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노란불’ … 속도 늦추거나 곧장 직진
조상인 | 서울경제 미술전문기자, 백상경제연구원 미술정책연구소장
ART MARKET REPORT
2023년 미술시장 결산을 보면 조정기를 보여주는 하향곡선이 분명하지만 관람객 수나 소비 욕구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다면 2024년 미술시장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위기일까, 기회일까? 아트페어나 경매의 매출 지표가 보여주는 신호는 ‘빨간불’이라기보다는 ‘노란불’에 가까운 듯하다. 노란색 신호등은 속도를 줄여 정지할 수도 있지만, 달리던 방향 그대로 직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때라는 얘기다.
박래현 〈이른 아침〉 종이에 수묵채색 240.7×182cm 1956 제공: 서울옥션
미술시장규모추이(2010~2023) 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파라다이스문화재단과 서울대 경영연구소가 공동 제작한 『Korea Art Market Report 2023』, 국ㆍ영문으로 발행됐다
2023년 한국 미술시장 거래 규모가 약 6695억 원으로 공식 집계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 1월 19일 ‘한국 미술시장 결산 및 전망 세미나’에서 발표한 수치다. 거래액은 전년 대비 17% 감소했고, 거래 작품 수는 15% 감소한 5만 160여 점으로 파악됐다. ‘정부 공인’ 발표치라 하여 ‘절대 신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은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미술품에는 부동산처럼 등기부 등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자격증 없이 사인(私人)간 매매를 중개하는 아트딜러들의 거래액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 조사에서도 화랑을 중심으로 한 미술품 판매액 집계에서 아트페어 거래가 중복되는 등 고충이 따른다. 2022년 미술시장 1조 원 돌파의 축포를 쏘아올렸지만 중복 집계를 조정하면 약 8066억 원으로 줄어든다(정부 집계에서 해외 화랑의 국내 지점 거래액, 프리즈(Frieze) 서울의 실적, 개인 딜러 거래가 제외된 것을 감안하면 ‘미술시장 1조 원 돌파가 허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어쨌거나 발표된 결산 수치는 미술시장의 경향성을 파악하기에 의미 있는 지표다. 2023년 경매회사의 낙찰총액은 전년 대비 36% 감소한 1499억 원이었고, 아트페어 판매액도 전년 대비 5.5% 감소한 2886억 원으로 추산됐다. 하향곡선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술관의 작품 구매 금액도 전년의 285억 원에서 193억 원 수준으로 줄었고,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금액도 전년 대비 14.7% 감소한 835억 원으로 파악돼 경기 불황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매출 줄었지만 관람객은 늘어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판매액이나 거래액은 줄었지만 아트페어나 미술관 관람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과 서울대 경영연구소가 공동 제작해 해외 컬렉터를 위한 영문 보고서로 발간하는 [코리아아트마켓 (KOREA ART MARKET) 2023]은 “한국 미술시장이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갤러리와 경매시장이 조정을 겪고 있지만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의 편집장인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키 파인딩(Key Finding)을 통해 “견고한 기존 갤러리는 여전히 확장하고 있으며, 성수·한남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갤러리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했고 “판매량은 소폭 감소했으나 아트페어 방문자수는 증가했고, 여전히 많은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젊은 세대의 관심도 계속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기업 미술관들이 오너의 개인적 취향보다는 공익성을 드러내는 기획 전시에 집중하며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기업 이미지나 공간 장식을 위해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거나 국내 신진 및 중견 작가의 작품을 구입·지원하는 등의 행보도 이 보고서가 분석한 한국 미술시장의 탄탄한 기반 중 하나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에 25만 명,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 10만 명이 다녀갔고, 호암미술관의 <한점 하늘, 김환기> 전시는 유료였음에도 15만 명이 몰렸다.
위기를 기회로…신규 아트페어 주목
국내 화랑수는 2021년 598개에서 2022년 831개, 2023년에도 895개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미술시장의 긍정적 가능성을 방증한다. 아트페어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82건이 열렸다. 4~5일에 한 번꼴로 아트페어가 개막했다는 얘기다. 미술품 소장과 전시 향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커지는 지금 상황에서 뉴커머(New Comer)가 등장한다면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 갤러리·아트페어의 증가뿐만 아니라 온라인 미술플랫폼, 한정판 아트상품, 미술품 조각투자(STO)와 IP 사업 등 관련 비즈니스가 늘어나는 것도 예술소비의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다. 다만 양적 증가가 질적 향상을 보장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 지난해 열린 아트페어 중 상당수는 차별화 없는 기획,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 작가·작품에 대한 정보 제공 부족 등으로 관람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뻔한 기획, 빤한 전시는 누가봐도 지겹다.
이같은 상황 속에, 올해는 야심만만하게 기획된 신규 아트페어 소식이 미술관계자들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4월에는 30대의 미술품 컬렉터 노재명씨가 주도하는 국제아트페어 ‘아트 오앤오’가 서울 세텍(SETEC)에서 열린다. 스위스에서 아트 바젤 기간에 열리는 위성 아트페어인 ‘리스테(Liste)’를 벤치마킹해, 경쟁력 있는 해외 갤러리의 대거 참여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6월에는 대형 아트페어 기획으로 전문성을 다진 실력파들이 새로운 아트페어 ‘서울 셀렉션'(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을 지휘했던 김동현 전(前)한국화랑협회 전시사업팀장 등이 이끄는 행사라 물밑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관심이 뜨겁다. 이들 신규 아트페어는 화랑미술제나 아트 부산 등 국내 기존 아트페어, 베니스비엔날레와 아트 바젤 등 굵직한 국제미술제와 시기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이 불리한 조건이기는 하나, 참신함과 노련함으로 그간 없던 ‘새로운 기획’을 내놓는다면 승부수를 던지기 충분해 보인다.
한국 미술시장 결산 및 전망 세미나 현장 (2024년 1월 19일 개최) 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오는 4월 새롭게 선보일 아트페어 ‘아트 오앤오(Art OnO) 2024’가 기자 간담회를 통해 개최 계획과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제공: 아트 오앤오
경매사는 온라인 매스티지 전략?
미술시장 조정 분위기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은 경매사들은 쇄신이 필요하다. 서울옥션은 올해 첫 기획 경매로 거장 박래현과 박생광을 집중 조명했다. 두 작가의 143점, 총 62억 원 규모 작품을 경매에 올렸고 낙찰률 36%에 낙찰액 약 29억 원을 거뒀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단번에 다량 경매에 올린 것부터가 무리수였고, 성적표도 좋지 않았다. 다만 박래현의 <이른 아침>(1956)이 6억 5000만원에 팔린 것을 비롯해 <향연>(1960년대)과 <기도>(1959)가 각각 4억 원에 거래되어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은 외면받지 않는다는 금언(金)을 확인시켰다. 케이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는 낙찰률 76%에, 약 23억 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윤형근의 <엄버(Umber) 90-27>(1990)가 1억 9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을 뿐 쿠사마 야요이나 이우환, 김창열 등 ‘블루칩’ 작가도 3억 원 이상은 거래가 불발되고 멜 보크너, 아야코록카쿠 등의 인기 작가 작품도 줄줄이 유찰되었다. 지난해 작고 이후 연말 경매시장을 ‘반짝’ 견인했던 박서보 작품도 출품된 6점 중4점은 유찰 2점은 출품 취소됐다. 팝아트의 시대이던 1960년대에 ‘팝아트의 복제’ 라는 화두를 던진 미국 작가 리처드 페티본의 <앤디 워홀, 꽃>(2011)이 3억 원에 팔렸을 뿐이다.
양대 경매회사는 온라인 경매에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거의 매주 열리는 온라인 경매가 50% 이하, 낮게는 30%대까지 떨어진 저조한 낙찰률을 보이는 상황에서 수익률 낮은 저가 작품 거래의 문제점을 손보기로 했다. 고가거래가 실종된 상황에서 중간가격대 프리미엄 작품에 더욱 집중하는 일종의 ‘매스티지(Masstige) 전략’1이다. 케이옥션은 3월 온라인 경매부터는 100만 원 이하 출품작을 걸러내기로 했다. 서울옥션은 저가 작품 위주의 온라인 경매의 경우 실물 전시인 오프라인 프리뷰를 열지 않는 대신,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는 2주간 프리뷰 전시를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근의 고미술 열풍을 반영한 듯 ‘온라인 고미술 경매’도 신설해 월 1회 진행할 예정이다.
시장은 출렁여도 K-아트 도약의 원년
미술시장의 출렁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2024년이 ‘K-아트’의 도약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코리아 아트마켓 2023]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미술 전문가들을 심층 취재로 다룬 것도 한국에 대한 글로벌 미술계의 주목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앨라배마대의 김민아 교수는 올여름 동시대 한국미술: 1960년대 이후의 새로운 방향성을 영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개막한 대규모 한국미술 기획전에 이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리니지와 덴버미술관의 <무심한 듯 완벽한 한국의 분청사기> 등 우리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가 유독 인기다. 서울 지점을 둔 리만머핀 갤러리와 타데우스 로곽, 페이스 등이 일제히 올해 첫 전시로 한국 작가 그룹전을 연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당장 4월 20일 공식 개막하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근대미술가 이쾌대와 월전 장우성부터 여성 원로 조각가 김윤신, 성(性)소수자의 역사를 파고드는 이강승까지 4명의 한국 작가가 초청됐다. 유영국, 이성자, 이배는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를 통해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구정아를 내세운 한국관 외에도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이 맡은 일본 국가관과 부산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끈 김해주 큐레이터의 싱가포르 국가관 전시도 이목을 끈다. 10월에는 젊은 작가 이미래가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영국 테이트모던의 ‘현대 커미션’에 선정돼 터바인홀에서 개인전을 연다. 바야흐로 ‘K아트’의 시대다.
1 편집자 주) 매스티지란 미국 경제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만든 신조어로, 대중의 ‘Mass’와 고급·명성을 의미하는 ‘Prestige’를 합친 것이다. 고급 제품을 대중이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명품에 버금가는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제품으로, ‘대중적인 명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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