완 개인전
313프로젝트 4.15~5.20

이번 전시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에서 작가는 역사적 콤플렉스, 민족과 전통에 대한 피상적인 통념,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소비사회의 현실 등 한국 사회의 이면에 은폐되거나 왜곡된 다양한 문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구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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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토탈 (6)

거짓말의 거짓말 : 사진에 관하여
토탈미술관 4.23~6.21

사람들은 당연하게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진은 태생적으로 거짓말에 능하다. 구본창, 김도균, 노순택, 원성원, 정연두 등 18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카메라의 시선이 세상을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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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루_아라리오 (4)

탈루 N.L. 개인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5.7~6.28

전시장 지하에는 전시 제목인 ‘Threshold(임계점)’와 동일한 제목의 설치작업으로 톱날을 가는 기계가 사람이 접근할 때마다 불꽃을 튀기며 작동한다. 작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과 삶의 근본적인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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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석_선재 (1)

홍원석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4.17~5.10

직접 택시기사가 되어 만남과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는 그동안 선보여 온 택시 프로젝트를 드로잉, 영상, 설치작업으로 구성했다. 전시기간 동안 그는 p택시에 탑승할 승객을 모집하고 이후 승객이 신청한 장소로 운행하며, 남한의 각 지역에 터전을 마련한 탈북자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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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_곽덕준 (2)

곽덕준 개인전
갤러리 현대 4.29~5.31

재일작가 곽덕준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주변인으로서 사회와 개인의 문제, 부조리한 현실과 자의식, 정체성을 성찰한 작업을 일관되게 선보였다. 그는 이번 전시 <Timeless>에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회화, 사진, 설치 비디오 등 폭넓은 작업세계를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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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규_포네티브 (3)

한애규 개인전
포네티브 스페이스 5.9~31

작가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흙만이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이번 전시 <반가사유상을 생각하다>에서는 소박한 형태의 여성 형상이 차분하게 사유하는 장면을 담아내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쉼표의 공간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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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백
황규백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4.28~7.5
국제무대에서 판화가로 명성을 쌓은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자 작업 여정 60년을 보여주는 회고전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과 사물의 풍경이 은유적으로 병치돼 선보이는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메조틴트 기법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함과 최근 작가가 몰두하는 유화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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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방 (2)

송영방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31~6.28

1960~1970년대 수묵의 추상실험을 거쳐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독자적인 품격으로 담아낸 한국화가 송영방의 개인전이 <오채묵향>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시적인 정취와 기운생동하는 작품이 다양한 드로잉 자료와 함께 소개돼 원로 작가의 예술 의지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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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센터 (2)

혼자 사는 법
커먼센터 4.17~5.25

최근 대두된 사회 현상 ‘1인 가구’를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 조망한 전시다. 구민자, 길종상가, 소목장세미, 이은우, 텍스쳐온텍스쳐 등 미술가와 디자이너 15팀이 참여해 각자 전시 공간을 꾸몄다. 길종상가가 꾸민 방(사진)은 전시기간 동안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엔비(airbnb.com)’를 통해 예약한 관람객에 한해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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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_최영욱 (5)

최영욱 개인전
표갤러리 3.26~4.16

작가는 ‘Karma’를 주제로 오랫동안 달항아리를 그려왔다. 캔버스에 가득 채우는 달항아리는 언뜻보면 극사실기법으로 재현해 놓은 것 같지만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와 교차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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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_호시탐탐 (3)

호시탐탐_호랑이 예술을 즐기다
고려대학교박물관 4.28~6.21

호랑이는 한국인의 정신적 기상을 상징하며, 동시에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고려대학교 개교 110주년을 맞아 (사)코아스페이스와 공동기획으로 호랑이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강형구, 김구림, 백남준, 서용선, 이이남, 안장헌 등 총 51명의 작가가 참여해 호랑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선보인다.

THEME FEATURE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

2015년 한국미술의 새로운 경향!
언제부턴가 ‘청년 작가’, ‘신생 공간’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 ‘개인전’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경력 사항이 작가들의 약력에 등장한다. 198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작업의 변화 양상은 이전 세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기존 미술계와 구분 짓는 하나의 층을 만들어 나간다는 ‘청년작가’의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해하고 표현하는 세상은 기존의 현실인식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들의 언어’에 대한 소통의 가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미술》은 6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전>에 참여하는 작가 5인을 만나 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기존 작업과 이번 전시에 소개될 작품 일부를 미리 만나보는 자리다. 현재 상황(state of things)에 대한 인식과 이를 표현하는 재현의 방법을 젊은 미술가 5인의 작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이 구현한 다른 세상(another state) 속 현실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본다.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 일민미술관 6.26~8.9

유저-미술가(User-Artist)의 탄생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커먼센터 멤버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신진작가 프로그램과 공모전,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응당 제시됐어야 할 의제는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미술가 지망생들은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그렇게 전국을 돌다 보면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세대에 근접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결국은 언제나 청년일 것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청년 작가가 더 이상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버블을 거치며) 미술계의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도의 공회전은 청년 작가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 그러니까 ‘작가’라는 정체성보다 ‘청년’이라는 세대의 계급적 배경에 우선 주목하면서 부득이하게 가속화할 뿐이었다. 신진작가의 성장을 지연시키면서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게끔 하는 복지 정책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공회전의 운명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팔에 링거를 꽂은 형태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 의제 설정의 풍선돌리기는 곧 끝날 것 같다.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는 풍선이 폭발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때를 맞춰 미술계에 투입되던 공적 기금이 서서히 고갈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수 없다.
최근 미술계에서 감지되는 이상한 활력은 꽤 많은 청년 미술가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아마도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양은 학계나 교육제도가 차마 전부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고 확산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제도권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이즘의 연대기는 정보를 담은 아이템으로 환산되어 유튜브나 넷상에 공개된 텍스트를 거쳐 직접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형태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김구림이 미8군에서 쓰레기로 버려진 《아트 인 아메리카》를 보고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흉내’내고자 했던 동기에 비해, 최근의 젊은 미술가들은 단지 정보의 흡수를 위해서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서구 미학의 흐름을 어떻게 제 작업의 동기로 변환하느냐에 있다. 나아가, 미술적 정보뿐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좀 더 간편한 방법으로서 인터넷 자체를 어떻게 내적 체계로 만들어 흡수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이는 최근의 미술로 공인된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밀쳐버릴 기세다. 요리를 해서 관객에게 먹인다든지, 집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손님을 초대한다든지 하는 작품은 최첨단의 현대미술이 의태해야 하는 양식화된 패턴으로 변화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유저-미술가들은 관계미학으로 통칭되며 (미술시장을 포함하여) 미술계의 전면에 나섰던 명장들의 세계 인식에 대해, ‘원래 그런 것 아니었어?’라는,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바라본다. 획득된 정보가 단순히 내용을 담고 있는 어떤 물질인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의 아이템처럼 레벨로 환산되는, 데이터베이스 소비형 미술가, 유저-미술가가 탄생한 것이다.
유저-미술가는 여전히 청년 작가로 불리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작가와도 극명한 차이를 가진다. 유학을 통해 해외 경향을 습득하고 귀국한 작가들이 영미권의 미학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엇비슷한 상황을 다소 기계적으로 환유하기도 했던 것에 반해,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초/중학교때 IT붐을 겪은 세대는 그러한 미적 판단에 대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그들에게 주어졌던 문화가 전지구적 현상의 일부로 이미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생 작가들이 한국에서, 그리고 영미권에서 받은 교육과 영미권 학생과의 교류를 통해 점검했던 취향을 작품에 그대로 드러내는 오글오글함을 탑재하고 있었던 반면, 1980년대의 작가들은 자신이 보아온, 직접 즐겨온 일본의 망가와 게임을 경험했던 인식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개척하고 있다.

옆으로 이동하는 미술
가상의 ‘위’를 설정하고 거기에 본인의 자아를 투영해서 목표 지점을 성취하려는 작가의 작품은 더는 설 자리가 없다. 디아스포라 등의 철지난 의제를 남북의 상황에 연결짓는다거나 하는 등의 기계적인 태도를 재현함으로써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이 인터넷을 통해 전부 다 공개된 정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답으로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몸을 던져서 시선의 기계적 평등을 성립시키는 선배 세대와는 달리, 한국에서 자라난-유학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거대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을 설계하는 방식을 이미 현대미술의 ‘쿠세(くせ)’로 인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가상의 그래프를 그려봄으로써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아래가 없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옆으로 옆으로 옮겨가며 제 인식의 영역을 넓히는 평면적인 가상의 세계가 최근 청년 작가의 미의식이 추동하는 정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기존의 한국 현대미술이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어렴풋이 복제하면서 몸집을 키워왔던 것과는 다르다. 대신에, 그들의 미술은 ‘득템’한 인터넷상의 물질을 역시 ‘득템’한 현대미술의 공략집에 적용해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기존의 이미지를 열화시켜 요소로 콜라주한 뒤에 그것을 뒤섞어 근사한 비디오를 한 편 제작하는 일은 해외의 유사한 사례를 따르는 추격자의 뉘앙스가 삭제되어 있다. 몇 년 전부터 몇몇 한국 미술가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고 하는 작업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거기에는 이론화한 현대미술적 형식을 의식하는 자세나, 특정 사물에 접면하는 패티시를 개인적으로 충족하려는 충동보다는 수평적으로 널찍하게 분포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순서를 채집하고 배열함으로써 각각의 시퀀스가 가진 아련한 충동을 충돌시켜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청년 작가들은 과거 어떤 세대도 이루지 못한 전 세계의 동기화 속에서 살고 있다. 변방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니고, 현재가 더 이상 현재가 아닌, 이 중차대한 시점에 미술계는 어떻게 현재를 맞이해야 할까? 어떠한 미술이 현재 한국의 상황에 걸맞을까? 의제 설정에 게을렀던 미술 제도의 영역 바깥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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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하 전략적 (3)

박민하 전략적 (1)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리얼리스틱> HD비디오 21분33초 2015

영화관과 미술관을 오가며 영상설치와 스크리닝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시각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내가 다루는 ‘시각성(visuality)’은 현대사회 속 여러 장소에서 찾아낸 각종 일루전과 연결되어 있다. 영화세트장을 차용한 캘리포니아 군사기지 ‘NTC Fort Irwin, LA’에 내리는 가짜 눈(snow), 관광지가 된 중국-북한의 국경 등의 장소다. 이곳에서 각종 산업이나 군사전략 등과 맞물려 생성되는 일루전에 주목하고 그 시각적 환영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작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적 특수효과는 어떤 사물이나 장소를 ‘물리적’으로 변환시키는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로부터, 현실을 가상으로 ‘인코딩’하는 디지털적인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실과 허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영상미디어’가 가진 양가적 성격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실재와 허구가 구별 불가하게 뒤섞여 fuse되는 일종의 ‘마술적 상태’는 작가가 즐겨 다루는 현상이다. 초기 영화가 마술적 일루전과 특수효과를 통해 시각적 실험을 했던 것처럼, 이는 작가의 영상 속에서 영상미디어에 대한 메타적 관심, 형식적 실험으로 연결, 확장되어 실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리얼리스틱’이라는 미국 회사의 카탈로그 이미지를 차용하여 만든 영상 설치작업과 TV모니터를 이용하여 만든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박민하
박민하 인물 (1)

박 민 하 PARK MINHA
1985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예술대학 Art과정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시청각에서 첫 개인전 <텔레캐스트 바그다드>를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과 스크리닝에 참여했다. 2012년 EXIS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중운상(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Film Montage>(5.7~7.11)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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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d

김영수는 <우주시민 A씨의 데카드>를 기획했고 카드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게임을 하는 관객을 지켜보는 것까지 작업에 포함된다. 디자인은 ‘물질과 비물질’이 담당했다.

나의 작업은 주거공동체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 관심은 우연한 계기에 참여했던 재개발사업설명회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주어진 문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흥미롭게도 아테네 민회를 방불케 한 그들의 토론 자세는 일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이익을 정확히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사고실험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참여자가 하는 행동을 객관식으로 바꿔가다 보니 보드게임의 형태를 취하게 됐다. 게임에는 점수라는 절대 이익이 있다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게임을 만드는 데 새로운 완벽한 공동체라는 설정이 필요했다.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 같은 일이 가까운 미래까지 지속한다면 ‘달 정착민 배출사업’ 같은 걸 실행하지 않을까. 그래서 참여자는 달에 적응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 우주시민으로 설정했다. 참여자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역할에 맞춰 투표하고 사과 혹은 건물을 생산하거나 탐사를 하여 점수를 받는다. 물론 상황이 늘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하였지만, 대다수의 참여자는 규칙서를 다시 요구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명확한 근거와 기준 없이는 게임을 진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게임 시작 혹은 중간에도 이따금 집단 독서를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규칙서를 서로 번역하고 설교하는 과정에서 언어 온도를 맞춰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흡족했다. 난 그저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기 위하여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모두 훌륭한 우주시민이 되길 기대한다. – 김영수

김영수 인물 (16)-1

김 영 수 KIM YEONGSU
1984년 태어났다.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2년 꿀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5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시우, 황아람과 함께 신생 미술공간인 교역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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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석Surface B_2

〈Simulating Surface B〉 HD 비디오 7분40초 2014

강정석415

강정석이 기획한 전시 〈던전〉이 열린 공간 사일삼의 전시광경. 이 전시는 5월 4일부터 6월 10일까지 CC101, 공간 사일삼, 개방회로, 200/20로 공간을 이동하며 계속된다.

현재 영상 미디어 작가이자 작가교류형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 <비디오릴레이 탄산>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주변 인물과 본인이 속한 사회를 관찰하며, 삶의 불완점함과 불분명함을 담은 홈비디오를 제작한다. 시대의 개인은 각 시점의 다양한 문화와 시스템의 얼개 속에서 “조각”되는데 나는 이러한 지점을 시각예술의 형식으로 기록해 지난 시간과 현재를 관통하는 통로를 제작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재편집해 선보이는 작품 〈Simulating Surface A/B〉,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는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설치이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막역한 친구 한 명의 삶과 노동을 통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점검한다. 두 영상과 하나의 책자는, 스크립트가 된 리듬(Simulating Surface A), 리듬이 된 그래픽(Simulating Surface B), 그래픽이 된 스크립트(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로 요약되며,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로 연결된다. 〈Simulating Surface A〉는 2012년, 첫 취업한 친구의 출근길에 매일 아침 인사를 하러 찾아간 7개월간의 영상기록물이다. 영상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눈에 들어온 것을 찍은 소스와 손을 흔드는 친구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촬영 도중 친구가 해고를 당해, 자연스럽게 촬영이 종료되었다. 이 작품 촬영 직후부터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의 스크립트 작업이 시작됐다. 이 작업은 친구의 해고에서 시작한다. 친구의 회사생활, 업계인(3D 배경 그래픽 디자이너)에 대한 인터뷰, 동종 업계인 인터뷰, 마우스의 역사와 정보통신사, 3D 그래픽의 발전 등을 조합한 스크립트를 (3D 매핑 방법 중 하나인) 노멀 맵으로 변형, CMYK로 출력해 책자로 만들었다. 책자 작업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갈 무렵 〈Simulating Surface B〉를 시작했다. 친구의 삶과 노동, 오늘날 미디어 환경을 다룬 합필(합성필수)영상이다.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의 스크립트가 빠르게 화면 위로 지나가는 가운데, 팔랑거리는 그래픽 이미지가 된 친구의 삶이 모니터 속을 고속으로 유람한다.- 강정석

강정석 인물 (16)

강 정 석 KANG JUNGSUCK
1984년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2013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2014년에는 인사미술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단체전과 스크리닝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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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바벨 (2)

〈바벨(Lifting Barbell)〉 HD비디오 21분27초 2015

김희천Soulseek- (1)

〈Soulseek-Pegging-Airtwerking〉 HD비디오 2015

〈바벨〉과 〈Soulseek/Pegging/Air-twerking〉이 두 영상 작업은 스크린 속 세계에 대한 작업이다. 나는 건축을 전공하여 스크린 속에 기존 세계를 데이터를 통해 임포트(import)하고 이에 새로운 세계(혹은 다수의 삶)를 만드는 데 익숙한 편이다. 〈바벨〉의 경우, 지난여름, 아버지의 죽음 후 데이터로 저장된 그의 마지막 순간과 이 세계의 끝에 대해 말한다. 스크린처럼 납작해진 세계와 디폴트 3D 인체모델처럼 움직이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 닿을 수 없지만 금방이라도 ‘세상은 망할 것’이라며 겁을 주는 징조를 통해 이 세상이 이미 제대로 망해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애매하게 망한 껍데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해 말한다. 반면 〈S/P/A〉는 현재 진행 중인 ‘2015년 아카이브’에 대한 하나의 튜토리얼 영상으로 2013년부터 해온 ‘사진 아카이브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튜토리얼 영상을 통해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지고자, 스크린 속세계로 현실세계를 백업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우리 세대의 삶은 mp3와 같고, 세상은 가상을 열화 구현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가상은 거세된 사람들에게 남은 비효율적인(인간적인) 요소들을 통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3D로 주위의 것들을 모으고 세계를 구성하여, 그 안의 인물이 또 자기 자신의 아카이브를 만들기 시작하는 순환고리를 보여주며, 결국 스크린처럼 되어버린 이 세계에 대해 말한다.- 김희천

김희천인물 (1)

김 희 천 KIM HEECHEON
1989년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2013 미래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1월 반지하 B½F에서 첫 프로젝트 <데굴데굴 데모험 lol%20-22.tif>을 열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유망예술지원사업 ‘99℃ seogyo 30’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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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분 37초의 하늘, 가변크기-22.7cm × 15.8cm x 각 156개, 2013

〈155분 37초의 하늘〉 먹지 가변크기(각 22.7×15.8cm) 2013

매일 서울 안을 어슬렁거리며 마주한 풍경은 예측이 힘든 도상과도 같았다. 현실의 풍경은 “예/아니오”로 말할 수가 없었다. “예/아니오”로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확한 언어로 묘사가 불가능한 이곳에서, 하나의 좌표를 따라 그린 이동의 궤적은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재현이 아닌 장소와 관계 맺음으로, 후일을 위한 기록보다는 현재를 위한 기록이다. 통용될 수 없는 이 지도는 내가 있었던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서술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하려는 이 헛된 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마주하기 위해서다.- 강동주

강동주 인물 (3)

강 동 주 KANG DONGJOO
1988년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012년 누하동 256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OCI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해 올해 말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EXHIBITION & THEME 허영만 – 창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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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오! 한강>(1988, 왼쪽)과 허영만의 원작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를 오마주한 이동기의 <95_크래쉬>(1995, 오른쪽)

모든 것이 만화의 소재다

만화가 허영만의 40년 만화 인생을 조명한 전시 <허영만 – 창작의 비밀>이 4월 29일부터 7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허영만은 15만 장의 원화와 5,000장이 넘는 드로잉을 그렸으며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그의 작품 대다수가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제작돼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입지를 굳혔다. 이번 전시에서 오마주 작업을 선보인 작가 이동기와의 대담을 통해 만화와 미술의 경계를 떠나 문화의 보편적인 지점을 주목해본다.

이동기(이하 이) 어린 시절 이야기로 대담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수 출신이시죠.
허영만(이하 허) 어릴 때 매일 바다만 보고 살았죠. 특별히 다른 애들과 다르게 논 기억은 없고, 장난감은 직접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칼을 만들면 목재소에 가서 나무를 잘라다가 못질해서 칼집까지 제대로 만들었죠. 나무가 워낙 약해서 잘 부러졌지만 만드는 게 재미였죠.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들고 다니는 권총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 남들 노는 거 다했어요. 초등학교 때 만화 <코주부삼국지>에 나오는 그림을 트레싱지로 열심히 따라 그렸던 게 생각나네요.
김용환 선생의 작품이죠.
네. 지금은 돌아가셨죠. 중학교 때 한 친구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여수로 왔는데 부산에 있는 동안 만화가에게 그림 수업을 제대로 받고 온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만화 그릴 때 먹을 직접 갈아서 그렸어요. 그 친구랑 가까이 지내면서 만화를 많이 그렸죠. 고등학교 때는 대학 가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2학년 때 아버지께서 사업을 실패하시는 바람에 대학진학이 어려워졌어요. 그날부터 입시공부는 그만두고 만화만 그렸죠.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려고 했는데 좌절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만화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1966년 1월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와서 박문윤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선생의 작품 활동이 뜸해지자 화실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죠. 서울 온 지 6개월 되었을 때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어요. 그래도 선생이 내 실력을 인정해주셔서 한동안 선생과 하숙을 하며 둘이서 팀으로 일했는데, 하숙비도 제대로 못 버니까 저를 순정만화로 유명한 엄희자 선생에게 보내셨어요. 순정만화는 그리기 싫었는데 꽃도 그리고 여자 눈도 크고 반짝반짝 빛나게 그렸죠. 그렇게 8개월이 지났을 때 이향원 선생께서 자기 밑에서 일하라고 연락을 하셨어요. 그 분의 그림체는 마침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비슷했기 때문에 기꺼이 그쪽으로 옮겼죠. 자고로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선생 밑으로 가야지 밥 먹여준다고 아무한테나 가면 안 돼요.
저도 어릴 때 이향원 선생의 만화를 많이 봤는데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그린 것도 많지요. 하루는 선생이 나보고 ‘훨씬 잘 그릴 수 있는데 왜 이것밖에 못 그리느냐. 네 마음대로 그려봐라’고 하더군요. 이후 내가 이향원 선생 작품의 주요 부분을 맡아서 그리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월급을 타면 명동에 있는 외국서적 파는 데 가서 일본 만화, 미국 마블 코믹스 등을 사서 열심히 연구했죠.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미국에서 출간된 전쟁 만화 시리즈가 있었는데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어요.
스타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미국이나 일본 만화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요?
일본 만화 영향은 많이 받았어요. 미국 만화는 그림 위주라서 일본 만화처럼 세심하게 연출하는 만화가 아니에요. 일본 만화는 이동기 선생도 <아토마우스>를 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데즈카 오사무, 지바 데쓰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당시 국내에서는 지바 데쓰야의 <하리스의 회오리바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내가 작업을 하던 하숙집 옆방에 그 작품을 그대로 베껴서 주간지에 싣는 팀이 있었어요.
옛날에는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낀 만화가 많았죠.
네. 그랬어요. 옆방에 있다 보니 서로 왕래가 많았고, 덕분에 일본 만화를 많이 보게 되었죠. 이향원 선생과 작업한지 8년째 되는 해에 독립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만화판의 구조가 이상했어요. 1960년대부터 신촌 지역의 만화 출판사 7곳을 통합한 합동문화사가 전국의 대본소와 전속계약을 맺고 타 출판사의 책을 받지 못하게 해 만화시장을 독점했죠. 그에 대한 대항으로 1970년대 초반 한국일보사가 소년한국도서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합동문화사의 독점시장에 진출했는데, 결과적으로 서로 연합해 만화시장을 반으로 나눠 독점한 거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시기인 것 같지만, 너무 안정적이다 보니 만화가들이 굳이 공들여 만화를 그릴 필요 없었죠. 대강 그려서 정해진 권수만 채워주면 규정된 부수가 유통되니까요. 그렇다 보니 만화가 재미없는 시절이었어요. 만화시장이 독점되면서 신인들이 등단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죠. 단 하나 유일하게 소년한국도서에서 주최하는 만화공모전이라는 게 있었죠. 저는 1974년 2회 수상자로 선정돼 만화가로 공식 데뷔를 했습니다. 데뷔 3개월 만에 <각시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이 큰 반응을 일으켜 인기작가가 되었어요. 하지만 원고료는 전혀 오르질 않아 막막하더라고요. 그런데 <각시탈>의 인기로 당시 <무쇠탈> <색시탈> 등의 아류작들이 많이 나왔어요.(웃음) 한창 <각시탈>을 연재하고 있는데 하루는 도서잡지윤리위원회에서 불러서 갔더니 <각시탈> 때문에 만화시장에 탈 투성이라면서 인제 그만 그리라고 하더라고요. 황당했죠. 하지만 당시에는 위원회의 심의필을 받아야 시중에 유통할 수 있었는데 심의를 내 주지 않으니 <각시탈>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 결혼해서 애가 둘이 있었어요. 당시 주변에 만화 잘 그리는 동료들은 전부 애니메이션 쪽으로 전향했죠.
그때가 우리나라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을 주로 할 때였나요?
인건비가 싸니까 외국에서 일거리를 마구 들여왔죠. 나도 애니메이션 회사를 한 10개월간 다녔어요. 아침에는 내 만화를 그리고 점심 먹고 출근해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렸죠. 주중에는 하루를 반으로 쪼개어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만화만 그렸어요.
쉬는 날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을 하셨네요.
요즘도 쉬는 날은 없어요. 근데 애니메이션 일을 하면서 제일 고민이었던 것이 내가 보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그림을 그대로 그려야 하는 거에요. 그보다 잘 그려도 안 되고 못 그려도 안 되고,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통일된 그림이 나와야 하는 거죠. 어렵게 애니메이션을 병행하고 있는데, 1979년에 일본 만화 <캔디 캔디>가 국내에 불법 복제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만화가 인기가 있다 보니 여러 출판사에서 해적판을 동시에 마구잡이로 출간했어요. 그러다 <캔디 캔디> 한 작품만으로는 수익이 안 나니까 출판사들이 한국 만화가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인기 있었던 작품을 재판(再版)하고 복간하게 된거죠. 이때부터 새로운 출판사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캔디 캔디>의 인기를 계기로 정체되었던 한국 만화 출판시장이 순식간에 확장된 거군요.
그렇죠. 나도 더 이상 애니메이션 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후 만화잡지 《어깨동무》 편집장의 요청으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죠. 연재를 하면서 동료 작가인 김영하, 고유성, 김철호 등을 잡지사에 소개했고, 함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깨동무》의 부록으로 연재되었던 <태양을 향해 달려라>를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린이 야구만화인데 세계선수권대회 나가서 우승하는 내용으로 끝이 났죠.
부록이 32페이지의 단행본 형식이었으니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죠. 지금도 <태양을 향해 달려라>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희 또래 사이에서 빅히트 작품이었습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서 연출의 리듬감에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연출방법에 1~5단계의 강도가 있다면 5단계는 절대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5단계를 한번 써 버리면 그 다음을 이어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5단계가 계속되면 그것은 액센트가 아니죠. 예를 들어 어머니가 죽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찢어지게 절규하지 않고 ‘어머니가 죽었다’ 한 줄 쓰고 아무 관계없는 배경을 그리고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는 거죠. 주인공은 슬프지만, 독자들은 안 슬프거든요. 슬픔은 강요되지도 않고 강요해서도 안 돼요. 그게 절제이고 자제인 거죠.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의 몫이 없어지죠.
5~6년 전에 소설가 이윤기 선생과 연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은 작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 되지 독자를 왜 이해시키려고 하는지, 독자의 몫을 왜 남겨두는지 묻더군요.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해요. 낚시를 할 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고기를 꼬여야 합니다. 낚싯바늘 따로 있고 물고기 따로 있으면 낚시가 되나요. 최소한 근접 거리에 가서 당겨야지 독자들이 따라오죠. 난 이 거리를 어느 정도로 두느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연출을 해왔고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방식을 반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리면서 이전에 그린 느낌이 들면 소름이 끼쳐요. 반복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작품의 리듬을 따라가 보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많이 보시고 참고 하시는지요.
영화 많이 보죠. 연출할 때 영화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미지자료1]각시탈초판1권

<각시탈>(1974) 초판1권 속표지

[이미지자료2] 무당거미

<무당거미>(1980) 원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진화하는 허영만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품이 <쇠퉁소> 인데요. 완성도가 굉장히 높은 작품이었어요.
<쇠퉁소>는 사실은 <각시탈>을 못 그리게 해서 나온 작품이었어요. <각시탈>과 도입부도 비슷하고 상황 설정도 비슷합니다. <각시탈>을 몇 년 뒤에 다시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죠.
<쇠퉁소>의 한 에피소드에서 늑대를 묘사한 장면이 너무 뛰어나 감탄하며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미술을 했지만 동물 그리기는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서부만화를 보고 그림 연습을 많이 했어요. 총도 많이 그렸지만, 서부만화에는 말이 꼭 등장하죠. 그때 말 그리기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토니 장이라 불리던 장경국 선생이 말을 굉장히 잘 그렸는데 그분의 그림을 밤새 베껴 그리는 날도 많았죠. 일단 네발 달린 짐승을 그릴 줄 알면 다리 부위만 조절하면 다 그릴 수 있어요.
같이 활동하셨던 다른 만화가들과 지금도 교류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대본소 만화를 할 때는 자주 만났는데 신문, 잡지에 연재하면서 만날 시간이 없어졌어요. 그렇다 보니 지금은 유대가 거의 없어요. 노는 방법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대인관계 폭이 굉장히 넓은 편인데 지금은 등산, 헬스, 골프, 요트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죠. 이들이 언젠가는 꼭 도움을 줘요. 야구만화인 <태양을 향해 달려라>도 그렇게 나왔어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둘러싼 환경이 계속 변해왔는데요. 최근에는 웹툰이 활성화되었고요.
많이 변했죠. 만화 말고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죠.
지금 전시되고 있는 영상을 보면 종이에 펜으로 그리지 않고 태블릿으로 그리시던데.
여전히 펜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컴퓨터가 대세니까 태블릿으로 그리지만 나는 예쁘게 잘 안 그려지더라고요. 지금은 몇 개의 포털사이트에서 만화시장을 장악해 작가들에게는 사업해서 원고료를 나눠주고 독자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구도죠. 그것이 옳은 것인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웹툰으로 괄목할 만한 히트작이 나온 게 윤태호의 <미생> 하나뿐이에요. 그래도 저변은 있으니까 윤태호 같은 만화가가 계속 나와줘야 소위 만화 붐이 일어날 수 있어요. 앞으로 그런 작가들이 나올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드는 것이 포털사이트, 만화가 등이 해야 할 몫이죠.
요즘에는 만화가 드라마,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는데요. 선생님의 작품도 여러 편이 영화화됐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원작자로서 드라마나 영화가 잘되길 바라죠. 영화 <식객>도 제작자가 처음에는 10편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2편으로 끝났어요. 그런 면은 아쉬움이 있죠.
작품 제작에도 긴밀하게 관여하시나요.
관여 안 해요. 딸 시집보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일단 시집가면 그집 분위기에 맞춰서 살아야지 간섭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이번 전시를 보니 여행하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더라고요. 작가들이 여행을 하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던데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여행하시면서 생각이 바뀐 적도 있었나요.
몇 년 전 출판사에서 만화 <꼴>을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관상은 미신에 가까운 거라서 명확한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거절했죠. 그런데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다가 베이스캠프에서 갑자기 그 만화가 생각났어요. 재미있는 소재라면 뭐든지 해야지 미신이냐 아니냐가 무슨 상관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날 위성전화로 출판사에 바로 전화를 했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관상학 전문가인 신기원 선생을 찾아갔어요. 선생에게 “얼마나 공부를 해야 사람 얼굴이 보입니까”하고 물었더니 3년이 걸린다고 하는 거예요. 만화 그리는 데 3년 투자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아 뭉그적거리니까 선생이 하시는 말씀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3년은 간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그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주 금요일 7시부터 10시까지 3년 반을 공부했죠.
한 작업을 준비하는 데 3년 반을 투자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공부한지 2년됐을 때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데이터는 계속 쌓이니까요. 독자를 좀 더 내 곁에 끌어들이려면 내가 독자에게 뭔가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어요.
조금 전에는 연출하는 단계에 관해 얘기하셨는데, 독자와의 소통은 만화나 순수미술 등 장르 구분 없이 보편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네요. 그동안 하신 작품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는지요.
출세작인 <각시탈>과 만화로 풀어내기 힘들었던 이데올로기 만화 <오! 한강>, 그리고 내가 제일 재미있게 그린 작품은 <망치>예요. 작가 스스로가 재미없으면 독자는 금방 눈치채요. 그리고 제일 열심히 작업한 <타짜>, <식객>. 워낙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이 몇 개 됩니다.
그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들깨 이빨>과 <무당거미>를 제대로 끝맺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계획하시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지금 《중앙일보》에 <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신문을 안 본다는 겁니다. 10여 년 전 <식객>을 연재할 때와 다르게 인지도가 영 떨어지네요.
30대가 종이신문을 거의 안 보죠.
문제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자기가 선호하는 것만 뽑아서 보니까 다른 분야는 전혀 모르게 되고 말죠. 문화 다양성이 떨어지고 있어요. 일단 연재를 시작했으니 열심히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음식 만화를 했으니 앞으로는 돈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돈 번 사람과 재산을 잃은 사람얘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3년 전부터 만화일기를 쓰고 있는데 계속할 거예요.
훗날 만화일기가 선생님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방대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앤디 워홀도 40대 후반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병원에 실려가기 직전까지 쓴 일기가 책으로 묶였는데 전화번호부 두께 정도 됩니다. 그 작가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지요.
만화일기는 고은 선생의 《바람의 사상》이라는 책을 보고 시작했어요. 3년 동안 22권 그렸으니 앞으로 30년 그리면 200권 나오겠네요.

진행 정리・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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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구단>(1985) 설치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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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허영만 만화를 총망라한 아카이브 설치광경. 이번 전시 총감독을 맡은 작가 한원석은 허영만의 ‘손’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작품(왼쪽 아래)으로 전시장 도입부를 구성했다.

허 영 만 Huh Youngman
(본명 : 허형만) 1947년 출생했다. 1974년 소년한국도서 제2회 신인만화공모에서 <집을 찾아서>로 데뷔했다. <각시탈>(1974), <오! 한강>(1988), <날아라슈퍼보드>(1989), <비트>(1994), <타짜>(1999), <식객>(2003), <꼴>(2008)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재 《중앙일보》에 <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하고 있다.

이 동 기 Lee Dongi
1967년 출생했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3년 온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일민미술관, 갤러리2, 현대갤러리 등에서 2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994년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한 ‘아토마우스’를 처음 발표했으며 이후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CRITIC 서용선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

금호미술관, 학고재갤러리 4.17~5.17

윤진섭 미술비평

얼마 전 한국의 민화를 집대성한 《한국의 채색화-궁중회화와 민화의 세계》가 10여 년간의 기획 끝에 출판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약 30여 명에 달하는 민화전문가가 이 책의 출판에 관계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책 제목을 ‘민화’ 대신 ‘채색화’라고 붙인 것은 민화를 전통채색화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 텔레비전 방송은 전하고 있다.
지금 나의 관심은 민화를 채색화로 불러야 하는 당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화가 집대성된 결과에 있다. 아마도 명칭에 관한 논의는 다양한 학술행사를 통해 지속될 성질의 것이리라. 그보다는 오히려 민화가 이번 출판을 계기로 미술계의 전면에 부상된 사실 그 자체에 있으며, 이를 계기로 민화, 그 중에서도 특히 핵심인 ‘오방색(五方色)’에 대한 논의가 차제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왜냐하면 한국 전통미술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민화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엄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서 이에 대한 조명은 상당히 미흡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출판을 계기로 이에 대한 관심이 전시기획과 출판을 통해 지속되길 기대한다.
최근 금호미술관과 학고재갤러리 두 곳에서 열린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전>은 비상하게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 전시가 나의 관심을 끈 가장 큰 이유는 서용선이야말로 티 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민화의 핵심인 오방색을 주조로 작업해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서용선 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올해의 작가전>(2009)과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전>(2014)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형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는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가적 이력이 ‘역사화’라고 하는, 단종을 비롯한 역사적 인물에 초점을 맞춘 특유의 그림들로 점철돼 왔으며, 그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의 여러 도시로 확대되어 ‘인간’을 통한 인류애의 보편적 지평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나의 관측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금호미술관과 학고재갤러리 두 곳에서 열린 이번 기획전은 서용선의 작가적 역량이 회화와 조각을 통해 총 결집된 근래에 보기 드문 전시였다.
서용선이 그림과 조각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문제이다. 이 ‘인간’이 그의 그림과 조각을 통해 역사와 도시를 후경으로 삼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방색’이 주조음으로 깔려있다. 그에게 오방색은 마치 조선시대 민화의 주조색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에 가깝다. 이는 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선의 역사를 수놓은 단종을 비롯한 왕족이라든지 사대부층, 기타 이 땅에서 살다 스러져간 숱한 민초들의 삶과 애환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기울여온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이제 보다 확대되어 인간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세계의 여러 도시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중간 결산 성격의 것으로 서용선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서용선은 서울을 비롯하여 베이징, 뉴욕, 베를린, 멜버른 등 세계의 거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앞서 언급한 외국의 도시들은 그가 장기 체류한 곳들이다. 그 그림들은 그가 단순히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시민들의 삶의 단면을 관찰한 후 이를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내면화한 것이다. 서용선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표정에서 진한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인간에게 기울이는 도저한 관심 때문이다. 이 점은 그가 숱하게 제작한 기존의 역사화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거니와, 그가 한 사람의 작가로서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인간의 유형 중에서도 유독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왔는데, 기득권층이 아니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오방색을 주조로 표출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전시에도 가령 <미테 다리 연주자들>(2012~2015)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시에서 살아가는 무명의 민초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광장, 술집, 그리고 뉴스에 등장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서용선은 인물화 못지않게 많은 양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것들은 주로 도시 풍경과 관련된다. 그러니까 도시란 그에게 있어서 다양한 인간들에 의해서 다채로운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인 셈이고 그것은 그런 이유에서 인간과 불가분의 소재를 이룬다. 서용선은 그러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특유의 시선과 관점에서 예리한 메스를 들이댄다. 그는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그것들의 후경 층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정치적 내지는 제도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이를 다소 음울한 어조로 화면에 풀어낸다. 그는 강렬하고 때로는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의 강한 빨간색과 청색을 비롯한 오방색을 써서 기층민의 정서를 광포(狂暴)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이 지닌 야생성은 주로 정치적 내지는 제도적 억압에 대한 기층민의 분노와 무기력(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양팔을 늘어뜨리고 있다)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등가물이다. 서용선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기층민의 야생성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정서임을 특유의 강렬한 오방색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서용선_금호 (5)

 <2014 뉴스와 사건> 나무 보드에 아크릴(14조각) 2015  위 <NY지하철>(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2015

CRITIC 데니스 오펜하임

우손갤러리 4.9~6.13

이미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 팀장

‘인간에 대한 본질 탐구’를 중심으로 작업세계를 펼쳐온 세계적인 조각가 데니스 오펜하임 (1938~2011)의 전시가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열렸다. 오펜하임은 회화가 지향할 최고의 가치를 평평한 캔버스 표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던 시기에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개념의 전달을 작업의 축으로 삼아 여러 가지 매체와 형식들을 사용했는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만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만들어낸 문명과 지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돼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구현했고 이를 통해 예술 너머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감정을 투영해 대리자 역할을 하는 꼭두각시나 오브제 작품을 제작했던 오펜하임은, 아이디어가 미술로 표현되는 과정을 기계의 작동 과정으로 나타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꼭두각시 인형에 기계 전동기를 설치해 움직이게 함으로써 감각적인 인간과 감각이 없는 사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Theme for a Major Hit>(1974)는 기계의 빛과 소리, 움직임 등의 비물질적 요소를 작품세계에 내포시켜 조각의 개념적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작품이며, 오펜하임이 기계의 원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사고의 흐름을 기계의 작동 과정에 비유함으로써 심리적인 요소를 기계적인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미술의 제작과정과 산업생산의 공정을 동일시한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의 이념과도 유사하다. 과학기술 (technology)의 요소를 미술에 도입함으로써 미술의 표현 가능성을 넓히고자 한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오펜하임은 기계라는 요소를 미술에 접목시켜 개념을 발현하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했다.
또한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인간의 의식구조를 기계구조에 빗대어 반복적인 움직임과 작동원리의 공통 속성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꼭두각시 인형이 춤을 추는 동안 같은 전시 공간 내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울려 퍼진다. “그것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영상 속에는 사람의 입모양만이 강조되고 전시 공간 내에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바로 오펜하임 생전의 것이다.
이와 같은 기계적 구조물은 오펜하임의 사고를 형상화하여 관람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리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Splash Building> 연작 조형물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해 주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반응을 일으키고 참여시키는 장치이기도 했다.
오펜하임은 여러 가지 매체나 형식을 동시에 혼용하기보다는 시기별로 특정한 표현 방식에 집중하면서 작품 유형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가 단순히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사용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음을 입증한다.
오펜하임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형식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을 삶에 연결시키고 관람자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미술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데니스 오펜하임 <Splash Building>(설치작) 혼합재료 2009

CRITIC Magnum’s First

한미사진미술관 4.4~8.15

송수정 독립큐레이터

누군가의 재난과 상처를 찍은 사진을 전시장 벽에 거는 일은 윤리적으로 온당한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그넘 전시에는 이런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물론 매그넘 사진가라고 해서 모두 분쟁지역만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1947년 설립한 이후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혹은 포토저널리스 집단이라는 유명세에 걸맞게, 그들 스스로도 전 세계 가장 뜨거운 인간애의 현장을 기록해왔다고 자부해 온 것에 대한 자충수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질문은 전쟁과 가난을 벽에 걸면서 ‘작품’이라 호명하고, 그 작품을 거래함으로써 ‘상품’으로 만드는 일의 불편함, 즉 사진과 미술 시장의 충돌 지점을 예민하게 건드린다. 그러나 더 많은 대중에게 시대상을 알리겠다는 명분하에 매그넘은 《라이프》나 《파리마치》 표지를 장식하던 영광을 순회전의 긴 방문객 줄에 넘겨주었다. 게다가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새롭게 영입하는 사진가들의 성향 또한 정통 다큐멘터리보다는 마치 신세대 마틴 파를 발굴하려는 듯 개성 넘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인쇄매체의 시대는 저물고 전시와 인터넷이 뜨는 시대의 운명을 매그넘조차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그넘 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순회전 이후 매그넘의 전시는 사진들만큼이나 더 스펙터클해졌고,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스티브 매커리 등은 이제 전시에 있어 흥행 보증수표처럼 통하기도 한다.
그런 매그넘이 무려 60년 전 기획한 첫 번째 전시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매그넘 초창기 사진가의 빈티지 프린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특히 이번 사진전의 흥밋거리는 그 당시 전시 방식을 짐작할 수 있게 고스란히 복원했다는 점이다. 당시 이 전시는 작가마다 커다란 합판에 색을 칠하고 사진을 부친 뒤, 그 합판째로 벽에 거는 방식이었다. 유리를 끼우거나 액자에 넣지 않은 이 형식은 내러티브를 강조하는 잡지의 레이아웃 구성에 더 가까웠다. 1955년부터 1956년까지 오스트리아 5개 도시를 순회하고 난 후 이 전시판들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사진 한 점마다 거칠게 절단되었다. 그런 작품들이 통째로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2006년 오스트리아의 프랑스문화원 지하창고에서 나타났다는 신비감 넘치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에디션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당시의 느슨한 사진문화를 반증한다.
공교롭게도 매그넘이 첫 전시를 기획한 1955년은 사진 역사에서 <인간가족전>의 해이다. 전후 인류애 복원을 목표로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기획한 이 전시는 그해 1월 26일 모마를 시작으로 전 세계 80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매그넘 사진가 상당수는 <인간가족전>의 참여 작가로서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에, 매그넘이 최초의 전시를 기획할 때 이 방식을 상당 부분 차용한 지점도 눈에 띈다. 특히 ‘시대의 얼굴’이라는 전시 제목과 함께 전쟁 사진을 배제하고 역사적 인물부터 각국의 풍경까지 다양한 시대상에 초점을 맞춘 대목은 이 관련성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총 83점이 소개된 이 전시의 무게 중심은 상당 부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특종이라 할 마하트마 간디의 암살 직전 모습과 장례식에 맞춰져 있다. 당시 카르티에 브레송은 단식을 마치는 간디를 인터뷰 하러 방문했다 예상치 못한 장례식까지 기록하게 되었는데, 1948년 《라이프》가 특집 기사로 장례식 장면만을 소개했던 것과 달리 전시에서는 간디의 생전 모습까지를 포함시켜 작업의 밀도감을 높였다. 반면 전시 1년 전인 1954년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한 로버트 카파의 경우에는 전쟁 사진이 아닌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지대 바스크 마을의 축제를 소개함으로써 그의 작품세계를 확장시킨다. 한편으로 같은 해 안데스 산맥에서 촬영 중 자동차 전복 사고로 세상을 떠난 베르너 비숍은 유작이 된 안데스의 피리 부는 소년까지를 포함시킴으로써 그의 회고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이렇듯 치밀한 전시 구성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작품은 에른스트 하스가 이집트에서 찍은 영화 촬영 장면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이 1955년에 개봉한 미국 시대극의 고전 <피라미드>는 실제 크키의 세트장에서 만 명 가까운 엑스트라를 동원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에른스트 하스는 이 상황을 특유의 조형감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진은 마치 실제 파라오의 시대를 만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전시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가 빈번히 문제 삼는 가짜와 진짜 세계의 혼돈, 사진의 눈속임이라는 대목까지를 짐작게 한다. 매그넘 최초의 전시는 최근 매그넘이 보여준 전시보다 형식적으로는 덜 세련됐지만 사진과 사진전이 직면하게 될 방향성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훨씬 전위적이다.

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Magnum’s First> 전시광경

CRITIC 남화연 시간의 기술

아르코미술관 4.10~6.28

임산 동덕여대 교수

이 전시는 예술가의 시간 다루기의 범주와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 예술가는 단순히 시간을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시간적 구성과 그것의 여러 경계면 안팎의 작용들을 검증한다. 종국에는 자아 혹은 세계의 존재 양상을 의식적으로 성찰한다. 따라서 전시 제목에서 ‘기술’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mechanics’는 통일적인 구체태로서의 시간의 위상을 지시하면서도 시간이라는 지평의 유동성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순수한 존재의 차원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은 물질세계에서 감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형식화하는 방법이 대체로 소리라는 질료에 의존하다보니 오랜 세월 동안 시각예술가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남화연의 작품들에 사용된 다양한 매체들은 삶의 시간적 체험을 전한다. 허나 그것은 개인의 영역에 있지 않고 사회적 의미와 공간으로 확장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잊어버린, 되짚고 싶은 그 덧없음의 체험에 사물과 사건의 사실들을 관여시켜 객관적 실체성을 부여한다. 물질세계에서의 시간 체험은 그렇게 사회적 형식으로 재맥락화되어 수행적 미학으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무관계한 사물과 사건에서 의미의 구성을 추론해내게 한다. 특히 이번 전시의 수행적 행위는 목소리로, 몸으로, 시선으로, 혹은 사물 자체로서 실재를 포착함과 동시에, 행위가 구현되는 시간적 매체의 내용에서 동원된 상징화 과정과 의미론적 장치들을 관객의 움직임 공간과도 연결함으로써 예술가 주체의 경험적 수행과 객체의 상상적 수행을 하나의 총체적 상황으로 고양시키려 했다. 그런 점에서 큐레토리얼 의도가 돋보이는 전시다.
이러한 통일적인 시간 조직의 전략은 예술가의 수행적 행위를 통해 관객의 의식적・역사적 현존을 일깨운다. <코레앙109>에서는 ‘직지심체요절’이라는 과거 사물에 대한 직접 경험의 시간을 저지하는, 즉 그 사물 대신 통용되는 가상의 물적 기호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세계의 미시적 사실들이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제에 가까울수록 우리의 의식은 특정 공간에 수집되어 존재하고 있을 직지의 시각적 형상에 집약된다. 이렇게 물질성과의 시간에 집착하는 문화적 기억은 정치적 형식으로 재활용될 여지가 크다. 이는 그것의 최종 안착지인 도서관이나 아카이브 같은 근대적 지식권력 양태가 증명한다. 남화연의 영상은 수집물의 존재 과정에서 생산된 기억 시간의 파편들이 수집물을 더욱 신화화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럴수록 시간은 권력의 구애를 받아들이며 의식과 역사의 진보를 주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령 난초>와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도 확인된다. 지식권력의 한 작동방식으로서의 수집 관습과 권위는 파편적 기억 시간의 신뢰성을 극대화하고 시각화한다. 그러다보니 총체적 서사를 알지 못한 채 수집된 일부 형상에 기반하는 이른바 ‘환상의 공동체’는 과거 타자의 시간 체험을 조형적이고 비유적 형태로 변환하여 수용하는 데 익숙하다. 남화연이 예시했듯이 조토의 종교적 명망을 담은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과학세계에서 전유되고, 19세기 난초사냥꾼이 작성한 유럽인의 식민주의적 목록 또한 마치 현대 사회에서 어떤 합의된 ‘제의’처럼 지속되고 있지 않는가. 지속되고 있다 함은 (전시장의 영상과 소리가 서로에게 연루되듯이) ‘시간의 기술’의 심층에 깔린 난제를 꿰뚫어볼 통찰이 더욱, 계속 필요함을 뜻한다. 그럼으로써 예술가의 구체적 수행의 자유는 작품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남화연 <코레앙 109>(맨 왼쪽) 비디오 11분10초 2014

CRITIC 윤정원 최고의 사치

갤러리 스케이프 4.24~6.14

김노암 세종문화회관 시각예술전문위원

반짝이는 샹들리에는 낮게 매달려 있다. 굉장히 많은 물건, 인형, 이미지가 마구 엉켜있다. 복잡하게 집적돼 있는 사물, 이미지가 전시장을 채운다. 오브제는 곧 폭발할 것처럼 사물로 뭉쳐있다. 화려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제품과 온갖 컬러가 가득하다. 물건으로 가득 채운 집처럼 갤러리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다.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모이면 그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된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없게 된다. 그냥 시각적 유사성에 의해 ‘이것은 키치다’라고 상투적인 해석과 범주로 가두는 것은 생산적인 담론이 아니다. 관객은 최정화의 작업과 비교해서 보면 사전적 의미의 ‘키치’를 넘어서는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회화와 오브제들로 연출되는 시각이미지들은 마치 두 작가가 함께 전시하는 듯하다. 다중인격과 다원성의 세계에서 두 인격이 결합하고 융합하는 것만큼이나 하나의 인격이 두 개로 갈라지고 또 하나의 취향이 두 개의 취향으로 갈라질 수도 있다. 회화와 오브제의 두 개별적인 운동과 흐름이 갤러리 1층과 2층을 나란히 달리고 있다.
제목 ‘라 스트라바간자(La Stravaganza)’는 사치스러운, 호화스러운, 화려한의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 어로 바로크나 로코코의 화려한 궁정과 귀족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한글 제목 ‘최고의 사치’는 마치 ‘왕후의 밥, 걸인의 찬’ 같은 윤리적인 인상을 준다. 욕망 충족에 몰입하는 지독한 자본주의와 시장가치의 사회에서 그래도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따듯한 세계가 있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세계와 사물과 관계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형태로든, 또 어떤 방향으로든 충분히 성취되었을 때 인간은 행복감을 느낀다.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매우 깊이 몰입해왔으며 그것이 매우 특별한 행복감을 주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작가와 관객의 의식상에는 시각적 감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마음의 운동이 호사를 누린다는 듯 보인다. 언제든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상황과 욕구가 충족될 수도 있다는 관념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담론이다.
‘최고의 사치(La Stravaganza)’는 생각의 운동을 부자로 향하게 한다. 사치는 부자의 특권이니까. 물론 평범한 중산층도 차상위계층도 빈곤층도 모두 사치할 수 있다. 제품과 사건과 감정이 과잉인 사회에서는 누구나 결심만 하면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사치’는 대부분은 나쁜 것으로 학습되었다. 인류의 생산력이 미천할 때는 당연했다.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로 들어서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산물을 이미 까마득히 돌파한 경이적인 생산력 사회에서 ‘사치’는 미덕으로 둔갑한다. 그런데 사치가 정치경제의 세계에서 심미적 세계로 넘어오면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 되어버린다. 상대적이며 동시에 절대적인 심미적 세계에서 억만장자가 벌이는 사치스러운 소비와 길거리 노숙자나 거지가 제대로 된 한 끼의 식사를 즐기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사치가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사치를 부리는 것은 다르다. 부자는 언제나 그것을 실현할 수 있으나 노숙자와 거지는 항상 그럴 수 없다. 운이 좋아야 한다.

위 윤정원 <최고의 사치>(가운데 설치작) 혼합재료 2014~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