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ONAL NEWS
광주
양림동에 들어선 이색 문화공간
〈양림의 화가들〉 2.23~3.25 호랑가시나무 아트 폴리곤
양림(楊林), 버드나무 가득한 마을에 서양인 선교사들이 들어온 건 1904년의 일이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은 이곳에 교회와 집, 학교와 병원을 짓고 봉사와 나눔의 복음을 실천하며 정착했다. 1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들로부터 받아들인 광주 최초의 서양 문물은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호젓한 자연과 근대 건축양식의 특징이 잘 보존된 거리를 배경으로 찻집과 맛집이 곳곳에 숨어있어 20~30대들의 명소가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롭게 개관한 ‘호랑가시나무 아트 폴리곤’은 생동하는 양림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접점이다. 폴리곤(Polygon, 다각형)은 규정되지 않은 장르의 융복합이 이뤄지는 현재의 예술 활동이 모이는 곳이다. 과거 선교사 사택 차고지였던 이곳은 이제 현대예술가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이색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식 개관전시로 양림동과 인연이 깊은 6인의 작가를 초청하여 〈양림의 화가들전〉을 개최했다. 양림동에서 뛰어놀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긴 황영성과 우제길, 삶의 터전이자 정착지로서 평생 이곳을 떠나지 못한 한희원과 정운학, 이곳에 작업실을 짓고 창작의 영감을 얻은 신수정과 이이남 모두 고즈넉한 분위기의 양림동과 호랑가시나무의 매력에 매료되어 일생을 함께한 작가들이다. 따스한 봄기운을 한껏 머금은 4월,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새로운 창작물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성장해가길 바란다.
이부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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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속가능한 폐허를 발굴하는 페인팅
〈감만동 발굴展: UNEXPECTED WALL〉 3.21~4.14 감만창의문화촌 갤러리
부산의 재개발구역은 현재 160여 곳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수는 검색할 때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중 재개발예정지 선정 문제로 오랜 기간 주민 내부 갈등이 불거지고 공가(空家)가 늘어나는 등 마을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감만동에서 작가 양자주의 개인전 〈감만동 발굴展: UNEXPECTED WALL〉이 열렸다. 작가가 부단히 일궈온 페인터(painter)의 정체성은 예술과 사회 문제에 페인팅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에 관하여 탐구해온 과정에 여실히 드러난다. 쌓고 부수는 문명의 반복행위가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가 하면(〈Untitled Series〉) 재개발 현장의 공가 담벼락을 지름 2cm도 채 되지 않을 지문으로 도배(〈Dots Series〉)하기도 했다. 최근엔 부산의 대규모 재개발 구역에 속하는 못골, 초량, 온천장, 감만동에서 채집한 건축폐기물, 여러 겹의 벽지, 덧칠해진 페인트 조각, 단열재 등을 재구성한 페인팅(〈Material Series〉)을 선보이고 있다. 인류의 페인팅에 대한 사유의 궤적을 이번 양자주 작가의 개인전에서도 볼 수 있다.
박수지 독립큐레이터, 《비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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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만들다
〈대구예술 생태보감〉 3.2~4.23 대구예술발전소
대구예술발전소는 ‘청년다움·다원적 가치·공간미디어’라는 기치 아래 시각예술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 등의 공연예술을 포함한 대구 예술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구예술 생태보감전〉을 기획했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가 협업 지점을 모색하고, 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예술 생태보감’이란 제목을 붙였다. 대구의 선데이페이퍼를 주축으로 경산, 울산 등 지역 간 연대를 준비한 ‘테트라포드 연합 준비팀’을 비롯해 방천시장에 거점을 둔 작가 모임 ‘방천밸리’, 198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중견 작가 ‘그룹 6·7’, 회화 작가로 구성된 ‘PPT(Painting-Painter, Team)’, 대구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작가들이 모여 만든 ‘Individuality’, 광주에서 활동하는 ‘코끼리협동조합’과 대구의 애니메이션 작가가 공동 작업한 ‘코끼리협동조합 협업프로젝트’ 등 총 6팀이 각기 다양한 시각을 제시했다. 지역 중심의 작가 모임, 자생적으로 결성된 작가 집단, 혹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룹으로 결성된 작가들이 느슨하게 경계 지어진 범주 안에서 대구의 예술 생태계를 구성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생태계는 같은 곳에 살면서 서로 의존하는 유기체 집단이 그 자체로서의 완결성을 가지고 독립된 체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예술 생태보감〉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대구예술발전소가 신진 작가를 발굴·지원하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고 여러 예술 장르가 소통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대구 예술생태계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민정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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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버리는 것과 버려지는 것의 관계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3.6~5.5 중선농원 갤러리2
봄을 맞이해 중선농원에서는 윤석남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를 선보인다. 회화와 드로잉, 조각, 설치작업 1025점이 중선농원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문에서 유기견을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의 기사를 우연히 접한 작가는 버려진 개 1000여 마리를 20년 넘게 보살피고 있는 할머니의 보금자리 ‘애신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물며 버려진 동물이 받는 충격과 버리는 인간의 비정함을 작품에 담았다. 1,025개의 조각은 이애신 할머니가 보살피던 유기견 수를 의미한다. 유기견 제각각의 생김새와 표정들을 드로잉한 후 나무를 잘라 표면을 갈고 밑칠 하는 과정을 무려 5년 동안 지속해 작품을 완성했다.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개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을 넘어 이들을 버린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버려지는 존재를 통해 버리는 존재를, 약자의 모습을 통해 그들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025’라는 숫자는 자기중심적,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이승미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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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공장의 품격 있는 변신
복합문화지구 누에, 팔복예술공장
버려진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되살리는 ‘재생’. 최근 들어 구도심 활성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폐산업시설 재생’이 주목받고 있다. 2014년부터 시행 중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따라 완주와 전주에서도 ‘공장의 품격 있는 변신’이 진행되고 있다. 완주군은 2016년부터 용진면의 옛 농업기술원 종자사업소의 누에를 키우고 관리하던 잠업시험지 21개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올해는 ‘복합문화지구 누에 (nu-e)’라는 새 이름을 걸고 작년 한 해 동안 전시, 레지던시, 공연, 파티 등 다양한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된 2차부지 공간 재단장에 들어가며 주민 놀이터 형태로, 공연장, 전시장, 휴식 공간 등을 마련해 주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해 머물며 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올해 프로그램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완료한 1차 부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편, 전주시 팔복동 제1산단 내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에서는 매주 한 차례 인근 주민과 예술가, 공단 근로자가 참여해 공간이 지닌 역사와 특성, 이에 기반을 둔 콘텐츠를 함께 고민하고 공간의 성격과 쓰임새를 모색하는 집담회가 열린다. 또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 무료대관 전시 〈Grey Matter〉를 개최했다. 오늘날의 정치, 경제 및 투쟁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회색 물질’이란 주제 아래 전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8명의 외국 작가 작품에 녹여내었다. 참여 작가들은 회화, 사진, 자수 작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문화재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집담회 및 파일럿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새로운 공간의 성격을 최적화하는 중이다.
양승수 소리문화의전당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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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삶은 여전히 아름답지 않다!
〈2017 Next Code〉 3.2~4.26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대전충청지역 청년작가 등용문 〈Next Code전〉이 올해로 19회를 맞았다. ‘우리 앞의 생’이라는 다소 무거운 느낌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40세 미만의 작가 51명의 경쟁자 중 5명의 작가가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생의 안으로’와 ‘생의 밖으로’에 해당된 섹션에서 작업을 전시한다. 먼저 ‘생의 안으로’ 섹션에 속하는 작가 중 박은영은 염료를 먹이는 먹지에 무수한 선 드로잉으로 숲을 전사하는데 이는 점차 자신을 초극하는 구도자의 고행이자 삶-예술을 창조하는 유희의 행위가 된다. 신기철은 ‘바니타스’를 주제로 불안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정의철은 자아에 대한 성찰로 〈Unfamiliar〉라는 제목의 연작을 선보인다. 뭉개져버린 얼굴은 자아의 껍질 속 알맹이에 닿고자 하는 작가의 고통스러운 내면의 흔적이기도 하다. 한편 ‘생의 밖’ 섹션에는 철과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해 교회나 골목, 창문, 전봇대, 주택가 등의 소외된 공동체 공간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이홍한과 사회적 규범과 자아의 영향 관계, ‘표류’하거나 표류했던 자아의 연극성을 반성하는 작업을 보여준 정미정의 작업이 전시된다.
‘생의 안’과 ‘생의 밖’ 어디에도 이들 청년이 쉬어갈 공간은 없어 보인다. 고단함과 치열함이 교차하는 그들의 땀내 젖은 그림이 유독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이유이다.
유현주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