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는 어디까지 왔나

노재민

본지 기자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1. 이전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을 같이 전시했다 제공:부산현대미술관

현황

정부는 2021년 9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생성장기본법(법률 제19469호, 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 공포하고 2022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부문에 제3조에 따른 기본원칙1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며, 관계 법령 개선과 재정투자시설 및 시스템 구축 등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한국미술계의 움직임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집중되었다. 단순히 생태, 재난, 친환경 등을 전시의 주제로 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환경에 부담이 가지 않는운영 방식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국공립미술관 및 규모가 큰사립미술관 위주로 관련 실천이 시작되어 전시에 여러 친환경 전략을 구사하기도했고, 관련매뉴얼이나 자료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2021.6.8~8.8)를 개최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2022 미술관-탄소-프로젝트’를 선보였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21년 지속가능한 ACC 콘텐츠 창제작가이드라인 연구사업의 일환으로가이드북을 제작하고 공개했다.

이 시절의 현황 중 특기할만한사례로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지속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2021.5.4~9.22)을 꼽을 수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5톤트럭 4대 분량으로 배출되던 폐기물을 파란색 큰 카트 한대 분량만 나오는 수준으로 절감했다. 항공 운송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절감하고자운송수단으로 선박을 택했을 뿐만아니라, 부러 극단적인 전술을 사용해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관람할수 있는 타이베이 현대미술관과 제주도립미술관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모니터를 통한 생중계로 작품을 관람하도록 구성했다. 또한 작품을 가지고 오는 대신 작가의 전시 매뉴얼을 붙이기도 했다.

왼쪽 위 린첸지와 차이푸칭의 〈최신 업데이트: 패치 2.1a—광활하고 황량한 바다를 통해 활기를 되찾다〉와 린잉체의 〈이름 없이…〉가 2회에 걸쳐 온라인 생중계됐다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아래 리움미술관의 모듈파티션 설치 전경.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모듈형 파티션을 계속 재활용하고 있다 제공: 삼성문화재단
오른쪽 2022년 9월 3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탄소중립워크숍. 관객과 울산과학기술원 뉴디자인스튜디오가 참여해서
탄소중립부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정책디자인 실험이었다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쉽게도 앞서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른바 ‘지속가능한 실천을 도모한 전시에서 소개했던 실험적인 전략들은 대부분 단발에 그쳤다. 반면 경기도미술관은 전담팀을 꾸리고 전시마다 환경전문가에게 자문할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했다. 현재 외부기관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학예워크숍을 운영하며 전시 폐기물 감축과 비품 정리를 계획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2023년 5월 31일 지속가능한 미술관 운영 매뉴얼을 공표했다. 매뉴얼은 크게 전시 기획 및 교육, 홍보, 시설 세 분야로 나누어 전시 기획 단계와 설치시 고려사항 전시 종료 후 폐기물 활용 및 유관기관과의 협업 방식 등을 담은 총 19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다른 기관의 매뉴얼이 전문용어가 담긴 도표나 학술 담론에 집중해 다소 높은 난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때, 지금 당장 실천할 수있는 전략들 위주로 쉽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영리기관이나 규모가 작은 비영리 공간에서 친환경이나 생태에 관한 주제로 전시를 선보이는 사례는 꾸준히 있으나, 지속가능한 전시 전략을 내세우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고무적인 점은 친환경 전략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경우에 따라 일견 ‘친환경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비용 절감혹은 번거로움을 덜고자 셀 수 없이 많은 갤러리가 작품목록이나 리플릿을QR 제시하고 있는가하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미술관을 건축한 알바로 시자의 의도를 해치지 않기 위해 별도의 조명을 사용하기보다는 가급적 자연광으로 전시장을 밝히고 있다.

온건함보다 과감함

물론 반복되는 노력을 통해 여러 기관에서 리플릿과 가구 및 가벽을 재활용하고, 전시장의 조명을 바꾸거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했으나 몇 년 전 제작되었던 자료집은 업데이트 되지 않았고 시도할 수 있다고 논의되었던 실천 항목들은 사그라들었다. 특히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공운송은 해운으로 대체되기 힘들다는 의견이 강한 실정이다. 단순히 시간의 문제뿐 아니라 항온항습 유지로 인한 보험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마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만큼 현실은 이토록 냉엄한 것인가?주최측이 정성을 들여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이 단발성에 그치자 그간의 시도가 보여주기식은 아니었을까 반문하게 되기도 한다. 현재 여러 포럼, 교육프로그램, 행사 등을 통해 ESG2 경영 혹은 지속가능성을 논하는자리는 꾸준히 마련되고 있으나, 매번 애매하게 끝나는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ESG에서 E(Environment, 환경)보다는S(Social, 사회)와 G(Governance, 지배구조)를 얘기하며, 친환경 전략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정책적으로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무궁무진한 방안을 제시했던 당시의 논의는 잠잠해지고 현재 일부만 적용되고 있다. 도록 표지의 비닐을 없애고 직원들의 일회용품사용 횟수를 줄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수 있을 텐데도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는 않는 상황 속에서 당장 다음 전시부터 폐기물을 어느 정도 이하로 제한하겠다거나 고지율을 점검하겠다고 선언하는 기관은 많지 않다. 심지어 여전히 많은 전시가 친환경 주요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전시 굿즈로 에코백을 끊임없이 제작 및 판매하고 있다. 에코백을 100회 이상 사용해야 일회용 비닐봉투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꽤 알려졌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도대체 에코백을 얼마나 사용해야’에코’한삶에 다가설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녹색 분칠3을 한 정책들이 우후죽순 친환경 성과로 발표되고 있다. 이를테면 관람객이 가방 속 친환경 아이템을 보여주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실을 사진으로 인증하면 친환경 기념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친환경 기념품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친환경적이지 않는가?

갈길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직 한국이 경제성을 우선 가치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가 있는 미술계 관계자라고 하더라도 당장 가용할수있는 시간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면 원래의 실천보다 높은 비용을 감수해야하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친환경 실천이 아득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유의미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단지 개별 미술관의 부족함보다는 정부의 평가 기준이 지구온난화에 급제동을 걸 만큼 친환경적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다시 말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환경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다는 사실을 탓해야한다. 조심스럽고온건한 태도로는 부족하다. 급진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통해 우리는 탄소 배출 절감 목표에 성큼 다가설수 있을 것이다. 김화용작가는 우리가 할수있는선안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깨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으며,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위험한 발상일지라도 정부에서 미술관의 폐기물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하려면 누군가의 강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느순간 마트에서 비닐봉투가 사라졌고, 이제는 박스만 남았다. 일회용 비닐봉투가 당연하던 세상에서 살다가 그렇지 않은 세상이 도래하자 다들 곧 적응했다. 이제는 일회용 비닐봉투가 없는 마트가 당연시된다. 마찬가지로 GCC의 로비를 통한 노력이 결국은 해운운송이 당연한 세상을 이끌지 않을까. 한국미술계라고 왜 그렇게 못하겠는가. ᄋ

1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을 위해 추진해야 할 기본 원칙 8가지
2 기업의 비재무적인 세 가지 요소(환경보호, 사회공헌, 윤리경영)를 뜻하는 말
3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실제로는 환경보호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허위·과장 광고나 선전, 홍보 수단 등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는 ‘위장환경주의’ 또는 ‘친환경 위장술’을 가리킨다

왼쪽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1
전시는 사진 설치에 버려진 액자, 스터디 라운지에 중고 테이블, 중고 노트북과 태블릿 PC 등을 재사용하고 재활용했다 사진: 남기용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오른쪽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서울시립미술관 철거 전경 2021
플라스틱 비닐 시트지 대신 전시장 벽면 월텍스트 및 월그래픽에 이면지, 에코 서체, 망점 인쇄를 적용했다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focus:개인에서 집단으로

몸집이 큰 미술관들은 여러 집단의 합의를 필요로 하고 재정 확보가 쉽지 않은 탓에 기획자의 강경한 의사에도 친환경 실천을 이루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해내며 개인으로서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사례들에 주목해보자. 개인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실천에 함께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1) 김화용

한국 미술계에서 지속가능성에 관한 붐이 일기 전부터「비거니즘 전시 매뉴얼」을 제작하고 배포했다. 공공예술프로젝트 ‘제로의 예술’이 비판적 질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실천으로 이어지게 내부 연구를 통해 매뉴얼을 작성하고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공개했다. 전시를 만들고 해체하는 전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결정의 순간에 환경에 덜 빚지는 선택지를 제공하고, 지금 당장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여러 미술 기관에서 참고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의 나무판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없도록 고안하여 재단한 가벽 모듈〈어떤 것도 버리지 않기 위한 조각들〉(이규동 협력 연구)을 가벽, 좌대, 의자, 책상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2) 션 라스펫(Sean Raspet)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산업 생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 〈 (온대낙엽수림)〉을 통해 미시간주를 기반으로 하는 탄소 격리 및 산림녹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벽에 작품 설명만 달랑 붙어 있는 〈대기 개혁(이산화탄소 수집)〉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수집해서 지하에 광물화하는 회사와 협업한 작품으로, 션 라스펫은 대기 중 1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했다. 그는 전시가 끝나고 미술관에게 1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했다는 증서를 건네었다.

3) 인스타그램 @piece.seoul

작가나 기획자 등 미술 관련 종사자들이 제작 과정에서 남은 다양한 재료와 전시용 가구를 매매하거나 나눌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플랫폼 계정이다. 의뢰자가 매매·나눔 신청서를 작성하면 계정은 사진과 내용을 편집해서 포스팅한다. 의뢰자가 구매나 나눔받기를 원하는 사용자와 연결되어 거래를 진행한 후, 계정 측에 DM으로 결과를 알리면 과정이 완료된다.

노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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