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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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 메시티 : 릴레이 리그

1.12~2.11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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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안젤리카 메시티 〈릴레이 리그〉 3채널 비디오 설치 8분 2017 오른쪽 안젤리카 메시티 〈시민 밴드〉 4채널 비디오 설치 21분 25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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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출신의 영상 퍼포먼스 작가 안젤리카 메시티의 개인전에는 전시의 전주(prelude) 격인 사운드조각 한 점 외에 두 편의 영상작업이 소개되었다. 아트선재센터 2층에 3채널 비디오로 설치된 〈릴레이 리그〉(2017)와 3층에 4채널 비디오로 설치된 〈시민 밴드〉(2012)는 멀티채널 스크린 사용에 관해 눈여겨볼 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이 두 편에서 모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공교롭게 넘길 게 아니다. 작가가 이전부터 꾸준히 음악 또는 (목)소리 언어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영상 설치를 매체로써 사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준다. 멀티채널 스크린의 상호 연관성, 시각 이미지와 분리된 사운드의 사용, 영상 이미지를 바라보거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관객의 동선 모두 세심한 고려의 대상이다. 악기 연주와 노래가 직접 제시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영상 설치가 마치 합주나 협연을 지휘하듯 이루어진다.

〈시민 밴드〉는 그 직접적인 예시이다. 이주민 네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리듬을 타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방을 두른 네 개의 화면에 각각 한 사람의 모습을 차례대로 담았다. 이 작업에서는 특히 싱글 채널을 재생할 때 화면 바깥의 소리를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통해 화면 밖의 협주자를 상상하게 하는가 싶더니, 결국 (루프 재생의) 마지막 화면이 끝나거나 첫 번째 화면이 시작되기 전에 사면을 맴도는 어둠 속의 불빛과 함께 네 화면의 소리가 모두 포개지도록 연출한다. 이때 단지 네 화면의 기계적 합성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건 개별 화면에 시각적 출처가 없는 소리가 삽입되어 화면 외부와의 교차가 사전에 암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악/소리는 멀티스크린이 상호 관계 맺는 근거가 된다.

〈릴레이 리그〉는 반원형 전시장을 크게 도는 디귿(ㄷ)자형 비닐 및 가벽에 설치되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자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진입하여 첫 번째 화면에서 연주자 한 사람이 옥상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두 번째 화면에는 무용연습실 바닥에 앉은 두 사람이 풀 샷으로 담겼고, 이들은 속삭이듯 말하거나 움직임을 가르치고 배운다. 한 사람은 시각 장애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계속해서 허공에 곁눈질을 해서 꾸준히 신체 접촉을 하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의 시선(의 방향)은 교차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바로 이 산만한 시선이 화면 바깥을 상상하게 만든다. 비닐 가벽 너머 안쪽 방의 세 번째 화면에서는 무용수 한 사람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즉흥적인 움직임을 펼친다. (이 마지막 영상을 시작 시간에 맞춰 본다면 다른 두 화면과의 관계가 차근차근 풀어지는 효과가 있겠지만 루프 재생인 관계로 작가가 마련한 도식이 단번에 알려지고 만다. 모든 요소를 매우 섬세하게 ‘지휘’하는 메시티의 방식을 고려하면 이 부분은 기술적 한계 등의 이유로 통제하지 못한 예외로 보인다.)

연습실의 전면 거울 앞에 선 솔로 무용수는 어깨너머에 슬쩍 시선을 던진 후 즉흥 안무를 시작한다. 러닝타임이 절반쯤 지날 무렵 포커스 아웃 상태로 나타났다가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는 두 인물이 바로 두 번째 화면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솔로 무용수의 움직임을 배우고 있던 것이다. 솔로 무용수가 두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추기 때문에 여기서도 세 사람의 시선은 교차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음악이 멎고 무용수가 전면 창 너머를 바라보며 끝나는데, 창문에 건너편 건물의 옥상이 비쳐, 무용수의 신체가 반응하던 음악이자 영상 이미지 바깥의 사운드가 첫 번째 화면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던 소리로서 무용수와의 실시간 협업이었음이 암시된다. 사운드 퍼포머와 솔로 무용수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솔로 무용수는 듀엣 또는 두 명의 무용수와 공간을 공유하지만,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 탓에 이질감이 있다. (듀엣의 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시각을 이용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무용수와의 소통은 목소리 및 소리를 보조하는 신체 접촉으로 이루어진다. 시각장애가 있는 퍼포머의 기용은 소리를 통한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네 사람은 오직 ‘소리’를 통해서만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한다. 관람자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통해 영상 속 인물과 함께 있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단지 소리가 진동을 통해 관람자에게 신체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멀티채널 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화면 바깥(외화면), 보이지 않는 곳의 소리를 화면의 내부뿐 아니라 관람자가 발 딛고 있는 공간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멀티채널 스크린으로 이미지를 고립시켜 ‘함께 있지 않음’의 상태에 놓은 후 소리로 공동(체)을 상상하게 하는 메시티의 방식은 매우 도식적이다. 그렇지만 섣불리 음악과 공동체에 관한 낭만주의로 흐르지 않으면서 고립되었으나 공유되는 상태를 은유적으로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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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현 |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