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과 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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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 8.1 서울시립미술관
처음 미술관으로부터 부자(父子)가 함께 하는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처음 미술관으로부터 부자(父子)가 함께 하는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주호민(이하 호민)
신기하기도 했지만 부담감도 있었어요. 사실 중간에 도망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 아버지와 둘이서 뭔가를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제야 뭔가를 함께 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저는 아버지 그림을 보면서 자라왔고 제가 만화를 그리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으니까요.
전시 제목 ‘호민과 재환’이 아주 강렬하고 간결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제목이네요.
호민 전시 제목은 관장님께서 지어주셨는데,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호민과 재환의 앞글자만 따면 ‘호재’거든요.
아버지와의 밸런스를 맞추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야 해서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호민 제 만화는 벽에 걸기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기를 키웠을 때 그림의 단점이 도드라져 보일까봐 걱정했어요. 게다가 시각적인 쾌감이 느껴지는 그림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과연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고민 끝에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방점을 찍고 전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어떤 피드백을 주고받았나요?
호민 어릴 적 아버지 작품을 볼 때는 맥락 없이 이미지만 봤어요. 그러니까 그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제가 사회 문제를 만화에 녹이는 작업을 하면서 아버지의 유머와 재치를 다시 느꼈죠. 자칫하면 너무 심각해져서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부분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들이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아버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주재환(이하 재환) 구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좋죠. 젊은 감각이 좋아요. 세상이 8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부자전시라는 틀을 떠나서 그냥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주재환 작가님은 2000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와 〈쇼핑맨〉 등을 보여주셨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예전 작품들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재환 오랜만에 보는 작품이라서 감회가 남달랐어요. 20년 만에 보는 작품들도 있어요. 사실 지금 하는 작업보다 옛날에 했던 작업에 훨씬 더 애착이 가요. 모처럼 옛날 작업들을 다시 보니까 내가 어떻게 저걸 만들었을까 싶네요.
주재환 작가님은 항상 관객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시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구상하실 때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재환 일기 쓰듯이 작가 노트를 쓰는 편이에요. 나는 주제를 하나 정해서 꾸준히 밀고 나가지 않고 오락가락 우왕좌왕해요. 아무래도 관심사가 다양해서겠죠. 전라도 음식처럼 작품의 맛도 다양하니까 그 중에 관객의 입맛에 맞는 것이 있겠죠.
이번 전시에서는 꼭 두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작업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도 그렇고요.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아버지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려요.
호민공통의 작업을 통해서 아버지와 어떤 접점을 가지고 싶었어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만화적으로 재구성해서 다시 재미있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캐릭터들을 얹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다만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하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면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상승의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웹툰이 전시장 벽에 평면작업으로 시각화될 때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시 기획과 공간디자인에서 이런 점을 잘 보완한 것 같습니다.
호민, 재환 전시를 기획한 방소연 큐레이터와 공간을 디자인한 김동희 디자이너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작가가 두 명이다 보니 더 힘들었을 거예요. 외부 자문 과정에서 〈그자는 몇번 출구로 튀었을까〉의 미로를 전시장 공간으로 대입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 아이디어를 김동희 디자이너가 〈몬드리안 호텔〉로 변형해 적용했는데 아주 적절히 들어맞았죠.
그동안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재환 호민이가 만화에 입문한 지 15년 정도 됐어요. 서민의 인생을 주제로 한 친근한 작품들을 주로 그렸죠. 그중에서도 신과 함께는 한국 전통 신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요. 긍정적인 역할을 했죠.
호민 평소에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어요. 작품의 유머도 굉장하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 작업하시는 게 놀라워요. 저는 만화를 15년 정도 그렸는데 힘들 때가 많아요. 고된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아버지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호민과 재환〉이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호민 웹툰 작업을 오래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댓글에 신경을 쓰게 돼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예요. 관객 반응이 신경 쓰여요. 강박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난 만화들을 다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를 얻었어요. 돌이켜보니 지금이라면 절대로 못 그릴 것들도 있고, 참 재미있게 그렸구나 싶기도 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작업해야죠.
전시 전경
주재환
1940년 출생했다. 주변에서 버려진 일상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재치 있게 담아낸 작품을 선보여 왔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으로 데뷔한 주재환은 2000년 〈이 유쾌한 씨를 보라〉(아트선재센터)를 시작으로 〈CCTV 작동 중〉(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07), 〈어둠 속의 변신〉(학고재, 2016)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주호민
1981년 출생했다. 한국의 1.5세대 웹툰 작가로 2010년 연재한 웹툰 〈신과 함께〉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만화창작 커뮤니티 ‘삼류만화패밀리(3CF)’에 취미로 그린 만화를 올리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가 군대 경험을 담은 〈짬〉(2005)을 각종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전업 만화가가 되었다. 이후 취업난 속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무한동력〉(2008)과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저승관을 새롭게 그려낸 〈신과 함께〉(2010~2012) 시리즈를 그렸고, 최근에는 유튜브(youtube)와 트위치(tiwitch) 등에서 스트리머로도 활동하고 있다.
글: 염하연
사진: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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