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권영우 Various Whites

3.16∼4.30 국제갤러리

전민경 |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특별했던 점은 권영우 화백의 개인적인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소위 선비스타일의 인물이었을 것 같다. 시대와 쉽게 타협하지 않고 온건하지만 강직하고 때로는 소탈하고 섬세한 로맨티스트 같다. 이러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성격의 일단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단색화로 총칭되는 작가들과 그들의 주요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각광받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나 이들 개개인에 대한 연구는 시장의 관심도에 비해 부족했다. 한 시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일련의 미술적 모멘텀(momentum)을 편의상 혹은 관례적으로 ‘단색화’라 부른다. 하지만 작가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들의 서사를 알리고 싶어 한다. 단색화 명칭에 대해서 파고든다면 너무 이야기가 복잡해질 수 있으므로 함구하고 요는 권영우를 단색화 작가라기보다 동시대에 ‘재발굴(rediscovery)되는 작가’의 측면에서 볼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전 생을 돌아보면 그는 특정 그룹에 연합되어 활동한 적이 없다. 친밀하게 교유한 제자나 작가들을 제외하곤 대체로 작가로서의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권영우 화백의 이러한 면모는 그가 개인적으로 쓴 친필편지를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통해 파리로 떠나와 작업하는 열정적인 작가의 모습 그 이면을 느낄 수 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정리하고 아내에게 경제 활동을 일임한 가장의 모습과 작가의 필연적인 정서적 외로움과 분투하는 생각 등. 또한 그가 생전에 한 인터뷰 및 영상 기록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이번 국제갤러리의 권영우 개인전 〈Various Whites〉에서 그의 아카이브를 본격적으로 구현하고 주요 사료들을 재구성한 바 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생전의 언급들을 발췌해서 권영우 화백에 대한 내 나름의 navigate를 해 보고 싶다.
미술학교에 다닐 적 학교에서 배운 것이, 소위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어떤 전통적인 동양화였는데, 그런 것이 제 체질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난 내 것을 해야 되겠다’ 하는 방향으로 자꾸 나가다 보니 우연히 하얀 종이로 돌아옵디다. (동양화를 전공했기에) 화선지라고 하는 하얀 종이가 늘 내 주위에 있었고, 그 때는 모든 재료가 귀했어요. 화판 하나를 내가 만들고 땜질해서 뚫어진 데를 고치고 하다 보니까 어떨 때는 화선지를 갖다 바르기도 했고요. 그런데 땜질하려고 가져다 붙인 화선지들이 이루어내는 그 어떤 나름대로의 하모니랄까? 아주 재미난 걸 발견한 거죠. ‘아, 이거 참 재미있다.’ 그 때부터 종이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최근 그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 소개될 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지점은 종이에 대한 (당시로서는) 실험적 시도들이다. 늘 그렇듯 특별한 발견은 대부분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하얀 종이, 우리는 화선지를 (그가 언급한 대로) “하얀 종이”로 느끼기보다 재질적으로 인지 한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재료와 기법에 관한 고민이 ‘화선지’라는 질료 자체에 대한 탐구로 귀결된 것은 납득이 간다. 권영우가 손톱으로 긁고, 칼로 선을 그어 종이를 찢어 내고 펀치로 구멍을 뚫은 일련의 행위는 어쩌면 수묵화 혹은 시서화 같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오랫동안 무수한 반복과 오랜 수련을 통해 몸과 정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묵계를 향한 반항적인 접근이 짐작된다. 설사 그가 행한 시도들이 반항적이지 않았다한들 찢겨진 이미지들 자체가 주는 심상은 비교적 거칠고 야성적이다. 이 불규칙한 정렬을 아이러니한 하모니로 구현한 모습은 그가 지닌 섬세하지만 고집 센 완고한 기질을 상기시킨다.
65  -   6년경이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때가 내 나름대로 내 영역을 개척했다 하는 의미에서 발표를 처음 시도한 것이 신세계백화점 안에 있는 미술관에서 제1회 개인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전시는) 지금까지 그런 그림의 형태와 다른 종이만 가지고 다루는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만들었었죠. 이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게 동양화냐 별소리가 많았죠. 동시에 소위 말하는 추상적인 것 비구상적인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서양화 아닌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중략  …. 그런데 저 나름대로 생각할 적에는 회화이지 동양화 서양화란 구별을 굳이 두지 말자. 그것이 기름 물감으로 그렸건, 서양화적인 화법으로 그렸건, 여는 그 작품이 발산하는 어딘가 그 체취가 동양적인 것을 발산할 적에 그것은 동양화다,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규정짓기를 좋아한다. 나 또한 업무를 보며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라는 식의 명쾌한 결론에 대한 압박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서 이러한 요구는 생산자인 작가에게 상당히 폭력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어쩌면 작가에게 흑백 논리는 상당 부분 무의미하다.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많은 창작자가 본인이 예측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발견과 조우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의 요구에 피로감을 느끼지만 권영우 화백의 언급에서 이런 나의 비평적인 생각을 좀 더 지혜롭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물어보기에 앞서 작품의 체취를 느끼고 작품을 논해야하는데 나의 경우 미술과 가까운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오히려 습관적 관점을 유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아직 많은 경우 내용보다 형식에 대한 고민이 앞서기 때문인 듯싶다. 내용 자체는 개인에게 필연적이기에 추가로 말을 보태기가 어렵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춘 형식을 추구하다보면 간혹 그 이면에 있는 정서를 상실하곤 한다. 논리적으로는 묘사하기 어려운 심상적, 감각적 이미지들이 존재하는데 때로는 탁월한 언어적 묘사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체취를 위한 여유를 좀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우연한 기회랄까요, 국전에 계속 출품을 하다가, 국전에서 물론 특선도 됐고, 또 나중에 심사위원도 했습니다만, 초대작가 중에서 선정하는 초대작가상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것을 74년도에 수상했습니다. 당시에 외국에 나간다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었는데 외국의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런 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75년에 파리로 출국하여 약 1년여 머물며 지냈습니다. 당시 그 작업을 한 십 년 하던 차에 파리로 가면서, 채색이 시작된 거죠. 처음엔 조심스럽게 채색을 화면 뒤에다 발랐습니다. 그럼 화선지라고 하는 것은, 흡수하는 성질이 있거든요? 앞으로 빨아 당깁니다. 그러면 겉에다 확 바른 것보다는 은은하게 이것이 젖어 나오죠. 그런 효과를 많이 사용했었죠. 뚫은 데다가 나오게 하기도 하고, 칼로 찢어가지고 그 사이로만 나오게 하고, 그러한 변화들을 많이 찾았었죠.
권영우 화백은 이후 약 10여 년간 파리에 체류했다. 작가에게 그 시간은 채색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시기이다. 이전에 하던, 단색화의 전신으로 불리는 백색화와 비교해 보다 회화의 규격도 보다 커지고, 그만의 고유한 먹색, 청색, 간혹 마젠타가 섞인 보랏빛채색도 시도하곤 했다. 때문에 그의 1980년대는 화선지에 대한 실험에서 색채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다채로운 회화적 연구를 엿볼 수 있는 부흥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가 한국으로 보낸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편지에서 그는 가족 혹은 이웃의 안부를 묻거나 현지 날씨 또는 그곳에서 지내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특기할 점은 그가 거의 모든 편지에서 화선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리에 머물며 지속적으로 화선지를 고집했고 상당한 양의 재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프랑스를 방문하는 인편을 통해 재료를 조달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건, 권영우에게 화선지는 작업 행위 이전에 재료 자체가 상당히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선지 고유의 재료적 특성이 그가 표현하고자 한 여러 조건을 충족시킨 것 같다. 때문에 나는 화선지가 수분을 흡수하고 번지게 하는 실제적인 특징보다 그런 특징이 작가에게 맞닿아 있고 표현의 일환으로 소화되는 과정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출발점에서부터 언제가 귀착점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하는 일에서 늘 거기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는 것, 늘 꾸준히 한다는 것, 계속 한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맺음말로는 다소 고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 불문 불변의 진리 같다. 개인적으로는 근래의 필자 또한 되새겨야 할 말이라 인용했다. 이제는 후배 여러 명과 강의를 듣는 학생도 몇몇 생겨나는 동시에 아직 현장에선 동력을 가져다나르는 젊은 피이자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소모적인 중간자 입장에 있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대들 중간에서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과도 나누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워낙 세련된 매너를 추구하는 환경에서 이런 말들은 귀에 간지럽거나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역사를 겪은 인물에게서 전달 받는 상대적인 경험만큼 가슴 깊이 와 닿는 말이 없을 것 같다. 작고한 권영우 화백도 마찬가지다. 그가 지나온 시기에 대한 귀결로 다다른 태도가 아닐는지 싶다.

위<무제〉 한지 100×80.5cm 1980년대 Courtesy of the artist’s estate and Kukje Gallery

REVIEW

슬기와 민
3.9~5.13 페리지갤러리

관객을 “기만하는 전시”. 이들은 그 어떤 내용 제시도 발언도 하지 않으며 전시는 반드시 작품으로 구성된다는 믿음을 저버린다. 작가와의 정서적인 소통과 지적인 통찰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이 이번 전시의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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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씨

Lappland de 13
3.3~17 라플란드

참여한 작가 13명의 공통점은 성차별의 지점을 보여주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진, 회화, 설치 등 각자의 언어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차별을 보여주고 그를 극복할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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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숙희

지숙희 개인전
3.15~21 갤러리 1898

자연을 대상화하지만 그 흔적을 지운 추상적 표현이 가득한 작업엔 감성 중심의 표현을 지향하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하다. 이에 무수히 많은 선을 긋고, 지우는 지난한 과정은 마치 흔적만을 남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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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주도올

이문주 개인전
3.1~19 갤러리 도올

재개발 공사현장, 수명을 다한 건축물과 도시의 폐기물 등을 촬영한 파편적 기록들을 콜라주하여 화면에 재조합하는 작가의 회화 연작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 10년째 진행 중인 〈걷는 사람〉 연작의 최근 버전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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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랑 (2)

윤정미 개인전
3.10~5.7 상업화랑

작가가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인사동과 청계천의 상인들과 그들의 일터를 촬영한 작품을 모아 사진전을 갖는다. 작가가 다시 그곳을 방문해 같은 구도로 재촬영한 신작이 전시기간 동안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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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열서금

왕열 개인전
3.1~7 갤러리H

‘산 무릉도원에서 놀다’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전시 타이틀이 암시하듯 도시생활을 하는 인간의 삶의 편린에 대한 것이다. 이에 고독과 소외라는 도시생활을 낙관적 자세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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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김강

이정아 개인전
3.15~21 조형갤러리

마음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텍스처와 오브제를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해체하는 과정을 거듭한다. 꾸지나무와 동판 등 독특한 소재를 중첩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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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김강

이승신 개인전
3.1~10 갤러리 M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를 여린 것, 즉 꽃, 사슴, 화초 등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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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순화하미

곽순화 개인전
3.22~27 가나아트스페이스

작가는 자개와 옻칠 등 자연에서 취한 재료를 이용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그가 달항아리와 평면작업에 표현한 울산바위, 금강산에서 가장 한국적인 맥락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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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선김강

최승선 개인전
3. 17~31 N갤러리

‘신기루’로 명명된 작가의 8번째 개인전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강원도 사북 출신인 작가는 자신의 고향 광경과 그곳에서의 경험 등을 현대인의 고향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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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길김강

김대길 개인전
2.9~4.2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가 협업해 마련한 이번 개인전은 ‘생명의 힘 그 앞에 서다’로 명명됐다. 전남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는 이번 전시에 74점의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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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일서금

박용일 개인전
2.23~27 GS타워 더스트릿갤러리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은 익숙한 보따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을 싸고 있느냐 하는 점이며, 부드러운 보따리 겉면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냉혹한 사회가 바로 그 내용이다.

PREVIEW

레슨 제로
3.31~6.1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현대미술을 통해 동시대 삶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배움과 가르침, 교육의 관습과 상황에 대해 질문한다. 작품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인간의 행동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사고 방식, 문화의 양식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전제하는지 묻는다. 또한 그와 같은 방식이 어떻게 작동되며 어떠한 사회적 실재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를 성찰케 한다. 김범 로와정 안정주 양혜규 오석근 오재우 오형근 이완 이유진 브렌단 페르난데스 팡후이 히로코 오카다 존사사키 타카유키 야마모토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가 참여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은 예술적 관찰과 발상을 통해 한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의 전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학교와 교실 등 집단의 규범과 사회화의 문맥 속에서 대항하는 개인의 존재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존사사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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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05-05

김보희
4.7~31 학고재갤러리

김보희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는 개인전 〈자연이 되는 꿈〉. 사계절 내내 따뜻한 초록의 풍경이 좋아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는 작가는 자연의 푸른 생명력과 신비로움에 주목해 사실성과 추상성을 미묘하게 뒤섞어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어딘가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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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위대한 퍼포먼스 5- 태안반도 기름유출(1993), 2017, C-프린트, 70x100cm

윤동천
4.12~5.14 금호미술관

동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독자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한 윤동천의 개인전 〈일상_의 Ordinary〉. 작가 작업의 기본 전제이자 출발점인 ‘일상’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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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도운 브레익스, 서울
3.24~5.14 아트선재센터

이주요 정지현이 3번째 협업프로젝트를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선보인다. 정확하게 규정된 사회적 언어가 아닌 수많은 언어가 난무하는 세상을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전’에 비유해 기존 논리에 속하지 않은 작가들의 규제없는 모험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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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이진주
3.31~5.7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낯익은 소재를 사용해 지극히 직관적이며 초현실적인 화면을 구현하는 이진주의 개인전. 작가는 정해진 해답이 아닌, 보는 이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을 이끌어 냄으로써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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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메-김원정

정원사의 시간
4.1~6.25 블루메미술관

크고 작은 정원을 직접 만들고, 찾아 다니며 식물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요즘, 점점 더 빨리 변하는 현대문명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지극히 정적인 식물과의 일, 정원을 꿈꾸는 지를 고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현대인이 자신의 일상 공간에 식물을 들이는 것처럼 사람의 공간인 미술관에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강운 김원정 김이박 임택 최성임이 참여해 정원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성에 주목한다. 예술의 언어를 통해 작품들은 생명의 원리로 질서화된 정원의 시간성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힘을 얻게 하는지 되묻고 식물과 함께 하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 식물과 사람 사이의 비밀스러운 일을 들여다본다. 김원정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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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갠더

라이언 갠더
3.29~5.7 갤러리 현대

영국의 개념미술 작가 라이언 갠더의 개인전 〈소프트 모더니즘〉. 설치, 미디어, 회화, 조각, 사진, 텍스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예술, 문화 개념과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연관지어 개념적으로 재치있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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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득

김호득
3.30~6.17 파라다이스 집

‘흔들림, 문득’, ‘사이, 겹’ 등 공간과 시간을 다루던 기존 전시에서 한 단계 나아가 ‘차다’ 와 ‘비다’ 같은 서로 반대되는 두 단어의 역설을 통하여 실재와 허상에 대한 연장된 사고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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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제 오즈볼트
4.6~5.6 갤러리 바톤

드로잉, 회화, 조각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조르제 오즈볼트의 개인전. 이번 개인전은 여러 이미지, 레퍼런스, 장면, 기호의 충돌을 유도하는 작가 고유의 화법을 총망라하는 자리로 다양한 실험을 거쳐 탄생한 독창적인 전유물을 한자리에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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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스-권순영

이야기 없는 이야기
3.17~4.27 갤러리 룩스

화면 속에 서사 구조를 만들어 세계를 연출하고, 감정의 상태를 재현하는 방식의 작업을 진행하는 권순영 우정수 전현선의 작품을 모았다. 서사구조가 없는, 이야기가 없어진 그림을 통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이미지의 힘을 전달한다. 권순영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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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은_누워있는_조각가의_시간_archival_pigment_print_120_x_180_cm_2016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3.31~6.24 하이트컬렉션

4회째를 맞은 젊은 작가 그룹전. 강희정 김세은 노혜리 박천욱 서정빈 이준용 장종완 전명은 한우리 황효덕이 참여해 회화, 사진, 조각,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전명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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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권혁
4.7~2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스티치 기법으로 대상을 재현하고 이를 채색된 캔버스와 결합해 여러 겹의 레이어를 만들어 독특한 평면을 구성하는 권혁의 개인전. 작가는 삶이 예기치 않은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상황’의 우연성과 세상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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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슬라브스와_타타스_Larry_Nixed,_Thrachea_Trixed_2015

더 보이스
4.20~7.1 코리아나미술관

국내외 작가 12명이 참여해 ‘목소리’를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예술적 매체이자 장치로 간주하고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소리와 관련된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시각예술영역으로 침투한 ‘목소리’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슬라브스와 타타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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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

이명미
3.20~4.22 대구 갤러리 분도

단순함과 간결한 조형성으로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느낌을 주는 이명미의 개인전. 작가는 함축된 기호로서의 소재 사용, 강조와 생략, 원색을 통해 천진난만함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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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윤석남
3.17~4.9 자하미술관

여성주의 미술가 윤석남의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작가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979년의 미발표작 1점과 1985~2000년대 드로잉 100여 점, 신작으로 구성된 작가의 자화상 7점 등 다수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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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피부
3.16~4.30 소마미술관

인간의 실존과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피부를 직시한다. 인간의 피부부터 디지털 스킨까지 ‘스킨’을 화두로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 18인의 작품 99 점과 영화감독 7인의 영화 8편을 해설과 함께 볼 수 있다.
김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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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

노석미
4.6~28 갤러리 조선

노석미가 을 타이틀로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자연을 펼쳐놓는다. 작가는 담담하게 머물러 있는 자연을 그려낸다. 단순하지만 소담스럽고 자연스러운, 노석미의 자연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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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김선태
4.6~5.3 갤러리 초이

동양화의 기초 화법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선, 여백으로 강한 화면을 구성하는 김선태의 개인전. 작가는 인간이 겪는 위안에 대한 욕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는 작업을 통해 그 너머의 어떤 지점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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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김신영

00의 기억
3.24~4.27 신한갤러리 역삼

곽이브 김신영 장서영 최태훈 최형욱이 ‘00’으로 대표되는 익명성의 본질을 찾아나선다. 익명에 기댄 사람들이 우리 사회 현상들에 어떤 목소리로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메아리는 다시 어떤 형태로 세상에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김신영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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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웅필
4.14~5.10 갤러리 조은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이란 자화상시리즈로 잘 알려진 변웅필의 개인전. 작가는 감정이 배제된 자화상을 통해 외적인 모습에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독창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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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이상용
4.6~29 갤러리 BK

회화 · 조각 · 설치 · 사진 등을 매체로 작업하는 이상용의 개인전. 작가는 단순한 형상의 기록이 아닌 정교한 의미의 서사를 구축해 삶의 깊은 곳을 세심하게 건드리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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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익

서상익
4.14~5.10 아트팩토리

면 분할이 이뤄진 실내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광경을 담은 회화를 선보이던 작가는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겠다는 기조를 견지한다. 무엇을 그리는지 보다 작가가 무엇으로도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표현법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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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_엄마의창_이즈반도 2016

박진영
4.11~5.25 아트스페이스 J

형식과 내용에 있어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도해 온 박진영의 개인전 〈엄마의 창〉. 작가는 치매환자인 엄마와의 대화 속에 등장한 장소, 물건 등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제껏 자식을 위해 살아온 엄마에게 바치는 헌정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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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_Katz_flowers_2_22.9x30.5cm_oil_on_board_2011

알렉스 카츠
4.13~6.3 PIBI 갤러리

페인팅, 드로잉, 조각, 판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왕성한 작업을 선보이는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 거대한 크기의 인물 초상화와 풍경을 비롯해 일상의 단면을 독창적인 제스쳐로 담아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물, 풍경, 꽃을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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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

임택
4.4~29 트렁크갤러리

산수풍경을 디지털 이미지로 제작해온 임택의 새로운 작업을 볼 수 있는 〈점경와유〉. ‘옮겨진 산수’를 야외 공간으로 확장하는 프로젝트 중 조선시대 전통정원을 답사하면서 그 주변에 있는 바위들을 촬영하여 작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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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나점수

풍경의 두면
4.6~30 누크갤러리

식물적 사유에서 따온 나점수의 풍경과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임동승의 풍경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지극히 사색적인 두 작가의 그림과 조각을 통해 같은 풍경이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예술이라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결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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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노원희

2017 풀이 선다
3.20~4.9 아트스페이스 풀

아트스페이스 풀의 기금마련전. 이 전시는 공간 운영 기금마련이라는 목적에서 시작하였으나, 이에 앞서 대안공간이 존속하기 위해 어떤 경제적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일반적인 시장논리와 차별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노원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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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 고독을 소독하는 사람 91x72.5cm 캔버스 위에 유화 1978

정복수
4.20~5.10 부산 미광화랑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인간이라는 대상에 천착해 온 정복수의 부산시절을 되짚어본다. 부산에서 작업의 바탕이 되는 감성을 키워온 정복수의 그림을 살펴보며 작가가 쌓아온 인간 탐구의 근원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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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김지수

피드백과 식생
4.12~5.8 아트스페이스 휴

자연생태계, 식물과 관련된 작품을 모아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식생을 연출한다. 식물을 소재로 작업하는 강정헌 김지수 김준은 인공 재배,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 채집과 기록의 방식 속에서 새로운 창작의 단서를 발견한다. 김지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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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

트라이앵글
3.30~4.30 갤러리 아트사이드

하나로 선으로 이어진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각기 다른 점에서 자신의 고유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안창홍 오원배 최진욱 장샤오강 쩡판즈 쩌춘야를 모았다. ‘현실(사회)-예술-작가’로 이어지는 세 꼭지점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 오원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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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박경희
4.25-4.30 대구 봉산문화회관

자연을 모티프로 작업하는 박경희의 개인전. 자연에서 경험한 것을 전달하고 자연에서의 사색을 재구성하는 작가는 생동하는 자연의 움직임에 착안하여 숲속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함께 존재의 숨결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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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린이-제럴드 맥더멋

칼데콧이 사랑한 작가들
3.30~6.25 현대어린이책미술관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권위의 ‘칼데콧 상’을 수상한 미국 그림책분야 대표 작가들의 원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칼데콧 수상 도서의 작품세계를 문화 · 사건 · 관계로 풀어내며 그림책 작품의 교육, 문학, 미학적인 의미를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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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_이완정 작품사진

이완정
4.19~24 가나아트스페이스

고층 건물이 빼곡이 들어찬 빌딩숲에서 인간은 하나의 부속품인양 쉼 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작가는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존재를 나뭇가지에 담아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지친 일상에 휴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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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

홍경표
3.30~4.19 부산 갤러리 조이

‘그림이란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생명의 기운을 색을 통해 시각화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홍경표의 개인전. 작가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동적으로 표현하며 생명의 기운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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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현대표이미지_작은사이즈

문승현
4.4~16 세종갤러리

오전, 아침에 일어나 일과를 준비하는 시간. 오후, 급한 일들을 끝내놓고 한숨 돌리는 ‘나’의 시간. 문승현이 그리는 오후는 그렇게 스스로의 진지한 고민을 품어 안아주는 시간이자,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감미롭고 따스한 자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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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빈

엄상빈
4.14~5.2 스페이스22

분단, 환경 사진 등으로 익숙한 엄상빈의 개인전.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중 근간에 해당되는 분단을 다룬 작업의 연장선으로 군사정권, 문민정부 등 정권의 흐름과 통치이념이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있어 남북관계에 따른 철조망 변모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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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갑

정진갑
4.4~20 최정아갤러리

섬세하고 예민한 손놀림으로 소녀와 소년을 빚어내는 정진갑의 개인전.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는 작가의 다짐이 투영된 작업을 통해 보는이들이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되찾아 현재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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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영

변선영
4.1~9 한전아트센터

콜라주를 이용해 사물로부터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변선영의 개인전. 작가는 연계되지 않은 것들의 우연한 만남을 예측되지않은 낯선 만남이 아닌 익숙한 우연으로 이끌어내며 내면으로부터 가까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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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분다 아트셀시

최윤아
4.23~5.2 갤러리 아트셀시

본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색을 찾고자 노력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 〈푸르름이 분다〉를 통해 대상의 근본을 탐색한다. 색과 형상, 구도를 통해 자신이 가진 조형어법을 그대로 드러내며 ‘결’이라는 언어를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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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김수연
3.16~4.15 갤러리2

평면의 이미지를 출력해 입체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 평면과 입체의 틀을 깨는 김수연의 개인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하늘을 날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펼쳐보인다.

EXHIBITION TOPIC 사임당, 그녀의 화원

사임당, 그녀의 화원

더 이상 신사임당을 ‘한국을 대표하는 어머니상’ ‘현모양처의 표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길 바라는 전시가 서울미술관에서 한창이다.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에는 이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14점의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총 15점의 작품이 관객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KBS 1TV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 2005년 공개된 후 처음으로 전시장 나들이에 나선 〈묵란도(墨蘭圖)〉에 주목하자. 이젠 사임당을 단순히 ‘女人’이 아닌, 시 · 서 · 화에 능한 예술가로, 시대적 제약에 굴하지 않고 자기 계발에 매진한 능동적인 한 ‘사람(人)’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오죽헌에는 정말 그 꽃이 피었을까

이홍주 |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임당 신씨(1504~1551), 현재를 사는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의 전형으로 흔히 그를 떠올린다. 그는 출중한 기량의 화가이면서 효녀이자 양처이자 현모인, 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추앙되어 왔다. 2009년에는 신사임당을 수수하고 점잖은 부인으로 그린 초상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으로 선정되어 과연 그를 한국역사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엔 일련의 소설과 드라마가 신사임당을 새롭게 해석하며 또다시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16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았던 한 여성이 왜 이렇게 끊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신사임당이라는 여성의 실체와 얼마나 가까운가.

지금 서울미술관에서는 화가 신사임당을 조명한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이라는 제목으로 안병광 서울미술관 관장이 소장한 신사임당 전칭의 〈초충도〉 15점을 선보이고 있다. 공개된 작품은 검은 종이에 채색으로 그린 〈초충도〉 10폭, 유지에 채색으로 그린 초충도 4폭과 송시열의 발문이 함께 장황된 〈묵란도〉 1폭이다. 규모는 작지만 그동안 공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이라 주목할 만하다.

〈초충도〉는 수박, 양귀비, 구절초, 원추리, 가지, 오이, 달개비, 여뀌, 추규, 봉선화, 패랭이꽃, 맨드라미 등 우리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담한 풀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생쥐, 개똥벌레, 개구리, 잠자리, 나비, 벌, 방아깨비와 같은 동물들을 윤곽선 없이 화사한 채색만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색색의 화폭들은 과연 신사임당이 가꾸었을 법한 오죽헌의 정원으로 관람자를 이끄는 듯하다. 전시장의 두 면을 차지한 흑지 바탕의 10폭 초충도는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조선왕조의 미(朝鮮王朝の美)” 순회전에서 공개된 바 있다. 매 폭을 신사임당 그림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찬사와 병치하여 대학자 율곡을 키워낸 어머니, 현모양처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하는 전시의도를 보여준다.

사실 ‘신사임당 초충도’가 한국회화사에서 16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혀왔음에도 신사임당의 화가로서의 진면목을 증명하는 확실한 진작(眞作)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전하는 작품들은 모두 그의 화풍을 반영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전칭작(傳稱作)이다. 두세 종의 식물을 조합한 장식적인 구도와 도안적으로 평면화하여 단순하게 그린 꽃잎과 잎, 열매의 형태, 이들을 서로 겹치지 않게 배치한 점에서 신사임당 작으로 전칭되는 초충도들은 자수를 놓기 위한 밑그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특히 검은 공단에 색실로 〈오이와 개구리〉, 〈맨드라미와 도마뱀〉과 같이 유사한 구도와 소재의 화면을 수놓은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자수초충도병〉의 존재는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번에 출품된 흑지 바탕의 채색 초충도는 자수로 제작했을 때의 효과를 최대한 살려 그린 것이다. 장식성과 생동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은 10폭 중 7폭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충도10폭병〉과 구도와 경물이 정확히 일치하고, 2폭이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초충도병풍〉 속 화면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실은 ‘신사임당 초충도’로 일컬어지는 범본들이 반복적으로 자수와 회화로 모사되었던 정황을 시사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유지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4폭 초충도는 이보다 좀 더 원작으로부터 멀어진 모사도로 보인다. 화면의 한쪽 모서리로부터 대각선 방향으로 식물을 배치한 구도는 장식의 목적에 보다 충실하며, 화면에 등장한 검은 나비는 다른 작품에 대칭형으로 등장하는 나비와 달리 19세기 남계우 풍의 나비에 훨씬 가깝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묵란도〉는 2005년 KBS TV쇼 “진품명품”에 출품되어 진작으로 인정받아 1억350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이후 문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킨 송시열의 발문이 함께 장황되어 있다. 사실 이 그림에 그려진 것은 난이 아니라 원추리꽃이다. 원추리 외에도 두어 가지 풀이 함께 자라고 있고 꽃을 향해 나비 한 마리, 벌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아깨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역시 채색은 아니지만 수묵으로 그린 한 폭 초충도인 것이다. 이 그림이 난데없이 ‘묵란도’로 알려진 것은 그림에 쓰여진 송시열의 발문이 그의 문집 《송자대전》에 ‘사임당화란발(師任堂畵蘭跋)’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발문에서 이 그림이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손가락 밑에서 표현된 것으로도 오히려 능히 혼연히 자연을 이루어 사람의 힘을 빌어서 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물며 그가 낳은 아들은 어떻겠는가, 과연 그 율곡 선생을 낳으심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 _27x24cm (2)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27×24cm연도미상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 _27x24cm (1)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27×24cm 연도미상

시대와 해석에 묻힌 사임당

서울미술관의 이 짧은 전시는 신사임당과 그의 〈초충도〉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을 규정한 많은 찬사를 그림과 나란히 보여주면서도 그 찬사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모습으로 ‘화가 사임당’을 빚어냈는지를 고찰하지는 않았다. 이 전시를 보고 나서 뇌리에 남는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은 어떤 화가인가. 오죽헌의 정원을 가꾸며 이를 화폭에 옮긴 여성화가? 조선시대에는 이례적으로 당대 저명한 문인들에게 그 예술성을 인정받은 여성? 이것이 아쉬운 이유는 한국회화사에서 ‘신사임당 초충도’가 가지는 기존의 명성이 여러모로 문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사임당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수박과 생쥐〉, 〈가지와 개구리〉 등의 작품들을 우리는 교과서에서 보아왔고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초상이 있는 오천원권과 오만원권 지폐에도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신사임당 회화에 대한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의 문헌 기록에는 그의 산수화나 묵포도도를 언급하였을 뿐 그가 초충도를 잘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초충도가 신사임당의 대표작으로 주목되고 여러 작품이 출현하는 것은 18세기의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현상의 단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전시에 출품된 〈묵란도〉에 적힌 송시열의 발문이다. 이 그림은 율곡의 종증손 이동명이 한양의 어떤 이에게 구하여 1659년 송시열에게 발문을 요청한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해 송시열은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을 낳았음이 마땅한” 근거로 삼아 이이의 학통을 이은 서인계 인사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만들었다. 이동명은 1676년에는 16세기 문인 소세양의 제화시가 있는 사임당의 산수화에도 송시열의 발문을 요청하였는데, 그 산수화에 대한 송시열의 태도는 ‘묵란도’와는 사뭇 달랐다. 송시열은 이 그림이 율곡의 모친이 그린 그림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보았는데, 그림의 수준과 규모가 전문적인 화가의 것이고 소세양의 제화시에 스님이 등장하며, 외간 남성이 여성의 그림 위에 제화한 상황 등이 모두 가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그들 서인계 문인들이 존숭하는 율곡의 어머니에게 어울리는 화목과 성격으로 재규정했다. 이후 18세기부터 신사임당의 산수화는 역사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그의 그림은 초충도로 대표되었다.

이후 서인 노론계의 핵심인물 정필동이 1707년경 양양부사로 재임하며 입수한 사임당의 초충도 7폭에 송시열계 문인이자 숙종비 인경왕후의 오빠 김진규를 비롯한 신정하, 송상기 등 노론계 인사들의 발문을 받았다. 이 화첩은 결국 숙종의 장인 김주신의 소장품이 되었고 1715년 궁궐에 내입되어 숙종이 열람하게 된다. 숙종은 제시를 지어 무골법(無骨法)의 채색으로 그린 교묘한 그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이를 모사하고 한 폭을 더하여 8폭 병풍을 만들어 대전에 들였다. 이 전시에 인용된 찬사 대부분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대한 숙종과 노론계 문인들의 글이다.

신사임당을 둘러싼 여러 의미와 평가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재료가 되었다. 그가 뛰어난 화가였다는 사실과 조선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사실. 신사임당의 그림 재주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대학자의 어머니라도 주목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 아들이 율곡이 아니었다면 그의 그림이 아무리 뛰어났어도 조선시대 일반 사가의 여성이 이렇게 풍부한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사임당이 뛰어난 화가이자 대학자를 길러낸 어머니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어떤 화가였고 어떤 어머니였는지는 후대에 그를 평가한 남성들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왔다. 특히 ‘화가’ 신사임당은 후대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은 서인-노론계 문인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그들이 존숭하는 율곡의 어머니로서 어울리는 성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20세기에도 신사임당의 그림은 계속해서 율곡과 그를 키워낸 모범적 모성(母性)의 표상이 요구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문화적 기능을 위해 호출되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이 〈초충도〉들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18세기의 상황에서 신사임당이 자수를 위한 밑그림으로 그린 초충도가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여러 신사임당 전칭의 초충도 양식을 비교하여 어떤 것이 신사임당의 실제 화풍에 가까운지를 규명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 초충도들의 매력이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들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던 동식물들을 아름답게 도안화하여 자수로 제작했던 전통의 산물이며, 또한 그림을 감상하고 평하며 그에 대한 시문을 적는 미술사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문인-정치가들의 관습이 낳은 그 시대의 흥미로운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아들을 대학자로 길러낸 어머니의 자질을 드러내는 자수풍 초충도의 화가로만 신사임당을 수용할 것인가. 이 전시가 단순해 보이는 그림을 둘러싼 복잡한 여러 층위를 들추어 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_36x25cm (2)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36×25cm 연도미상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_36x25cm (1)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36×25cm 연도미상

CRITIC 때時 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2016.12.14~2.26 국립민속박물관

김용주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흥미로운 제목과 주제에 한껏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현장에서 마주한 전시의 첫인상은 명료했다. 전시기획 방향과 공간 전개 방식은 본 전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기획전시실로 연결되는 복도는 모든 색의 합인 블랙으로 도색되어 있어 과연 이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람자의 기대를 한층 고조시킨다. 블랙 컬러의 복도를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각적으로 대비되는 하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에서 하고자 하는 ‘색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잠시 우리의 시선에서 색을 지워내는 듯하다. 그리고 얼마 후 하얗던 공간엔 각 영역에서 들려줄 색과 관련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영상으로 투사되며 전시에 생기를 돋운다. 본 전시는 ‘우리의 삶 속에 스민 색깔’을 3개의 중주제, 11개의 소주제로 구성하며 전시실은 크게 7개의 물리적 영역으로 나뉜다. 단색(單色, monochrome)을 다루는 다섯 개의 영역과 배색(配色, color scheme)을 다루는 두 개의 영역, 그리고 다색(多色, polychrome)을 다루는 마지막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색의 영역은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대칭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의 공간 구조는 전시의 질서를 형성시켜주는 장치 구실을 하게 된다. 중앙에는 전시에 대한 전체 설명과 각 색 영역에 대한 배치도가 있어 관람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백(白)색 영역으로 들어서면 사물과 재질에 따라 백색의 빛깔이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조화를 이루며 유물과 작품에 적용된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한다. 백색의 전시영역에서는 흑백(黑白)의 배색(配色) 조화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 너머 반대 색인 흑(黑)색의 전시영역과 시각적 병치를 이룬다. 두 개의 반대되는 단색 전시영역 중간에 배색 전시영역을 배치하는 구성은 각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욱 풍부한 설명이 되어준다. 예를 들면 하나의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유의어와 활용어 그리고 반대어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각 색의 공간에서는 유물과 현대작품,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변 사물과 더불어 색을 나타내는 다양한 언어, 한시, 속담 등을 통해 우리 삶에 스민 색의 의미와 정서를 유??·???무형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전한다. 단색(單色)과 배색(配色)의 전시 관람을 끝으로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 다색(多色) 영역에 들어서면 공간적 개방감과 함께 색동과 이월오봉도 등 유물과 작품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색(多色) 영역의 오픈형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앞서 들려주던 하나, 하나의 개별 이야기들이 합쳐져 절정을 이루듯 색의 클라이맥스를 느끼게 한다.
또한 이곳에는 관람자들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색 구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참여 코너가 마련돼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이어졌다. 어느 곳 하나 과함이 없는 구성은 명료했다. 전시디자인을 할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점은, 과하지 않게 전시 주제를 효과적으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여러 전시 중 기획 의도와 디자인 콘셉트가 맞지 않아 전시 주제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를 종종 본다. 전시디자인은 실내 장식이 아니다. 그리고 멋스러운 가구나 첨단 매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시 콘텐츠와 기획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적, 시각적 논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전시디자인’이다.
이렇게 기획된 전시는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형성한다. 즉 기획 스토리와 전시 공간구조의 관계, 공간과 관람자 움직임의 관계, 작품(유물)과 작품 사이 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주제는 같을 지라도 차별화된 전시를 가능하게 한다. 사실 그동안 ‘색(色)’을 주제로 한 전시는 여러 곳에서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차별화되어 관람자의 기억에 스미는 이유는, 전시 기획과 공간구조가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거닐고 구획된 영역을 드나드는 행위는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무의식적인 행위와 같다. 그리고 이 행위는 전시를 읽어내는 필요조건이 되며 전시실에 계획된 시선의 대비와 순차적 전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방식과 같다. 한동안 색과 관련한 전시라 하면 먼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을 떠올릴 듯하다.

위〈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전시장 입구

CRITIC 박상우 뉴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

2.9~3.5 갤러리 룩스

이필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사진이 애초에 모노크롬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을 때 작가의 전시제목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가는 뉴모노크롬이라는 점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갤러리 룩스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림이 아닌 사진이 다양한 모노크롬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말레비치, 아그네스 마틴, 이브 클랭, 앨런 매컬럼, 박서보, 이우환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있다.
다수의 작품이 주로 사각형과 원의 형상을 띠고 있고 그 제목도 〈추락하는 검은 원〉 혹은 〈검은 사각형의 비밀〉 등이다. 이러한 유형과 함께 붓이 휙휙 지나간 이미지로 구성된 〈터치〉, 전면 모노크롬 작품 〈모노 골드〉 등은 사진을 이용한 서구의 절대 추상,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의 패러디로 보인다. 〈디지털 묘법〉이나 〈선으로부터〉는 박서보와 이우환의 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상우는 “회화는 오브제를 버림으로써 모노크롬을 실현”하지만 사진은 “반대로 오브제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모노크롬의 놀라운 우주를 발견”한다고 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박상우의 모노크롬 사진은 보는 재미보다 미술사와 사진의 주요 개념 및 담론들을 환기시킨다. 내러티브가 제거된 추상 사진이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카핀이나 하트만 같은 모더니즘 사진 비평가들이 픽토리얼리즘을 버리면서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사진적인 수단으로 승부할 것을 주장했고, 모더니즘 사진에서 그것은 근접촬영을 통한 추상으로 시도되었다.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옹호자 그린버그는 회화와 사진을 엄격히 구별하여 추상을 추구하는 사진을 경계했다. 박상우의 사진은 단순히 추상을 흉내 낸 모더니즘 사진은 아니다. 패러디와 역설의 전략이 개입되면서, 그의 사진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주장한 포스트모던적 원본 없는 카피들로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사진 이미지는 반드시 무언가의 이미지라는 인덱스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크라우스의 인덱스 개념이 모더니즘 추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의 추상 사진은 또 다른 역설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이 비대상성을 추구한다고 할 때 박상우의 이미지는 추상을 가장한 대상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브제의 표면을 확대 촬영하여 모노크롬 회화의 형태로 제시한 “추상이면서도 현실인” 역설의 이미지들을 통해 가장 기계적이고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깊이와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작가가 강조하는 오브제의 물성은 사진의 표면이라는 투명 유리에 갇힌 것일 뿐이다. 회화에서 사진으로의 전이는 작품 표면의 다양한 물성과 텍스처가 프린트라는 단일한 물성의 표면에 갇힌 채 시각적 일루전의 유희를 제공할 뿐이다. 동전의 표면이건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찍건, 사진의 표면 물성은 늘 동일하다. 사진의 표면성은 언제나 사진 해석의 한계가 되었다. 그러나 박상우는 사진의 표면을 통해 과학적 무의식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마저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의 모노크롬 사진의 표면은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회화의 모노크롬이 물질과 더불어 추구했던 세계이기도 하였으니 박상우의 〈회화에서 사진으로〉는 한편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박상우 〈디지털 검은 사각형〉(오른쪽) 2016

CRITIC 이동수

2.1~28 갤러리 조은

고충환 | 미술평론

숨결의 시(작). 작가 이동수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대략 숨결이 시작되는 곳, 숨결의 근원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유형무형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존재는 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에도 결이 있고, 주름에도 결이 있고, 세월에도 결이 있고, 심지어는 마음에도 결이 있다. 존재 치고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르게는 길과 겹과 주름, 물리적으로는 파동과 파문과 파장, 동양학으로 치자면 기와 운과 생과 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운동으로 치자면 이행과 유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모든 존재는 항상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행 중이며, 그렇게 이행하려면 구조적으로 유격이 있어야 하고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결(그리고 길)들의 궁극이 숨결(그리고 숨길)이다. 호흡이다. 최초의 숨결이 허다한 다른 결들로 분기되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무명의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숨결은 결들의 궁극이고 존재의 원인이다. 작가는 그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을 겨냥한다. 궁극 중의 궁극을, 원인 중의 원인을 정조준 한다.
그림의 주제 치고는 좀 거창하다 싶다.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가 아닌가도 싶다. 아마도 숨 쉬는 그릇에서 처음 착상한 것일 터이다. 그릇은 숨을 쉬는데, 알다시피 이는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주제가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도 혹은 다례에서 보듯 차 한잔 마시는 행위 속에도 우주가 있고 각성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 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문제는 작가가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 그림 속에 숨과 결을, 숨이 들고나는 길을, 존재의 원인을, 우주와 각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실현하는지를 살필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무슨 수학공식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로서보다는 감각적인 아우라를 통해서 암시되고 감지되는 것일 수 있다.
사발 혹은 다기를 그린 작가의 그림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각각 숨을 강조하고 결을 부각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사발 표면에 바른 유약이 머금은 은근한 투명성 혹은 반투명성이 숨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발의 물성과 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또 다른 경우가 결을 강조한 것일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구분돼 보이지만, 숨과 결이 하나이듯 그 이면에서 하나로 통하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서로 공명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런 공명은 모티프에 해당하는 사발과 검푸른 배경화면의 공명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검푸르다고 했다. 푸른 기미를 머금은 검은색이고, 빛의 기운을 함축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수장된 사발을 보는 것 같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켜(질감)를 보는 것 같고, 어둠이 머금은 빛의 기미가 고요와 정적을 가만히 흔드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마치 찻잔 속에 담긴 우주 혹은 삼라만상처럼 존재의 원인에 대한,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에 대한 명상에 가만히 빠져들게 만든다.

CRITIC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2.16~3.18 갤러리 바톤

이승환 | 에이루트 디렉터

갤러리 바톤은 2월 16일부터 약 한 달간 애나 한의 작품으로 가득 차게 된다. 천장고 4m에 달하는 전형적 화이트큐브가 애나애나하게 바뀐 건, 작품 제작부터 설치까지 작가가 모든 걸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자서 드로잉하듯 작품을 배치하고, 공간의 요소와 리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재료들을 설치했을 것이다. 작가는 유학시절을 거쳐 귀국 후 여러 레지던시를 전전하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는데, 그 경험이 아이러니하게 공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작업실 환경은 2015년 에이루트에서의 개인전 때보다 나아졌으나 여전히 현실 공간(작업실)이 작품형식(전시장)의 모티프가 됐을 거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천장을 뚫거나 바닥을 쪼개는 게 있다. 이미 일리야 카바코프나 도리스 살세도 등의 작가가 쿵 뚫고 쫙 쪼갰으니 이후 웬만한 방법으로는 새로운 충격을 주기란 어려울 것이다. 애나 한은 공간 장악보다 ‘조율’을 선택했다. 그리고 일상적 오브제의 선택과 이들의 무심한 배열을 통해 얻어지는 생경함 대신 평면회화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고 이 매력이 공간으로 넘치는 순간에 주목했다.
때문에 애나 한은 우선, ‘좋은 화가(painter)’다. 그녀는 기억을 물질로 바꿀 수 있다. 기억 중 절정의 순간을 잡아 캔버스 위에 고정한다. 물질로 전환될 때 기억은 예쁜 색과 최소한의 형태로 소환된다. 단색의 면이 광선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도록 섬세한 브러시 스트로크와 보카시(bokashi, gradation)를 계획하여 치밀하게 그려낸다. 색의 선택도 과감하다. 예쁜 색 선택에 주저함이 없다. 크건 작건 사각이건 다각이건, 스스로 선택한 프레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넘친 기억은 작가를 공간 연출가로 만든다. 프레임 밖으로 확장된 세계는 3차원인데, 시시할 만큼 소소한 몇 가지 재료만 가지고 타블로를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간화한다. 전시장으로 들어가서 왼쪽 상단에 걸린 〈Meteor Shower〉는 작품에 내재된 LED조명과 전시장 조명 덕분에 드러난 벽 ‘속’의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맞아들인다. 〈Cast〉, 〈Sunset Boulevard〉, 〈Butterfly〉 등 작품 대부분이 천, 실, 조명, 크고 작은 캔버스를 마치 물감처럼 활용해 공간에 그린 ‘회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업은 입구 쪽 스트라이프 벽면이다. 분홍과 연두, 이 두 색채가 아사무사하게(알 듯 모를 듯하게) 조합된 시트지는 프레임 안과 밖, 작품과 비(非)작품처럼 내 마음속에 그어진 경계를 흐트러뜨렸다. 그간 프레임 밖 세계를 상상하는 건 관람자의 몫이었다. 애나 한은 거기까지 과잉 친절을 베푼 걸까.

위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전시광경

CRITIC 송창: 잊혀진 풍경

2.10∼4.9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이영란 | 미술칼럼니스트, 뉴스핌 편집위원

민중미술 진영의 대표적 화가 송창(65)은 30년 넘게 ‘분단’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아픈 현대사와 대치상황을 특유의 질박하고 묵직한 회화를 통해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증강현실게임의 포켓몬이 뮤지엄과 문화유적지에 출몰하고,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분단’은 일견 진부한 테마로 여겨진다. “아직도 분단을 붙들고 있느냐”는 시선도 있다. 혹자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케케묵은 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해묵은 주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작업해온 송창의 생각은 다르다.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요, 천착해야 할 이슈라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더욱 첨예해진 현 시점에선 모두가 질문하고, 숙고해볼 과제라고 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본격적인 미술관 개인전을 꾸미고 대작들을 발표했다. 1997년, 지금은 없어진 동아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억의 숲-소나무〉를 개최한 뒤로 20년 만의 미술관 초대전이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내 큐브미술관에서 〈송창-잊혀진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4월9일까지 열리는 작품전에는 근작 및 신작 회화, 입체설치 등 4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작들은 송창의 뚝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인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민통선지역의 쓸쓸한 벌판을 꾹꾹 눌러 담듯 그린 〈민통선 들녁〉(1990)이라든지, 임진강변을 절규하듯 그려낸 〈임진갯벌〉(1993) 같은 1990년대 작품도 포함됐지만 이번 개인전에는 2011~2015년 제작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근작들은 형식상으론 신표현주의, 내용상으론 리얼리즘 미술의 성격을 띠지만 그 카테고리에 집어넣기엔 송창의 조형실험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현대사가 초래한 민족의 절망과 한(恨), 초자연적 세계관 등이 작품 속에 강렬하게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섬광〉(2015)을 보자.
흰 눈이 내린 비포장도로 위로 장갑차의 깊은 바큇자국이 검붉은 흙길을 드러낸 가운데 저 멀리 군부대가 쏘아올린 포탄의 불꽃이 석양의 하늘로 솟구친다. 움푹 패어 질척거리는 흙구덩이에 고인 물은 60년 전 전투에서 누군가 흘린 선혈처럼 핏빛이다. 그 피는 질척거리는 구덩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화가의 발치에서 멈춘다. 이제 비무장지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해가 지면 민간인은 머물 수 없다. 두 동강 난 조국을, 절망적인 대치상황을 절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꿈〉이라는 그림 또한 섬뜩하다. 비무장지대에 건설되고 있는 교각이 어느 날 끊어진 다리처럼 꿈에 등장한 듯하다. 남북 분단이라는 이 길고도 어두운 터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작가는 질문한다.
이번에 송창은 2개 또는 3개의 화폭을 이어붙인 회화도 내걸었다. 〈그곳의 봄〉(2015)이라는 3면화는 중앙에 영국군 유해를 화장했던 검은 화장탑을, 왼쪽엔 화장장 앞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망개초를, 오른쪽엔 영국을 상징하는 개가 그려졌다.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분단을 서사의 영역에서 서정의 세계로 이끈 것.
송창의 근작들은 사회학자 김홍중이 최근 설파한 〈파상(波像)〉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김홍중은 〈사회학적 파상력〉(2016)이란 책에서 ‘상상력’의 반대가 되는 ‘파상력’이라는 말을 창안했는데, 기존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질 때가 바로 파상이라 했다. 결국 파상은 위기이자 카오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자각과 각성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분단’을 주제로 한 송창의 음울하면서도 토해낼 듯 절박한 그림들 또한 비극과 혼동을 그리되 그 속에서 움트는 또 다른 가능성, 곧 ‘파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작가는 삼베 끈을 화면 전체에 부착한 후 물감을 입혀 두터운 마티에르를 추구한 작업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형 미사일을 입체로 빚어 “민중미술 하면 좌우 이념부터 따지는 통에 작가들이 많이 떠났다. 후배들도 무거운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야말로 다양성이 생명 아닌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것은 고여 있는 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미술은 죽었다’고들 하지만 역사와 삶을 성찰하는 미술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 작가는 자신의 〈잊혀진 풍경〉이 〈잊어선 안 될 풍경〉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위 송창 〈망각의 통로〉(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2004

CURATOR'S VOICE 사물들: 조각적 시도

1.11~2.18 두산갤러리

추성아 | 독립 큐레이터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본 관람자 대다수는 덩어리와 물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오랜만에 접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시가 끝나가는 시점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그렇다면 현재 조각은 무엇인가?”와 같이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정의 내리기가 지속되었다. 최근 몇 년간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탐구, 영상, 설치, 퍼포먼스, 그래픽 디자인, 아카이브 전시들이 중심과 주변을 이루던 와중에 관람자들은 분명 눈으로 매스(mass)를 훑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 반가웠을 것이다. 기획자 3명(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은 전시를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오늘날의 조각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동년배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각적 시도(sculptural practice)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조각의 특수한 감각에 초점을 두었다.
미술사에서 조각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체되었기에 장르의 경계 짓기가 무의미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조각이 갖는 속성이 오늘날 1980년대생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사물과 이미지를 마주하는 납작해진 현실에서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2D와 3D가 뒤섞이는 모바일이나 컴퓨터 화면의 인터페이스에서 과하게 압축되고 빠르게 유포되는 비물질화된 데이터는 곧 이미지이며 이미지가 곧 비물질화된 사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제목 〈사물들: 조각적 시도〉에서 ‘사물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 조각적 시도와 필연적으로 맺는 지점을 건들며 조각이 갖는 특수한 영역에서 제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우리가 평면과 입체를 인식하고 “시각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각의 가치를 묻고 제안해 본다. 동시대적으로 공유되는 사물과 이미지의 시각성에 대해 문이삭과 황수연은 인체에 대한 감각의 반응을 형태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경험의 출발로 보고 역으로 매체가 갖고 있는 기본 속성에 충실하다. 조재영은 사물의 속이 비어있는 껍데기를 실존하지 않는 다른 공간의 표면으로 매핑하며, 최고은은 기성품을 해체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오브제를 실험해나간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의 조각은 상징과 서사가 사라진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며 매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관념을 넘어서 표면 중심의 조각을 탐구하는 영역에 이른다.
기획단계에서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견주어보는 과정이 드러나는 지점은 참여 작가의 조각들이 물리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상호-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감각적인 순간들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를 준비하면서 설치 과정에 여러 번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한 노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조각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의 어색함, 비슷한 크기의 조각들이 놓였을 때의 빈약함, 물성과 재료가 유사한 조각의 충돌이 주는 조잡함 그리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을 때 공간의 흐름이 끊기는 당혹스러운 풍경들이 조각 작업의 설치가 어려운 숙제임을 체감하게 하였다. 조각이 담고 있는 입체의 공간 차지와 시각적인 양감과 중량감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특성은 어느 한 작가의 단일한 조각 오브제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닌 주변 그 자체로부터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를 시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6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기획자 3명은 과거 전시와 달리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의 형식을 화두로 던진 동시에 단정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하듯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와 공간의 충돌이 일으키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시선이 기획자나 관람자에게 꽤 유사한 잔상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조각의 단편들에 대해 정의하기보다 조각적인 것에 균열을 가하며 진행형인 일련의 현상을 느슨하게 조망해보는 시도일 것이다. 나아가 “나, 조각을 한다!”고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위 조재영 〈Through another way〉(왼쪽)  판지, 나무 60×310×230cm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