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진흥법에 대한 한 법학자의 단상
-취지는 공감, 구체적 실현방법도 중요
정호경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3년 7월 25일 미술 창작 및 유통과 관련된 일련의 정책과 제도를 담은 미술진흥법이 제정되어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미술진흥법이 K–미술 생태계의 창작–유통–향유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강화할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과 제도들이 담긴 이 법에 대한 미술계의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미술진흥법이 그 내용과 취지대로 한국 미술이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하고 선진화된 미술품 유통 시장을 만드는 큰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필자의 그런 기대 속에서, 미술진흥법이 더 좋은 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한 법학자의 단상이다.
1.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
미술진흥법은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ㆍ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을 미술 서비스업으로 정의하고, 미술 서비스업에 대하여 신고제도를 도입하였다. 행정법에서 ‘신고’란 개인이 특정한 사실이나 법률관계의 존부를 행정청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알리는 것으로 족하며, 이에 대한 행정청의 심사 및 승인(법적 용어로 이를 ‘수리’라 한다)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입법 및 행정 실무에서 일정한 경우 행정청의 수리를 필요로 하는 변형신고제도가 생겨났다.1
문체부는 미술 서비스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신고제도를 도입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그 취지대로라면 위 신고는 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규정 내용을 볼 때 위 신고가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해석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수리를 요하는 신고는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될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미술계의 우려도 능히 짐작된다.
국가는 영업이나 거래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고 참여자의 안전과 질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개인이 가지는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국가에서 규제는 그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규제의 대상은 규제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이어야 하고, 규제 수단은 국민의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도 규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어야 한다. 미술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과 적절성을 논증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의 몫이다. 국가가 규제를 할 것인지 여부, 규제를 할 경우 그 방법과 정도는 규제 대상의 내용과 특성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 향후 구체적인 법집행 과정에서 각각의 미술 서비스업의 내용과 특성에 맞는 적절한 지원책과 규제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또 미술진흥법은 처음부터 미술 서비스업의 신고를 할 수 없는 자를 규정하고 있다. 표현은 ‘신고’로 되어 있지만, 신고를 못 하면 영업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실질적으로 해당 영업의 결격사유를 규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22년에 제정된 ‘행정기본법’은 개별법상 인허가 결격사유의 기준을 규정하였다.2 미술진흥법에 규정된 개개의 결격사유들이 행정기본법의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1 역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 실현 과정에서 종전 허가 사항이었던 것을 법이 정한 허가 요건을 변경하지 않은 채 형식만 신고 사항으로 변경한 결과, 규제 대상의 성질과 법의 규정 내용상 여전히 허가에 상응하는 행정청의 심사 및 승인이 필요한 신고를 말한다. 수리를 요하는 신고의 경우 행정청의 심사 및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허가제와 유사한 모습을 가진다
2 행정기본법 제16조는 인허가의 결격사유를 규정할 때 “1. 규정의 필요성이 분명할 것, 2. 필요한 항목만 최소한으로 규정할 것, 3. 대상이 되는 자격, 신분, 영업 또는 사업 등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을 것, 4. 유사한 다른 제도와 균형을 이룰 것” 4가지 기준을 정하고 있다
2.미술 진흥 전담기관 지정 문제
미술진흥법은 전체 4장, 33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 서비스업의 신고 등 일부 규제적 성격의 조항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미술의 창작과 유통에 관한 지원 및 제도의 정비에 관한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다.3 미술진흥법은 법에 규정된 사무의 상당 부분을 ‘미술 진흥 전담기관’의 소관 사무로 정하고, 문체부 장관이 ‘미술 진흥 전담기관’을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진흥법에서는 전담기관의 지정요건, 지정취소 및 경비 지원 등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예산을 다루고 이해관계인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는 조직의 구성과 권한 행사의 절차 및 방법은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작가 및 화랑업계, 경매업체, 유통업체 등 미술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민감한 사안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미술진흥법에 규정된 여러 정책과 제도에 대해서 미술계의 입장은 일치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작가, 화랑업계, 전시업계, 경매업체, 교수를 비롯한 교육자 등의 입장이 다르며, 같은 그룹 내에서도 각자가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한다.
법치국가에서 중요한 사항은 법률에 규정하거나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법률유보원칙). 법률은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토론을 거쳐 제정되며,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인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관련자들의 의견이 수렴된다. 또 법률은 공포되어 공개되므로 누구나 그 내용을 알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예견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술 진흥 전담기관의 조직 구성이나 권한 행사의 절차나 방법 중 주요한 내용은 법률에 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 속에 존재한다. 누구나 공정한 절차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법률유보원칙의 근저에는 민주주의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미술진흥법의 개정을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 생각한다. 법의 집행 과정, 특히 법을 구체화하는 하위 법령의 제정 과정에서 법의 취지와 내용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각각의 미술 서비스업이 가진 내용과 특성을 잘 분석하여 그에 적합한 지원책과 규제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해관계인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고, 미술 생태계에 속한 관계자들에게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그 영향에 대한 예견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범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술진흥법의 취지와 그 필요성에 대해서 필자는 충분히 공감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법의 제정 및 집행 과정에서는 공익과 공익, 공익과 사익, 사익과 사익 간의 신중한 형량이 필요하다. 이러한 형량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인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요청에 해당한다. 올해 7월 26일부터 시행될 미술진흥법이 주무부서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이해와 협력 속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우리나라 미술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3 제2장에서는 창작 지원, 전시 지원, 창작공간 등의 확충, 지역미술 활성화, 국제교류 및 해외진출 지원, 전문인력의 양성, 미술 관련 법인 또는 단체의 지원, 미술 서비스업 활성화 등 예산을 수반하는 다양한 지원 정책들과 공정한 거래 및 유통질서 조성을 비롯하여 소비자 보호, 표준계약서, 미술 서비스업의 신고, 영업정지, 영업의 승계, 지식재산권의 보호, 통합미술정보시스템의 구축ㆍ운영 등 미술품 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을 규정하고 있다. 제3장에는 미술품 재판매에 대한 작가보상금의 징수와 분배 및 이와 관련된 정보의 수집, 제공에 관한 규정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내용의 규정들이 있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