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Martin Creed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허위적이면서 현학적인 예술에 대한 논의는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1968~) 앞에선 부질없는 장광설일지도 모른다. 그의 개인전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
(What is the Point of it?>(1.29~5.5)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의 작업세계는 다양하다는 말이 진부할 정도다. 시각과 청각, 강약의 변주, 미적 대상과 일상의 오브제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고정화한 예술에 대한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다시, 그가 묻는다. “그래서! 예술이 뭔데?”
Martin Creed
지가은 골드스미스 대학 비주얼 컬처 박사과정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행위는 모두 창조적인 행위이다.’ 마틴 크리드(Martin Creed)가 한 말이다. 그가 이번에는 관객에게 도리어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What is the point of it?)’ 반문하며, 지난 30여 년간 자신의 예술 행보를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으로 돌아왔다. 전시는 런던 템스 강변 사우스 뱅크(South Bank)에 자리한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열렸다. 영국 내 크리드의 개인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 이번 전시는 마틴 크리드의 대표적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크리드 특유의 자기지시적인 유머와 풍자가 가득한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빚어내는 다중감각적인 자극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주가 되었다.
생활 밀착형 예술가, 크리드의 일상과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하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작품들은 그의 예술성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1년 크리드에게 영국 현대미술상인 터너상 수상의 영광을 가져다준 작품은 텅 빈 갤러리 안에서 5초 간격으로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작품번호 227: 점멸하는 불빛(The lights going on and off)>(2000)이었다. 이에 분노한 한 관객이 이 작품을 향해 계란을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아이디어를 특별한 미적 경험으로 바꾸는 크리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빅벤을 비롯한 영국 전역의 종탑들이 일제히 3분간 종을 울리며 스포츠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타종 행사 <작품번호 1197>을 기획해,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다운 재기발랄한 감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레고 타워, 크기 순서대로 쌓은 종이상자와 책상, 의자, 합판, 벽돌, 철빔 등 크기별, 면적별, 길이별로 쌓아 올려 만든 피라미드 형태의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반복적인 쌓기는 크리드가 1992년부터 꾸준하게 이어온 대표적인 작업 방식 중 하나이다. 벽면 전체를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페인팅과 설치작업도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크리드의 작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1000개의 브로콜리에 각기 다른 색의 물감을 칠해 하나씩 찍어 그린 <브로콜리 프린트(Broccoli prints)>(2009~2010)와 계단 통로의 양쪽 벽면을 150개의 접착 테이프로 한 줄 한 줄 채워 완성한 <작품번호 1806>(2014)의 줄무늬가 대담한 색조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 운율을 더한다.
점점 크게, 점점 작게, 상승과 하강, 강약중강약의 시각적 변주가 보여주는 반복의 코드는 전시장 곳곳에서 청각을 자극하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음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피아노 연주, 웃음소리, 전시장 한켠에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문과 커튼, 쾅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피아노 뚜껑. 이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소리로 전시장은 쉴 틈 없이 분주하다. 테라스에 주차되어 있던 포드 자동차 <작품번호 1686>(2013)은 일제히 모든 문과 창문이 열리고, 보닛과 트렁크가 열리고, 와이퍼가 돌아가고 라이트가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오며 경적을 울려대다가 이내 다시 얌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으로 수용되는 반복적 리듬감이 크리드 전시 전체를 연주하는 음표가 된다.
전시의 모든 음악적 요소는 크리드의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삶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크리드는 1994년부터 밴드 음악 활동을 하며 정식 음반도 여러 장 발매했다. 미술과 음악에 경계를 두지 않는 그에게는 공연도 작품이다. 전시 제목 <그것의 요점은 무엇인가?>도 사실은 크리드의 노래 제목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라이브 퍼포먼스 <작품번호 1815>와 <작품번호 1020>을 4월 8일 사우스 뱅크 내 클래식 공연장인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과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에서 각각 선보이기도 했다.
작품, 세상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되다
크리드의 작품이 늘 경쾌한 유머만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머리 바로 높이 위에서 아찔하게 돌아가는 <작품번호 1092: 엄마들(Mothers)>(2011)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2미터 높이, 12미터 길이의 ‘엄마들(Mothers)’ 네온사인은 가속도가 붙어 돌아갈수록 더욱 위협적이다. 가장 친밀한 존재이자 거대한 존재,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엄마’라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강렬하고 심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움츠러든 머리를 숙이면 바닥에는 각기 다른 템포로 돌아가는 39개의 메트로놈(Metronomes)의 째깍째깍 소리가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격인 <작품번호 200: 주어진 공간을 반쯤 채운 공기(Half the air in a given space)>(1998)는 말 그대로 절반이 풍선으로 가득찬 방이다. 누군가에게는 풍선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유아적 유희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터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폐쇄공포증을 유발하는 숨막히는 공포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풍선방에 입장하는 관객에게 호흡곤란 증세나 폐쇄공포증을 초래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유념하라는 경고문이 적힌 안내장을 나눠준다.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면 마지막 전시실의 <구토와 대변(Sick and Shit)> 영상을 피할 수가 없다.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서 사정없이 구토하는 사람과 쪼그리고 앉아서 힘겹게 대변을 보는 사람들을 찍은 장면을 인내심 있게 바라보는 일은 거북함과 동시에 묘한 쾌감이 뒤엉켜 역설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크리드의 작품에는 이렇게 양가적 태도와 감정이 공존한다.
크리드가 ‘반복’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를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선배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무의미해보이는 행위의 반복과 변주, 그리고 익살 속에서 삶의 허무와 부조리, 인간 존재의 치열함과 불확실성을 탐구했던 베케트. ‘다시 시도하라,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나는 예술이 도통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에 열중할 뿐’이라고 말하는 크리드의 말과 닮았다.
거창한 준비와 작업 과정보다는 지금이라도 당장 방 안에서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들었다가 금세 해체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고, 아이디어나 순간의 행위 그 자체,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만드는 크리드 작품의 미술사적 원류는 사실 익숙한 것들이다. 뒤샹 이후 레디메이드 일상 용품들의 갤러리 출입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고, 플럭서스 그룹의 조지 브레히트(George Brecht)가 점멸하는 자동차 라이트와 경적으로 연주 퍼포먼스를 시도한 바 있다. 쌓기와 긋기의 반복적인 구조와 표현은 미니멀리즘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는 체액, 신체성에 대한 실험은 빈 행동주의자들의 신체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드의 예술이 여전히 유쾌한 울림을 주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이유는 그의 네온작품 <작품번호 232: 온 세상+작품=온 세상(The Whole World+The Work=The Whole World)>(2000)이라는 방정식이 지시하는 크리드의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세상의 일부이고, 세상의 전부라는 것. ●
마틴 크리드는 1968년 영국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났다. Slade School of Art at University College London을 졸업했다. 1987년부터 작품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글에 번호는 붙여 작품 타이틀로 사용했다. 2001년 <Work No. 227: The lights going on and off>로 터너프라이즈를 수상했다. 1994년 그의 밴드 오와다(Owada)는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으며 밴드 해체 후에도 음반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는 등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