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설마! 오비이락(烏飛梨落)? 언론 길들이기? 블랙리스트? 검열? 찍어내기? 갑질?…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말들이다. 2016년 1월호 브리핑 제목이 ‘두고 봅시다!’ 였다. 그런데 정말 두고 볼 일이 벌어졌다. 그때 브리핑 맞은편 페이지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미술인 550명의 실명이 실린 이 광고의 주된 내용은 마리 관장의 검열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과 검열반대 윤리선언 요구였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2017년부터 《월간미술》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광고가 사라졌다. 2016년에는 총 14페이지에 걸쳐 광고가 게재됐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까지 광고가 없다. 지난 3월 중순, 광고팀장이 나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저~, 편집장님 좀 이상해요… 국립현대미술관,… 다른 잡지는 광고가 들어왔다는데…, 이번 달에도 《월간미술》 광고는 아직 결정된 게 없대요…, 혹시 마리 관장 사임하라는… 편집장님 브리핑 때문에…” 순간 설마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절대 아니에요. 아마 요즘 광고할 만한 좋은 전시가 없어서 그렇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라고 답했다. 그런데 설마 했던 일이 정말 생겼다. 끝내 이번 달에도 국립현대미술관 광고는 없다. 마감 직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는 몇몇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고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조심스레 물어봤다. 처음엔 모두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해다. 그럴 리 없다”고 딱 잘라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급이 높은 학예사 한 사람은 이 문제는 홍보부서 소관이라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관장을 나가라고 해놓고 광고를 기대하냐”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지난 2016년 12월호 마리 관장 인터뷰 일정을 잡아 준 홍보부서 책임자와 통화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의 문제 제기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신경 쓰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월간미술》에 광고를 꼭 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반드시 《월간미술》에 광고를 할 의무도 없다. 어떤 매체에 광고를 하고 안 하고 판단하는 건 100% 미술관 몫이고, 미술관의 자율적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월간미술》에 몇 개월 동안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떼쓰는 게 아니다. TV나 신문처럼 미술잡지 역시 광고주와의 관계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고주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편향되지 않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분투해
왔다. 그런데 2016년 12월호 브리핑에서 내가 마리 관장에게 사임을 요구한 이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여러 정황상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의구심이 든다. 결국 나의 의문과 문제 제기는 이렇다. 첫째, 과연 마리 관장은 이런 일을 정말 모르고 있을까? 둘째, 그렇다면 광고게재 결정권을 쥔 홍보부서 책임자 개인의 갑질인가? 셋째, 이도 저도 아니라면 외국인 관장에 대한 심기 경호 차원에서 빚어진 간부급 행정직, 학예직의 과잉 충성 때문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내 매체 광고비를 줄이는 차원에서일까? 참고로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예산은 지난해보다 45% 늘어난 225억 원이 증액됐다. 이 가운데 전시예산은 15억 원이 늘어났다. 요즘 워낙 경기가 안 좋아 운영예산을 대폭 줄인 대부분 사립미술관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신규 사업인 ‘마리 프로젝트’에는 총 42억을 확보했다. 주요 예산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공공프로그램 4억, 다국어출판 3억, 해외교류전시 13억, 디지털 고객서비스 7억, 야외프로젝트(덕수궁관 5억, 과천관 10억) 15억 예산이 들어간다.” – 《아시아 경제》 2016년 12월 5일 기사 인용
여하튼 만약 관장이 이런 정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반대로 관장이 이 일을 모두 알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광고게재를 무기로 삼아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통제하고 길들이려 한 부하직원의 권력남용을 방조하고 묵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리 관장은 홍보부서 직원과 공범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검열 의혹 전과가 있는 마리 관장은 한국에 와서도 결국 ‘제 버릇 개 못 준’ 꼴이 되는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이런 미술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미술 언론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월간미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금 이 정황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언론에 의해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고 책임자는 모르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실무자는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둘 다 발뺌 한다면 말이다.
앞서 마리 관장은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비전과 중점 추진사업을 발표했다.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내세우며 출판과 해외 홍보에 중점을 두겠노라 역설했다. 이런 전략에서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홍보업무가 일원화된 걸로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해외 홍보를 위해 국내 홍보가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 자리에서 마리 관장이 자랑하듯 발표했던 앤디 워홀 전시가 소리소문 없이 취소됐다. 이후 전시가 무산된 이유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후조치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거창하고 번지르르하게 계획을 발표하고, 진행하다가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이다. 서울관 운영부장도 제 맘대로 사표를 던지고 미술관을 떠났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어떤 평가나 책임추궁 역시 없다.(마리관장 사임 요구와는 경우가 다르다) 이뿐만 아니다. 들리는 소문엔 역시 마리 관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전시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도 개막을 코앞에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국립현대미술관과 관련된 일에 마리 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언제까지 이 지경이어야 하는가? 표류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지금 침몰하고 있다.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하루빨리 건져 올려야 한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HOT PEOPLE 신임 화랑협회 이화익 회장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를 열고 화랑인으로서 살아온 지 어느덧 16년을 맞은 이화익갤러리 이화익 대표.
이제 그는 갤러리 ‘대표’ 외에 ‘회장’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지난 2월 8일 열린 한국화랑협회 정기총회에서 총 투표수 112표 중 72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제18대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인 〈2017 화랑미술제〉를 마치고 온 이화익 회장을 3월 14일 만나 선거 당시 내세운 공약들에 관한 향후 계획과 및 생각 등을 들어보았다.

“어려운 미술계 화합과 소통으로 힘을 합쳐야“

이 회장이 내건 공약 중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바로 ‘화합’과 ‘소통’이다. 이유는 지난 임기 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회원들끼리 교류하고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고 협회가 하는 일에 대한 정보 공유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이번 선거를 치르며 많은 화랑인을 만나 얘기를 나눈 이 회장이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회원화랑 정기모임을 갖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한국화랑협회에 소속된 화랑 수가 총 142곳이에요. 협회가 물론 권익을 추구하는 단체이긴 하지만 많지도 않은 화랑끼리 반목하기보단 먼저 상호 소통하며 협력해가야 합니다.” 이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화합을 내세운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해 천경자 〈미인도〉 진위 공방, 이우환 화백 위작 유통 논란 등으로 미술계가 받은 타격을 전화위복으로 삼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위작 유통을 종식시키고자 정부가 추진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이하 미술품 유통법)’ 국회 상정을 막는 데 회원화랑이

다 함께 뜻을 모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이 회장은 “위작 의혹은 역사적으로 늘 있어왔어요. 사실 위작 문제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도 마치 미술계 전부의 일인양 언론에 대서특필되다보니 미술계를 향한 일반인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법이란 게 한번 제정되면 적용에 취사선택이 불가능한 거잖아요. 통과되면 돌이킬 수 없죠. 도와주기 위해 마련하는 거라지만 충분한 논의와 조사 없이 입법부터 된다면 결과적으로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고 우려하며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우선돼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이 회장이 이번 선거 때 내세운 공약 ‘미술품 양도소득세 폐지’와 ‘현금영수증 발급 유예’와도 연결된다. 그는 미술품 유통법 제정은 시기상조라며 유통법보다 시급한 것이 ‘미술 진흥법’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전업 작가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화랑 또한 영세업이에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아이를 법으로 규제해 아예 못 걷게 하기보단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육성한 후 규제를 가해도 늦지 않습니다.” 화랑협회는 이 사안을 문체부에 건의하기 위한 법적인 절차를 내부적으로 진행 중이다. 2017년 7월부터 시행되기로 한 미술품 현금영수증 발급 규정 시행이 1년 6개월 정도 연기될 수 있었던 것은 유약한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화랑협회의 지속적인 노력 결과였다. ‘미술품 거래 이력제’에 관해서도 이 회장은 “전 세계 어디서도 시행하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가 하려고 하는 셈”이라고 말하며 “우리보다 화랑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외국의 사례와 제도 시행 현황 등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미술품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거래액의 5%를 세금으로 지불하는 ‘거래세’가 부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술시장 규모 확장을 위해 화랑협회가 추진한 방안 중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바로 ‘해외 컬렉터 초청’이다.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위주로 컬렉터를 홈그라운드에 초대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한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진행한 2015년 10억 원 이상의 판매액을 달성했고, 2016년에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컬렉터를 포함해 80여 명을 초대해 50억 원 수익을 올렸다.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데 드는 경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올해는 정부 지원금을 증액시키고 초대 대상을 컬렉터를 비롯 미술관장이나 큐레이터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임기 내 주력할 사안으로 ‘국내 경매사와 상생하는 방안 도모’를 거론했다. “화랑과 경매사가 상대의 영역을 존중해야 합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형 화랑이 경매업을 시작한 격이기 때문에 두 시장의 경계가 불분명한 편”이다. 물론, 최근 이 문제점을 인식한 국내 투톱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이 서류상 분리되어 겸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시보단 아트페어나 옥션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는 요즘의 추세 속에서 화랑은 큰 압박과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회장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협회와 감정연구소의 상생 방안 마련도 그의 임무다. 감정 과정에서 생겨난 회원화랑의 오해도 불식시켜야 한다.

“이 모든 문제를 임기 2년 동안 해결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 화랑이 좀 더 나은 환경애서 보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 같은 서구와 비교하기보다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국가와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하는 이 회장의 표정에 다부짐이 느껴졌다. 말대로 열의만으로 숱한 당면과제를 해내야 하는 이화익 회장의 2년간 행보를 기대해본다.

곽세원 기자

EDITOR'S VIEW

내일은 달라질까?

3년 전, 벌써 제주항에 도착했어야 할 그 배는 차디찬 바다에 300명이 넘는 생명을 움켜쥔 채 가라앉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제대로 밝혀진 것 없이 3년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바다에 누워있던 그 배가 그렇게 간단히 올라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배가 다시 바다 위로 올라왔을 때, 최고 권력자가 파면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던 시각과 겹쳤다. 계획에 의한 인양이었어도 정말 ‘공교롭다’라는 표현 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신문 1면을 세로로 꽉 채울 만큼 그 배는 결코 작은 배가 아니었다. 그만큼 왜 그 배가 바닥에 몸을 뉘여야만 했는지 알아야할 진실도 배의 크기 만큼이었다. 배가 바닥에 누워있던 시간 동안 자유롭게 호흡을 하며 살았던 이들은 여러 추측을 던졌다. 말 그대로 ‘던졌다.’ 여러 합리적인 의심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정답은 없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잊자고. 누군가는 그랬다. 가슴에 묻자고. 이런 말잔치의 저의는 진실의 은폐와 그에 따른 정치적 유불리를 감안한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처럼 3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우리의 바닥을, 참사를 대하는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위로도, 그리고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야만의 시간을 보냈다.
2017년 4월은 정말이지 고통의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매년 4월은 그럴 것이다.
달라질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황석권 anarchy9@gmail.com

위 ㅅㅂㅅ뉴스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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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 〈일기(一期)생멸(生滅)〉 흙, 물, 백묘국, 채취된 식물, 사운드 가변설치 2017

자가 점검

김주리 〈일기(一期)생멸(生滅)〉 흙, 물, 백묘국, 채취된 식물, 사운드 가변설치 2017
말 없는 것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생각의 시작은 최근에 읽은 《식물은 알고 있다》(다른 2013)란 책에서 비롯되었다. 저자 대니얼 샤모비츠는 “식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조건들에 반응해 성장을 조절할 수 있도록 복잡한 감각과 조절 체계를 발달시켰다… 유전적 수준에서 보면 식물들은 많은 동물들보다 더 복잡한 존재”라고 말하며 시각, 청각, 촉각 그리고 인간의 자기 수용감각과 기억 등의 감각체계가 식물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말이 설득력을 주는 이유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본인의 주장을 입증해가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무심코 지나친 길가의 나무와 베란다 화분이 낯설다. 언제나 시선의 주체는 나뿐이라고 생각한 대상에게, 시선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 묘한 기분이 든다. ‘안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보를 수집하고 조정하는 중앙신경계, 뇌가 없는 식물이 과연 안다는 걸 행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규정해온 안다는 것의 정의가 맞는가. 정정이 필요한건 아닌가.
이번 4월호에서 기자가 담당한 서울대미술관 기획전 〈예술만큼 추한〉 역시 이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추’에 얽힌 모든 개념과 인식 등을 선회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한다. 이는 개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이따금씩 우린 자신의 좌표가 어디쯤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심과 재고의 작업, 이른바 ‘자가 점검’이 필요하다.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점검의 ‘시기’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점검이 이루어져야 늦지 않게 좌표 수정을 할 수 있다.

p.s_4월호부터 새로운 모니터 요원이 함께 한다. 어느덧 8기란다. 다양한 연령대와 다방면의 미술인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1년간 냉철한 견해와 지적, 충고 부탁드린다.

곽세원 ggwaa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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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 주나

오랜만에 〈강성원의 인문학 미술관〉 연재가 실렸다. 작년 9월 이후 6개월 만이다. 내가 원고를 맡았다. 어렵다. 글의 내용을 소개하는 리드를 쓰기 위해 세 번 읽었다. 그래도 어렵다. 미학 전공인 나도 읽기 쉽지 않은데 미술이 생소한 독자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예술(이론, 작품, 역사 등)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예술의 복합적인 성격을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술(작품, 활동, 감상 등)은 이해하는 일과 별개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달 특집의 짧은 기사도 하나 맡았다. 서울예술치유허브와 마음약방 리포트다. 이 두 곳은 공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내가 체험하고 느끼는 곳이다. 예술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것 어느 하나가 먼저 일어나느냐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분야의 헤아리기도 어려운 예술작품 수만큼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도 제 나름이다.
예술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감상자가 수동적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예술은 창작은 물론 향유에 있어서도 자기로부터 기인한 생각과 경험을 바탕에 둔 활동이다. 내가 품어왔던 생각과 감정이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지각적으로 구현되었을 때,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보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을 때. 이렇듯 작품에 공감하는 순간으로서 예술 감상은 자신이 느낄 수 있고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은 자신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예술을 통한 자기반성은 예술이 사회적 산물임을 방증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타인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한다. 타인이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순간은 곧 나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술을 통한 치유도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술활동을 통해 나를 반성하고 그로부터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는 일. 예술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숟가락을 들게 할 수는 있다. 밥을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

박유리 contactyulee@gmail.com

HOT PEOPLE JB금융지주 김한 회장

침체된 한국화 중흥을 위한 메세나

‘동양화’냐 ‘한국화’냐? 의견이 분분하고 말이 많다. 학과 명칭도 학교마다 제각각이다. 장르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확장되고 열린 개념의 현대미술이건만, 유독 이 분야에서만 여전히 이런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과 현대, 한국성과 국제성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그만큼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JB금융지주 계열 광주은행에서 한국화 분야 작가 지원과 진흥을 위한 뜻 깊은 사업을 시작했다. ‘광주화루(光州畵壘)’란 타이틀을 내걸고 한국화 공모전과 작가상을 제정한 것이다. 총상금 1억 원(작가상 5000만 원, 공모전 대상 1인 3000만 원, 장려상 2인 각 1000만 원)이 주어지는 광주화루를 제정한 JB금융지주 김한 회장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이호억 〈돌을 찢는 남자: 팔(八)폭 괴석도〉 화선지에 유연묵 183×900cm 2016 〈제 1회 광주화루〉 공모전 대상 수상작가

이호억 〈돌을 찢는 남자: 팔(八)폭 괴석도〉 화선지에 유연묵 183×900cm 2016 〈제 1회 광주화루〉 공모전 대상 수상작가

먼저 〈광주화루〉 개최 배경이 궁금합니다. 미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기관에서 미술작가를 위한 공모전을 실시하고 작가상을 제정했다는 점이 의외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메세나 활동, 즉 기업(가)이 예술(인)을 후원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광주화루〉를 제정하시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전라남북도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은행입니다. 흔히 전라도 하면 멋, 맛, 따뜻함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반면 산업적인 측면에선 경상도나 충청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고 늦은 게 사실이고요. 이런 배경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적 배경과 장점을 부각시키고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전북은행장 시절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인연을 맺게 됐답니다. 어느덧 6년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전통 소리도 중요하지만 요즘 젊은 소리꾼의 새로운 감각과 활동을 잘 개발해서 접목하면 우리 소리도 아주 현대적이고 국제적이고 세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습니다.
〈전주 소리축제〉가 무형문화유산이라면 한국화 공모 〈광주화루〉는 유형문화유산입니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소리와 서예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이에 비해 광주는 비엔날레와 특히 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기면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된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는 엄밀히 말해 우리 미술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 것, 우리 한국화의 전당을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세미나를 열어 한국화의 개념과 범위, 공모전 성격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어떤 형식으로든지 판을 벌여 시도하면 작위적일지라도 한국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겠지요.
광주지역은 예부터 특히 문인화 전통이 깊은 곳인데 요즘은 침체되어 있습니다.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한국화 분야에서도 뭔가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문화예술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각양각색 여러 생각을 가진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 사이에서 잘하기가 힘듭니다.(웃음) 광주은행에서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광주지역 한국화가에만 국한하면 범위가 한정적이니까 전국적인 규모로 공모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화 장르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광주화루(光州畵壘)’라는 상 이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화나 동양화라는 말만 앞세우면 좀 진부한 것 같고, 광주은행에서 시행하는 상인데 ‘광주’를 넣지 않을 수도 없고…. 〈광주화루〉라는 이름은 추사 김정희의 ‘회루(繪壘)’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여기에 한국화의 전통과 맥을 지키는 ‘최후보루’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광주화루〉 실무를 도맡아 진행해 온 광주은행 박철상 부장은 추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이름을 정하는 데 박 부장의 역할이 컸지요.
〈광주화루〉는 단발성 사업이 아닙니다. 광주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꾸준히 시행될 겁니다. 만약 수묵화나 문인화 분야에 한정지었다면 현실적으로 작가도 많지 않기 때문에 횟수를 거듭해 오랫동안 지속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전통도 좋지만 전통을 기초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도 있어야죠. 앞서 예로 든 소리도 판소리 다섯마당처럼 전통도 중요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현대적 감각의 퓨전, 융합 소리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집니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죠. 이런 뜻에서 수묵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오픈 마인드로 한국화 전 부문으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렇게 5년, 10년이 지나면 차츰차츰 정리 되겠지요.

〈광주화루〉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작품을 직접 보시고 느낀 소회 혹은 의견은 어떠신지요?
실험적인 작품도 간혹 있었지만 비교적 전통과 현대적인 작품이 잘 조화를 이뤘다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인 병풍 형식부터 콜라주 작품에 이르기까지 표현기법도 아주 다양하더군요. 한편으론 다시 한 번 작가들에게 존경심 혹은 경외감을 갖게 됐어요. 사실 서양화에 비해 한국화 마켓은 아주 열악하잖아요.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된 것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한국화과가 없어지거나 전공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실정인데도 이렇게 묵묵히 작업하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도울 수 있다면 앞으로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돕고 싶습니다.

공대 출신 금융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예술을 대하는 회장님의 안목 또한 남다를 듯합니다.
한국화는 익숙합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한옥에서 살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병풍이나 전통적인 산수화를 익숙하게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화 사정을 보면 애잔한 감정이 듭니다. 20여 년 전 의재 허백련 그림 값이 아마 지금보다도 더 비쌌을 겁니다. 월전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현실입니다.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그림이 너무 저평가돼 있어요. 요즘 국내 화랑들이 값비싼 외국 작가나 서양화만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문화란 1~2년에 형성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수백 년이 쌓인 전통이 바탕 되어야 합니다. 우리 문화는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아요. 우리가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겨야지요. 일본이나 중국도 스스로 자국문화를 띄우잖아요.
지금도 전주 음식점을 가면 글씨가 붙어있고, 광주엔 아직도 그림이 걸려있어요. 이런 게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를 장려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와 맞춰가며 틀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간 이렇게 좋은 문화를 제대로 장려하지 못했어요. 미력이나마 이런 지원 사업을 매년 하다 보면 한국화 하는 사람들이 “아, 우리에게도 관심 갖고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힘을 얻지 않겠어요. 결국 젊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야 그 맥이 이어지지요.

〈광주화루〉는 미술계에서 아주 환영할 일입니다. 더불어 광주은행 임직원도 이번 〈광주화루〉를 계기로 회사에 자긍심을 갖고 예술을 대하는 마음가짐 또한 각별해질 듯합니다.
옛것이 쉽게 잊히는 요즘입니다. 대다수 젊은이가 옛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이 소리뿐만 아니라 수묵화 같은 전통 그림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한자 사용이 줄어들다 보니 이런 경향이 더 심화된 것 같아요. 아무튼 이번 〈광주화루〉가 광주은행 직원과 가족이 함께 관람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만큼 〈광주화루〉의 향후 일정과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구상하는 계획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광주화루〉 진행 과정에서 일부러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전시가 열리니 여러 사람이 직접 관람하면서 흥미를 갖게 될 테고, 무엇보다 이번 공모에 지원하지 않은 작가들도 이후엔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광주화루〉의 취지와 공정한 선정과정, 그리고 전시 작품의 수준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면 도전하고픈 생각이 들 테니까요. 공모전을 시행하면서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심사의 공정성이었습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작품성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상이 되고자 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기대 했던 대로 아주 공정한 심사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광주화루〉는 광주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속될 겁니다. 이번 1회 공모를 계기로 전국에서 더욱 많은 한국화가가 참여하기 바랍니다.

이준희 편집장

김 한 Kim Han

1954년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했다. 대신증권 이사, 메리츠증권 부회장, KB금융그룹 사외이사, 전북은행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광주은행장, JB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화루(畵壘)
조선후기 문인화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와 용산에서 머물 때, 서화(書畫)하는 제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솜씨를 겨루고 김정희의 품평을 받았다. 당시 화가 그룹은 회루(繪壘), 서가 그룹은 묵진(墨陣)이라고 명칭했다. 화루(畵壘)는 바로 회루의 회(繪)를 화(畵)로 바꾸어 만든 이름이다. 즉, 그림으로 경쟁하기 위해 모인 화가들의 그룹을 가리킨다.

SIGHT & ISSUE 화성에서 온 메세지

사라 다허/마르쿠츠 베를리 (사진 앞) 소변, 씨앗, 인명 식물 키우기 세트, 유리시험관 가변크기 2016

사라 다허/마르쿠츠 베를리 <Aquaforming, Mars>(사진 앞) 소변, 씨앗, 인명 식물 키우기 세트, 유리시험관 가변크기 2016

1.23~5.30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

화성에서 쓴 지구 환경 보고서

그간 미술은 발전한 과학을 도구화하여 시각적 재현물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문법을 따르는 것이 주류였다. 따라서 과학의 발전은 미술에 있어 매체 다양화라는 응용의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의 상상력은 과학적 진보의 저변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의 발전은 왜 그것을 이뤄야만 하는지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화성에서 온 메시지전〉은 이러한 양상을 확인하고 예술적 상상력이 전지구적 위기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단서를 제공하는 전시로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지구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전시 타이틀이 암시하듯 지구의 문제를 지구에 발을 디디고 있는 상황에서 타개하는 것이 아닌, 지구 밖에서 지구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이룩하고자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영화화되면서 인기를 끈 앤디 위어(Andy Weir, 1972~)의 소설 《마션(Martian)》을 연상하게끔 한다. 전시 타이틀을 인지하고 전시를 본다면 제2의 생존장으로서 화성의 가능성에 대해 참여 작가들이 화학전공자들과 협업하며 벌인 상상력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여작가는 7명(팀)으로 미국의 생태과학예술가인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 화학예술가 서일 사프렌(Cheryl Safren), 스위스와 브라질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마르쿠츠 베를리(Markuz Wernli) / 사라 다허(Ssrah Daher)팀, 인공적 화학물을 이용해 작업하는 길현, 탄소를 주제로 게임을 작품으로 선보인 안가영, 사막화에 반대하는 작품을 선보인 김지수, 그리고 생체활동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한 박형준 등이다. 이들은 전시장이 화성에 구축된 것을 전제로 작업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마르쿠츠 베를리/사라 다허의 작품은 소변을 발효시켜 물의 존재가 요원한 화성에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 마치 과학실험실을 연상하게끔 하는 연출 같지만, 이 작업은 실제 기증받은 소변을 재료로 민들레나 허브 등을 발아시켜 키워낸다. 이런 방식은 박형준의 작업에서도 보이는데, 이산화탄소 얼음, 즉 드라이아이스를 고순도로 뽑아내는 화학실험을 방불케 한다. 김지수는 화성에 이끼를 키워 산소를 만든다는 영화 〈토탈리콜〉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를 기획한 유현주 큐레이터가 이 전시에서 주목한 요소는 바로 ‘탄소(炭素)’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기본적 존재 단위이자,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화석원료의 구성물질이고 현재 지구에 가장 큰 위험을 가하는 이산화탄소 등을 구성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 역시 대단히 복잡 미묘하게 진화한, 탄소와 물을 기초로 하는 화학복합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시는 과학적이고 지리적인 지식을 동원하기도 하고, 탄소와 이산화탄소, 요소(urea), 구리와 화학복합물의 페인팅 및 바이오화학적인 실험 등 화학 재료들을 사용해 화학을 예술의 언어로 전환하고자 애쓴 예술가들의 작업을 보여줍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하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화성, 그곳은 지구 생명체가 살아남기엔 척박한 환경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런 작가들의 제안이라면 화성에서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으로 그 척박한 화성에서도 작가들이 제안한 방법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면, 당장 지구에서는 더 수월하게 행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전시는 화성에서 거주를 위한 상상적 방법을 제안함과 동시에 이 제안을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지구에 당장 적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대전 = 황석권 수석기자

HOT ART SPACE

김인겸 개인전
3.7~6.4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김인겸, 공간과 사유’로 명명된 전시 타이틀대로 이번 전시는 40여 년에 달하는 김인겸의 조각세계를 회고하는 자리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서 당시 출품한 〈프로젝트 21– 내추럴 네트〉가 재현되었으며 근작 〈Space – Less〉 연작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그의 작업과 관련한 다양한 도큐먼트와 아카이브 등도 함께 소개되어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했다. ‘조각을 떠난 조각’, ‘정신적 영역으로 열어가는 조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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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3)

2017 금호영아티스트전
3.3~4.2 금호미술관

매년 다양한 장르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해온 금호영아티스트의 15번째 주인공 ‘손경화 이동근 최병석 황수연’. 이들은 도시 속 사이 공간에 주목하거나 인터넷 시대에 과잉 공급된 정보가 촉발하는 상상에 집중하고 작가 개인의 환경 변화에 따른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며 조형의 기본 언어인 재료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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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1)

투리 시메티 개인전
3.15~4.29 리안갤러리 서울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금, 이탈리아 모노크롬 작가 투리 시메티의 전시가 열렸다. 루치오 폰타나(1899~1968), 피에로 만조니(1933~1963) 등과 함께 모노크롬 회화작업을 전개한, 반백 년이 넘은(57년) 그의 작업은 평면에 구축된 입체로, 캔버스 전면은 단색이지만 높낮이를 가진 입체를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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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

박종하 개인전
3.2~29 갤러리 초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 · 서양 사상의 공통점을 탐구하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는 매순간 달라지는 존재의 형태를 서예의 획과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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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구민정 · 심래정 2인전
3.10~6.11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핑크 포이즌(Pink Poison, 粉紅色藥)’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여기서 분홍색 약은 바로 소화제인 ‘펩토 비스몰’을 의미하는데 영롱한 빛에 비해 쓴맛으로 유명한 그것처럼, 전시는 음울한 분위기가 감지되며, 관람객은 흡사 속임수에 당한 것 같은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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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2)

김선형 개인전
3.13~4.28 갤러리 마리

지난 10여년 간 푸른색에 천착해 온 작가의 개인전. 정원을 모티프로 〈Garden Blue〉라고 명명된 이번 전시에는 자연을 푸른색의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한 정원이 아닌 자신만의 자연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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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2)

유현미 개인전
3.8~4.14 사비나미술관

사진과 회화, 평면과 설치작업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체험을 유도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온 작가가 이번에는 ‘수(數)’에 주목했다. 〈수(數)의 시선〉이라고 명명된 이번 전시에는 수학자의 눈을 통해 미술관을 하나의 도화지로 재해석한 드로잉 설치와 사진, 회화 등 작품 17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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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2)

청춘이 청춘에게 전함
3.15~4.28 포스코미술관

나이가 청춘인 젊은이부터 삶이 청춘인 중장년층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청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전시장 곳곳에 녹아있다. 누구나 한 번은 지나는 시기이기에 낯설지 않은 친근함을 갖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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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용적률 게임 :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
3.3~5.7 아르코미술관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재현한 귀국전. 도심 건축을 둘러싼 공적 규제와 사적 욕구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건축가들의 전략과 건축물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다가구 / 다세대 주택을 중심으로 조명한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건축가 36명(팀)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영상 섹션을 추가로 설치했다.

THEME FEATURE 광주화루

위 이호억 〈수덕사 대웅전 곁에서〉 2017

명칭부터 논쟁거리인 ‘한국화’는 익숙한 우리 그림을 서구 회화와 비교할 목적으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화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현재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은 아닐까? 이를 환기하는 한국화 공모전 〈광주화루〉(주최 광주은행)가 이목을 끌고 있다. 《월간미술》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 10명의 한국화 작가를 소개한다. 이들의 한국화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은 한국화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알리는 리트머스지일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화에 특화된 이 공모전을 계기로 공모에 대한 일반의 시선을 반성적으로 정리해본다. 작품들은 〈광주화루 10인의 작가전〉 (4.4~23,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ACC))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동시대 한국화의 젊은 보루
〈제1회 광주화루〉 공모전 선전작가 10인

구본아프로필구본아 Koo Bona
1976년 生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박사)
개인전_국내외 상하이, 타이베이 등
기획전 및 그룹전_
〈긍정의 아포리아〉(2015, 모스크바)
<자연으로 들어가다〉(2014, 오사카)
〈한중일 3인전〉(2011, 상하이)
바람난 미술공모(2014)
신진여성문화인상(2011)
송은미술대전(2005)

〈Physical Objects〉 한지 콜라주에 먹과 채색 100×280cm 2016

〈Physical Objects〉 한지 콜라주에 먹과 채색 100×280cm 2016

“폐허를 통해 미완성과 붕괴라는 이중성을 표현하며 일생동안 미완과 붕괴의 과정을 거치는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벽이라는 물(物)을 화두로 삼아 내가 말하려 하는 물은 단순한 사물이나 물성으로서의 물이 아닌 유기적 생명체들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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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1

김원 Kim Won
1982년 生
전북대 예술대학 미술과,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_서울, 전주 등 4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서울디지털대학교 미술상 수상전〉(2017)
〈전북미술의 현장〉(2016)
〈시대정신과 동양회화의 표현의식〉(2014)
서울디지털대학교 미술상 우수상(2017)

 

 

〈 alcoholic 〉 한지에 먹과 아크릴 200×488cm 2016

〈 alcoholic 〉 한지에 먹과 아크릴 200×488cm 2016

“나는 반복되는 상황과 그 안에서 버티기 위한 몸부림의 일부가 아마도 불안감과 불확실성, 강박과 폭발, 흥분 등과 연관되어 중독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고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순과 내면의 우울과 불안함, 공격성 등을 고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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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묵티프박경묵 Park Kyongmug
1981년 生
동아대 회화과,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_서울, 부산, 양산 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영호남 수묵화교류전〉(2016),
〈나는 무명작가다〉(2015),
〈열림 筆歌墨舞〉(2015)

 

 

 

〈경회루 무진(慶會樓 無盡)〉 종이에 먹과 채색 290×380cm 2011

〈경회루 무진(慶會樓 無盡)〉 종이에 먹과 채색 290×380cm 2011

“내게 예술이란 스스로를 찾아가는 놀이다. 놀이의 도구는 ‘붓’이자 그려진 자국은 캔버스에 담아진 마음의 흔적이며 사고된 작가의 감성이다. 작가는 실경을 근간으로 원경과 근경을 오가며 형상 속에 감춰진 뼈(骨)의 본질과 정서를 스며들게 하려 한다. 무념으로 바라본 자연에서 기존의 의미를 떠나 고정된 형태와 색상에 구애하지 않는 붓놀이로, 옛법을 배우되 머물지 않은 질서로 그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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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1

이지연 Lee Jiyun
1979년 生
홍익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07년부터 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한중 서예교류전〉(2016)
〈바람〉(2015)
〈여백 현대한국화-여성중심〉(2013)

 

 

 

〈바람에 물들다〉 한지에 수묵 97×236cm 2017

〈바람에 물들다〉 한지에 수묵 97×236cm 2017

“나는 자연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현상과 형상이 환경에 따라 유기적으로 무한히 변화하고 있으면서도, 소란스럽지 않다. 자연은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이 없다. 가치의 대소(大小)가 없다. 나에게는 구원의 세계이고, 화엄의 바다를 보는듯한 장엄함을 느낀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 헤매는 중에도 자연은 나를 숨 쉴 수 있게 한다. 자연의 변화는 나에게 현실에 대한 표상(表象)이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理想)에 대한 열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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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채영)이채영 Lee Chaeyoung
1984년 生
덕성여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 동양화전공 졸업
개인전_2009년부터 4회
기획전 및 그룹전_
〈Sensitive Reality〉(2016)
〈The Great Artist〉(2016, 2014)
〈안견회화정신〉(2014)
제4회 에트로미술대상 금상(2015),
종근당 예술지상(2015),
파이낸셜뉴스 미술공모전 입선(2010)

 

〈섬〉 한지에 수묵 130×162cm 2016

〈섬〉 한지에 수묵 130×162cm 2016

“이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는 장소들이 있다. 본인은 이러한 도시의 풍경들 즉. 일상에 연관된 장소들, 나 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들, 도시의 주택가와 낡은 건물들의 주변 풍경들에서 느껴지는 비정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고독하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변의 풍경들 사이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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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량 컬러이태량 Lee Taeryang
개인전_미국, 프랑스, 중국 등 총 27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인왕산프로젝트_특별전〉(2017)
〈안평의 시간〉(2016)
〈트라이앵글 프로젝트〉(2015) 등 190여 회

 

 

 

 

〈무경산수(無境山水)〉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94×97cm 2017

〈무경산수(無境山水)〉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94×97cm 2017

“내게 있어 작업은 ‘좋은 작업을 해야 한다’ 라는 명제에 대한 시도가 아니라 ‘좋은 작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이다. 내 그림형식의 명제가 그림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은 본질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려는 것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하나의 논리적 판단이나 근거를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명제는 아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명제를 통해서만 말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명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어떤 것도 말해질 수 없다.” 결국, 내 그림은 중요하지 않으며 정작 중요한 것은 내 그림 밖의 모든 것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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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억수정이호억 Lee Houk
1985년 生
중앙대 한국화학과 및 동 대학원 예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12년부터 6회
기획전 및 그룹전_
〈불안〉(2017)
〈한국화의 유혹〉(2016)
〈오토픽션-한국화의 유혹과 저항〉(2013)

 

 

 

〈시간을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 장지에 먹, 분채, 식물성 안료 125×193cm 2017

〈시간을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 장지에 먹, 분채, 식물성 안료 125×193cm 2017

“현장에서의 모필 사생을 통해 시간성과 감정을 필선에 담아, 작업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여기에 박제된 듯 고정된 동물의 그림자 따위를 분채로 칠해 올린다. 움직이는 식물과 멈춰진 동물. 개체의 속성에 반하여 연출하고 작업의 의도에 따라 숲에서 채집한 식물성안료로 염색하기도 한다.
유한한 삶의 가치를 움직이는 것과 멈춰진 것의 대비로서 드러내고자 한다.
우리는 시간에 속박된 유한한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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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슬인물2장예슬 Jang Yeseul
1988년 生
청강문화산업대 및 조선대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과정
기획전 및 그룹전_
〈Asia Young Art Festival〉(2016)
〈온새미로〉(2016)
〈현대한국화 길을 묻다〉(2016)
대한민국한국화대전(2016)
무등미술대전(2016)
행주미술대전 특선(2016)

 

 

〈순환 Ⅱ〉 한지에 수묵 130.3×162.2cm 2016

〈순환 Ⅱ〉 한지에 수묵 130.3×162.2cm 2016

“우주의 순환과 움직임을 한국화의 가장 기본이자 정신이 되는 지(紙), 필(筆), 묵(墨)을 이용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순환하는 먹의 형상성은 우주를 채우고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기운이 충만한 생기의 근원이다. 묵(墨)의 색(色)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으며, 우주의 색이자 하늘의 색으로 작가의 감성을 재해석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작가는 작품 속의 우주를 통해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본연의 섭리에 따르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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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흡1하성흡 Ha Sungheub
1962년 生
전남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_1994년부터 총3회
기획전 및 그룹전_
〈김광석 20주기 추모전〉(2016)
〈잊지 않겠습니다〉(2014)
〈5·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전〉(2010)

 

 

 

〈금강전도〉 한지에 수묵담채 92×137cm 2016

〈금강전도〉 한지에 수묵담채 92×137cm 2016

“전통회화는 물론 전통적 미감을 고수한 진경산수와 인물화를 현대적으로 적용해 1980년 이래의 사회와 삶, 풍경과 자연을 먹을 이용한 간결한 색을 가미해 그려내려 했습니다. 또한 색에 대한 굶주림으로 인해 자유분방한 틀을 깨뜨리는 데 주력하는 동시에 서사적 인물, 우리 산천의 의미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주된 소재로 삼았고, 최근에는 화면공간을 크게 확장한 수묵과 채색의 실험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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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주2하용주 Ha Yongjoo
1979년 生
조선대 미술대학 한국화과, 중앙대 대학원 한국화학과(석사) 및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_2007년부터 총8회
기획전 및 그룹전_
〈수묵시각 2016〉(2016)
〈구인전〉(2015)
〈신세계갤러리 선정작가전〉(2013)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 장지에 먹, 분 244×546cm 2012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 장지에 먹, 분 244×546cm 2012

“나와 타자, 원활한 소통과 걸러진 소통을 통한 관계의 수많은 레이어의 위장을 부정하면서도 개인과 집단, 구조, 체계 안에서의 익숙하며 필연적인 상황을 인정합니다. 작품의 형식에서 보이는 방식은 화면 안에서 친절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상을 온전히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인지, 사람 모양을 한 것인지, 풍경인지 풍경 같은 느낌인지는 시지각을 통해 1차적으로 판단하고, 작품을 경험하는 자의 정서와 가치관을 통한 주관적 요소로 인식되고 정의됩니다. 보이는 것의 최소 기준입니다.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작품의 화면 속 이미지는 그 무엇의 이미지일 뿐 그 무엇 자체일 수 없습니다.
사회 안에서 당신이 속한 시간, 공간, 상황,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업입니다.”

EXHIBITION FOCUS Imaginary Asia

AES+F 〈신성한 알레고리〉 5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9분 39초 2011
Ⓒ AES+F, Courtesy of the artist & Multimedia Art Museum Moscow and Triumph Gallery

상상적 아시아

서구를 중심으로, 승자를 중심으로 기술되어온 역사의 관습에 순응하지 않는다.
아시아 권역 고유의 역사와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 축적된 기억을 좀 더 주체적으로 반추하고 현재로 소환한다. 이에 관한 일련의 이야기가 지난 3월 9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상상적 아시아전〉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시 제목 ‘상상적’에 주목하자. 일방적인 서술과 기록이 아니다. 17명(팀)이 참여해 23가지로 풀어낸 ‘무빙 이미지’에 눈과 귀를 집중해보자. 여유 있는 관람시간은 필수 지참이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호 추 니엔〈미지의 구름〉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2011

호 추 니엔〈미지의 구름〉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2011

확실성에 관하여

이병희 | 독립큐레이터

기획 의도이자 이 전시의 특징은 우선 “무빙이미지”로 총칭하는 시간매체들을 주로 싱글채널로 그룹상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과 역사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존의 공식적인 서술이나 해석과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상상적 시간 이미지를 통해서 재구축하려는 점이 특징적이다. 나아가 경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이,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감각과 정서적 공동체 형성이나 소통방식의 공유, 새로운 수평적 관계상을 상상적으로 전망할 수 있느냐의 문제까지 던지고 있다.

참여 작가들을 일별해보면 우선 공통적으로 ‘아시아’의 근대성을 포스트 식민적, 포스트 민족주의적, 해체 혹은 다중 매체 차원에서 다뤄온 작가들임을 알 수 있다. 비판된 지점은 전지구화와 새로운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신자유주의적 경제-정치적 거래로부터 초래된 문제와 갈등, 소외, 고립 등이고, 나아가 생명의 단독성 차원에서 귀환을 감각적, 정서적인 차원에서 다뤄온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지금은 새로운 보수화와 파시즘(민족주의적 관점에서)의 대두라는 ‘경직’의 시기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 등을 절실하게 염원하고 개발하고자 하는 ‘소프트한’ 미디어 세대들의 출현이 다소 아이러니한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 전시를 단순한 반복 소개 차원에서 보기보다는 다각도로 접근해 미래적 시간(가능성의 지점)을 단지 메시아적 ‘기다림’으로써가 아니라, 실천의 측면에서 그리고 나아가 트라우마적 조우와 정서적 귀환, 충동의 재발굴 측면에서 가늠해보는 기회로 볼 필요가 있다.

전시 출품 작품군을 몇 가지로 엮어볼 수 있는데, 우선 ‘지역’ 중심의 역사서술과 내러티브 위주의 작품군이 있다. 다음으로 근대적 내러티브가 포스트 근대적 매체 해체와 재조직의 과정에 등장하는 작품군으로, 여기서는 근대 주체의 소외, 재고립, 확장, 상실 이후 타자성들의 다양한 형태로의 귀환을 볼 수 있다. 다층감각과 정서의 전환 지점에 아피찻퐁의 다섯 개의 싱글채널 에피소드를 둘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전환의 지점으로 볼 수 있으며 이어서 다음으로 감각적, 정서적, 새로운 판타지적 역할이 어떻게 소비가 아닌 새로운 확실성의 영역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담지하면서, 마지막 지점으로 넘어가게 된다.

우선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선형적 시간성에 근거한 작품군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처음에 보게 되는 것은 아이다 마코토의 작품이다. 자칭 일본 수상이라는 자의 퍼포먼스 연설인데, 이 작품에서 연설자는 ‘영어’ 공용화의 불편함을 퍼포밍하면서 전지구화를 적극 철회하고 역사를 되돌려 민족주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날리니 말라니와 양푸동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사실 아시아 역사의 실질적인 이유와 그 중심에 ‘폭력’이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시아 고유의 민족주의와 가부장제, 혹은 계급주의가 전지구화를 통해 청산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세탁되었고, 이어 보다 중층적인 ‘피해자’를 반복 재생산하고 심지어 미디어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성찰적, 정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포스트 전쟁 증후 혹은 트라우마를 매체적으로 다룬다고 볼 수 있는 작품군에서는 근대적 시간성의 해체와 내러티브의 트라우마적 귀환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이미지로 재연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추억과 ‘지뢰’라는 매몰-잠재된 살상을 서정적으로 다룬 권하윤의 〈489년〉과 베트남 전쟁에서 일본의 패배라는 소재를 갖고 현대 일본 사회의 측면을 강박적인 리인액트먼트(재연) 방식을 통해 다소 증상적 후유증의 상태로 다룬 딘 큐 레의 〈모든 것은 재연이다〉가 조우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메이로 고이즈미의 〈영원한 처녀〉는 민족주의가 초래한 민족 주체성의 상실과 전지구적 소비대상화에 대한 포스트 트라우마적, 메타 미디어적 작품이 된다.

이어서는 아시아의 전지구화가 가져온 신자유주의적 파괴성이 단지 인권적, 지리적인 차원과 같은 타자화의 영역뿐 아니라 고유한 주체의 단독성의 영역에서 자리 잡고 있던 주술성, 판타지, 심지어 마술성과 미신성 등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미신적 혹은 판타지의 영역이 물질성의 차원으로 비천해진 것을 보여주는 호 추 니엔의 〈미지의 구름〉과 아흐마드 호세인의 작품 〈제4단계〉는 여기에서 한 쌍을 이룬다.

염지혜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1분 30초 2015

염지혜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싱글 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1분 30초 2015

아래 쉬빙 〈지서(地書): 팝업북(낮)〉(왼쪽)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6분 20초 2015〈지서(地書): 팝업북(밤)〉 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3분 50초 2016 © Xu Bing Studio

 쉬빙 〈지서(地書): 팝업북(낮)〉(왼쪽)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6분 20초 2015〈지서(地書): 팝업북(밤)〉 영상 설치, 컬러, 사운드, 3분 50초 2016 © Xu Bing Studio

키워드로서 무빙이미지의 진면목

보다 일상적으로 친근해진 디지털 매체들의 다중시간적, 혼성적 타자성과의 조우 차원을 볼 수 있는 작품군에 염지혜의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이 있다. 이어 점차로 “무빙이미지”의 ‘반복-다중 시간성’과 새로운 소통방식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 감을 알 수 있고, 여기서 쉬빙의 디지털 시각언어_기호 책을 흥미롭게 열람할 수 있다. 쑹둥의 〈시작 끝〉의 무한 반복적 이미지와 직접적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시적 접근과 딘 큐 레의 〈네 순간의 무역센터〉로부터 우리는 전지구적 트라우마가 공유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능성 자체로 추상적으로 봉합되어 잠재성의 차원으로만 드러나는 것인지를 보게 된다.

아피찻퐁의 5개의 싱글채널 공간은 전체 전시에서 갈라짐의 지점, 경계 지점의 구실을 한다. 그동안 알려졌다시피 아피찻퐁은 포스트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온정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배제된 생명의 영역이 어떻게 미디어적으로 귀환하는지를 보여왔다. 이에 우리는 역사와 한 국가, 지역의 이야기가 보다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시·공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반복되며 웅얼거리는 차원에서 폭로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를 통해 전설, 과거, 꿈, 트라우마, 판타지 등과 같은 비언어적, 비제도적, 상상적, 상징 이전의 상태, 혹은 무의식이나 전의식 상태와 같은 단독성의 영역이 어떻게 역사성이 실재적인 차원 즉 파편적 전체로, 혹은 이미지적 서술로, 혹은 주체-타자 간의 관계 항 속에서만 부상할 수 있는지를 역설케 된다.

만일 우리가 이 기점을 지나, 언뜻 어떤 변환의 기점을 감지할 수 있었다면, 하룬파로키의 다큐멘터리는 단지 다양성의 비교가 아니라, 세계의 전지구화와 그 역사의 궤적을 다시 걷게 되는 길잡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와엘샤키와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품에선 에피소드 혹은 소문이 단지 개인적인 상상적 내러티브로서 이국적이거나 흥미로운 차원이 아니라, 심각한 실재성의 차원일 수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잠시 새롭게 획득될 확실성은 혼성적이고 다중적 시간의 패러다임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작품군에서는 일종의 봉합과 무한반복이 어떻게 하여 근대적인 시간성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시간성에서 정서와 감각으로 확장되는지를 보게 된다. 전시장의 마지막 지점에서 문틴&로젠블룸, AES+F의 작품을 보게 되는데, 파토스적 인물들의 다소 장엄해보일 수 있는 포스트 휴먼적 매체퍼포먼스 이미지가 특징이 된다. 즉 근대의 잠재성이란 것이 전지구화와 신자유주의적으로 ‘소비’되고 남겨진 ‘이미지’들이 되었을때, 과연 이들이 다시 다층적인 감각과 복합적인 감성, 정서와 순수 형식으로의 충동 등을 통해 산-죽은 상태가 아닌 생동하는 포스트 휴먼적 내러티브를 새롭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때 어떤 확실성에 기반을 둘지, 혹은 요청되는지를 되묻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과연 새롭게 감각적 정서적으로 귀환해온 단독성의 영역들과 새로이 발굴될 세대성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혼성적 (포스트 휴먼적 관점의) 시간을 내다볼 때 어떤 기틀이자 잠재성이 되며 또한 어떤 기점이 될 수 있겠는가. 물론 전시 관람의 시작에서 꿈꾸고 상상했던 새로운 내러티브, 혹은 시간적 경험이 비록 꼬박 하루가 걸리는 관람이라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에 획득될 리는 없다. 실천의 시간은 아마도 분명한 확실성에 기반을 둘 것이며 현대성이란 갈라짐의 연속이고, 역사란 파편화된 고유 요소들이 순수 형식으로서의 충동처럼 출몰하는 시간이라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

 

EXHIBITION TOPIC

위 〈문자도 영상〉 원화 안상수, 디지털 재제작 스튜디오 호호호, 사운드 디자인 지미세르 서울시립미술관 2017

디자인이 어떤 용도나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형식적, 물리적 개입 과정과 그 조형적 결과를 지칭한다면, 글자는 특정 언어를 표기하는 수단이자 그 자체로 조형 원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디자인이다.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한국인이 태어나자마자 접하는 디자인이다. 시각디자이너 안상수는 한글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디자인”으로 생각하고 한글의 조형성을 공감각적으로 탐구해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 중인 SeMA Green 2017 〈날개.파티〉(3.14~5.14)는 안상수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대표 작품들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 아카이브를 통해 그가 추구해 온 디자인의 철학적, 실천적 의미를 한 자리에서 살펴본다.

PaTI 아카이브, PaTI 중간공간연구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2017

PaTI 아카이브, PaTI 중간공간연구소,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2017

파롤(parole)도 랑그(langue)도 아닌, 방법

최범 | 디자인 평론가

〈날개.파티〉는 디자이너 안상수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협동 전시이다. 날개는 안상수의 별명이며 파티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 Paju Typography Institute)의 약칭이다. 파티는 안상수가 설립한 학교이다. 안상수는 파티 설립에 대해 학교를 디자인하는 일(designing school)이라고 하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디자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날개.파티〉는 안상수의 확대된 개인전이면서 동시에 단체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개 섹션과 파티 섹션. 먼저 날개 섹션을 보면 그의 대표작인 안상수체의 원리를 보여주는 작업부터 문자도, 문자 영상작업, 문자 타일 벽화작업 등이 다양하게 연출되어 있다. 안상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작업의 전체적인 연결성은 알지 못하더라도 ‘자유롭고 다양한 작업을 하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안상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이어가면서 그의 작업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날개 섹션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해서, 안상수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파티 섹션은 꽤 많은 양의 작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어쩌면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개교 5년차를 맞은 파티 학생들의 다양한 작업과 활동 내용을 제한된 공간에서 보여주다 보니 체계적이지 않다. 다만 일반 미술대학과는 확실히 다른 실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전시 구성에 대한 인상을 넘어서, 안상수와 파티를 어떻게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까. 앞서 말한 확대된 개인전이나 협동 전시라는 외형적 차원을 넘어서서 말이다. 먼저 안상수가 장르를 넘나드는 다종(多種) 작가라는 사실은 전시를 봐도 그렇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한글 타이포그라퍼인 안상수는 안상수체를 만들어내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그것이 그의 ‘파롤(parole)’이다. 그런데 그가 개발한 안상수체는 단지 파롤을 넘어서, 이른바 ‘탈네모꼴’ 글자라는 시각적 형식의 ‘랑그(langue)’를 만들어냈다.

안상수체가 랑그가 되었다 함은 그것이 크리에이터 안상수 개인의 발화로서의 파롤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시각적 문법을 형성했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안상수체는 차라리 랑그화된 파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안상수는 안상수체라는 파롤을 통해 랑그를 만들어냈고, 그 랑그에 기반을 두고 다시 새로운 파롤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문자도 〈홀려라〉(2017)와 도자기 타일 벽화 작업 등은 랑그인 안상수체가 다시 새로운 파롤로 갈라져서 전화(轉化)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도 안상수는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올라운드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겠다.

〈날개.파티〉 전시 광경 2017

〈날개.파티〉 전시 광경 2017

문화를 생산하는 방법론으로서 디자인

그런데 크리에이터 안상수에게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파롤이나 랑그보다도 오히려 방법이 아닐까. 그것은 일종의 창작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작가에게 철학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것은 모더니즘 미학이나 리얼리즘 미학 같은 반열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창작방법론이란 창작의 과정이 일정한 이념과 뿌리를 가지되 그것이 일관된 조형적 전개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상수는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방법론을 확립한 보기 드문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방법론은 한글과 세종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뿌리에서 시작하여 서구 모더니즘 미학을 관통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래픽 언어들을 산출해낸 과정 전체를 일컫는다. 이러한 안상수의 방법론은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창작 이념의 뿌리는 한국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모더니즘 미학과 조형 언어로 해석하여 빚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상수에게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그의 조형 어휘로서의 파롤도, 그러한 파롤이 구축한 랑그도 아닌, 일종의 풀 프로세스(Full Process)로서의 방법이다. 이점이 그를 다른 크리에이터와, 무엇보다 현대 한국문화의 일반적 양상 전체와 구별짓는 요체이다. 현대 한국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 생산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적인 것이다. 탈식민주의 연구자 조혜정은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여기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가지 못한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미술이건 디자인이건, 아니 그 이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 현대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문화 생산의 프로세스가 결여되어 있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서구 문화의 어설픈 흉내 내기로서의 파롤이거나, 어쩌면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옹알이 정도라고 하겠다. 랑그 없는 파롤은 잡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알아듣지 못할 웅성거림일 뿐이다. 한국적 미술, 한국적 디자인 대부분은 랑그 없는 파롤이며, 옹알이다. 이처럼 개별 작가의 개별적인 목소리, 파롤만이 넘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웬만한 거장이라 하더라도 감히 랑그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상수는 드물게 랑그를, 랑그로서의 파롤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안상수가 파롤이 아니라 랑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말했듯이 그에게 프로세스로서의 방법론이 있기 때문이다. 기실 문화는 프로세스다. 프로세스로서 문화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식민지 근대화를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안상수의 디자인 학교 프로젝트인 파티는 파롤도, 랑그도 아닌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문법이 만들어진다. 문화는 문법이며 문법은 방법이며 방법은 프로세스이다. 과정신학(화이트헤드)이 아니라 과정미학이다. 그런 점에서 파티는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상수의 방법은 어디까지나 안상수 버전의 모더니즘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본질주의적이며 일원론적이다.

자신의 문화 생산 방법론을 갖지 못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안상수의 모더니즘 프로세스는 매우 참신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이러한 모더니즘 프로세스가 계속 재생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안상수 모더니즘’은 장차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을 생성하기 위해 필요한 발판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이 해체해야 하는 것은 서구 모더니즘이 아니라 안상수 모더니즘일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파롤도 랑그도 아닌 방법이다. 바우하우스와 파티의 유사성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

〈홀려라〉캔버스에 아크릴 193.9×259.1cm(각) 2017

〈홀려라〉캔버스에 아크릴 193.9×259.1cm(각) 2017

* 조혜정,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 1992. 또하나의 문화, 22쪽.

CRITIC 아이작 줄리언 〈플레이타임〉

2.22~4.30 플랫폼  -  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박제철 | 영화 ·  미디어 이론 연구자

2004년 부산비엔날레, 2008년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2011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가진 개인전까지 이미 몇 번의 전시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영국의 흑인 게이 영화감독이자 영상설치 작가 아이작 줄리언의 7채널 스크린 설치작업 〈플레이타임(Playtime)〉(2014), 2채널 스크린 설치작품 〈자본 KAPITAL)〉(2013), 싱글 채널 비디오 〈표범(The Leopard〉(2007)이 플랫폼-엘에서 전시 중이다. 이 작품들은 주제와 매체 미학 양면에서 최근 그의 작업 경향에 어떤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서구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복잡한 인종적, 성적, 성별적 정체성과 할렘 르네상스의 연관성을 탐구한 시적 다큐멘터리 〈랭스턴을 찾아서(Looking for Langston〉 (1989)나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영화의 역사를 탐구한 다큐멘터리 〈배다스 시네마(BaadAsssss Cinema〉(2002)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줄리언의 관심은 주로 흑인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그것의 문화적 의의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래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서구에 동화된 2세대나 3세대 흑인 디아스포라보다 최근 전지구화의 흐름과 더불어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남반구(global South) 주민들의 북반구(global North)로의 이주’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또한 극장 상영을 겨냥한 단일 스크린 기반의 필름이나 비디오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인종 간 동성애에 연루된 남성의 신체를 육감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하던 과거와 달리 그의 최근작은 대형 갤러리나 뮤지엄에서의 전시를 염두에 둔 다수의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설치 형식을 주로 취하며, 디지털 합성을 통해 가상적 신체와 현실적 신체 간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드는 양상을 보여준다.
〈표범〉은 이러한 변화의 이행기적 성격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주목할 만하다. 최근 중동 지역 난민들이 지중해를 통해 서구로 대규모 이주하는 현상을 시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줄리언의 새로운 관심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종 간 동성애에 연루된 남성 신체의 육감적 묘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원래 3채널 스크린 형식으로 전시했었으나 이곳 플랫폼-엘에서는 싱글 채널 비디오로 재편집되어 상영됐는데, 이 점 역시 매체 미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행기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타임〉과 그 자매작 〈자본〉은 그가 더 이상 흑인 디아스포라 남성의 퀴어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본, 인간, 이미지의 전지구적 흐름이 가져오는 파국적 효과라는 새로운 관심사로 작업 방향을 완전히 선회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건축학적으로 배치된 7개의 스크린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음악을 연주하듯 이미지를 전개하는, 〈플레이타임〉에 드러나는 매체 미학적 특성은 그가 어떻게 다채널 영상설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물론 〈플레이타임〉은 내러티브 영화의 관습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장만옥, 제임스 프랭코 등 유명한 전문배우의 캐스팅이나 매끄럽고 유려한 미장센과 촬영을 보자면 가히 이 작품을 다채널 스크린 설치의 블록버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또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상이한 방식으로 겪고 있는 지리적, 계급적, 인종적으로 다른 세 인물-파산한 아이슬란드인, 승승장구하는 런던의 미술품 경매사, 자식 부양을 위해 가사 노동자로 두바이에 온 필리핀 여성-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의 파국적 효과를 비판하는 이 작품의 내러티브도 이제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신선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오직 관객이 7개의 스크린 중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스크린 위주로, 즉 단일 스크린 기반의 영화 관람 양식으로 〈플레이타임〉을 감상할 때만 가능하다.
조나단 벨러의 ‘주목가치이론(attention theory of value)’에 따르면 미디어가 산출하는 이미지의 경제적 가치는 그 이미지에 대한 관객의 주목이 축적됨에 따라 증대된다. 따라서 자연히 가장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앙의 가장 큰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가장 큰 경제적 가치를 잠재적으로 획득할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7개의 불균등한 배치를 통해 줄리언은 이미지 경제가 공평한 자유로운 경쟁에 열려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중앙의 스크린으로부터 배제된 여타의 가능한 이미지들을 주변에 위치한 6개의 스크린을 통해 회복시킴으로써 독점적인 전지구적 미디어 산업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주목 경제적 실천을 매체 미학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플레이타임〉은 줄리언이 이 작품의 자매작이라고 말한 〈자본〉을 매체 미학적으로 보충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자본을 안무하기(Choreographing Capital)’라는 제목으로 줄리언이 기획한, 데이비드 하비의 강연을 기초로 제작된 2채널 스크린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에서 하비는 자본은 본래 비물질적으로 객관적이며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에 관한 마르크스의 고전적 통찰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이 때 청중으로 참여한 유명한 문화연구학자 스튜어트 홀(이후 2014년 2월 타계)이 생산 과정과 계급에만 초점을 맞추는 마르크스의 고전적 이론은 소비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반론을 펼친다. 〈플레이타임〉은 줄리언이 스튜어트 홀의 이러한 반론을 고려하여 〈자본〉을-줄리언의 영상 작품 〈자본〉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까지   -   매체 미학적으로 “다시 쓰는,” 즉 데리다적 의미에서 “대리-보충”하는 시도의 산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 아이작 줄리언 〈플레이타임 Playtime〉 7채널 영상설치 67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