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선정
up–and–coming artist
1990년 출생. 한예종 조형예술학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살아있음을 위로하며 기념하며〉(2014, 예술공간자유), 〈얼굴의 얼굴〉(2016, 갤러리 팔레 드 서울) 등 6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저녁의 시간〉(2022, 아라리오 서울), 〈꿈의 대화〉(2020, 에이라운지), 〈현대회화의 모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1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온라인 공모 〈2020 Hopper Prize Finalist 30〉(영국)에 선정되었다.
〈I My Me Mine〉(2022, 유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나는 너를 기억하는 사람〉(사진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100×65cm 2021
자기 반영
이혜민 | 객원기자
왕선정은 2013년부터 인물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초상화도 아니고 인물화도 아니다. 페인팅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감의 천을 바느질로 이어 인체의 부분들을 붙여 인형을 만들고, 조각칼로 나무판을 파내어서 만들어낸 가상의 얼굴을 화면에 담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인물들은 다 나름의 스토리가 있겠다만은 그녀가 선택한 군상은 더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이것을 색감과 질감의 특성을 반영하여 기록한다. 또한 작가는 종교적 소스를 즐겨 그린다. 거기에 자신의 삶을 반영해서 희극의 각본을 쓰고 신화적 장면으로 재탄생시킨다.
얼굴
나열된 캔버스에 그려진 남성의 얼굴들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고 원시인 같다. 우울하게 걸어 들어와서는 상반신만 드러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원치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들은 ‘바’의 작은 공간에서만큼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현실에서 만난 가상의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예상대로 혐오스럽지만 대상에 대한 동질감이 동반된 그녀의 내면을 캔버스에 끄집어내고 있다. 〈댄싱머신〉은 덩치가 꽤 큰 남자가 술병 하나 들고 기저귀를 차고 있으며 핏기가 없는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예쁘단다.
이 사랑스러운 얼굴이 어떻게 그려지냐면 묽게 섞인 유화의 얼룩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 막 작업이 시작된 빈 캔버스에는 하나같이 얼룩이 져있다. 예상치 않은 색과 빛은 얼룩과 함께 잘 버무려지고 그다음, 얼룩진 자국 사이에서 가장 먼저 작고 찢어진 눈을 찾아낸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 속의 인물을 찾기 위해 숨 가쁘게 나아간다. 어느 지점에서 찾아낸 ‘얼굴’은 섬세하게 나타난다. 얼룩으로 시작한 붓질은 어느새 화면 전체에 구체적인 형상을 드러내고 또 작가와 마주 앉아있다.
꽤 충동적으로 그린다고는 하지만 내면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그녀의 감정의 서랍들을 차례대로 열어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얼굴’ 중에서 〈나는 너를 기억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작품은 종이를 긁었다가 덧붙여서 사람 피부 같은 촉감에 창백한 느낌이다. 여기에는 풀숲 사이에 숨어서 꽃을 들고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지만 정작 나를 누군가가 기억해줬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있다.
연작
작가는 인물 외에는 주로 연작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The beast〉(2016) 시리즈부터 시작한 연작들은 두 가지 요소를 장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색감이다. 인물을 그릴 때의 얼룩과 비슷하다. 안개같이 뭉개지고 흩날리는 먼지처럼 감정을 아슬아슬 잡아채서 결정되는 색감들이다. 파스텔톤, 주황색, 녹색, 최근에는 붉은색 계열의 색감으로 연작을 이어가고 있다. 왕선정의 〈오필리아〉에는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아름다운 오필리아는 온데간데없고 창백함과 동양의 산수화에서 본듯한 산새와 버드나무 가지, 들꽃이 파스텔톤으로 뭉개져 있어 비극적 사건을 더 처절하고 몽환적으로 조성한다. 두 번째는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의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작가는 종교적 모티프나 신화의 이야기들을 빌려 현실에서 마주했던 배우들을 무대에 세운다. 그녀의 신작 〈긴 여행의 목표〉 (2022)에서 종교적으로 금기시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쾌락적이고 즐거워 보인다. 작품은 잘 알려진 신화나 종교적 역할극의 한 장면 같지만 이상하리만큼 화면에 담긴 이야기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그려 넣은 나른하고 화려함과 익살스러운 배경에 죄를 짓고 있는 인간들과 대비되는 무대가 꽤 인상적이다. 이들로 하여금 시각적인 요소들만이 눈에 띈다.
작가는 캔버스에 자신의 감정을 배출하는 것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두 가지 모두 작업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기법이든 형식이든 과거의 작업에서 가져와 변주해 새로운 연작을 선보인다. 작가가 살아가는 의미는 “그리는 것”. 작업에 대한 열정이 작가에게 오래오래 남길 바라며 다음 연작을 기대해본다.이혜민 객원기자
〈댄싱머신〉 천에 바느질 및 아크릴 페인팅 48×39cm 2014
〈오필리아〉 캔버스에 유채 195×200cm 2019
〈긴 여행의 목표〉 캔버스에 유채 97×145cm 2022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