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차혜림 디 아티팩트: 알파벳 O층부터 Z층까지 존재하는 artifact 목록들
시청각 랩에서 열린 차혜림 개인전.
〈디 아티팩트: 알파벳 O층부터 Z층까지 존재하는 artifact 목록들〉 전시 전경
거대한 책장 앞에 선다. 선반들은 알 수 없는 형태와 색과 상징의 저장소이다. 형태와 색과 상징이라니 이 얼마나 현학적인가? 현학적이라니 이 또한 얼마나 무의미한가? 무의미하다니 이 얼마나 고루한가? 고루하다니 이 얼마나 하찮은가? 어쩌면 하찮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들은 그저 선반 위 자기 자리에 있을 뿐이고, 나는 그저 그 앞에 서있을 뿐이다. 본다는 것은 보는 것이고, 말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일 뿐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여기 있다는 것은 여기 있는 것이다. 선반 앞의 나는 선반 위의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나의 형태와 나의 색과 나의 상징들이 털려 나가고, 그들과 연결되어 새로운 차원으로 ‘테라포밍(Terraforming)’된다. 계단, 나사, 원형, 발, 얼굴, 추, 주름, 달팽이, 반쯤, 전진, 덩어리, 가면, 침묵….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나는 ‘고독’이다. 노랑, 파랑, 연두, 실버리, 블랙, 그레이, 톤다운, 샤이닝, 브라우니, 실키, 네이비….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나는 ‘페이딩’이다. 반듯하고, 길쭉하고, 꺾이고, 구불구불하고, 잘리고, 구멍 나고, 휘어지고, 둥글고, 파이고, 세워진….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나는 ‘깜빡임’이다.
정보 값을 0과 1로 입력하는 인코딩 (Encoding)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방식으로, 임베딩(Embedding) 방식이 있다. 임베딩은 하나의 단어에 정수 인덱스를 설정하는 대신에 단어를 수치화하여 나타내는 방식이다. 임베딩은 인코딩 방식보다 저차원의 벡터를 통해 단어를 나타면서 단어들 사이의 유사도를 그린다. 다시 말해, 유사한 의미의 단어들은 유사한 문맥에서 사용된다는 원리를 이용해, 중심단어의 벡터값을 주변 단어들을 통해 예측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입력층(Input Layer)과 은닉층(Hidden Layer) 사이의 가중치 W, 그리고 은닉층과 출력층(Output Layer) 사이의 가중치 W ’를 이용하여 은닉층의 벡터를 예측한다. 그 예측과정에서 일어나는 오차를 크로스 엔트로피(Cross - Entropy)라고 하며,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시 역방향으로 W’와 W’’의 값을 조정하는 과정은 복잡한 ‘단어 - 신경망’을 조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단어를 공간에 배치하는 행위이다. 이를 위해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는 자기만의 ‘단어 - 저장소’가 있다. 그 저장소는 모두의 백과사전과는 다른 구조를 가진 자기만의 백과사전 방식을 가진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입력층과 은닉층, 그리고 은닉층과 출력층의 신경망 속에서 글은 조금씩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차혜림은 그의 ‘단어 - 저장소’에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관객은 자기만의 ‘단어 - 신경망’을 조직한다.
쓰인 단어와 발화된 단어, 그리고 읽히는 단어 사이의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 그리고 뒤돌아보자. 당신 주변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배은아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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