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JAKARTA 2023

교류와 협력에 집중해 단단함 꾀하기

하도경 | 본지 기자

창립 13회를 맞은 인도네시아 대표 아트페어인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 2023이 지난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렸다. 2009년에 바자 아트 자카르타(Bazzar Art Jakarta)로 출범했고 2017년에 이름을 바꿔 새로 단장한 아트 자카르타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향한 분명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국제 아트페어와는 차별화되는 특성으로 입지를 굳혀 왔다. 이번 아트페어는 기존에 아트 자카르타가 개최되던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의 개조와 제43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로 인해 날짜와 개최장소를 변경해야 했으나 케마요란 지역에 위치한 10,000m² 크기의 지엑스포(JIEXPO)에서 전년보다 더 많은 갤러리를 수용했다. 독립 큐레이터 에닌 수프리얀토(Enin Supriyanto)의 디렉팅으로 인도네시아 갤러리 40곳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베트남, 대만, 한국, 호주 등의 해외 갤러리 28곳을 포함해 총 68개의 갤러리가 페어에 참여했다. 한국 갤러리는 아라리오갤러리, 아뜰리에 아키, 백아트, 비트리갤러리, 예화랑, 갤러리이배, 띠오가 부스를 마련했다.

아트 자카르타 2023 포스터 제공: 아트 자카르타

교류와 협력에 집중해 단단함 꾀하기
하도경 |
본지 기자

11월 17일 한국에 첫눈이 온 날, 인도네시아는 우기의 한복판에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열린 아트 자카르타 2023 후덥지근한 기운을 페어장 안쪽까지 잔뜩 머금고 들어왔지만, 그곳을 메운 사람들은 불쾌지수와는 거리가 먼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트페어에 극적인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아트 자카르타는 여느 아트페어들과는 사뭇 달리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금세 그곳의 열기에 녹아들며 편안함과 작지만 옹골찬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내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헤쳐 나갔다. 우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 역사, 지역성을 창조 동력으로 삼아 풀어낸 작업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거였다. 물론 이중에는 변화하는 첨단기술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시도도 있었지만, 규모가 큰 조각 및 설치 작업이 많아 페어장에 활력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아트 자카르타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든 요인은 갤러리 부스 외에 준비된 전시 및 부대 행사에 있었다.

페어를 후원하는 파트너사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섹션인 하이라이트(Highlights)와 페어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업을 전시하는 스폿(Spot), 기관 및 민간기업과 협력해 컬렉션을 소개하는 AJX, 아티스트 집단과 비영리 단체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섹션인 신(Scene), 어린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창의력과 감성,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플레이(Play) 섹션, 전문가, 예술가, 수집가, 큐레이터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인 토크(Talk) 등을 제시했다. 저마다의 섹션은 엄격하게 구획돼 한데 뭉쳐 있는 것이 아닌, 전시장 곳곳에 포진해 있어 페어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에코 누그로호와 우지 한도코 에코 사푸트로와
필리핀 작가 제럴딘 하비에르를 비롯해 권오상, 노상호, 심래정, 이지현, 이진주의 작품으로 부스를 꾸렸다
아트 자카르타 2023 아라리오갤러리 부스 전경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시아기니 라트나 울란 〈기억의 거울 궁전〉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19~2023 Courtesy of Bibit and Artist
아래 박지현 〈Thomson 6.1944 S 106.8229 E〉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23 Courtesy of TACO and Artist
아트 자카르타 2023 설치 전경 2023 제공: 아트 자카르타

협업을 매개하는 장소로서 아트페어
하이라이트 섹션에는 스위스자산관리 그룹인 율리어스 베어(Julius Bar)와 글로벌 은행인 UOB 인도네시아, 디지털 투자 앱 비빗(Bibit) 등의 기업이 참여했다. 해당 섹션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린 곳은 디지털 투자 앱인 비빗이 소개하는 상당한 규모의 작업이었다. 비빗은 2019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파빌리온에 전시된 <잃어버린 시(Lost Verses)>를 기반으로 한 시아기니 라트나 울란(Syagini Ratna Wulan)의 <기억의 거울 궁전(Memory Mirror Palace)> 작업을 선보였다. 다양한 오브제를 담고 있는 178개의 투명 캐비닛 위에 모두 각기 다른 텍스트들이 기재돼 나열된 형태다. 텍스트는 캐비닛 내부에 있는 오브제와 매칭되어 사유 맥락을 부여하며, 관객 저마다의 경험과 해석을 유도한다. 이는 단순히 단일한 캐비닛뿐만 아니라 캐비닛과 캐비닛 사이의 상호 연결을 촉발해 더 다차원적인 해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시대의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을 은유하기도 한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당시에 작업은 다양해지고 넓어진 세상에서 개인의 서사가 시간에 흡수되는 상황을 게임화(gamification)의 작동으로써 이해하며 세계화된 조건을 층층이 쌓인 경험으로 상상해 볼 것을 권유하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이는 동시대 미술을 이루는 사회 문화적 맥락과 이론이 범세계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며, 작가는 이를 위해 정의로운 경쟁과 협상을 통한 비판적 대응과 일시적이며 우발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내 보인다.

이외에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타코(TACO)의 기업 후원 작가로 선정된 박지현은 한 달가량 자카르타에 체류하며 사전답사로 타코의 생산제품과 시설을 둘러보고 해당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현지의 재료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특정한 모양을 재단하기 위한 인쇄 기법인 도무송에 사용되는 중고목형으로 작업을 해온 그는 곧 출시될 타코의 제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하는 <톰슨> 시리즈 스페셜 에디션을 전시했다. 이번 작업에 대해 그는 “자카르타의 위도와 경도를 제목으로 정했고, 4m 높이에 사방 1.6m 크기의 입방체 구조와 물질적 유사성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를 통합해보기 위해 상징적으로 추상화된 도시 구조를 만들었다”며 “색다른 재료의 표현을 이 기업의 제품과 가공 방식으로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작업 배경에 대해 전했다.

페어의 또 다른 섹션 중에 AJX도 괄목할 만했다. 2023년 한국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여 아세안과 한국 미술계를 연결하기 위해 아세안 – 한국 갤러리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아세안 한국문화혁신 파트너십 프로젝트(ASEAN-KOREA Partnership Project for Innovative Culture)’를 선보였다. 이는 갤러리와 아트페어의 역할이 무엇인지 짚어보고, 국가나 지역을 초월한 파트너십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모색해보는 장이었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VICEVERSA’는 인도네시아 미술계에 진출한 사진가 인드라 레오나르디(Indra Leonardi)가 약 26년간 작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촬영한 초상화를 바탕으로 한 출판 프로젝트다. 전시는 출판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꾸려졌으며, 부스는 초상화를 본 작가들이 레오나르디의 사진에 자신만의 특별한 오브제를 추가해 그 결과물을 함께 소개했다. 이는 초상화와 작가 그리고 자신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와 동지애 그리고 징검다리로서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드러내 보였다.

올해 스폿 섹션에는 총 9점의 작품이 소개됐다. 이 중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왔던 작업은 자카르타에 기반을 둔 갤러리인 ROH와 아라리오갤러리가 함께 소개한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다. ‘당신의 목소리는 나의 것(Your Voice is Mine)’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판자를 들고 있는 양복 차림의 사람과 작업복을 입고 콘크리트 야자수에 몸을 기댄 채 쉬고 있는듯한 인물 설치 작업이 공간의 한복판을 장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문제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 작업은 아트페어라는 특수한 곳에 설치됨으로써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로컬, 공동체 문화를 중시한다는 것
아트 자카르타가 열리는 시기에 자카르타곳곳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미술생태계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전시 및 행사도 열리고 있었다. 자카르타의 케본 제룩에 위치한 마찬(MACAN)은 인도네시아 컬렉터이자 기업가인 하리얀토 아디쿠수모(Haryanto Adikoesoemo)에 의해 2007년에 설립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은 현장교육과보존 공간을 포함하여 7,100m의 시설에서 전시와 행사를 비롯한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연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발표한 2018년 세계 100대 장소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

아트 자카르타가 열린 시기에 마찬에서는 ‘크게 또는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What does it mean to speak up or speak out?)’라는 질문을 던지는 전시 Voice Against Reason)가 열리고 있었다. 전통과 현대 매체의 조화를 통해 질문에 다가가는 아시아 태평양 전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24명이 저마다의 해석을 소개했다. 전시는 인류의 경험이 역사와 감정의 실을 통해 구조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한 사람의 목소리는 세대를 통해 울려 퍼지는 집단적 고통, 두려움, 기쁨에 공명한다는 점을 작가 저마다의 방식을 빌려 방증한다.

아트 자카르타 2023에서 많은 이들을 끌어모은 갤러리 ROH에서는 일본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단둥에서 작업하는 이마즈 게이(Kei Imazu)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마즈 게이는 고고학적 방법론을 기반으로 물질문화와 지구상의 구조물로부터 삶의 세계를 회복하고, 재건하는 데 관심을 둔다.

왼쪽 고이즈미 메이로(Meiro Koizumi) 〈God Machine Bad Machine〉 다중 채널 비디오 35분 14초 2022
Courtesy of Annet Gelink Gallery & MUJIN-TO Production and Artist
오른쪽 실파 굽타(Shilpa Gupta) 〈Threat〉(부분) 비누 72×229×107cm(15×6.2×4cm each) 2008~2009 소장: M HKA, Antwerp / Flemish Community
《Voice Against Reason》 MACAN 전시 전경 2023 제공: MACAN

나타샤 톤티(Natasha Tontey) 〈Garden Amidst the Flame〉 HD 필름 27분 41초 2022
《Voice Against Reason》 MACAN 전시 전경 2023 제공: MACAN

전시는 식민지 폭력의 현장이자 식민지 착취의 대상인 동시에 삶과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지구가 어떻게 역사와 신화를 동시에 운반하는지 은유적인 방식으로 다뤘다. 게이는 신화에서 착안해 전시 공간을 일종의 내장기관으로 간주하고 수행적인 번역을 감행했다.

한편, 2008년에 문을 연 인도네시아 최초 민간 아트센터인 코무니타스 살리하라(Komunitas Salihara)에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주관하고 WESS의 장혜정, 윤율리가 기획한 전시 (Natural Born Odds》가 열렸다. 전시는 한국 대중문화의 배경이 될 만한 역사적 상황을 통해 그것에 대해 젊은 작가들이 ‘태생적으로 당연히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기획됐다. 한국만의 특징적인 도시 경관, 속도, 조화 혹은 부조화 등을 보여주는 김민희, 돈선, 류성실, 무니페리, 이동훈, 안초롱, 임영주, 정여름, 차재민, 최용준, 현남의 작품과 뭎:(Muip)의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전시를 기획한 장혜정, 윤율리는 이 전시에 대해 양국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한다는 표면적 의미 외에 민간 영역의 전문가 그룹에 의해 상호 참조적인 교류가 일어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짚었다.

인도네시아 아트신은 동시대 미술과 관련된 국공립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재단의 기반시설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작가의 작업을 지원하는 공적인 제도도 취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관과 민간기업 컬렉터, 작가가 함께 소통하고 협업해 함께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다. 지역의 이니셔티브를 지원하며 예술계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펀딩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인도네시아 미술생태계를 더욱 옹골차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트 자카르타는 아시아의 유럽 중심 아트페어들은 다루지 않는 작품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수요와 논리에 의해 종종 배제되곤 하는 예술의 형태에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엿보였다. 또한 자카르타에서 열린 작고 큰 규모의 전시를 보고 느낀 점은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가 이들의 동시대를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모여 더 탄력적이고 탄탄한 목소리를 매개하는 예술을 생성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러한 노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닌 다양한사람이 힘을 보태고, 싣고, 합치는 과정에서 발현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미술신을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발전한 듯 보이는 한국 미술신에 분명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사각지대가 지속해 마주하는 답보상태를 더 세밀하고도 치밀하게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이마즈 케이 〈Hainuwele〉(사진 가운데) 오일에 주트 350×800×4cm 2023 《unearth》 ROH 전시 전경 2023 제공: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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