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박석원
9.1~10.15 김세중미술관
조현아 | 기자
〈적의 2058〉(사진 가운데) 화강석 150×150×25cm 2020
여기, 누적된 물질과 시간이 있다. 가장 단순하지만, 성실한 정신과 균형 잡힌 몸이 없다면 불가능한 ‘쌓기’의 결과가 있다. 입체와 평면의 상관관계를 찾고, 예술에 있어 새로운 가치에 관한 문제 제기를 위해, 박석원은 신 · 구작 구분 없이 12점의 평면작품과 13점의 입체작품 출품을 결정했다. 잘리고 쌓이며 빈 공간을 품게 된 작품 25점은 1985년부터 2022년까지 37년간 쇠, 돌, 한지, 목재로써 조각가가 정신과 표현을 연결시켜낸 것들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몇십 년간의 세월에 누적된 사고와 방법을 동일하게 드러내며, 소재의 절과 합으로 공간의 탄생에까지 이른다. 그 공간은 아마 고요하고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작품의 중심이 되는 나무, 쇠, 돌, 한지는 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면서도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룬다. 원래 자연에 있던 것이니, 작품들의 모습은 달라도 이질적이지 않다. 이는 박석원의 말처럼, 자신의 “조각의 목표와 과제가 분절과 결합으로 요약된 자연”임을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조각가가 이제까지 택해온 주제와 소재는 부연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마치 작가의 이번 개인전이 흔한 부제도 없이 ‘박석원 展’이라는 간명한 제목만으로 드러난 것처럼.
코로나19로 국내외가 크게 요동했던 2020년과 2021년에도, 조각가는 “홀홀히 자유롭고” 조용하게 평면과 조각 작업에 부단히 매진했다. 무겁고 단단한 덩어리를 자르고 쌓아 연결짓는 행위와, 이로써 비롯되는 빈틈에 그의 조각의 의미와 형태가 있다. 이는 작품의 의미가 외부의 정보에 휘둘려 해석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그 조각이 가벼이 왔다가 떠나가는 세상의 이야기로부터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중첩, 접합, 절삭과 구축의 반복은 박석원 조각의 배후로서, 작가 자신과 작품 앞에 선 사람이 그 의미를 결국 인지하고 경험해내도록 한다.
결국 하나로 연결되나, 그의 작품은 덩어리와 빈틈이라는 두 요소로 감상되기도 한다. 덩어리는 본연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잘라 쌓아 올린 작품 그 자체 또한 의미한다. 〈적(積)〉 연작과, 〈적의(積意)〉 연작 중에서도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인 〈적의 2035〉과 〈적의 2121〉은 작가에게 “마치 깊은 땅속 지층에서 오랫동안 무르익은 듯 특이하고 경이로운 오석 덩어리”였다. 지난 몇 년간 작가 박석원은 소재를 새로이 보았다. 그는 두 작품의 ‘몸체’에 사로잡혀 “이 물체를 자르고 갈고 매만지는 작업을 진행하며 크나큰 희열과 물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마치 하나의 모뉴멘트처럼 시간과 존재의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거대한 석재를 자르고 합하며 사물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볼 뿐만 아니라 느끼게 된, 그럼으로써 그 재료에 담긴 시간과 존재를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는 말이리라.
덩어리에 대한 조각가의 관심은 거석과 굵은 나무줄기에뿐만 아니라, ‘닥’과 한지의 물성에까지 미친다. 박석원은 1980년대 초부터 이를 작업의 중심되는 소재로 사용해왔고, 뭉쳐지고 합해지는 종이뭉치의 표면에 드로잉과 구김작업, 반복된 절삭으로 나타나는 잔상과 흔적을 남겼다. 2~3합의 중첩된 접합은 한지 본래의 재질감을 벗어나 수직과 수평의 그리드, 그러나 반듯하게 재단되지 않은 형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회화’라 칭하기는 어렵다. 이는 평면에 축적된 덩어리로서, 쌓아올린 조각의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박석원의 작품에는 절삭과 쌓음에 의한 빈틈이 있다. 소재가 떼어지고 결합할 때 생겨나는 틈을 향한 인간의 시선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면 자연물이 틈을 벌려 인간이 들어오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빈틈은 “들숨 날숨의 기운”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는 덩어리 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으로, 몸 앞에 있는 단단한 소재의 균열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작가가 소재를 절단하고 쌓는 것은 작가의 호흡과 육체의 노동으로 가능하므로, 작가의 실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가 물질 안에 들어갔다가 대상을 쌓아올리며 어쩔 수 없이 줄무늬처럼 생겨나는 틈은 ‘절단과 쌓음’의 반복을 나타내면서도 자연물에 인간인 작가의 시간을 더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된다. 그래서 작품은 그저 ‘돌’이나 ‘나무’가 아닌,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들어간 변화된 자연물로서 단 하나의 신상(神像)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모든 것이 틈 없이 맞물려 다른 의미와 형태를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 동시에 비어 있어 살아있는 대상처럼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다. 이는 “추상 정신의 논리적 모태는 변화이다”라고 언급한 박석원 조각의 근원이 된다.
조각가는 2018년 노화랑에서의 개인전에서부터 평면과 조각을 동시에 선보이면서, 입체와 평면의 상관관계를 찾고, 예술에 있어 새로운 가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 제기를 시도했다. 상술한 문장은 4년 전의 전시 주제이기도 했지만 올해 개인전의 주제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명상의 시간을 쌓은 개별 작품도 그러하나, 현재에도 작가는 이렇게 예술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찾으려 하고, 재료와 인간의 의식을 더욱 치밀하게 결합하고자 하며, 변환에 대해 계속 묻는다. 여기, 박석원의 말을 담는다. “우주적 자연과 내가 살아있는 삶의 현실적 바탕 사이를 소통하는 의식의 치밀한 관계와 변환에 대해 알고 싶다.”
박석원은 “추상조각의 생명성은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며 변환의 세계를 구축”한다고 말했다. 작가의 적의(積意)는 묵묵해 보이지만, 쌓인 동시에 비어있는 〈적의(積意)〉는 변화의 가능성으로 고요하게 타오른다.
〈적의 2035 - 괴석과 묵시록〉(사진 가운데) 자연오석 60×45×220cm 1986~2020
〈적의 2028〉(사진 앞) 철 60×60×300cm 200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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