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니시야마 마사코 지음 김연한 옮김  · 유유 · 2013

“야스나가 대표님, 1인 출판사에 필요한 것이 뭔지 아세요?
첫 번째는 빠른 결단력, 두 번째는 용기입니다.”
민영 TV방송국 소속 보도기자였던 야스나가 노리코 씨가 2013년 ‘작은 책방’이라는 뜻을 가진 1인 출판사 ‘치이샤이쇼보’를 창업한 후, 첫 번째로 출간한 책 『청이 없는 나라』의 저자에게 들은 말이다. 17년 근속한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무작정 1인 출판사를 시작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결단력과 용기만 있다면 조직을 뛰쳐나와 1인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자본이 도는 분야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출판 산업에서 말이다.
사실 종이책의 위기가 거론된 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셈이 빠른 사람들은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할 즈음부터 종이책의 불투명한 미래를 가늠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책은 가장 안전한 정보 저장소이고 휴대가 간편한 매체로서 인간이 지식을 쌓는 행위에 이바지하고 있긴 하지만, AI가 만든 문장과 그림이 인간의 창조물과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현재 종이책은 이미 상당 부분의 파이를 전자책에 내어주었고,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더욱 고루한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종이라는 매체 위에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그림이나 종이 위에 여백을 남긴 채 쓰여야만 하는 텍스트, 혹은 책의 물성을 작품의 재료이자 작품 자체로 이용하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정보성의 책들은 아마 전자책이 되어 전자 단말기의 표면을 부유할 운명으로 향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궁극적으로 여기에 쓰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스나가 노리코 씨처럼 ‘시류를 거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칫 잘못하면 이상만 보고 달리다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사회적 성취는 물론이고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지경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우려를 딛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는 1인 출판사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글을 책으로 엮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만의 운영 비전을 가지고 출판을 지속하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일하다가 육아와 진짜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찾기 위해, 대형 출판사에서는 찾지 않는 책을 내기 위해, 작가성이 강한 사진집, 혹은 시집을 내기 위해 저마다의 작은 책방을 꾸렸다. ‘회사를 크게 키우지 않는다’, ‘출판 종수를 많이 늘리지 않는다’, ‘한번 출간한 책은 절판하지 않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서점과 직거래로 책을 유통하는 등, 소자본으로 회사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강한 신념과 원칙을 세워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굳이 1인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1990년대 중반부터 출판업계에 불황이 닥쳐왔고, 마치 자전거 페달을 밟듯 신간을 빠르게 펴내 매출을 유지하는 ‘자전거 조업’의 악순환이 생겨났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멀어진 채로, 활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일종의 신념으로 버티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만들고 싶지 않은 책을 찍어내듯 만들어야 하는 것은 출판인으로서의 자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출판업계의 불황과, 큰 조직에 소속된 이상 자율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자괴감, 또는 판매부수와는 상관없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열망이 1인 출판사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1인 출판사의 대표는 자기만의 신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매달 마약처럼 떨어지는 월급처럼 뭔가에 편승해 평범한 삶의 테두리에 안착하는 행복과는 멀어졌지만, 1인 출판사의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는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성취감, 저자와의 긴밀하고 단단한 소통, 그로부터 파생되는 열정을 담보한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1인 출판사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엮인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부디 척박한 출판 생태계의 틈새에서 좌절하지 않고 책을 만들 수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라게 된다. 염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