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무명 사진가’
20세기 후반 사진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독일 사진가 아르노 피셔의 회고전이 오는 8월 21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전인 1953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거쳐, 피셔가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으로, 빈티지 프린트를 포함해 180여 점의 사진 작품으로 구성된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도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켜온 피셔의 작품을 바라보며,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보통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베를린 상황’, ‘패션’, ‘뉴욕’, ‘여행’과 노년의 자신의 집 정원을 찍은 폴라로이드 연작인 ‘정원’ 등 총 5개 파트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손으로 직접 프린트한 ‘진짜 사진’의 맛을 즐겨보자.
Berlin Burning, 1943/East Berlin, New Years Eve, 1989-1990 © Estate Arno Fischer, ifa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이수균입니다.
- 현재 진행 중인 전시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이번 성곡미술관에서 독일 사진사의 상징적 인물인 아르노 피셔(Arno Fischer, 1927~2011)의 사진전을 엽니다. 동독 출신인 아르노 피셔의 이번 전시는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전인 1953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거쳐, 피셔가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입니다.
- 이번 전시 기획자가 아르노 피셔와 특별한 관계라고 하던데, 무슨 사이인가요?
이번 전시는 사진 역사학자이자 피셔와 선후배 사이였던 마티아스 플뤼게가 기획했습니다. 아르노 피셔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9년에 마티아스와 함께 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도 함께 선별했다고 해요. 사실 이 전시는 독일국제교류처의 요청으로 동독의 사진가를 알리기 위해 2009년에 기획돼 2022년 성곡미술관 전시를 마지막으로 세계 투어를 마칩니다.
- 이번 전시는 베를린 상황, 패션, 뉴욕, 여행, 정원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피셔의 눈으로 바라본 ‘베를린 상황’이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르노 피셔 만큼 대도시 동서 베를린의 문화적·정치적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해 밀도 높은 사진으로 담아낸 작가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럽에서는 유명한 사진가인데, 우리에겐 매우 낯선 작가이죠. 그의 사진은 독일의 전쟁, 분단과 통일을 모두 목격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생생한 증언이자 당시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독 출신 사진가의 작품을 본다는 게 특별한 기회잖아요. 우리도 나중에 통일됐을 때 어떤 특별한 작가들이 탄생할지 호기심과 기대감이 동시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 아르노 피셔의 사진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생생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베를린의 동서 분단 이후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주제들도 잘 담아낸 것처럼 보여요.
아르노 피셔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동서 베를린의 상황을 잘 담아낸 작가이이지만, 동시에 여행 사진가이자 패션 사진가로서 ‘지빌레’라는 동독 여성 패션 잡지에서도 활약하면서 당시 동서 베를린의 일상의 모습을 잘 담아냈습니다.
- 다른 사진전과는 다른 <아르노 피셔> 전시만의 특징이 있다고 하던데 무엇인가요.
먼저 동서베를린의 1960년대 사회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고, 패션사진을 통해 당시 동서 베를린의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프린트에 익숙한 우리 눈에 작가의 손으로 프린트한 전통 프린트 기법 중 하나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7점을 통해 ‘진짜 사진’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프린트한 빈티지 이기도 합니다.
- 성곡미술관에서 다양한 사진전을 개최하였는데, 혹시 준비한 전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전시가 있다면.
요즘은 우리 모두 카메라를 소지하고 다니며 누구나 예술가가 될 기회를 가지는 것 같아요. 이것이 오늘날 사진이라는 매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이지요. 사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적합한 사유의 도구가 되었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봅니다. 특히 ‘셀피’로 자신을 알리며 소통하잖아요.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매체이지요.
그동안 성곡미술관에서 박형렬, 천경우, 변순철 등의 한국 작가님뿐만 아니라 알랭 플레셔, 앙드레 케르테츠, 게리 위노그랜드 등 여러 해외작가까지 다양한 사진전을 선보였는데요. 그중에서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과 ‘사진의 힘’ 전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 2인전은 사진 교육을 받지 않고 평생을 아마추어로 활동하면서 보모로 생계를 유지하다 세상을 떠난 비비안 마이어
와, 사진 교육을 받고 당대 유명세를 탄 게리 위노그랜드 전으로, 동시대를 공유하였지만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두 사진가가 기록한 삶의 모습들을 감상하면서, 한 시대, 한 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과정의 모호성과 작품의 우상화, 그리고 순수한 시각에 대한 인간의 열정과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의 비교 전시가 의미 있었구요. 또 다른 ‘사진의 힘’ 전은 프랑스국립현대미술재단FNAC 소장품 중 100여점으로 구성된 전시로 사진작품 대부분이 2000년 전후에 제작된 사진이며, 은염 프린트를 비롯해 시바크롬, 컬러 프린트와 다게레오타입의 전통 기법, 그리고 디지털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린트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접해보는 프린트 기법도 있었구요.
- 그렇다면 성곡미술관 자랑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성곡미술관은 2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 공간이 매우 넉넉해 대형 전시를 개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한 개인의 예술의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뒤편으로 1000여 평 규모의 조각정원이 있는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정원으로 예술가들의 작품과 미술관 카페가 자리 잡고 있어서 전시 관람 후 꼭 거닐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방문 예정인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올해 성곡미술관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준비했는데요, 그중에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우수한 역량의 청년 예술가와 기획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성곡미술관 오픈콜’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현재 성곡미술관 2관에서 8월 21일까지 아르노 피셔 사진전과 함께 <어디에 지금 우리는? Where Are We Now?>전을 개최하고 있으니 함께 관람하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Marlene Dietrich, Moscow © Estate Arno Fischer, ifa
Juliette GRECO, East Berlin © Estate Arno Fischer, ifa
글,사진 : 하연지
© Estate Arno Fischer, 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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