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bold_title]영화는 굿의 확장된 개념[/bold_title]
냉전과 분단을 주제로 작업해왔는데 <신도안>, <파란만장>, <만신> 등 최근 작업은 지속해서 민속신앙과 무속을 다루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누구나 인생에 어려운 시기가 있듯이, <신도안>을 시작하기 전 몇 년은 생활도 고단하고 정신도 피폐했다. 물론 그전에도 종교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때는 절이나 산에서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 신도안에 대해 조사하면서, 한국의 종교문화에 끼친 근현대사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북한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최대 타자라고 생각했는데, 전통신앙이나 무속도 그에 못지않은 우리 사회의 무의식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민속신앙과 무속은 한국의 근대성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김금화 만신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금화 만신은 먼저 실향민으로 이북에서 내림굿을 받은 거의 마지막 큰 무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김금화 만신처럼 전통 굿에 뛰어나고 자태가 아름다운 분도 드물다. 그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 분단과 새마을운동을 지나면서 시대 변화와 가장 치열하고 직접적으로 만난 경우이며, 다른 어떤 무당보다도 그 역사를 의식하며 산 분이기도 하다. 새마을운동과 미신타파운동을 거치면서, 김금화 만신은 무속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았다. 이 영화는 그런 그녀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굿-코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말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만신>을 제작하다가, 1980년대 김인회 선생이 기록한 굿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이 영상을 보면, 굿이 완전히 코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코뮌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힘없는 사람들, 할머니, 아줌마, 아이, 환자들의 해방구이다. 해방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무당과 사람들이 함께 웃고 울고 춤추고 음식을 나누면서, 화해와 용서로 공동체를 다지는 것이다. 그래서 굿판에서는 다양한 금기 타파가 이루어진다. 지금 우리는 그런 문화를 상상하기 어렵다. 굿은 정치적 코뮌은 아니지만, 일제가 집중 감시했던 것처럼 문화적 통합력이 매우 강한, 권력이 충분히 싫어할 만한 공동체 문화였다.
<만신>은 기존의 단편 <그날>(2011)과 <갈림길>(2012) 두 편을 토대로 했지만 대중을 위해 더욱 친절하게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대중을 위해 친절하게 했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관객이 바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관객은 작가의 잘난 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불필요하게 어렵지 않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작가의 어려움이자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김금화 만신을 이용한 것이라면, 김금화 만신도 미디어와 논 것이다. 김금화에게 미디어는 다양한 무구 중 하나였다”라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무속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그리고 미디어 작가로서 고민은 무엇이었나? 신령과 전기, 무선(wireless)의 미디어와 영매 사이에는 이미지의 깊숙한 연결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현대의 온갖 무선 전파와 통화, 영상 등은 비가시적인 힘의 교류에 대한 인류의 오랜 열망이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와이파이는 염력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정보통신기술이 비록 전쟁기술이나 사회통제를 위해 더 많이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기술 이전에 주술이 있었다는 것, 주술이 기술로 연결되는 면은 충분히 흥미로운 연구거리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굿을 보지만, 거꾸로 굿을 영화로 확장한 것이라는 점을 관객이 생각했으면 했다. <만신>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설명에 그치는 과거 ‘재연’이 아니라, 드라마와 다큐가 어떤 살아있는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또 굿과 영화가 적극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영화적인 동기를 발명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 김새론이 걸립을 받는 장면, 특히 김금화 만신, 나아가 한국인을 고통스럽게 했던 죽은 쇠를 산 쇠로 만든다는 설정이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는 여러 가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압축해서 담으려 했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가 가장 연약하고 외로운 소녀 무당 ‘넘세’에 대한 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온갖 구박과 따돌림을 받는 넘세가 마을 사람들에게 무당으로 공인되는 반전이야말로, 여성잔혹사가 승리사로, 무당에 대한 천대가 공경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무속에 대한 우리 관념은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무당을 희화화하길 좋아하지만,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점집에 찾아 가는 것과 같다.
오늘날 무속이 유효한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동시대 무속은 많이 부패했고, 미신적인 요소도 많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는 다른 종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화된 거대 종교의 부패상은 훨씬 규모도 크고 조직적이다. 성인의 가르침과 제도로서의 종교가 전혀 다른 것이듯, 전통무속의 가치와 무속의 실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무속은 한국과 아시아의 다신교이며, 가장 민중적인 종교문화이다. 그것의 동시대성도 다신적, 다원적 세계상과 민중성에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문명 전체에 위기를 느낄 때, 우리는 오래된 정신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무속만이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겠다. 선의 절대성과 생명의 신비, 우주에 대한 상상 등은 이성과 과학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속의 강점은 공동체적인 카타르시스와 화해의 윤리에 있는 것 같다. 무속은 속된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성스러움을 추구한다. 성속(聖俗)의 독특한 결합이 무속의 지혜고 매력이다. 그런 전통 무속문화가 앞으로 계속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술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술사의 흐름에서도 무속, 샤먼문화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 많은 것 같다.
박생광, 이우환, 백남준, 오윤, 민정기 등은 모두 무속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백남준은 자신이 무당이 되어 굿을 했고, 오윤은 굿만한 예술을 못한다고 한탄했다. 동시대에는 이불, 최정화, 윤동구, 배영환, 임흥순, 김상돈, 김해민 같은 작가들이 모두 굿과 무속에서 직간접으로 영향받았다. 나는 (주관적인 것으로 들리겠지만) 박이소의 어떤 작품에서도 무속의 기운을 느낀다.
이번 미디어비엔날레 주제가 ‘아시아 고딕’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들었다. 국제적인 행사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아시아 고딕’은 주제도 제목도 아니고, 전시의 흐름을 구성하는 키워드에 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제 중에 하나가 아시아의 원혼을 불러내 그들의 말을 듣겠다는 것이니까.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나도 궁금하다. 아직 주제들이 하나의 틀로 들어오진 못한 단계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또는 그것으로 표현되는 어떤 위기상황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지, 또 별다른 대안이 안보이는 암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용기나 열정을 끄집어 낼 수 있는지가 전시의 주 관심사이다. 아시아 작가가 반 이상 참여할 텐데, 그것은 아시아의 각 지역이 많은 경험/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성(性)’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아시아 공동체성에 대한 강조가 또 다른 타자를 양산하지는 않을까?
나는 ‘아시아성’에는 관심도 없고, 아시아성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시아 문화이론이나 동아시아 역사의 재구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화적 정체성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정체성보다는 유사성과 모순적인 복합성이 중요하다. 아시아는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는 복잡하고 애매한 흐름이다. 1950년대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라든지, ‘서구의 되감기'(평등이나 민주주의 같은 서구 근대의 진보적인 가치들을 더 급진화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아시아) 라는 이야기를 한다. 왕후이는 아시아나 동양이 서구의 상대개념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시아는 이미 서구이고, 동시에 서구가 아니다라는 식이다. 이런 시각은 이미 정체성 차원에서 동서 구분이나 닫힌 아시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매우 인류 보편적이다. 아시아 담론이 서구라는 타자를 발명할 것이라는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얘기에 걱정부터 하는 꼴이라고 본다. 아시아는 정치철학이나 문학비평 일부에서 논의된 것이 전부이다. 적어도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사실상 어떤 본격적인 얘기도 되어본 적이 없다. 트렌드라도 된다면 좋겠다. 나는 아시아 얘기를 자주 하면서도, 대만과 베트남에 올해 처음 가봤다. 독일에는 열 번도 넘게 갔는데 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미디어시티 서울 2014>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당면한 일이다. 다음 작업은 비엔날레 오픈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갑자기 다른 주제로 작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작업은 인기를 얻고 싶었던 나머지 깊이가 부족한 것이 많다. 다음에는 좀 더 깊이있는 작업을 하면서 인기도 끌고 싶다.
[bold_title]접신은 내 자신을 지우는 것[/bold_title]
샤먼문화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보여지는 것이 많았다. 이 말할 수 없음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고 내성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것은 미술을 통해서 안정화되었고, 오랜 산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과 이후 작업을 통해서 텍스트로 드러나게 되었다.
작업에서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기 수행적이면서도, 어떤 제의적 요소가 있는 것 같은데, 특히 작업 <hidden memories-01>의 경우 접신(接神)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때가 되면 산에 가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작업장에 와서 그 기운을 느끼며 작업을 한다. 마치 주문처럼 음을 읊으면서 화면에 반복해서 쓰다보면 화면은 추상이 되고 결국 지워지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접근이 곧 지워버리는 것이며, 지워버리는 것이 접신이다.
샤먼문화는 오늘날 소외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문화든 탄압하고 왜곡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생명력 있게 살아남는 게 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모양만 변화했을 뿐 근본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생명력과 근본이 중요한 시대가 아닐까?
작업에 반영되진 않지만 관상이나 사주도 본다고 들었는데 따로 공부했나? 사주명리를 공부한 적은 없다. 그저 내 안에 것을 읽을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 자신의 질문에 무한 변형이 가능한 실험적인 자유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bold_title]시공간을 초월한 수평적 의식[/bold_title]
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샤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계룡산 주변인 대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계룡산 주변에서 다양한 민족 종교들의 종교 의식과 무당들의 제의를 가끔씩 보아왔지만 특별히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익숙한 주변 체험 같은 그런 정도였다. 1980년대 당시 한국은 과도기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시기였다. 컬러TV 비디오 등 전자기기들이 등장했고 그것들을 통해 들어오는 매우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서양의 문화정보들 역시 혼란스러웠다. 아마 그 당시에 상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맥락에서 일련의 미디어작업을 해왔다.
오랫동안 작업에서 샤먼 개념을 적용했는데, 샤먼과 미디어를 어떻게 연결지어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미디어, 특히 TV매체는 무당들의 제의 절차와 많이 닮아있다고 본다. 무당들이 굿을 시작하기 전에 제단을 준비하고 촛불을 켜고 음식을 장만한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제례의식을 갖듯이 TV매체는 안테나를 세우고 전파를 맞추고 컬러를 조정하는 등 자신들의 기호에 맞춘다. TV채널을 조정할 때 많은 전파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무당들도 특정한 신과 연결하기 전에 많은 신이 들락거린다.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 굿을 할 때에는 무당은 자신을 도와줄 신과 직선적 채널을 맞춘다. 신으로부터 받는 비언어적 소통의 메시지를 무당이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의 언어와 행위로 변환시켜 명확하게 전달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 능력은 오롯이 무당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것은 마치 TV방송국에서 아주 선명한 컬러이미지 영상을 송출한다 하더라도 수신하는 TV가 흑백TV이면 흑백이미지가 나오고 컬러TV이면 컬러이미지가 나오는 것과 같다.
동시대 문화 중에서 샤먼문화와 맞닿아 있는 속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을 부리기도 하고 모시기도 하는 샤먼의식은 신과 인간이 동등하고 죽은 자와 산 자가 동등하다는 수평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 환경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수평적으로 의식을 주고받는 동시대 샤먼문화라고 생각한다.
[bold_title]샤먼은 타인의 전세계를 대신 젊어지는 사람[/bold_title]
작업을 ‘만다라’라고 표현한다. 어떤 이유에선가?
하나의 작품 안에 수십 개로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씩의 또 다른 작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각기 다른 염원을 품은 도형들과 형상들이 집적되어 만들어진 만다라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고려불화를 배우고 있다고 하던데.
재학 중에 둔황 막고굴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천년 이상 지속되는 동양 물감과 그것으로 표현된 형상들에 놀라고 염원을 담은 조각품인 불상들에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불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염원을 담은 작품’이란 화두가 생기기도 했다.
기이한 형상에서 출발해 곤충, 여신을 다룬 작업을 선보이는데 어떤 의미인가?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나 항상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부적응자다. 그 부적응하는 모습이 투영된 형상이 곤충이나 기형적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단군신화의 웅녀나 유화부인 등등 신화 속 여성 등장인물은 늘 아이를 낳고나면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곰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순간의 웅녀를 만든다든지, 여신의 제단을 그린다.
최근 선보이는 작업의 경향에 대해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내 얼굴의 전세계>처럼 얼굴의 이목구비 위에 전세계가 붙어 있는 작품을 제작했다. 나는 타인들의 존재가 얼굴들로서 내 안에 존재하는 것에 주목했다. 얼굴은 내가 볼 수 없으니, 제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내 얼굴은 타자를 향해 날아가서 존재한다. 내 얼굴과 타자의 얼굴에 무한한 시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마도 샤먼은 한 인간이지만, 타인의 전세계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bold_title]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bold_title]
작업에 표현된 여성이 모두 ‘바리데기’라고 했다.
내 작업에서 페미니스트아티스트그룹 ‘입김’을 떼놓을 수 없다. 8명으로 구성된 ‘입김’는 은폐되고 축소되었던 여성의 역사와 경험, 에로티시즘, 어머니, 여신들을 불러내어 여성주의 미술을 함께 기획하고 창작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모토로 결성된 그룹이다. ‘입김’에서의 활동은 곧 자아 찾기 여행이었고 내 안의 여신 불러내기였다. 이 여정에서 나는 바리데기를 만났다. 바리데기의 서사는 모든 여성의 주체적 욕망이 구술된 결정체다. 바리데기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에 버려진 딸이자, 자신을 버린 아비의 생명을 구하려 죽음의 강에서 생명수를 얻어온 딸이다. 죽음의 공간에서 아내가 되고 어미가 되어 다시 돌아온 딸이다. 그녀가 얻어온 생명수로 아비는 다시 생명을 얻었다. 죽음의 공간에서 다시 돌아온 바리데기는 소녀가 아닌 모든 어머니의 몸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몸이 된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린 아비를 구하듯 피 흘리는 모든 생명을 보듬고 껴안았다. 어머니의 몸은 이미 몸 안에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기에 타자의 상처와 고통을 나의 것처럼 아파하는 여성적 공감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의 씨를 만들고 자라게 하는 모성의 에너지가 흘러 다닌다. 내 작업의 소녀들은 모두 환생한 바리데기 여신이다.
귀농의 경험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가?
처음 농촌으로 내려올 때는 그저 서울의 주변지역으로 작업장을 이동한 것이라 생각했다. 농촌지역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수단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 농삿일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하나여서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인간의 삶과 일상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하루는 농작물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져 자연스럽게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졌다. 만물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황홀함은 내 작업의 에너지가 되었고 만물의 에너지가 땅 밑으로 들어가는 겨울의 침묵은 내 작업의 자양분이 되었다.
최근 여성의 얼굴과 몸에 검은 문자를 결합시킨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머리카락으로 표현된 문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한자(漢子)는 남성의 언어였고 지배 권력의 언어였다.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여성은 언어를 가질 수 없었고 드러낼 공간도 없었다. 남성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을 한자의 획들로 형상화한 것은 언어를 획득한 여성을 상징화한 것으로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체다. 검은 한자의 획들은 소녀에게 검은 대지가 되어 꽃들을 피우고 온갖 생명체들을 살게 한다. 부적과도 같은 상형문자의 머리카락들을 통해 여성의 언어체계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공생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 거대한 땅 덩어리로 표현된 머리카락에서 생명이 순환되는 역동적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bold_title]생명을 품는 여성들의 삶[/bold_title]
작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 페미니즘을 하나의 유행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예술 사조에는 유행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유행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작가마다 가는 길이 있다. 내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다. 처음에 그린 것이 나의 어머니, 그리고 시장의 어머니들이었다. 나의 고민과 관심사는 왜 저 여성들은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는가, 여성인 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만났다. 아직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고 우물을 파듯이 더 팔 것이다. 나는 정말 온전한 페미니스트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다.
2010년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워킹 맘마미아>에서 선보인 <블루룸>에서 ‘바리데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워킹 맘마미아전>의 주제는 ‘여성의 노동’이었다. 바로 바리데기를 떠올렸다. 원래부터 서사무가에 관심이 많았고 작업에 담고 싶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바리데기는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자 생명수를 얻으려 지하세계로 가는 일을 자청한다.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지하세계를 지키는 무장생의 아내가 되고 생명수도 구한다. 왕은 보답으로 나라의 반을 주겠다고 하지만 바리데기는 죽은 영혼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샤먼이다. 바리데기의 경우 노동의 대가가 바로 생명수다. 내침을 당하기도 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기도 하는 이 이야기 속 바리데기가 한국 여성의 근본적인 원형 같다. 물은 원래 무색이지만 삶과 저승을 가르는 물빛, 그리고 생명수가 푸르다는 것은 나에게 푸른 하늘처럼 넘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블루 룸>을 만들었다. 벽면을 종이 오리기로 장식했다. 예부터 전통 굿에는 종이 오리기 공예물이 장식됐다. ‘설경(說經)’이라고 해서 굿을 할 때 읊는 경(經)의 주요 내용을 종이에 문양으로 오려 넣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종이 오리기 장식은 <그린 룸>과 <화이트 룸>으로 이어진다.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화이트 룸>도 무속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사람들이 샤먼문화를 협소하게 해석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
버려진 사물에 대한 연민과 애착이 크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여성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지금은 물자가 너무 풍부해서 쉽게 버리지만, 나는 물자가 부족한 시대를 살아서 무엇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사물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예전에 나의 할머니는 사람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설거지를 할 때도 하수도에 뜨거운 물을 그대로 못 버리게 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생명체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인류가 여기까지 생존해왔지만 인류 자체가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는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풀도 자연도 다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재환 선생이 내가 죽은 나무로 작업한 것을 보시고 처음부터 애미니즘적이라고 하셨다.
[bold_title]샤머니즘에 내재된 ‘통합의 에너지'[/bold_title]
지난해 가을 저서 《바리》를 출간했는데 그 배경을 말해달라.
내 몸 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서 10여 년 동안 꿈 그림을 그렸다. 총 1500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몇 개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하나의 주제가 바로 서사무가 ‘바리’와 그 맥락이 닿아 있음에 착안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정리도 하고 소통도 할 겸 이야기책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광주민주항쟁을 일종의 굿의 개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오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샤먼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미술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는 샤먼의 제의적(ritual)인 성격을 내보이는 것도 있다. 예술가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태고의 샤머니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인류의 보편적 문화 원형(아키타입)인 샤머니즘의 세계를 두리번거리며 흉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샤먼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과정을 통하여 샤먼의 지위와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찢어발겨 해체하여 제사상에 올려서 먼저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과정이 바로 샤먼이 하는 일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처받은 영혼들과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작업에서 몽타주적인 요소가 강한데 어떤 의미인가?
샤먼이 12개의 눈을 갖고 있듯이 예술가도 12개의 눈을 갖고 있다. 이 말의 뜻은 곧 예술가가 12개의 눈을 갖고 있어야 하듯이 ‘서사성’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의 서사를 갖고 있다. 즉 인연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물건이나 생명이 태어나기 전의 과거와 향후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와 그리고 상하좌우에 맺은 인연들 속에서 그 생명은 의미를 갖는다. 예술은 생명에 관한 동경과 존엄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샤먼과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신(神)이 들어있다. 즉 신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로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명과 신에 대한 서사적 관점이 바로 우리 식의 몽타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작업의 뿌리를 한국의 토착문화 신화, 설화, 샤머니즘 등에 두었다. 이같은 문화의 동시대적 유효성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토착문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문화의 원형은 모두 공동체의 구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신화나 설화 그리고 샤머니즘은 ‘통합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것에 반해서 권력은 무엇이든 관계를 ‘분리’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정치권력은 개인과 개인을 분리하고, 지역과 지역을 분리하고, 계층과 계층을 분리하는 것에 성공을 거두어야 권력을 강화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시대의 자본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몸짓을 키워야 하는 아귀 같은 숙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자본은 항상 배가 고파서 줄곧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의 틈이 벌어져서 고립되고 고독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자본의 시장은 넓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은 끊임없이 사람과 사람을 개별화, 파편화해 분리시켜 틈새를 넓히는 것에 무한정한 폭력을 행사한다. 이제 개인은 어찌할 수도 없는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권력과 자본이 ‘편리성’을 주장하면, 개인은 그 작은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이라도 과감하게 대가로 지불한다.
샤먼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다. 하늘과 땅은 각각 ‘원리’와 ‘방법’이다. 즉 원리와 방법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때 세상은 사기술과 기만이 판을 친다. 이럴 때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낸 짝퉁샤먼도 자주 등장하여 허위로 가득한 주술을 설파한다. 그래서 올바른 의미의 샤먼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국가공동체가 이미 무너졌고, 민족공도체도 존재할 틈이 없다. 도시공동체는 물론이고 마을, 동네 공동체도 모두 무너졌다. 직장공동체와 학교공동체도 깨졌다. 심지어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인 가족공동체도 파괴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깨지고 바서진 관계망으로는 우리의 그 어떤 미래도 낙관할 수 없다. 자본의 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고스란히 우리의 맨몸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류의 원형적인 문화는 권력과 자본과 짝퉁샤먼에 의해서 분리되고 쪼개져버린 위와 아래, 좌와 우, 처음과 끝, 과거와 미래, 하늘과 땅, 육신과 영혼, 안과 밖을 어루만져 탁월한 차원에서 통합시켜나가는 일에 동시대의 유효성이 있다.
[bold_title]압도적인 무의식 세계에 대한 관심[/bold_title]
어떻게 토착종교와 무속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패턴과 문양들을 관찰하고 수집하던 때 각 문양에 어떤 주술적 의미가 있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토착종교에 우회적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속신앙에 대한 관심은 주재환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인간의 욕망이 돈과 자본의 배치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역의 믿음과 질서, 안녕을 도모하는 종교(유교, 기독교, 불교, 무교)가 어떻게 위협받고 대립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희망을 내면화하는지를 정화하는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 증후들의 진행 방향, 구축되는 방식들이 토착화된 종교와 민속으로 물러난 무속문화의 어떤 신앙이 뿌리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최근엔 한(恨)의 정서나 샤머니즘의 분위기가 왜곡되고 폄하됐다가 밤의 어둠을 틈타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귀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원래 대량 생산되는 공업용품으로 작업을 해오셨고, 박스테이프의 경우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띈다. 무속신앙 역시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는데 혹시 이것이 작업과 관련성이 있나?
껍데기만 있는 텅빈 존재, 목적성이나 대상의 탐구가 아닌 경제적 관념의 잣대로 들이대는 가치척도에 대한 숭상이나 비하들이 내 작업에서 드러나는 색채를 만들었다. 무신들과 색채가 연관성이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적 형태와 작용들에 대해 탐구할 계획이다. 그리고 샤먼과 무속신앙에 관심있는 작가들과 교류하며 공부하는 모임도 함께 꾸려나갈 생각이다. 모든 종교의 우열을 떠나 인간을 구원하고 위안하는 혹은 잊게 하는 어떠한 형태의 지점들을 몸소 체험하고 그 속에서 웃고 울고 하는 그 알갱이를 시각적 형태의 사건으로 기획하고 싶다.
[bold_title]굿판을 만드는 ‘바라지꾼'[/bold_title]
<자락>을 왜 벽이 없으면 불가능한 부조 형태로 표현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일련의 작업들은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경계’를 뚜렷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인간의 지각기능 한계 너머에 있는 것을 예감하고 그것을 드러내 보고자 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배경(벽면)의 존재가 없이는 스스로 존립하기 어려운 ‘불온전한’ 것이어서 이러한 ‘불온전함’이 주변의 모든 상황과 관계 맺게 한다.
한국의 전통문화, 특히 샤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유학시절 ‘문화재 복원’이라는 수업에서 그들의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주술적 민속문화, 연금술과 신비주의적 전통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동양의 선(仙)과 도(道)사상과 유사한 면을 발견하고 시지각적 인식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겪게 된 문화 상황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민주화 이후 다량으로 유입되는 외래문화들이 국내 대중문화와 섞이고 저변에 억눌렸던 민속 문화가 부상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층위를 형성하고 서로 충돌하고 섞이면서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굿’음악을 원류로 하는 산조음악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전주 산조 예술제’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굿 판’에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미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굿’에 담겨 있는 내용과 형식은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화의 다중화현상을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샤먼의 행위가 실현되는 ‘굿판’을 만들어내는 여러 역할 중에 굿판의 공간과 미술적 장치를 실현하고 연구하는 ‘바라지꾼’이다. 오랜 세월 굿이 전수되면서 굿판의 절차와 형식이 갖추어지고 그 안에서 사용되는 오브제들의 이미지, 행위들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며 내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식과 의미를 생성시켜보고자 한다.
[bold_title]한국 사회의 어둠, 그 어둠의 기원[/bold_title]
작업 초기부터 성과 속의 세계를 다루어왔지만 최근 작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 것 같다. 어떤생각이 반영된 것인가?
나는 왜 근작에서 한결같이 어둠 속의 존재를 포착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내가 다루어온 세계가 주로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최근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성과 정의보다는 광기와 일탈로 점철된 현실을 비웃고 패러디하고 공격해왔다. 그것은 주로 밤의 시간 못지않게 백주대낮에 벌어진 어두운 풍경이었고 벌거벗은 한국의 사회였다. 이제 현실에 대한 탐색은 대낮의 어둠의 기원인 어둠의 어둠 그 자체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팔레 드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학과 그 친구들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직접 분(扮)한 학은 어떤 존재인가?
생과 사 혹은 자연과 인간 혹은 영혼과 육신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영매(靈媒)이다.
작업에서 풍자, 유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어떤 점을 강조한 것인가?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상태인 중음신(中陰身)의 세계는 고통의 세계다. 살아생전 자기가 저지른 죄를 벌 받는 기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현실계(現實界)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즐거워 보인다. 중음신의 세계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 현실계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를 말해달라.
예술의 좀 더 근원적인 형태, 즉 주술적이고 치유적인 단계를 말하고 싶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하는 현실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처와 회한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그 중간자 즉 사제(司祭)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후천개벽(後天開闢)에 관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고 자연스럽게 지옥계에 관련된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bold_title]도깨비, 한국인 무의식의 원형[/bold_title]
평소 작업의 흐름을 설명할 때 ‘널뛰기’란 표현을 했다. 작업의 방향이 비선형적인 것 같은데, 작업의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가?
비선형의 널뛰기란 사제형의 단성어가 아니라 광대형의 다성어와 같은 뜻인데, 동어(同語)반복의 형식보다는 이어(異語)확산을 좋아하는 게 타고난 내 성격인 것 같다. 작업의 영감은 굴곡 많은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체화된 것들이 의식 밑에 쌓여 있다가 나도 모르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것을 시각화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책, 신문, 잡지와 영화에서 혹은 술자리 대화에서 건진 것들을 선별해서 제작할 때도 있다.
도깨비에 대한 작업을 종종 선보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도깨비는 어떤 존재인가?
라디오도 드물던 1940년대의 소년시절에 호롱불을 켠 방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웠는데, 도깨비 얘기가 나오면 무서워서 마당의 뒷간에 가기도 어려웠다. 합리, 계량, 속도를 축으로 돌아가는 이 시대에 구술전승의 보고였던 호롱불이 기억나서 2009년에는 도깨비를 소재로 전시도 열었다. 돌이켜보니 기대치에 못 미치는 범작이 다수였다. 지난해 작고하신 김열규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도깨비는 막히고, 닫히고, 굳어진 조선사회를 해방의 공간, 자유의 시공으로 유도한 장난꾼이며, 사이킥 에너지이자 가장 한국적인 그로테스크 그 자체이다. 한국인 무의식의 깊은 심연. 한국인이 창조한 대표적 허구. 신출귀몰한 초능력자. 일상의 규범, 합리, 논리의 범주 이탈. 다양한 불일치, 야성, 원시성, 충동성, 조야성. 축제적 희극과 웃음.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그것이다. 조선 개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한때 적막한 유배지에서 겪은 도깨비 체험담을 남겼다. 비인비귀비유비명역일물(非人非鬼非幽非明亦一物).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니지만 하나의 물건. ‘비’라는 동일음이 신령스러운 주문처럼 리듬을 타는 정체불명의 존재. 이것이 그가 겪은 도깨비 모습이다. 토착문화의 창조적 발견과 현재적 응용이라는 맥락에서 한국인 무의식의 원형인 도깨비문화에 대한 깊고 넓은 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불편한 현실을 유쾌, 풍자, 블랙 유머로 풀어가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유머에 대한 정의는 수없이 많겠지만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 아닐까. 쓴맛을 웃음으로 감싸는 역설. 이것이 내 체질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현재 진행하는 작품은 어떤 방향인가?
온갖 도깨비가 허무맹랑한 놀이판을 벌이는 <이매망량(魑魅魍魎)>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주인 알렉산드르 세레브로프는 《우주와 지구와 인간》이라는 책에서 우주에 가 보고 가장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시대이면서도 아직도 인류가 작은 지구의 비좁은 육지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주를 비행하면서도 그 점이 정말 불가사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하겠지만, 지구촌 현실은 모든 분야에서 온갖 악귀들이 날뛰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모든 역사는 어처구니없는 우행(愚行)의 기록이란 말도 있겠는가. 이를 시정하려는 문예의 힘은 잔혹한 폭력 앞에선 무력하다.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bold_title]사라진 무명씨들에 대한 존재론적 관점[/bold_title]
초기에는 미술제도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선보였는데 최근 작업의 경우 제의적 요소가 강해진 것 같다.
10년 전 광주에서 미대를 막 졸업하고 상경해서 처음 접한 미술계는 학맥과 인맥으로 촘촘히 짜인 다가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퍼포먼스는 자신의 몸을 직접 작업의 주체와 도구로 활용하며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방편이었다. 초기 작품들은 개인사를 중심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 미술계를 비롯한 제도와 구조가 주요 소재였다면, 최근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사회적 문제로 그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정오의 목욕>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진 무명씨들에 대한 존재론적 관심에서 출발한 일종의 씻김굿과 같은 퍼포먼스로, 물이라는 요소와 목욕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장소에 기록된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동시에, 일상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그 공간을 재해석해보고자 한 작업이다. 이전부터 지속해왔던 순환적 시간 속의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생각이 특정한 장소와 만나면서 제의적 요소가 강해진 것 같다.
특히 작업에서 작가의 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작가의 몸은 예술과 관객, 개인과 사회, 자신의 내적 자아와 주변 세계 사이에 위치하며, 양쪽 세계를 기민하게 느끼는 감각체인 동시에 둘을 잇고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양쪽의 역학관계를 새롭게 전복하는 기제다. <정오의 목욕>에서는 역사적 장소와 젊은 여성의 나체를 병치시켜 여성의 몸에 대한 현대 자본주의의 선정성을 역이용하고자 했다. 사전에 신문 등을 통해 퍼포먼스를 미리 알리고 SNS로 유포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를 통해 과거 이곳에서 언론이 통제되었던 반면 이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 연일 네이버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등극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예능 방송들에서 섭외가 들어온다거나 정치적인 코드에서 해석되는 등 여러 구조적 필터를 거치는 가운데, 나의 몸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개인, 기억과 망각, 예술과 외설의 경계 지점에 위치했다.
예술가와 샤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사의 경계에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샤먼과 현실세계에 상상을 제시하는 예술은 존재에 대한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이라는 분명한 접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와 디지털 시대에 분열된 공동체 회복을 꾀하는 현대예술은 죽은 자의 세계뿐 아니라 산 자들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를 화합시키는 굿과 닮은꼴이다. 그러나 현대 예술가는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인 샤먼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특별하고 견고한 주재라기보다는 타인과 공유되는 공동의 유연한 매질로서, 분열된 사회의 간극을 메우고 연결하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모색한다. 샤머니즘적인 관점에서 현대예술은 특별하고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속에 깃든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진행하고 있나?
최근에는 기성 미디어의 토크쇼 형식으로 세대론, 하위 주체, 서브 컬처 등을 다룬 인터넷 방송 “재규어 에잇! 시즌2″를 제작했고, 지난 1월에는 인디 밴드들, 미술가들과 연대하여 한 동성애자의 HIV(에이즈)감염 확진 커밍아웃 전시와 파티를 만들었다.
[bold_title]’Trans’.샤머니즘과 예술이 맞닿는 곳[/bold_title]
최근 샤먼문화와 관련된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2010년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 밤을 새워 땅을 팠고, 전염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 죽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돼지들을 모두 산 채로 묻었다. 돼지와 내가 맺은 인연이라곤 삼겹살 구이, 돈까스, 돼지 주물럭이 전부였지만, 나와 내 먹이의 서사는 스스로 그러한 생태계의 네트워크만은 아니었다. 상품 가치를 지닌 종(種)만을 진화시키고 나머지는 멸종시키는 새로운 진화론 ‘마트선택설’의 천라지망을 뚫어야 했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공정의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건너간 중음과 황천의 소리를 듣고 이승으로 통역할 수 있는 텔레커뮤니케이션 관음(觀音)의 천이통(天耳通)이 필요했다. 샤먼의 미디엄만이 두 세계를 가로질러 웜홀을 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동료 생명들에 대한 관음(觀音)을 위해 흰 옷 입고 관 메고 사람들과 구제역 매몰지로 찾아가 각자 관에 들어가 뚜껑 닫고 누웠다. 죽음을 통한 생의 연대, <죽음 항해자>(2011)가 본격적인 첫 샤먼작업이다.
아트보살 작가라는 콘셉트로 직접 사주를 풀이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벼가 생장하려면 따가운 볕과 질퍽한 물이 필요하다. 벼는 불과 물, 주역괘의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상을 가지고 있다. 사주(四柱)는 그 생명의 시공간을 읽어 욕망의 배치, 기운의 운용을 가린다. 사주를 보기 위해 마주 앉는 순간, 1초도 안 걸려서 우리는 솔직해진다. 처음 보는 나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욕망과 걱정거리를 말한다. 마술 같은 시공간이다. 나는 그 사람의 욕망과 기운의 배치를 읽고, 애정, 취업, 건강, 돈으로 범주화되는 욕망의 서사를 해제하여 풀이해준다. 이것은 범주화에 갇힌 욕망의 결계를 풀어 싱싱한 생산의 에너지로 트랜스하는 대화의 순간이다. 샤머니즘과 예술이 맞닿는 곳엔 가로질러 다른 상태로 옮겨간다는 의미의 ‘Trans’가 있다.
작업에서 작가의 몸과 감각의 변화가 중요한 것 같은데.
요즘 국궁(國弓), 활을 수련하고 있다. 활은 땅을 살피고 바람을 읽어 몸과 활과 살(矢) 삼재가 리듬을 타면 그 목소리가 과녁의 붉은 중심을 뚫는 것으로 천지간에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관중(貫中)으로 신이 하강한다는 의미에서 활은 점(占)이다. 점(占)은 몸이 이 세계와 일치감을 갖는 한 순간이다. 몸과 감각의 변화는 타자와의 소통 그 자체다. 자신을 비웠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수직적 유목을 하여 심해의 사유(思惟)에 닿기 위해 나는 샤머니즘을 빌고자 한다.
[bold_title]야만과 맹목을 해독하는 것[/bold_title]
작업을 보면 한국 근대화 속에서 유령이 된 존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분적으로 열감지카메라를 활용하는 시도도 그러한 맥락인가?
그렇다. 유령이 된 존재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고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뜻이다. 눈에 안 보인다고 제거된 것이 아니듯이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살아있음의 근거가 되는 체온에 대한 생각도 밀어붙였다. 운동성과 온도는 생명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공포이기도 하다. 사라져서 유령이 아니라 없지 않고 있어서 유령이라 부른다. 그건 위협적인 것이다. 열감지카메라는 안 보여서 위협적인 것을 색출하는 용도로 쓰인다. 바이러스로 인한 고열이나 건축물의 누수현상, 심야 국경지대 같은 곳에서 이동을 감시한다. 따라서 틈새를 벌리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유령이라면 내가 작품에 열감지카메라를 역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어떻게 전이되고 위협적인 것으로 돌아올 지에 대한 희망을 호출하려는 맥락에서다.
<뉴타운 고스트> <손의 무게> <국제 호출주파수> <불의 절벽1-마드리드> 등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 호출주파수<의 경우 목소리는 있지만 가사가 따로 없다. 어떤 의미의 노래인가?
그 작업도 돌아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권능에 대한 역설에서 시작했다. 주파수대역 때문에 안 들리는 소리가 있다. 일터에서 해고당하고 살던 곳에서 수시로 떠날 준비를 하며 아는 사람들과 느닷없이 헤어지는 일이 당연해진 시대다. 누구나 이 공포감과 상실감 속에서 단절을 체화하고 외면을 생존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 점점 더 집단적으로 사고하지만 점점 더 외롭게 내팽개쳐진다. 그런데 내가 작가로서 관심있는 부분은 이 외면의 ‘내면’이다. 외면은 연대하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에 무관심하며 고개를 돌리는 일이다. 기존 미술이 재현하고자 하는 것도 이 ‘얼굴의 바깥'(형상)이다. 그런데 한번 보고난 뒤 아무리 외면하려 애써도 뒤통수에 따라붙는 어떤 소리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요청하는 미술은 바로 이 외면의 안쪽에서 자라나고 생성되는 소리에 대한 상상이다. 집단적 신체를 갖지 못해도 전파되고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소리. 온도처럼 안 보이지만 구름처럼 바람처럼 어둠과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소리, 울음소리, 비명소리, 이들은 긴급하고 절박함에 가장 먼저 터져나가는 장소이자 새나가는 기체다. <국제호출주파수>는 지금 보이진 않아도 돌아오고 있는 것, 끈질기게, 똑같지 않게 되돌아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요청하는 프로젝트다. 노래는 누구도 침탈할 수 없는 새로운 장소를 생성해나간다. 가지처럼 펼쳐진 주파수는 장소 상실로 무기력해지기는커녕 가녀려서 위협적인 것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콧노래, 휘파람 소리가 그렇다. 내가 노래소리와 음악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숭고, 애도 등 거창한 개념은 거부하면서도 다양한 연대를 시도한다. 이때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작용은 어떻게 보는가?
공동체의 회복이나 연대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작업을 도구 삼아 모색하진 않았다. 미술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내 작업을 숭고와 애도로 해석하기엔 너무 큰 옷을 입히는 듯해서 그랬지 개념 자체를 거창한 것으로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도될 수 없는 존재들을 소환하고 미술계 안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지지세력이나 동료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혼자이고 뿌리도 논리도 없다. 그런 내가 무슨 연대를 해왔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 오늘날 연대의 의미가 짓밟히고 윤색돼 ‘다양한 연대’라는 말을 내뱉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작업은 이름없는 것과 불러내는 힘의 부단한 길항작용이 만들어낸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연대가 발생한다. 내가 시도하는 연대는 거기에 있고 미디어아트의 사회적 작용이 야만과 맹목을 해독할 수 있다고 본다.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발지상주의가 불러낸 ‘한강의 기적’이라는 망령 때문에 <뉴타운 고스트>와 <SOS>를 할 때 역설적으로 망령을 불러내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고 나서 2009년 <포터블 키퍼> 비디오작업을 할 때 구체적으로 샤먼을 생각했다. 유령은 반추상적인 것이고 맞불을 놓는 것이니까. 사라지면 드러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때 희망과 공포가 반반이 된다. 그리고 샤먼은 이 반(半) 속에 있다. 난 이 반(半)이라는 ‘어중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내 작업은 어중간하고 내 언어도 어중간하다. 난 정확히 더 어중간을 추구할 생각이다. 샤먼은 그 어중간한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샤먼의 언어는 공식화될 수 없고 소수자이며 언제나 응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남준의 <거침없는 환희>보다 요제프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서 부활하는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시인으로서의 샤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