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베르하스트
〈이루지 못한 미래의 아카이브〉
알렉스 베르하스트(Alex Verhaest)는 역사적 이미지들을 ‘포스트 프로덕션’을 통해 언뜻 기괴해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변형시켜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로써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과거와 미래의 시점이 병치되는 서사로 관객이 어떤 메시지들과 의미를 읽어내는지, 어떤 정보와 개념들을 누락시키는지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리믹서” 1이다. 이번 신작에 작가가 사용한 이미지들은 뉴욕 공공도서관이나 나사(NASA) 등 유명 도메인에서 무료 공개된 시각 자료로, 그는 이 안에 기록된 인물들의 얼굴을 지워 특정 서사를 휘발시키고, 관객이 이를 그 자신이 속한 문화와 개별의 사상으로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더불어 베르하스트가 “소위 작가는 죽었기에 작품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언급한 점 역시 이번 작품들을 부리오의 언어로 해석하게 할 여지가 충분하다.2
두 점의 영상 작품은 서사와 이미지로 연결된다. 관객이 손으로 정지된 화면을 누르면 영상이 재생되는 〈아키비스트〉의 이미지 일부는 조이스틱으로 대사를 선택하며 전개를 따라갈 수 있는 〈애드 호미넴〉에서도 나타나고, 두 영상의 내레이터들은 보는 이를 ‘변화’로 호명하면서, 그에게 이 이미지에 대한 전혀 다른 진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전율을 전달한다. 요컨대, ‘변화’는 시간여행자이자 플레이어이자 역사적 아카이브 안에 입장한 관객으로,
그 뜻처럼 미래적 방향성을 손에 쥔 캐릭터로서 행동해야 한다.
〈아키비스트 (허브)〉(스틸) 2022 제공: 바라캇 컨템포러리
작가가 약 3년간 제작한 60개 채널의 인터랙티브 영상 작품 〈아키비스트〉는 4개 챕터(오아시스, 캡슐, 바자, 허브)로 구성되며, 한 챕터에 15개 영상이 동시 재생되도록 설치되었다. 개별 영상은 ‘변화’가 각 챕터를 여행하며 내레이터에게 보내온 편지를 낭송한다. 소피 베라스트가 박사논문 〈유토피아 언바운드〉(2016)에서 제시하는 이 네 가지 유형의 유토피아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문화예술에서 되풀이되는 유토피아의 전형으로, 진보와 혁신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는 사고를 내재한다. 이에 따라 작품은 각각의 주제로 집합된, 집단적 고정관념이 불러온 미래주의적인 상상과 그에 대한 희구를 현시하는 기록물로 이루어졌다. 한편 〈애드 호미넴〉에서는 ‘변화’가 고향에 돌아가 친구들과 연인을 만난다는 설정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질문에 둘 중 하나의 답변을 선택해가며 종래에 자신이 어떠한 성향의 변화인지 진단받는다. 작품명은 ‘상대에 대한 논쟁’을 뜻하는데, 작가는 페터 한트케의 언어극 〈관객 모독〉을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라는, 모호한 리얼리티 안에서 당황하는 관객의 모습과 관련지어 재해석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경우의 수를 동반한 경우라면 더더욱, 관객은 점차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오픈소스 인공지능 모델 GPT- 3와 함께 두 작품 속 대사를 “공동 작업”했다. 책, 블로그 포스트, 인터넷 정보 등 인간이 언어로 남긴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정보를 딥러닝 기술로 포괄하는 이 프로그램이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생성한 텍스트는 (작가가 서구에서 산출된 이미지를 영상에 중점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사상적 편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두 영상은 유토피아의 ‘이데아’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예상 가능한 궤도를 그리지 않는 이미지들과 철학적인 대사의 묶음 앞에서 관객이 주목해야 할 것은 ‘변화’, 그 자신이다. 변화로서, 우리가 전시에서 정말 해야 할 일은 이후를 살아갈 자신의 자아와 생각의 점검일지도 모르겠다.
〈애드 호미넴〉 비디오 게임, 폐쇄회로에 HTML 2022 제공: 바라캇 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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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니콜라 부리오의 저서 《포스트프로덕션》과 《엑스폼: 미술, 이데올로기, 쓰레기》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일단 저자성이라는 개념이 1, 2 니콜라 부리오의 저서 《포스트프로덕션》과 《엑스폼: 미술, 이데올로기, 쓰레기》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일단 저자성이라는 개념이 극복되면 예술가는 공동 생산물의 수집가가 된다. … 대부분의 동시대 미술가들은 대중문화나 미디어산업 생산의 편집자, 분석가, ‘리믹서’로서 활약하고 있다.”《엑스폼: 미술, 이데올로기, 쓰레기》 p.97
글: 조현아 기자
사진: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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