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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승 〈잠시 찬란한〉

이강승 〈잠시 찬란한〉 갤러리 현대 전시 전경

잠시 찬란할지라도

갤러리 현대는 2021년 11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강승 작가의 개인전 〈잠시 찬란한(Briefly Gorgeous)〉*을 개최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이강승은 백인  -  남성  -  이성애 중심의 서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언어로 삼베에 금빛의 글을 새기고 집요한 노동의 흔적으로 흑연을 촘촘히 쌓은 드로잉을 주된 작업으로 다루며 세계의 퀴어 공동체 이야기에 주목한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여 갤러리 현대의 공간에서 손가락 끝을 맞대고 있는, 삼베 짜는 여인의 손끝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한 작업들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자수와 드로잉 외에도 변형 캔버스 회화, 의상, 아티스트북, 파운드푸티지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신작 40여 점을 공개했다. 갤러리 현대 건물 외벽에 나란히 걸린 두 점의 흑연 드로잉은 내부의 공간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며 은폐된 서사 속 퀴어 공동체의 면면을 드러낸다. 전시장이면서 마른 꽃이 피어나는 정원 혹은 클럽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퀴어 공동체 속의 수많은 사람의 기억들이 깊숙이 새겨져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1970~19 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예술활동 중심지였던 ‘클럽 57’의 멤버로 활약했던 션 맥쿠웨이트(Shawn McQuate)와 협업한 영상작업이 눈에 띈다. 홍콩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쳉퀑치(Tseng Kwong Chi)는 1980년 9월 당시 19살의 발레 댄서였던 맥쿠웨이트 의 모습을 폴라로이드로 촬영했고, 이를 포스터 형식의 작품으로 전환해 동료였던 키스 해링(Keith Haring)이 기획한 전시에 출품했다. 예술가 클럽 57의 멤버 중 현재 거의 유일한 생존자인 션 맥쿠웨이트는 HIV 합병증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이강승의 커미션에 참여했다. 이강승의 소장품인 쳉퀑치의 오리지널 포스터 작업을 위해 쳉퀭치의 사진 속 션 맥쿠웨이트가 입고 있는 의상을 41년 만에 다시 제작하여 착용한 후 힘겹게 포즈를 취하는 영상과 이강승이 쳉퀑치의 사진을 드로잉한 후 태운 작품이 공간 속에서 병치되며 퀴어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상기시키고 잊힌 개인의 서사들을 보듬는다.

지하 전시장은 음악이 흐르고 조명이 점멸하는 퀴어 댄스 클럽으로 변신했다. 최하늘, 듀킴, 정글, 이정식, 미니한, 탁영준, 김재석, 모임 별 등의 참여자들이 퀴어 공간(Queer Space)의 의미를 해석해 각자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다. 이 작업은 퀴어 공동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적 맥락을 가지고 있었던 퀴어 클럽의 역사를 환기한다.

시각예술의 언어로 한국 퀴어 커뮤니티의 틈새에 새겨진 수많은 기억과 미래를 연결하는 작가의 작업은 비단 퀴어 공동체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결고리를 찾기를 염원하는 시도이다. 그 시도가 비록 잠시 찬란하게 빛나고 사라질지라도, 누군가는 과거의 서사를 기록하고 미래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은 미국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자 퀴어 작가인 오션 브엉(Ocean Vuong)의 자전적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에서 인용했다

 이강승 〈무제(션 맥쿠웨이트 3)〉 2분 24초 2021
제공: 갤러리현대

 이강승 〈피부(줄리 토렌티노)〉 44.5×57.2cm 2021

이강승 〈무제(킹 클럽)〉 146×213.4cm 2021

염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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