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표현과 범죄 사이”
캐슬린 김 | 미국 뉴욕주 변호사,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지난해 12월 16일 새벽 1시 50분경, 누군가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쪽문 담장에 붉은색과 푸른색 래커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달아났다. 국가문화유산에 휘갈겨 쓴 내용은 어이없게도 ‘영화공짜 월럼프티비.com,feat. 누누’였는데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주소였다. 문화재청이 발칵 뒤집힌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17일 오후 10시 20분경, 또 한 번의 낙서 테러가 발생했다. 첫 번째 피해 복구 작업을 시작한 경복궁 영추문의 좌측 담벼락이었다. 이번에는 한가수 이름과노래 제목이 휘갈겨져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첫 번째 낙서를 한 피의자 두 명은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이가 한 단체대화방을 통해 낙서를 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 데 따라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교사범의 실체나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두번째 낙서는 모방범죄였다. 범행 다음날 한 20대 남성이 자수했는데 자신의 블로그에 “‘미스치프 (MSCHF)’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난 예술을 한 것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미스치프는 ‘나쁜짓, ‘장난기’라는 의미의 그룹명처럼 위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화제를 몰고다니는 뉴욕 기반 아티스트 그룹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전시를 통해 소개됐다).
가정해보자. 담벼락에 낙서를 한 이가 뱅크시나 생전의 키스해링이었다면? 낙서가 아니라 거리 예술가들의 ‘그래피티 아트’였다면 낙서의 내용이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어느 소수자의 세상을 향한 처절한 외침이었다면 담벼락이 경복궁이 아닌 공사 중이거나 철거 중인 폐건물의 담벼락이었다면? 법적 책임의 무게는 달랐을까.
이탈리아어로 ‘낙서’라는 뜻의 그래피티는 래커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공공시설물이나 사유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 기호 등을 남기는 행위이다. 1960~70년대 미국의 갱스터들이 담벼락에 고유의 낙서를 남겨 각자의 영역을 표시하던 데서 비롯됐다. 이후 인종이나 동성애 등 차별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표현 행위로 발전했다. 그래피티는 점차 뉴욕, 파리, 베를린, 런던 등 대도시 등에서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상표현의 수단이자 예술표현의 도구가 되었다. 무단으로 그린 것은 그래피티,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벽화(mural)라고 구별하기도 했었으나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해링, 뱅크시 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거리 예술가들 덕분에 ‘그래피티 아트’ 또는 ‘스트릿아트’는 이제 엄연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표현은, 모든 예술은 무죄인가 애초에 그래피티는 반달리즘에서 출발한다. 낙서의 방식으로 공공시설물, 사유재산, 때로는 문화유산이나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이자, 곧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형법은 재물손괴죄로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훼손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한다. 모순되게도 그래피티는 이러한 위법적 성격을 걷어내는 순간 그 정체성을 잃게 된다. 그러나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든 끄적이는 낙서에 불과하든 위법 행위란 사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근대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금과옥조인 ‘표현의 자유’, 헌법이 보장하는 그 권리는 뭐란 말인가 그래피티에 앞서 20세기 초반 멕시코의 정치 혁명을 이끌었던 디에고 리베라나호세 클레멘테오로스코 같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벽화운동이 있었다. 이들은 날카로운 풍자와 강렬한 묘사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 초기 인류조차 동굴 벽에 기호, 상징, 문자 등을 새기며 표현해 왔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정신 자기표현하려는 인간정신의 필요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나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 앞에 멈춰선다.모든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예술표현의 자유 또한 “국가안전보장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헌법 제37조 제2항전단)다. 다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헌법 제37조 제2항 후단)을 뿐이다. 정당하며, 효과적이고, 적절하고,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하지 않는다면 기본권도 법률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
낙서 테러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여드레 동안 총 234명이 투입되었다. 복구비용은 1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훼손된 담벼락을 완전히 복구할 수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는 피의자들에게 복구비용 전액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을 것이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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