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단색화 Dansaekhwa
팔라조 콘타리니-폴리냑 Palazzo Contarini-Polignac
5.7~8.15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 전시가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열린다. <단색화전>이 바로 그것.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이 기획하고, 1970년대 베니스의 유서 깊은 건물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단색화의 태동기와 중기, 그리고 근작에 이르는 70여 점을 소개한다.

단색화 (6)

김환기 전시광경 사진 왼쪽은 <5-IV-71 #200 Universe> 면에 유채 254×254cm(2점) 1971

베니스에서 만난 단색화의 현재적 의미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열리는 <단색화전>을 기획한 이용우 큐레이터는 서구의 모노크롬과 단색화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신체적 행위가 동원된, 색채의 정신적 승화를 위한 자연 회귀적 사고가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우리 내부에서도 논의가 한창인 단색화에 대한 베니스 전시를 또 하나의 ‘토론장’으로 규정한다.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단색화란 ‘단일 색채의 회화’라는 뜻으로 1970~80년대 격변기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미술형식이다. 단색화는 특정한 미술형식의 미학적 정체성이나 맥락의 특징을 보전하기 위해 발생국가의 어원이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미술사의 전통에 따라 한국어, 또는 한자어로 표기된 용어이다.
단색화는 서구의 모노크롬회화와 유사한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그 역사적 배경이나 미학적 실천, 담론에서 상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구의 모노크롬은 다색에 대한 거부와 반대개념으로서 극단적 색채의 대비에, 그리고 회화의 종말을 예고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의 실천으로서 형식의 단순성에 착상했다. 그러나 단색화는 평면과의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신체적 행위가 동원되며, 색채의 정신적 승화를 위한 자연 회귀적 사고가 본질을 이룬다.
모노크롬은 본질적으로 서구 아방가르드 미학의 바탕 위에서 탄생한 형식주의 예술로서 회화나 디자인, 영화, 사진에서 색채의 감수성을 여과하고 배제해 절제의 미학을 극대화시킨다. 회화의 경우 캔버스 표면에 절대적 긴장상태를 유발하고 도전하며, 예측 가능한 실험적 결과들을 논리적으로 해명한다. 그러나 단색화는 색채의 감수성을 배제하기보다는 단색성을 통해 색채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회화적 친근성(affinity)과 유연성을 유지한다. 특히 평면에 색채를 바르고, 뜯고, 캔버스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고, 긋고 하는 제작 과정의 신체적 행위가 작품의 생산 과정에 중요한 퍼포먼스 요소로 등장함으로써 비예측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단색화는 회화적 전통에 대한 단절이나 배제, 긴장이 아니라 색채의 단순성에 기반을 둔 평면의 진화, 변형을 바탕으로 한 내면적 해석이 강조된다. 모노크롬 회화와는 달리 단색화에서 나타나는 형식적 절충주의는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단색화는 1970년대 당시 반제도권, 반관전(官展)운동에 앞장섰던 이른바 한국모더니즘 1세대 주요 작가들의 의식의 결집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저항성이나 급진적 실험의식에도 불구하고 단색화는 집단주의를 토대로 한 문화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거나 거대한 운동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참여 작가들의 개별적 이해와 해석을 토대로 전개된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단색화 작가들의 배경에는 ‘반국전선언’이나 ‘아방가르드 예술가협회’의 활성화, 시각예술에서 신체와 언어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인식 등 이른바 모더니즘 미학의 전방위적 가치들이 함께 등장한다.
단색화 탄생의 사회정치적 배경은 단색화를 이해하는 미학적 형식뿐만 아니라 단색화의 정신적 문법을 해독하는 열쇠가 된다.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목되는 일제 식민지 40년과 그 수탈, 180만 명의 희생자를 낸 6·25전쟁, 남북 분단, 4·19혁명, 5·16군사정변, 군사독재, 그리고 경제개발 중심주의 등은 한국사가 지나간 자취이자 한국인이 겪은 분절이다. 특히 1960~80년대 군사독재로 인한 사회적 억압현상이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중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형성과 실천의 초기단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가치의 혼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이어진 한국인의 미학적 감수성이나 혼(魂)은 단색화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단서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단색화는 1950~6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운동 등 서구모더니즘의 흐름과 한국의 현대미술이 어떤 영향과 연관관계에 있었는지, 또는 정신적, 형식적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 자주성을 생산했는지를 연구하고 검증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특히 한국현대미술의 독자적 미학형식을 담론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비판적, 또는 긍정적 요소로서 담론 생산의 단서이자 근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학적, 미술사적 기록과 근거들은 작품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나 형식 중심의 판단을 넘어 사회학적 비평과 문맥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 예술과 대중의 접지(earthing)를 위한 그라운드 등에 대한 고려에서 관건이 된다. 단색화예술을 포함한 한국모더니즘, 그리고 리얼리즘 예술 등 지난 세기를 풍미한 다양한 경향들은 그 진지한 실험적 맥락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계보학적 파벌주의나 분파적 속성을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 단색화에 대한 탐색은 단순한 전시가 아닌 글로벌 시각을 통하여 본격적 검증을 시작하는 첫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의 모더니즘형식이나 예술의 사회학적 가치에 대한 검증으로 발생한 1980~90년대 민중미술과 리얼리즘미학 등을 비로소 동일한 구도에서 통합 검증하는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병렬전시(collateral event)로 마련된 단색화 전시는 최근 3년 사이 이뤄진 단색화에 대한 다양한 전시나 출판, 세미나, 그리고 국제사회의 관심들을 종합한 또 다른 토론장이다. 그 이유는 단색화가 그 명칭에서부터 전개 과정에 대한 배경, 미학적 해석, 작가들에 대한 역사적 구분과 선별작업,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 시장의 변화 등에서 아직도 토론되어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시기획자로서 이번 전시가 전시행사가 아니라 단색화에 관심을 가진 전문가나 관객들의 관심을 배가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단색화가 한국의 미학적 자주성이나 한국미술의 대표성을 갖는 다양한 모멘텀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동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전개된 모노하나 구타이 그룹 등이 일본이나 동양의 대표적인 실험적 시각문화현상으로 미학적, 미술사적 평가를 받아온 것과 유사한 제안이다. ●

하종현 <Conjunction 74-25> 200×100cm 1974

* 이 원고는 베니스 팔라조 콘타리니-폴리냑에서 열린 <단색화전> 브로셔에 실린 필자의 글을 편집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