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바깥에서
무엇을 위해 점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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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한참인데도, 여전히 그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 나를 붙든 것은 피겨다.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핫한 종목.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핫했다. 도핑과 악다구니와 오열, 석연찮은 채점과 철 지난 국가주의가 얼음판에서 불탔으니까.
카밀라 발리예바의 뉴스를 듣고, 그것에 대해 잔뜩 검색했다. 육상이나 역도도 아닌 종목에서 고작 2006년 생 선수가 도핑을 했다는 것이 무섭고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의 혼란을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 유튜브는 발리예바의 어린 시절 영상을 이것저것 추천했다. 남들은 평지에서도 쿵 넘어져 엄마아 울부짖다 빨간약 바르고 딸꾹질했을 나이에, 발리예바는 미끄러운 얼음에서 이미 온갖 동작을 다 하고 있었다… 마치 스케이트를 신고 태어난 사람처럼. 신비롭게 유연하게 춤추는 모습을 볼수록 마음이 더 이상해졌다. 그는 얼음 위에서 자유의지로 활주 하며… 분명 어느 순간, 치명적으로 쾌한 바람을 느꼈을 것이다. 느껴버렸을… 것이다. 그는 그 감각과 재능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푸틴의 차가운 입김이 부는 국가 주도 스포츠 클럽에서 무서운 코치의 지도(랄까 학대랄까…)를 받으며 하루 종일 경쟁한 끝에 올림피언이 됐을 것이다.
그를 가만히 놓아두어도 알아서 얼음을 즐겼을 것 같은데. 자유의지로 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위험한 약을 그렇게까지 먹였을까. 왜 먹었을까. 왜 삼켰을까. 하지만 그걸 삼키지 않으면 올림픽 출전은커녕 클럽에서 피겨를 계속하기 어려웠을 테다. 그리고 그는 경쟁에 너무 익숙해진 상태로, 계속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 선수단의 고득점 무기, 쿼드 점프를 꼭 성공해야 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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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네 바퀴를 돌아야 하는 초고난도의 쿼드 점프. 러시아 선수들만 그 점프를 팡팡 뛰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과거를 근거로 더 전방위적인 약물 사용을 의심한다. 러시아 선수들은 이번에도 약물에 기대 부상 염려 없이 훈련했을 것이라고. 그 덕분에 쿼드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 것(물론 완성도나 예술성은 차치하고)이라고. 당연히 부작용, 스포츠 정신, 인권…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만. 그런 것은 푸틴의 차가운 입김 앞에….
일본에도 키히라 리카라는 쿼드 점퍼가 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쿼드 점프 때문에 발목 부상을 당해 베이징에 가지 못했다. 매우, 비극적이다.
그러니까, 이 혼란스러운 쿼드 점프는… 얼음판에서 중력을 이기고 뛰어 오른 한 인간이 공중에서 네 바퀴를 돌고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건 동시에 정직하게 훈련하는 선수가 발목 피로 골절을 당하게 하는 일, 얼음판에 인생을 바친 어린이들이 열두 시간씩 훈련해야 할 수 있는 일, 물도 눈치 보며 마시는 환경에서 2차 성징 이후의 당연한 몸을 최대한 덜어내고 십 년 이상 노력해야 할 수 있는 일….
무엇을 위해 점프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숭고한 의지와 노력, 극기와 인내의 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숨어 있는 학대, 통증, 속임수, 집착, 경쟁, 국가주의 따위가 너무 복잡하고, 많고… 아파서.
© 심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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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머리 좋기로 유명한 두 녀석이 있었다. 오사키 나나(야자와 아이의 만화 나나의 주인공) 스타일을 따라 하며, 공부에 별 관심 없는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제 성적은 늘 좋은 천재 캐릭터. 하지만 거기엔 비밀이 있었다. 사실 둘이서 각성제를 몰래 나눠 먹고 매일 밤새 공부했던 것이다. 어느 시험 기간, 그들이 이상 반응을 보이며 병원에 실려 가고서야 다들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약물 과용이었다.
희귀한 자기 연출과 말도 안 되는 경쟁의 길을 비밀리에… 치열하게 걸어간 엄청난 놈들이었다. 침을 줄줄 흘리고 몸을 떨면서도 시험을 보겠노라고 우기던 잊을 수 없는 모습. 그들 역시 경쟁에 너무 익숙하여, 계속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또… 한 번 움켜쥔 이미지를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눈물을 흘리고 자꾸 넘어지는 발리예바. 금메달을 따고도 텅 빈 얼굴인 쉐르바코바, 마구 오열하는 트루소바를 보며 아동 학대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끔찍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 고등학교 동창이 경련하던 것이 오버랩됐다. 약물, 경쟁, 비밀, 망가진 몸이라는 얼룩진 레이어와 함께. 모두 한국 나이 열일곱 전후의 소녀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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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안다. 스스로를 향한, 뼈를 깎는 도전과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묵직한 인간 승리 앞에서는 경박한 호사가도, 피가 차가운 냉소주의자도 모자를 벗고 예를 갖춘다. 인간이 좇는 성취와 아름다움은 늘 저 너머의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보임으로 어른댄다. 닿을 수 없는 닿음의 영역에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존재하기에. 오직 아스라이, 어렴풋이.
닿을 수 없는 것에 닿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또한 안다. 각고의 노력. 깨물면 고통이 줄줄 흐르는. 한없이 수고롭고 초조하고 복잡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애가 닳고 상하고 마르는. 그래도 그 너머에서 끝내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불어오는 쾌한 바람을 맞기 위해서. 그래서 하는 시고 떫은 노력들. 그리고 그 갈피에 아주 감질나게, 아주 몰래 배어 있는 뿌듯함.
쿼드 점프도 인간 한계와 아름다움을 겨누는 위대한 시도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정과 사랑을 흠뻑 나누는 소녀들의 깨끗한 도전이었다면. 한 인간의 성장한 육체가 스스로의 육체를 똑바로 바라보며 정직하게 뛰는 일이었다면. 스스로의 길에서 만난 하나의 봉우리였다면.
그러나 뻔뻔하고 더러운 화학적 장난질은 모든 것을 망쳤다. 그것은 인간의 징그러움과 못생김을 처참하게 노출시켰다. 인간 육체는 물론 경쟁과 아름다움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방식의 접근이었다. 비천한 이기심, 촌스러운 성과주의, 폭력적인 국가주의. 그런 비틀림 들은 얼음판에서 열렸어야 할 너머의 아름다움, 자유의지로서의 춤을 삼켜버렸다. 베이징의 포디움은 서커스적 기예와 요술 같은 수상함에 덮여 버렸다. 그 위에 푸틴 스타일의 차가운 광기가 떠도는, 올림픽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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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시, 인간은 왜 점프하는가? 왜 모진 중력을 끊고자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점프하는가?
심민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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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월간미술》 2022년 4월호 월간미술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