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FEATURE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

2015년 한국미술의 새로운 경향!
언제부턴가 ‘청년 작가’, ‘신생 공간’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 ‘개인전’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경력 사항이 작가들의 약력에 등장한다. 198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작업의 변화 양상은 이전 세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기존 미술계와 구분 짓는 하나의 층을 만들어 나간다는 ‘청년작가’의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해하고 표현하는 세상은 기존의 현실인식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들의 언어’에 대한 소통의 가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미술》은 6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전>에 참여하는 작가 5인을 만나 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기존 작업과 이번 전시에 소개될 작품 일부를 미리 만나보는 자리다. 현재 상황(state of things)에 대한 인식과 이를 표현하는 재현의 방법을 젊은 미술가 5인의 작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이 구현한 다른 세상(another state) 속 현실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본다. <뉴 스킨: 인식과 재현 사이> 일민미술관 6.26~8.9

유저-미술가(User-Artist)의 탄생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커먼센터 멤버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신진작가 프로그램과 공모전,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응당 제시됐어야 할 의제는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미술가 지망생들은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그렇게 전국을 돌다 보면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세대에 근접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결국은 언제나 청년일 것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청년 작가가 더 이상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버블을 거치며) 미술계의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도의 공회전은 청년 작가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 그러니까 ‘작가’라는 정체성보다 ‘청년’이라는 세대의 계급적 배경에 우선 주목하면서 부득이하게 가속화할 뿐이었다. 신진작가의 성장을 지연시키면서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게끔 하는 복지 정책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공회전의 운명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팔에 링거를 꽂은 형태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 의제 설정의 풍선돌리기는 곧 끝날 것 같다.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는 풍선이 폭발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때를 맞춰 미술계에 투입되던 공적 기금이 서서히 고갈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수 없다.
최근 미술계에서 감지되는 이상한 활력은 꽤 많은 청년 미술가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아마도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양은 학계나 교육제도가 차마 전부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고 확산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제도권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이즘의 연대기는 정보를 담은 아이템으로 환산되어 유튜브나 넷상에 공개된 텍스트를 거쳐 직접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형태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김구림이 미8군에서 쓰레기로 버려진 《아트 인 아메리카》를 보고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흉내’내고자 했던 동기에 비해, 최근의 젊은 미술가들은 단지 정보의 흡수를 위해서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서구 미학의 흐름을 어떻게 제 작업의 동기로 변환하느냐에 있다. 나아가, 미술적 정보뿐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좀 더 간편한 방법으로서 인터넷 자체를 어떻게 내적 체계로 만들어 흡수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이는 최근의 미술로 공인된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밀쳐버릴 기세다. 요리를 해서 관객에게 먹인다든지, 집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손님을 초대한다든지 하는 작품은 최첨단의 현대미술이 의태해야 하는 양식화된 패턴으로 변화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유저-미술가들은 관계미학으로 통칭되며 (미술시장을 포함하여) 미술계의 전면에 나섰던 명장들의 세계 인식에 대해, ‘원래 그런 것 아니었어?’라는,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바라본다. 획득된 정보가 단순히 내용을 담고 있는 어떤 물질인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의 아이템처럼 레벨로 환산되는, 데이터베이스 소비형 미술가, 유저-미술가가 탄생한 것이다.
유저-미술가는 여전히 청년 작가로 불리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작가와도 극명한 차이를 가진다. 유학을 통해 해외 경향을 습득하고 귀국한 작가들이 영미권의 미학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엇비슷한 상황을 다소 기계적으로 환유하기도 했던 것에 반해,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초/중학교때 IT붐을 겪은 세대는 그러한 미적 판단에 대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그들에게 주어졌던 문화가 전지구적 현상의 일부로 이미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생 작가들이 한국에서, 그리고 영미권에서 받은 교육과 영미권 학생과의 교류를 통해 점검했던 취향을 작품에 그대로 드러내는 오글오글함을 탑재하고 있었던 반면, 1980년대의 작가들은 자신이 보아온, 직접 즐겨온 일본의 망가와 게임을 경험했던 인식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개척하고 있다.

옆으로 이동하는 미술
가상의 ‘위’를 설정하고 거기에 본인의 자아를 투영해서 목표 지점을 성취하려는 작가의 작품은 더는 설 자리가 없다. 디아스포라 등의 철지난 의제를 남북의 상황에 연결짓는다거나 하는 등의 기계적인 태도를 재현함으로써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이 인터넷을 통해 전부 다 공개된 정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답으로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몸을 던져서 시선의 기계적 평등을 성립시키는 선배 세대와는 달리, 한국에서 자라난-유학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거대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을 설계하는 방식을 이미 현대미술의 ‘쿠세(くせ)’로 인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가상의 그래프를 그려봄으로써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아래가 없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옆으로 옆으로 옮겨가며 제 인식의 영역을 넓히는 평면적인 가상의 세계가 최근 청년 작가의 미의식이 추동하는 정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기존의 한국 현대미술이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어렴풋이 복제하면서 몸집을 키워왔던 것과는 다르다. 대신에, 그들의 미술은 ‘득템’한 인터넷상의 물질을 역시 ‘득템’한 현대미술의 공략집에 적용해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기존의 이미지를 열화시켜 요소로 콜라주한 뒤에 그것을 뒤섞어 근사한 비디오를 한 편 제작하는 일은 해외의 유사한 사례를 따르는 추격자의 뉘앙스가 삭제되어 있다. 몇 년 전부터 몇몇 한국 미술가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고 하는 작업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거기에는 이론화한 현대미술적 형식을 의식하는 자세나, 특정 사물에 접면하는 패티시를 개인적으로 충족하려는 충동보다는 수평적으로 널찍하게 분포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순서를 채집하고 배열함으로써 각각의 시퀀스가 가진 아련한 충동을 충돌시켜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청년 작가들은 과거 어떤 세대도 이루지 못한 전 세계의 동기화 속에서 살고 있다. 변방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니고, 현재가 더 이상 현재가 아닌, 이 중차대한 시점에 미술계는 어떻게 현재를 맞이해야 할까? 어떠한 미술이 현재 한국의 상황에 걸맞을까? 의제 설정에 게을렀던 미술 제도의 영역 바깥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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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하 전략적 (3)

박민하 전략적 (1)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리얼리스틱> HD비디오 21분33초 2015

영화관과 미술관을 오가며 영상설치와 스크리닝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시각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내가 다루는 ‘시각성(visuality)’은 현대사회 속 여러 장소에서 찾아낸 각종 일루전과 연결되어 있다. 영화세트장을 차용한 캘리포니아 군사기지 ‘NTC Fort Irwin, LA’에 내리는 가짜 눈(snow), 관광지가 된 중국-북한의 국경 등의 장소다. 이곳에서 각종 산업이나 군사전략 등과 맞물려 생성되는 일루전에 주목하고 그 시각적 환영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작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적 특수효과는 어떤 사물이나 장소를 ‘물리적’으로 변환시키는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로부터, 현실을 가상으로 ‘인코딩’하는 디지털적인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실과 허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영상미디어’가 가진 양가적 성격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실재와 허구가 구별 불가하게 뒤섞여 fuse되는 일종의 ‘마술적 상태’는 작가가 즐겨 다루는 현상이다. 초기 영화가 마술적 일루전과 특수효과를 통해 시각적 실험을 했던 것처럼, 이는 작가의 영상 속에서 영상미디어에 대한 메타적 관심, 형식적 실험으로 연결, 확장되어 실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리얼리스틱’이라는 미국 회사의 카탈로그 이미지를 차용하여 만든 영상 설치작업과 TV모니터를 이용하여 만든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박민하
박민하 인물 (1)

박 민 하 PARK MINHA
1985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예술대학 Art과정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 시청각에서 첫 개인전 <텔레캐스트 바그다드>를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과 스크리닝에 참여했다. 2012년 EXIS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중운상(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Film Montage>(5.7~7.11)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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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는 <우주시민 A씨의 데카드>를 기획했고 카드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게임을 하는 관객을 지켜보는 것까지 작업에 포함된다. 디자인은 ‘물질과 비물질’이 담당했다.

나의 작업은 주거공동체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 관심은 우연한 계기에 참여했던 재개발사업설명회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주어진 문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흥미롭게도 아테네 민회를 방불케 한 그들의 토론 자세는 일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이익을 정확히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사고실험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참여자가 하는 행동을 객관식으로 바꿔가다 보니 보드게임의 형태를 취하게 됐다. 게임에는 점수라는 절대 이익이 있다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게임을 만드는 데 새로운 완벽한 공동체라는 설정이 필요했다.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 같은 일이 가까운 미래까지 지속한다면 ‘달 정착민 배출사업’ 같은 걸 실행하지 않을까. 그래서 참여자는 달에 적응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 우주시민으로 설정했다. 참여자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역할에 맞춰 투표하고 사과 혹은 건물을 생산하거나 탐사를 하여 점수를 받는다. 물론 상황이 늘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하였지만, 대다수의 참여자는 규칙서를 다시 요구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명확한 근거와 기준 없이는 게임을 진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게임 시작 혹은 중간에도 이따금 집단 독서를 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규칙서를 서로 번역하고 설교하는 과정에서 언어 온도를 맞춰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흡족했다. 난 그저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기 위하여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모두 훌륭한 우주시민이 되길 기대한다. – 김영수

김영수 인물 (16)-1

김 영 수 KIM YEONGSU
1984년 태어났다.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2년 꿀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5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시우, 황아람과 함께 신생 미술공간인 교역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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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ulating Surface B〉 HD 비디오 7분40초 2014

강정석415

강정석이 기획한 전시 〈던전〉이 열린 공간 사일삼의 전시광경. 이 전시는 5월 4일부터 6월 10일까지 CC101, 공간 사일삼, 개방회로, 200/20로 공간을 이동하며 계속된다.

현재 영상 미디어 작가이자 작가교류형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 <비디오릴레이 탄산>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주변 인물과 본인이 속한 사회를 관찰하며, 삶의 불완점함과 불분명함을 담은 홈비디오를 제작한다. 시대의 개인은 각 시점의 다양한 문화와 시스템의 얼개 속에서 “조각”되는데 나는 이러한 지점을 시각예술의 형식으로 기록해 지난 시간과 현재를 관통하는 통로를 제작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재편집해 선보이는 작품 〈Simulating Surface A/B〉,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는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설치이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막역한 친구 한 명의 삶과 노동을 통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점검한다. 두 영상과 하나의 책자는, 스크립트가 된 리듬(Simulating Surface A), 리듬이 된 그래픽(Simulating Surface B), 그래픽이 된 스크립트(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로 요약되며,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로 연결된다. 〈Simulating Surface A〉는 2012년, 첫 취업한 친구의 출근길에 매일 아침 인사를 하러 찾아간 7개월간의 영상기록물이다. 영상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눈에 들어온 것을 찍은 소스와 손을 흔드는 친구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촬영 도중 친구가 해고를 당해, 자연스럽게 촬영이 종료되었다. 이 작품 촬영 직후부터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의 스크립트 작업이 시작됐다. 이 작업은 친구의 해고에서 시작한다. 친구의 회사생활, 업계인(3D 배경 그래픽 디자이너)에 대한 인터뷰, 동종 업계인 인터뷰, 마우스의 역사와 정보통신사, 3D 그래픽의 발전 등을 조합한 스크립트를 (3D 매핑 방법 중 하나인) 노멀 맵으로 변형, CMYK로 출력해 책자로 만들었다. 책자 작업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갈 무렵 〈Simulating Surface B〉를 시작했다. 친구의 삶과 노동, 오늘날 미디어 환경을 다룬 합필(합성필수)영상이다.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의 스크립트가 빠르게 화면 위로 지나가는 가운데, 팔랑거리는 그래픽 이미지가 된 친구의 삶이 모니터 속을 고속으로 유람한다.- 강정석

강정석 인물 (16)

강 정 석 KANG JUNGSUCK
1984년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2013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2014년에는 인사미술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단체전과 스크리닝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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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천 바벨 (2)

〈바벨(Lifting Barbell)〉 HD비디오 21분27초 2015

김희천Soulseek- (1)

〈Soulseek-Pegging-Airtwerking〉 HD비디오 2015

〈바벨〉과 〈Soulseek/Pegging/Air-twerking〉이 두 영상 작업은 스크린 속 세계에 대한 작업이다. 나는 건축을 전공하여 스크린 속에 기존 세계를 데이터를 통해 임포트(import)하고 이에 새로운 세계(혹은 다수의 삶)를 만드는 데 익숙한 편이다. 〈바벨〉의 경우, 지난여름, 아버지의 죽음 후 데이터로 저장된 그의 마지막 순간과 이 세계의 끝에 대해 말한다. 스크린처럼 납작해진 세계와 디폴트 3D 인체모델처럼 움직이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 닿을 수 없지만 금방이라도 ‘세상은 망할 것’이라며 겁을 주는 징조를 통해 이 세상이 이미 제대로 망해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애매하게 망한 껍데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해 말한다. 반면 〈S/P/A〉는 현재 진행 중인 ‘2015년 아카이브’에 대한 하나의 튜토리얼 영상으로 2013년부터 해온 ‘사진 아카이브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튜토리얼 영상을 통해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지고자, 스크린 속세계로 현실세계를 백업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우리 세대의 삶은 mp3와 같고, 세상은 가상을 열화 구현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가상은 거세된 사람들에게 남은 비효율적인(인간적인) 요소들을 통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3D로 주위의 것들을 모으고 세계를 구성하여, 그 안의 인물이 또 자기 자신의 아카이브를 만들기 시작하는 순환고리를 보여주며, 결국 스크린처럼 되어버린 이 세계에 대해 말한다.- 김희천

김희천인물 (1)

김 희 천 KIM HEECHEON
1989년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2013 미래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1월 반지하 B½F에서 첫 프로젝트 <데굴데굴 데모험 lol%20-22.tif>을 열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유망예술지원사업 ‘99℃ seogyo 30’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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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분 37초의 하늘, 가변크기-22.7cm × 15.8cm x 각 156개, 2013

〈155분 37초의 하늘〉 먹지 가변크기(각 22.7×15.8cm) 2013

매일 서울 안을 어슬렁거리며 마주한 풍경은 예측이 힘든 도상과도 같았다. 현실의 풍경은 “예/아니오”로 말할 수가 없었다. “예/아니오”로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확한 언어로 묘사가 불가능한 이곳에서, 하나의 좌표를 따라 그린 이동의 궤적은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재현이 아닌 장소와 관계 맺음으로, 후일을 위한 기록보다는 현재를 위한 기록이다. 통용될 수 없는 이 지도는 내가 있었던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서술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하려는 이 헛된 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마주하기 위해서다.- 강동주

강동주 인물 (3)

강 동 주 KANG DONGJOO
1988년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012년 누하동 256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OCI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해 올해 말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