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옆으로 나누는 대화
(the art of noticing)
4.19~7.16 임시공간
‘서로를 알아채는 마음을 위한 자리’라는 문장이 전시 서문의 첫 줄에 등장한다. 서로를 알아차리기 위해, 예술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일지 자문하며 만들어진 자리는 거창하지 않고 소박하다. 전시장 문을 열어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테이블이 공간의 정중앙에 놓여 있고, 주위에는 작은 책꽂이들이 작업과 어우러져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 테이블은 옆으로 나누는 대화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원도심이었던 인천 중구에 위치한 임시공간은 이름과 달리 어느새 설립된 지 꼬박 6년을 향해가고 있는데, 스산한 항구도시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여전히 타자로 존재하며 타자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시’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는 명사치고 꽤 애매하다. 아마도 근대적 시간 개념이 보편화하기 이전에는 시간을 정확하게 분절하여 나눌 수 없었던 탓에,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말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인간의 이성보다 오래되었기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것을 표현하는 풍부한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시간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6년은 임시라고 하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옆으로 나누는 대화〉는 6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전시이자 임시공간에서 제안하는 다른 형태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자리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장보윤의 〈Black Veil 2〉(2021)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가 공간을 맴돌고 곳곳에 놓인 책꽂이에는 1인 출판사 ‘돛과 닻’을 운영하는 김영글의 책들이 꽂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가가 수집한 우표들로 이루어진 〈Unposted Letters〉(2019)가 있다. 수집과 기록으로 일관하는 김영글의 작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책이다. 편지를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우표를 모아둔 것 자체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기념물의 파편들이다. 슈퍼샐러드스터프의 엽서 역시 언뜻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우편의 일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모두 역사에서 누락된 여성 작가들의 정보가 기입되어 있다. 배미정의 〈안녕을 비는 절벽〉(2020)은 〈아는 여자〉 연작 중 일부로, 자신을 스쳐간 여러 명의 여성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조성연은 〈지고 맺다〉 연작을 통해 꽃과 나뭇가지, 열매 등이 중첩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어딘지 익숙한 자연물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의 순환 과정이 하나의 이미지 안에 집약적으로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부터 남북의 분단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한석경의 〈추회〉 또한 북한 능이버섯이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추측하게 만든다.
이렇게 잊힌 것, 소외된 것,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 같은 무엇을 다시 추적하고 드러내는 것. ‘옆으로 나누는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 위치해 지나치던 것을 다시금 드러내는 것으로, 이는 ‘알아채기의 기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치고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쳐가는 많은 것을 놓친다. 일상성에 파묻혀 은닉된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 진리라면, 〈옆으로 나누는 대화〉에서 제안하는 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한 방식과 다름없다.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아채기의 기술이다. 6명의 작가가 각자의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자가 구축해낸 알아차리는 기술인데, 이들은 모두 타인과 타인의 삶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섣부른 동일화의 과정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차분히 지켜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천천히 보고, 듣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알아차리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 지나쳐버린 것을 다시 호명하는 목소리, 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장보윤 〈Black Veil 2〉 싱글 채널 비디오, 11분 28초, 가변설치 2021
배미정 〈안녕의 비는 강 3〉(사진 가운데) 캔버스에 아크릴 130.3×130.3cm 2020
글: 이슬비 미학관 디레터
사진 제공: 임시공간 사진: 박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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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월간미술》 2022년 6월호 월간미술 CRITIC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