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마이셀리아 코어, 레버카 손, 폴 앤 스티브

《마이셀리아 코어, 레버카 손, 폴 앤 스티브》 수치 전시 전경 2022
김솔이 〈척추로부터〉 우레탄, 도색 82×102×0.3cm 2022
사진 제공: 수치

성북구의 전시 공간 수치 *에서 열린 《마이셀리아 코어, 레버카 손, 폴 앤 스티브》는 조이솝이 기획하고 김솔이 · 박보마 ·  조이솝이 참여한 3인전이다. 이들은 각각 마이셀리아 코어, 레버카 손, 폴 앤 스티브라는 가상의 인물을 모티프로 만든 여러 점의 작업을 설치했다. 작품들 사이 경계나 작가별로 구분하는 여백 없이 설치되어 개별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가 작품들이 서로 겹치는 장면을 오가며 감상할 수 있었다. 건물 5층에 위치한 전시장 외에도 한 층 위인 옥상에 김솔이의 작업을 한 점 두어 전시의 장소를 두 층에 연결하였는데, 이로 인해 실내의 내밀한 기류와 야외 경관 사이의 이격감이 생긴다. 각 작가가 호명하는 이름을 힌트로 관람자는 각각의 사물로부터 어떤 이야기나 운동감을 상상하게 된다. 이름 덕분에 각각의 작업을 몸체(들) 또는 몸의 부산물로서 읽어 보게 되는데 작업들 중 어느 것도 과하게 전면으로 나서지 않는다. 하나의 형체가 몸체로 잠시 드러나는 듯하다가 이내 다른 몸의 배경으로 보이며 전시 공간에 나른한 전후의 운동이 그려진다. 목탄 자국이나 초상 위를 가로지르는 선,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물질감이 이미지의 윤곽선을 무너뜨리는 것도 이유일 듯하다.
전시장의 벽면을 두르고 있는 박보마의 벽화는 공간의 배경 음악 같다. 벽면은 군데군데 번진 자국이 드러나는 드로잉으로 가득한데, 각도와 선예도가 무디고 의미가 잘 잡히지 않는 작고
큰 도상들로 채워져 있다. 형태는 단면이었다가 구멍이 되고 평면에서 부피로 연장되었다 끊어진다. 조금 더 분명한 인물의 형체가 한쪽 벽과 수직으로 닿은 바닥에서 조금 떨어진 곳부터 천장까지 채우는 분할된 액자 속에 등장하여 붙어 있는데 작가가 불러온 레버카 손의 형상임을 짐작게 한다. 스케일이나, 원통형으로 묘사된 몸의 구조는 인물을 더욱 모호하게 드러낸다. 이 액자와 연결해 보면 벽화는 이 인물의 말, 움직임, 이야기이거나 그것이 지나간 흔적과 기억의 재현처럼 보인다. 벽의 일부와 바닥에 자리하는 조이솝의 조각과 드로잉이 호명하는 인물은 보다 구체적인 참조점을 가진다. 폴과 스티브의 폴은 노엘 사틀레의 소설 『천사, 날다』 의 주인공인 드니즈라는 여성의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양성인간으로, 천사로 상징되는 이상적인 존재가 되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스티브는 1970년대 동성애 반대 구호에 사용되면서 오히려 동성애자를 부르는 대표성을 갖게 된 이름이다. 샤워 호스가 감긴 토르소, 희미한 초상 위로 드로잉 선을 그린 액자, 마른 풀을 붙인 두상 조각, 섬세하게 드러낸 몸의 일부를 통해 작가는 인물의 복합적인 성 정체성과 감정을 인화한다. 김솔이는 균사체의 구조라는 뜻을 가진 마이셀리아 코어를 불러온다. 녹인 우레탄을 드로잉하듯 쌓아 만든 조각을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렸는데 마치 인간과 동물, 인간과 곤충을 결합한 것 같은 형상이다. 두께가 얇아서 공중에서 지나간 단면의 잔상이거나 극도로 풍화된 상태 같이도 보인다. 그 이미지의 허물이거나 몸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굳은 것을 연상시키는 재료가 바닥에 붙어 있다.
각각의 뚜렷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작품 대부분의 색이 흑백의 범주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공통의 묘연한 분위기로 인해 전시에 통일감이 부여된다. 또한 각 작가가 재현하는 인물은 그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단서들을 표현하지만, 그 특성은 분명한 범주나 구분에 속하지 않는다. 이름도, 성별도 신체를 드러내는 방식도 결합, 절제, 연마의 과정을 통해 반투명하게 공간 속에 전사되어 있다. 인물이라는 서두의 단어 사용이 무색하게 신, 천사, 요정, 혹은 동식물 등 비인간 상태가 포개어져 있기도 하다. 흘리고 녹이고, 번지게 하는 재료와 표현의 선택에서 강압과 견고함을 지양하고, 바람이 관통하듯 힘을 방출한 상태를 드러낸다. 감춤도 없고 덮음도 없다. 재료들은 다소 연약한 성질이지만 전시가 구축하는 이미지의 상태는 여러 겹의 껍질처럼 서로를 감싸고 있어 여유롭게 강하다.

최윤정 | 미술비평,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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