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재판정에 선 법

11월 18일에 전시 개막일에 열린 라다 드수자와 박은선의 대화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재판정에 선 법》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조주현

과거 석유파동 시기 서울시민이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석유 비축소로 만들어진 오일탱크, 무려 2천2백만ℓ의 등유를 비축해두었던, 현재 문화비축 기지의 상징적 장소이자 많은 이가 감탄을 마지않는 거대한 탱크 T4가 인류의 가장 오만한 믿음으로서 산업화를 견인하였던 화석연료의 상징적 장소로서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라는 그야말로 ‘무릎을 칠만한’ 장소성의 맥락을 갖게 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 중 한국-네덜란드 교류협력 프로그램으로 조주현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전시는 암스테르담의 프레이머 프레임드(Framer Framed)와의 협력을 통해 네덜란드 예술가 요나스 스탈Jonas Staal과 인도 출신 법학자이자 변호사이며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Rahda D’souza)의 프로젝트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를 다룬다.
이번 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중요한 출발이자 장소로서 문화비축기지의 ‘T4’는 종(種)으로서 인류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의 증거적 현장이자 그 범죄를 성찰하고 이제는 대안적이고 생태적 사유를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의한 장소가 된다. 2021년부터 문화비축기지에서는 예술가, 독립큐레이터는 물론 담론적 지식인들의 양질의 전시기획을 장착하기 위한 모색으로 아트랩 전시기획 공모를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작품으로 선정된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 재판정에 선 법》은 조주현 큐레이터가 그간 줄곧 기획해왔던 생태적 관점에 대한 가장 공격적이고 첨예한 문제를 보여준 전시로서 인간의 법을 통해 범죄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묻고 이후 세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국제적 연대를 통해 혁신적으로 드러낸 예술적 실험이다.
전시가 열린 첫날, 라다 드수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관람객들 앞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생태가 연결되는 지점, 이전의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행보가 인간으로만 그치지 않고 비인간, 세계의 생명체에 흠집을 내었던 문제적 장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세대간 기후범죄법의 핵심을 논하면서 그 방법론적 틀을 왜 인간의 ‘법’으로 삼았는지, 그 선언의 의도와 중요성을 함께 낭독하고 공표하는 퍼포먼스와 함께 특히 주제와 방법이 그야말로 명쾌했다. 그간 ‘생태’와 ‘기후’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한 시대의 주류 담론 이상으로, 이같이 풀어낸 사례가 있었을까. 행동주의적 실천방법과 시선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하며 이 전시는 ‘보여주는 것’ 이상의 힘을 전달했다고 평한다.
이 전시에서는 비인간으로서의 종들을 인류세계의 ‘동지’라 규정하고 인간의 언어, 각국의 언어로 표현된 단어 ‘동지’를 이미 멸종되어 사라진 동물들의 이름으로 대체한다. 약 70여 종 가까이 되는 멸종생물들이 각각 하나의 피켓으로 그려져 있고, 피켓은 좌대로 설정된 석유드럼에 꽂혀있다. 여기에 세대간 기후범죄법에 대한 영상과 강건한 라다 드수자의 목소리가 선언적으로 공명하면서, 공간 전체는 하나의 울림, 메시지가 되었다.
CICC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초국적 기업이 저지른 행위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이어질  - 기후범죄를 기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암스테르담에서 구축되었고, 대중이 배심원이 되어 ‘세대간 기후범죄법’을 평결하였으며, 그 내용이 이번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 재판정에 선 법〉 기획의 맥락적 줄기를 이루었다. 더하여 인간의 화석 자본주의가 일군 현재의 기후재난은 물론 생명성과 맞바꾼 경제적 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 집결과 그 변화를 요구하는 장으로, 화석연료 추출 시스템의 증거였던 오일탱크(T4)를 세대간 기후범죄의 상징적인 재판소로 삼았다는 점은 더욱 이 기획을 주목하게 한다. 보자면 장소성 해석이 중요한 일군의 예술프로젝트에서 여전히 담론적인 두께가 장소의 의미와 가치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성찰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폐허의 공간이 문화적 시도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되었다는 기존의 수식어를 넘어, 생명과 유기적 서사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로 향하는 장소의 울림이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그 속에서 평결된 법, 인간의 법을 형식으로 하여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그로써 인간과 동물, 식물이 동등한 생명성임을 인식하면서 이 세계를 재건하자는 주장, 그야말로 아나키즘의 정점에서 생명의 조건을 깨우치는 이 전시는 인간의 법이라는 치밀한 전략 속에서 비극적 슬픔을 공감하고 이를 객관화하여 연대를 강화한다. 행동주의 예술의 향방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윤정 | 미술비평,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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