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현대조각가와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금산사미륵불 3D 이미지 사진 제공: 오제성
현대조각가와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과 청주시립미술관은 한국 근대조각의 초석 김복진을 재조명하고 전후(戰後)조각의 전개와 현대조각의 확장을 다루고자 협력기획전 《김복진과 근현대 조각가들》을 준비하였다. 이 전시는 김복진의 유실된 조각을 사료연구 및 첨단 기술로 재현하는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와 김복진과 후대 조각가들을 조망하는 총 3부로 구성되었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스틸컷) 1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022 영상: 오제성
〈소년〉(1940) 복원 아카이브
동시대 기술을 응용해 이병호, 장준호가 복원한 〈소년〉(1940)
모험을 준비하며
김복진은 한국 최초의 근대조각가지만 전쟁으로 인해 다수의 작품이 소실되었다. 그의 작품을 사진과 기록으로만 접할 수 있는 것도 큰 비극의 일부라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미술사가, 역사가들이 김복진을 주목하고 있고 그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이번 기획 참여가 즐거웠던 이유는 전시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에 현직 조각가들이 김복진의 후배로서 참여하며 폭넓은 의견 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각가 이병호, 장준호는 소실된 김복진의 작품 재현 제작을 맡고, 권용주는 전시 디자인 설계 및 조성 전반을 진행했다. 필자는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전반의 사진 및 영상 제작에 참여하면서 전시 진행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의 사전 연구 과정에서 김이순, 윤범모, 최열이 인터뷰이로 참여하여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조각을 둘러싼 주제들을 심도 있게 탐구했다.
조각가 김복진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한 선행연구는 단순 과업을 넘어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스터디와 리서치에 가까웠다. 국립현대미술관 채연 학예사의 주도로 방대한 분량의 아카이브를 열람하고 재구축하였는데 『한국현대미술 전집』, 『조선미전』과 같은 도록 스캔을 시작으로 김복진의 육필원고, 연구자료, 기사 등 포괄적으로 사진과 문헌을 수집하여 연보로 재구축하였다. 아카이브는 다시 김복진 연구를 선행한 비평가 3인의 인터뷰로 이어졌다. 김복진 자료를 포함한 방대한 근현대 아카이브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비평가 최열을 통해 단순 장식에서 벗어난 김복진 작업을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고, 『현대조각의 새로운 지평』의 저자 김이순과의 인터뷰에서 구상조각, 형상조각으로 이어지는 전후 한국 조각이 만개하는 현장을 간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김복진 연구』의 저자 윤범모 인터뷰로는 〈소년〉, 〈백화〉,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을 중심으로 작품의 개별적 의미를 파악하였다. 인터뷰는 사전연구 차원에서 진행되었지만, 영상으로도 기록하여 전시장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문적인 견해를 어깨너머로 배우며 근대조각이라는 본질, 근원에 한국사와 나란히 접근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후배 조각가로서 조각에 대한 태도와 의식을 배울 수 있는 조각적 체험이었으며 사전 연구는 재현작을 위한 기초체력이 되었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 백화〉목조 40×40×90cm 2022 제작: 이병호, 장준호
근대기의 조각가들 섹션. 김경승 〈소년입상〉 청동 38×41×149cm 1943(1971 주조)
전시는 근대기의 조각가 윤효중 김경승 윤승옥, 전후구상조각가 최만린 오종욱 백문기 김세중 최종태 심정수 고정수 권진규, 현대조각가 김영원 류인 구본주 임송자 권오상 천성명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세 번의 다른 모험
작품 재현은 이병호, 장준호 주도로 진행되었다. 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는 〈소년〉, 〈백화〉를 재현하고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일부를 1:1 크기로 재현하였다. 이 세 가지 기획의 가장 큰 주안점은 실기적 재현에 있었다. 모각(模刻)은 흔히 학제 내에서 시각적 작품 감상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실기 역량을 증진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업기법이다. 모각을 통해 면을 해석하고 덩어리를 형성하는 기법적 측면은 물론 작가가 대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의식적 측면까지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체험자의 조각적 경험으로 체화할 수 있다. 때문에 두 조각가가 이 프로젝트에서 실기적 측면, 즉 ‘제작으로서의 연구’를 강조하였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경우 정면 사진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측면과 배면을 추측하기 위해 모델을 활용해야 했다. 전명은 작가의 추천으로 골격과 근육이 발달한 체조 선수를 섭외하여 ‘소년’의 정면 자세를 중심으로 3D 스캔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다각도로 입상의 형태를 추론하고 대략적인 동세와 근육의 방향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데이터는 이후 실재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골조 작업과 초반 소조 작업에 크게 활용되었다. 골조를 만들고 흙을 붙여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후에는 최대한 소년의 몸과 닮은 모델이 필요했다. 이 또한 보안1942의 인턴 큐레이터가 흔쾌히 모델 역할을 하여 왜소하지만 강인한 소년의 모습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해상도 사진을 분석하여 흙 질감을 묘사하며 마무리하였다. 작업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틈틈이 비평가 윤범모, 안소연의 조언을 받아 흙을 뜯고 붙이기를 몇 달간 반복하였다. 〈소년〉의 사진이 흙 작업의 상태로 남아있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기록을 바탕으로 석고로 캐스팅하였지만 실제 최종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앞으로도 불가사의할 것이다. 따라서 후대에 발견될 자료와 연구를 대비하여 최종 재현작 소년을 스캔 후 변형 가능한 3D 데이터로 구축하였다.
김복진의 〈백화〉는 세 가지 다른 원형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 사진들을 비교해 배우 한은진을 대상으로 흙으로 원형을 만들고 그 작업을 토대로 다시 목각을 진행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위의 제작방식에 착안하여 이번 재현은 3D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 조각을 선행하였다. 가상 환경에서 한복의 재질과 옷 주름의 형상을 디지털 조형 프로그램을 통해 시험해볼 수 있었다. 김복진이 향토성을 강조하였던 사실로 보아 전통 불상에서 보이는 길고 가는 층단식(層段式)의 옷 주름을 〈백화〉의 해부학에 맞춰 다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도록 『조선미전』의 고해상도 촬영도 이번 재현에서 큰 역할을 하였는데 족두리의 엽(葉)이 오각형이 아닌 육각형이며 눈에 쌍꺼풀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3D 소프트웨어상에서 재현한 〈백화〉 데이터는 실제 조각으로 도출하게 되는데 문헌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은행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다. 작품은 CNC로 가공하여 물리화하였다. 보편적으로 2차원 가공에 특화된 CNC를 전면 3차원 가공에 이용했다는 점도 기술적으로 큰 성과다. 마무리는 장준호 작가의 손끝으로 끌과 망치를 사용하여 세밀하게 완성하였다.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은 김복진이 만든 12m 크기의 불상이다. 법주사의 콘크리트 대불이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되며 금산사 본존불이 유일한 김복진의 대형, 공공 조각으로 남았다. 거대한 크기의 불상이 실내에 꼭 맞게 봉안되어 있어 데이터 구축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여러 논의 끝에 드론을 활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불상의 전면을 근접 촬영할 수 있었다. 미륵전 안에서 점차 떠오르는 드론이 본존불의 두상을 정면으로 촬영하는 순간 밀려오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김복진이 바라보고 구상하고 손으로 다듬었던 미륵불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온전히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드론은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스캔하였고 이 데이터를 통해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었던 부분부터 미륵불의 온전한 비율, 디테일, 뒷모습 등 세부사항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작품이 실재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소년〉, 〈백화〉와 이번 재현의 주안점은 매우 달랐다. 너무 높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던 본존불의 얼굴을 현장 촬영에서 느낀 감동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을까. 3D 데이터를 토대로 김복진이 눈을 마주쳤을 미륵불의 얼굴 일부를 소프트웨어상에서 실측 크기로 재단하여 P.L.A 코일 프린팅을 진행하였다. 5대의 프린터가 30일간 쉴 새 없이 움직여 작품을 출력하였고 벽에 거치할 수 있는 브라켓을 나무로 제작하여 부착하였다. 전시장에 본존불 얼굴을 설치하며 김복진의 시야를 비로소 확보했다는 안도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류인 섹션 전경. 류인 〈입산Ⅱ〉합성수지 102×160×180cm 1984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새로운 모험을 향해
〈소년〉, 〈백화〉,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의 3D 데이터 구축은 기존의 김복진 연구를 확장하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축적의 방향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존 석고, 목조, 주물 등 물리 형태의 재현작으로는 연구가들이 교정, 수정, 변형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조각을 가상세계로 불러들임으로써 자유롭게 데이터를 수정하는 연구가 가능함은 물론 유희적 차원의 변형 또한 가능해졌다.
김복진 작품 재현이 의미를 더하는 이유는 근래 산업에서 사용되는 각종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전통방식의 실기 감각을 균형있게 유지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재현은 이미 경험하거나 학습한 정보를 다시 기억해낸다는 점에서 복제술과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사전연구 및 아카이브 구축부터 작품 제작, 전시 설치까지 함께 참여하며 이 균형감을 유지하였고 김복진의 의식까지 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 관련 전시와 차이를 두었다. 프로젝트에 시도한 사진 촬영, 포토스캔, LiDAR스캔과 같은 다양한 실측 기술과 재현을 위해 활용된 디지털 스컬프팅, 3D CNC, 3D 프린팅 기법은 전통 기법과 충분히 상호보완이 가능했으며 앞으로 조각가들이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을 완성도 있게 끌어올린 것은 후대를 위한 작은 성과이다.
‘김복진 조각 프로젝트’는 근대와 동시대의 의식을 연결하고 전통과 신기술을 결합하는 공유의 장으로 마무리되었다. 김복진은 제자들에게 동세, 덩어리, 면으로 구성되는 근대적 관점의 조각을 가르치면서도 전통의 계승에 대해 늘 고민했다. 그는 단순히 향토적, 이국적으로 이목을 끄는 취향을 경계하였으며 고찰(古刹) 답사와 서도(書道) 연구를 통해 전통을 의식적 차원에서 재고하고 작품에 투영했다. 이러한 부분이 김복진이 후대 조각가들에게 남긴 정신이자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전시 이후 남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획이 실기적 차원의 연구에 방점을 두었다면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동시대 작가들이 김복진과 근현대 조각가들을 참조, 환유, 전유(專有)할 수 있는 창조적 차원의 새로운 기획으로 연결하기를 희망한다.
오제성 작가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