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美術 RE-READ
《월간미술》 2004년 11월호 테마기획 〈삼성미술관 리움〉
그때의 미술관과 지금의 미술관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의 시작을 다시 읽다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이하 호암, 리움)의 역사는 복잡해 보인다. 소장품에 엮인 정치경제적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미술관 건축과 전시 방식에 대한 긍·부정적 평가 때문에도 그렇다. 이렇게 화려함에 숨은 뒷얘기 탓인지 이 규모 있는 미술관에 대한 논의는 미술관으로서의 성격과 역할보다 그 외피에 관한 경우가 많았다. 어찌됐든 호암과 리움의 첫 행보는 야심만만하게 미래를 겨냥하고 있었다. 일례로 전 리움 수석부관장 홍라영은 《월간미술》 2004년 11월호에 리움이 “21세기형 미술관”으로서 국내외 미술신에 큰 영향을 주는 장으로 역할하기를 바란다는 논지의 말을 남겼고, 개관 후 10년간 미술관은 그 역할을 해냈다. 10월 5일 호암과 리움이 재개관 소식을 전해왔다. 기자는 이에 맞추어 《월간미술》에 남아 있는, 당시 미술 언론이 각 미술관에 보낸 찬성과 반대, 그리고 기대를 다시 읽어봤다.
《계간미술》 21권 1982년 봄호에는 같은 해 개관한 호암의 소식을 비롯해 국내외 미술관의 변천과 역할을 종합적으로 짚어보는 기사가 실렸다. 그중 이구열의 글 〈한국의 박물관·미술관 역사와 실태〉는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국공립·사립 박물관 및 미술관의 실정과 발전양상을 면밀히 평했다. 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본 요건은 첫째가 컬렉션이며, 다음이 전문적 운영자이고, 세 번째가 더 좋은 시설과 공간의 건물이다”라며 박물관·미술관의 실태 점검이 요구된다는 논지를 전했다. 뒤이은 기사에는 기존 미술관을 향한 질책과 달리 호암의 개관과 그 소장품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이 실렸다. 본문에는 호암이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관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미술관이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상응하는 것”이라 쓰여 있어 새로이 떠오른 미술관에 대한 당시 미술 언론의 기대감을 전한다.
시간은 흘러 2004년이 되었다. 같은 해 《월간미술》 11월호에는 리움의 “포스트모던 건축”을 조망하는 12페이지 분량의 기사가 실렸다. 1995년 시작된 프로젝트가 끝난 후 모습을 드러낸 리움도 개관 당시의 호암 못지않은 촉망을 받았다. 하지만 건물에 대한 첫인상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기사 〈삼성미술관 리움의 건축미학〉에 실린 최윤경의 글 〈미술관 공간의 체험적 미학〉은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참여한 미술관 건물에 대해, “건축물 하나하나는 탁월하고 훌륭하지만, 이 개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양상은 상생의 논리를 내재한 하나의 집합체가 아니라 변종과 이종의 혼재로 비춰지는 것”이라 비평했다. 이어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를 건축한 렘 쿨하스는 인터뷰에서, 리움 프로젝트는 “하나의 미술관이라기보다 건물이 컬렉션의 일부를 이룬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방향성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하나의 미술관에 전시되는 리움의 특성에 따라 개성 강한 유명 건축가들이 ‘소장품 일부로도 볼 수 있는’ 건축을 한 탓에 그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 것이다.
그러나 리움은 이구열이 좋은 미술관의 조건으로 꼽았던 세 번째 요소를 갖췄고, 그 규모에 걸맞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당시 국공립 미술관에 버금가는, 때로는 그 이상의 기획력으로 세계적인 작가들을 초대하고, ‘국보급’ 컬렉션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미술관이 직면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호암과 리움이 재정비를 할 동안 해외 작가들의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국내에 다수 개최되었고, 박물관·미술관은 기획력을 보여주는 일 외에도 미술관이 어떻게 다수를 차별 없이 지속적으로 포용하며 무엇을 소장하고,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적극 고민해야만 ‘좋은 미술관’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실로 재개관한 두 유명 미술관에 관람객이 기대하는 바는 호암과 리움의 안정적인 운영 그 이상이며 작품을 예술로 인식하는 다수의 눈과 생각을 미술관 정책에 포용하는 것일 테다. 사설이라 할지라도 기업의 움직임에 따라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는 건 어찌됐든 미술관 자체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 문화적 메세나 활동을 위해서든 기업가의 이상을 대변하든, “MUSEUM 1 꼭대기의 스카이라인은 이곳이 미술관이며 일종의 공공시설임을 표시”한다고 밝혔던 마리오 보타의 말처럼, 한번 지어진 미술관은 일정 부분 이상 공공의 것이기에.
《계간미술》(1982, 봄)에 실린 기사 〈4월 22일 개관 호암미술관 국보 지상전〉
“한국 건축미를 살린 1500여평의 본관과 조각정원”이라는 캡션으로 소개된 호암미술관 전경사진 및 당시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이병철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글: 조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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