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TOPIC | TOKYO
SHIGEKO KUBOTA
〈Video Poem〉 1970~75/2018 Collection of Shigeko Kubota Video Art Foundation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Viva! Video: The Art and Life of Shigeko Kubota〉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2021년, 구보타 시게코의 대규모 개인전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가 일본을 순회하고 있다. 1991년 이후 약 30년 만에 구보타 시게코의 대표적인 비디오 조각들을 관람할 수 있는 개인전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게코의 아시아인 여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와 구보타의 일생에 걸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일별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초기 작품과 대표적인 비디오 조각 〈뒤샹피아나〉 시리즈, 〈세 개의 산〉 등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준비 과정에서 작가 아카이브, 국내외 작품의 복원과 수리, 영상과 기자재의 업데이트 등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구보타의 개인전이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미디어 아트 전반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생과 예술의 찬가: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
1937년 8월 2일, 설국으로 알려진 니가타에서 네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구보타 시게코는 도쿄교육대학(현 쓰쿠바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한 뒤,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적으로 활동하다 2015년 7월 23일에 삶을 마감한 작가다. 작품 가운데에는 특히 영상과 조각을 결합한 ‘비디오 조각’이 잘 알려져 있다. 2021년, 그녀의 대규모 개인전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가 일본을 순회하며 진행 중이다. 니가타현립근대미술관(3월 20일~6월 6일)과 오사카의 국립국제미술관(6월 29일~9월 23일)을 순회하고 11월 13일부터 2022년 2월 23일까지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1991년에 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Shigeko Kubota Video Sculpture〉(American Museum of Moving Image, 이듬해부터 일본과 유럽을 순회) 이래, 대표적인 비디오 조각들을 관람할 수 있는 개인전은 세계적으로도 약 30년 만이다. 한편, 12월 현재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에서는 〈Shigeko Kubota: Liquid Reality〉전이 열리고 있다. 이리하여 2021년은 예기치 않게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구보타 개인전이 열린 해가 되었다. 12월 19일에는 MoMA의 에리카 페이퍼닉-시미즈, 구보타 시게코 비디오아트재단의 리서치 & 프로그램 디렉터인 리아 로빈슨, 그리고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전을 공동기획한 하마다 마유미(니가타현립근대미술관), 하시모토 아즈사(국립국제미술관), 니시카와 미호코(도쿄도현대미술관), 요시모토 미도리(뉴저지시립대학 부교수, 갤러리 디렉터)가 등단하는 토크 이벤트 〈왜 지금 구보타 시게코인가〉가 열린다.
‘왜 지금 구보타 시게코인가.’ 이 질문은 이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가 된다. 여기에는 우선 1990년대에 하마다의 전임이 검토했던 구보타 개인전이 지진 등의 영향으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경위가 있다. 하마다가 새로 기획을 시작한 때가 2009년이므로, 이 전시회는 실현까지 약 12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에 2011년 기획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러 미국을 방문한 하마다에게 구보타가 한국어로 출판된 《나의 사랑 백남준: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들려주는 백남준의 삶과 사랑, 예술》을 선물한 일이 계기가 되어 하마다의 동료였던 고(故) 고성준의 번역으로 2013년에 일본어판이 출판되었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남아있다.1
〈Duchampiana: Marcel Duchamp’s Grave〉 1972~75/2019 Collection of Shigeko Kubota Video Art Foundation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Duchampiana: Nude Descending a Staircase〉 1975~76/83
Collection of Toyama Prefectural Museum of Art and Design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River〉 1979~81/2020 Collection of Shigeko Kubota Video Art Foundation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구보타 본인의 동의를 얻어 시작한 기획에, 니시카와와 하시모토가 합류하고, 나아가 2015년 9월에 설립된 구보타 시게코 비디오아트재단에 관여해온 요시모토가 참가하게 되었다. 니가타, 도쿄, 오사카, 뉴욕을 연계한 공동 기획이 2020년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과 재단이 위치한 뉴욕 소호 지구의 BLM(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의 영향 속에서 어렵게 실현되었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미술관 3관과 재단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자료 정리, 국내외 작품의 복원과 수리, 영상과 기자재의 업데이트 등은 향후 구보타의 역사적 평가 작업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전시 작품들이 금세기에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미디어아트 전반의 과제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될 뿐만 아니라, 전시 때마다 작품의 형태와 전시 방법을 바꾸고 같은 제목을 가진 다양한 버전의 작품을 제작한 구보타의 미학에 특화된 보존과 복원 방침의 일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니시카와는 그녀의 미학이 “마르셀 뒤샹으로 대표되는 전유나 플럭서스적인 복제(멀티플) 등 현대미술의 중요한 개념에 기반한 것이면서 비디오라는 전자 미디어가 갖는 취약성과 유동성에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녀의 작업이 “개념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최초의 개념과 형태를 토대로 각 장소에서 제작 가능했다”고 썼다.2
이와 같은 경위로 실현된〈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가 ‘지금’ 개최되는 데에는 여성 작가의 재평가라는 문맥에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에너지 – 계속 도전하는 힘 세계의 여성 아티스트 16인〉(모리미술관), 피피로티 리스트의 대규모 개인전(교토국립근대미술관, 미토예술관 현대미술갤러리), 〈페미니즘들〉과 〈어색한 대화에 대한 대응책-제3 페미니즘의 시점에서〉(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등이 개최되고, 잡지 《비쥬쓰테쵸》가 ‘여성들의 미술사’ 특집을 내는 등, ‘여성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시모토가 지적하듯, 2019년에 재개관한 MoMA의 상설 전시 등 이른바 ‘♯MeToo’운동을 반영한 국제 미술계의 문맥에서 구보타의 전시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3 그러고 보면 우연인지 혹은 시대적 필연인지, 앞서 언급한 이벤트의 출연자 전원이 여성이다.
생물학적 성과 젠더가 개인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요인의 일부임을 생각하면, 구보타의 생애를 시대순으로 소개한 이 전시회에서 작가의 생물학적, 사회학적 차원의 여성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특히 구보타는 직접적인 사인이 된 유방암을 앓기 전부터 자궁 적출 등의 건강 문제와 일본과 미국의 문화적인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아시아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에서 잊을 수 없는 자료는 구보타가 디자인한 포스터 〈화이트 블랙 레드 옐로〉(1972)다. 백인인 메리 루시에, 흑인인 샬롯 와렌, 나바호족인 세실리아 샌도발, 아시아인인 구보타, 4인으로 구성된 이 여성 작가그룹의 활동은 단기간으로 끝났지만, ‘독창적인 시각적, 음성적 극장 작품을 발표하기’를 활동의 방침으로 세우고, 당시 제2차 페미니즘에 호응하여 ‘페미니즘 작품의 교환소’ 역할을 지향했다는 미술사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1970년에 첫 배우자인 데이비드 버만과 결별하고 백남준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비디오 제작을 시작한 개인적인 전환기였다.
그녀는 왜 미국으로 이주했을까. 1963년 12월 1일부터 7일까지 나이카화랑에서 개최된 첫 개인전 〈1st. LOVE, 2nd. LOVE…구보타 시게코 조각 개인전〉은 러브레터의 조각 위에 흰 천을 깔고 관객들이 그 종이 더미에 올라가서 입체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 있었다. 안내장과 편지를 보냈지만 당시 미술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반면 전시회장을 찾은 백남준은 “창의적이고 독창적”, 또한 “드물게 대륙적인 스케일을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이에 구보타는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를 떠나 미국으로 갈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4 나아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오노 요코의 소개로 연락을 주고받던 플럭서스의 조지 마키우나스가 1964년에 보내온 초대장이었다. 그 편지는 콘서트 참가를 권유하는 내용이었지만 구보타는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뉴욕에 가겠다”라고 답장을 보내고 제작 재료들을 넣은 〈플럭서스 수트케이스〉(이후에 명명)를 보낸 뒤, 미국으로 떠났다.
관객 체험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이와 같은 초기 자료들에 이어 구보타의 대표적 비디오 조각인 〈뒤샹피아나〉 시리즈, 〈세 개의 산〉(1976~1979), 물, 모터, 프로젝션 같은 동적 요소를 넣은 〈강〉(1979~1981)과 〈나이아가라의 폭포〉(1985/2021)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시의 중반일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죽음’에 관련된 작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싱글 채널 비디오 〈브로큰 다이어리: 나의 아버지〉(1973~1975)에서 구보타는 투병 중인 아버지와 연말연시의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있는 장면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울면서 텔레비전 화면을 쓰다듬으며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교차시킨다. 이 작품을 두고 백남준은 “비디오에 있어서 죽음을 발명한 것은 시게코 (It was Shigeko who invented death for video)”라 평가했다.5 그녀에게 비디오는 무덤과 같은 미디어였다. 〈뒤샹피아나: 마르셀 뒤샹의 무덤〉(1972~1954/2019)과 백남준과 처음 한국을 방문한 추억을 담은 〈한국의 무덤〉(1993)이 보여주듯, 그것은 죽음과 삶,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밝고 아름다운 미디어이다.
MoMA에 비디오아트 부문을 설립한 바버라 런던은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1975~1976)를 전시하고 그 작품이 최초의 비디오 조각 컬렉션으로 수장되게 한 데 기여한 큐레이터이다. 저서 《Video/Art: The First Fifty Years》에서 런던은 구보타를 “용감하고 과감한 예술가, 비디오의 큐레이터”라고 형용하고,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s)에서 구보타가 실시했던 정기 상영회가 뉴욕의 초기 비디오아트에서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었다고 회고했다.6 동시에 구보타는 잡지 기사나 번역 등을 통해 전시회, 작가, 생태운동, 마약 등 미국의 문화 동향을 일본에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표현이 뿌리내릴 환경을 만드는 데도 기여한 작가였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이번과 같은 종합적인 전시회 형식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남성은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성인 나는 느낀다, ‘나는 출혈한다, 고로 존재한다.’” 1974년 MoMA에서 열린 국제회의 〈열린 회로: 텔레비전의 미래〉에 참가한 구보타는 이 발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몇 해 전 이 발언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개인차가 있는 월경을 여성 일반의 특징으로 언급한 점이나 남성과 이성, 여성과 감성을 연관 지은 이항대립구조에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보고 “최근 나는 매달 1만 피트의 테이프를 (월경처럼) 흘리고 있다”는, 제작과 삶이 일체화된 구보타의 감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7 만년의 그녀는 1996년에 백남준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장애를 갖게 되자 그가 별세하는 2006년까지 간병에 전념했다. 그후 10년 동안 자신의 병과 싸우다 2015년 사망했다. 마지막에 전시된 〈섹슈얼 힐링〉(1998),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과 나의 인생〉 (2007)의 자료, 백남준이 구보타에게 보낸 편지, 구보타의 스케치 등은 그녀가 말한 ‘사랑’이 한 남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인생, 그리고 그것과 분리할 수 없는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Duchampiana: Bicycle Wheel One, Two, Three〉 1983~90 FoundationArc-en-Ciel/HaraMuseumCollection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Viva! Video: The Art and Life of Shigeko Kubota〉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Viva! Video: The Art and Life of Shigeko Kubota〉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 2021
Photo: Kenji Morita © Estate of Shigeko Kubota
- 하마다 마유미, 하시모토 아즈사, 니시카와 미호코, 요시모토 미도리,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 큐레이터 좌담회’ 비쥬쓰테쵸 2021년 8월호 p.136쪽.
- 니키카와 미호코, 〈구보타 시게코의 비디오 조각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Viva! Video 구보타 시게코》 카탈로그 가와데쇼보신샤 2021년 p.212, 216쪽.
- 같은 책, p.138쪽.
- 久保田成子、南禎鎬著、高晟埈訳 《私の愛、ナムジュン・パイク》平凡社、2013、69-70頁。
- Nam June Paik 〈Random Access Information〉(1980) in John G. Handhardt, Gregory Zinman, Edith Decker-Phillips (eds.) 《We Are in Open 6Circuits: writings by Nam June Paik》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19 p.173
- Barbara London 《Video/Art: The First Fifty Years》 London, New York: Phaidon 2020 p.32
- Shigeko Kubota 〈Women’s Video in the U.S. and Japan〉 in Douglas Davis, Allison Simons (eds.) 《The New Television: A Public/Private Art》 Cambridge, MA, London: The MIT Press 1977 p. 97.
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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