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KIM JOON

김준은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해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해 왔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작가전인 김준의 《템페스트》(2022.10.25~2022.12.3)에서 작가는 소리를 ‘듣는’ 차원을 넘어서 자연, 사람, 동물, 기계의 소리를 포함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소리, 소리환경을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소리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을 통해 주변 환경을 비판적으로 재고하고, 지역의 소리생태계와 사회구조를 공감각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템페스트》 송은 지하 2층 전시전경 2022

김준은 1976년 출생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와 빌레펠트 응용과학대학 사진 & 미디어학과 석사, 베를린 예술대학 아트 & 미디어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상태적 진공》(다시세운광장, 2018), 《다른 시간, 다른 균형》(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16), 《정화공장》(스페이스 엠, 2016)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도시공명》(국립현대미술관, 2022), 《생의 기억》(닻미술관_프레임, 2022), 《DMZ 아트 & 피스 플랫폼》(제진역, 2021), 《루트 메탈리카》(을지예술센터, 2020)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다수의 주요 미술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기
손세희 | 독립큐레이터

2012년 김준은 베를린 예술대학 졸업을 앞두고 공공장소에서 발견한 전자기파의 은밀한 존재를 폭로하는 작업 〈피드백 필드(Feedback Field)〉를 만들었다. 통일 이후 베를린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쓰였던 많은 시설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템펠호프 공항도 폐쇄되었다가 2010년 공원으로 조성되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준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이곳에 직접 만든 전자기파 탐지기를 가지고 갔다가 수상한 신호를 포착한다. 신호는 10초를 주기로 반복되었는데 공원 한쪽에 자리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옛 레이더 타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레이더는 날씨, 군사 등 다방면에서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늘 동반한다. “아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고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곳이었다 (중략) 안 들리고 안 보이니까 모른다.” 1 그러나 유해한 것은 아닐까,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김준은 수집한 전자기파를 소리로 바꾸어 온라인에 공개하고 그 앞을 오가는 시민들이 직접 들을 수 있게 접속 링크를 큐알코드로 만들어 현장에 붙여 놓았다.2
이 작업은 《템페스트》(2013, 2015)로 이어진다. 제목을 듣고, 필자처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를 떠올리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준이 말하는 ‘템페스트’는 누설되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정보를 도청하거나 이를 방지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사실, 이 기술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태풍’이란 뜻)에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파란처럼 약간은 두려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2015년 〈템페스트〉에는 서랍같이 생긴 작은 상자와 헤드폰이 비치되었다. 관람자들이 소지한 휴대전화나 전자기기를 여기에 넣으면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기파가 소리로 변환되어 헤드폰을 통해 들려온다. 1세대 독일 사운드예술가 크리스티나 쿠비쉬(Christina Kubisch, 1948~)도 전자기장을 이용한 사운드 아트 작업으로 유명하다. 쿠비쉬는 1981년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전자기 유도 이론을 적용한 첫 사운드 설치 작업 〈바다의 숨 Il(respiro del mare)〉를 선보였다. 벽에 미로 형태의 전선을 만들어 붙여 놓고 관람자에게 작가가 제작한 스피커가 들어 있는 작은 큐브를 준다. 이 상자를 가지고 전선 주변을 이리저리 다니면 미리 녹음한 바다의 소리, 작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관람자들은 미로같이 생긴 전선 주변을 오가며 상자를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리를 조합, 구성할 수 있다.
김준은 최근 열린 개인전 《템페스트》(2022.10.25~2022.12.3 송은) 3에서 발표한 신작에도 같은 제목을 붙였다. 2022년 〈템페스트〉는 관람자들의 주머니 속 전자기기뿐 아니라 전시장에 있는 와이파이 네트워크, 엘리베이터, 다른 여러 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를 감지하고 초지향성 스피커 3대를 통해 재생된다. 초지향성 스피커는 사람의 가청 주파수 영역보다 높은 주파수인 초음파를 이용해 소리를 발생시키며 마치 스폿 조명처럼 주변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특정 방향, 영역에만 소리를 전달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특정 지점에 설 때 비로소 전시장 안에 존재하는 전자기파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초지향성 스피커의 맞은편 한쪽에 서 있는 거대한 사운드 미러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반사해 우리의 감각에 혼란을 일으킨다. 이 구조물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적의 침입을 미리 알고 경고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사운드 미러의 형태를 참조했다. 사운드 미러는 레이더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 적국 공군기의 엔진 소리를 포착하여 군대에 경고를 보냄으로써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김준은 적의 침입이라는 매우 급박한 상황을 알렸던 사운드 미러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왔다. 휴대전화나 전자시계가 만들어내는 전자기파를 단순히 듣게 했던 2015년 〈템페스트〉에 비해 물리적 스케일만 커진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전자기파에 대한 우려를 더 강력한 시각적 표현으로 표출하고 있다.

〈흔들리고 이동하는 조각들〉목재, 탁본이미지, 스피커, 앰프, 다채널 사운드 가변설치 2022
〈필드노트 -  뒷산의 기억〉8채널 사운드, 나무, 아크릴, 앰프, 스피커, 사진 73×73×165cm 2022

쿠비쉬는 2003년부터 작은 상자 대신 직접 개발한 헤드폰을 사용해 좀 더 넓은 지역 – 도시의 특정 지역 – 을 돌아다니며 전자기장을 듣는 〈전자 산책(Electrical Walks)〉을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세계 곳곳 도시들의 전자기파 사운드 아카이브도 구축했다. 쿠비쉬는 자신의 이러한 예술 작업이 ‘사회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며 전자기장이 점점 증가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4 그러나 그의 작업은 전자기장이 만들어내는 ‘미학’에 더 중점을 둔다. 쿠비쉬는 전자기 유도를 “음악적 사운드를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이용한다. 그에게 전선이나 케이블 안의 전류는 “음악적”이다. 5 반면, 김준은 특정 지역 소리생태계와 역사, 정치, 사회, 환경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가 자신을 ‘사운드스케이프’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라고 소개하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사운드스케이프’는 ‘랜드스케이프 landscape’(풍경)와 ‘사운드sound’(소리)를 합한 조어로 캐나다의 음악가이자 교육가였던 R. 머레이 셰이퍼(1933~2021)가 처음 사용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자연, 사람, 동물, 기계의 소리를 포함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소리, 소리환경을 의미한다. 인류의 소리 역사를 통찰하는 저서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에서 셰이퍼는 소리환경이 어떻게 한 사회의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를 암시하는지 설명한다.6 무엇보다 우리가 주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미래를 위해 “사라질 위기에 있는 소리를 수집하고, 새로운 소리가 분별없이 방출되기 이전에 그것의 영향을 조사하고, 인간에 대해 소리가 갖고 있는 풍부한 상징성을 연구하고, 다른 소리 환경에서 인간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7 이러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 오디오 생태학인데 김준의 작업들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들어야지만 들리는 거다.” 8김준도 ‘잘 듣기’에 대해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가로서, “있는 소리를 어떻게 들려줄까 고민”하며9 있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들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탐색하고 질문한다.
2015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소리 공동체》에서 김준은 채집한 소리들을 서랍장처럼 생긴 나무 구조물에 넣어 들려주기 시작했다. 시각 기반의 예술에 익숙한 관람자들이 낯설기만 한 스피커를 이리저리 보느라 정작 ‘소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면을 본 작가가 고안해낸 방책이다. 소리의 재생장치인 스피커는 숨겨졌다. 어떤 서랍을 열면 런던 화력발전소, 지하철의 소리가 나오고 다른 서랍을 열면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전라도 지역 산천의 소리가 나온다. 뉴질랜드, 호주의 지질 탐사에서 담은 소리들이 흘러나올 수도 있다. 서랍을 여닫는 단순한 행위 하나로 전혀 다른 세계를 오가는 신기한 기분이 든다. 서랍을 여닫으며 관람자가 원하는 대로 소리의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쿠비쉬가 말하는 “창의적 듣기”를 실험할 여지도 제공한다. 10최근 개인전 신작 〈흔들리고 이동하는 조각들〉(2022)에서 김준은 수직으로 배치돼 있던 이 소리 상자들을 수평적으로 펼쳐 액자처럼 벽에 걸었다. 작가가 거주하는 강원도의 지질공원을 중심으로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이 고대 생명체의 흔적을 암시하는 암석 지형을 탐사하며 수집한 소리와 이미지들이다. 관람자는 넓은 전시장 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린 소리를 들으며 벽을 따라 천천히 걷게 되는데 마치 작가가 이 소리들을 채집하고 녹음하면서 했을 소리산책을 조금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중앙에 놓인 그네를 닮은 나무 구조물에는 스피커들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원래 소리는 움직이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먼 곳의 소리를 듣는(그리고 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11 우리는 가까이 있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신경 쓰이는 소리를 덮는 백색소음들, 원치 않는 주변음을 제거(노이즈 캔슬링)하는 기술들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셰이퍼의 생각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 나가는 길과는 정반대의 기술들이다. 〈상태적 진공〉(2018)은 특이하게도 청계천 근처 세운광장에 설치되어 새벽에만 체험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세운광장 일대의 일상적 소음을 녹음해 가장 조용한 시간에 들려주었다. 새벽 3-4시, 미리 신청한 사람들이 광장 한복판에 설치된 투명한 큐브 안에 들어가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한낮의 소음을 듣는다. ‘한낱’ 소음은 비로소, 고요가 내려앉은, 음향적 진공 상태에 가까운 잠깐의 시간 예술가가 만든 일시적 공간 안에서 ‘일부러 찾아가 귀 기울여 듣는’ 예술로 마법같이 다시 태어난다 – 재생된다. 〈마지막 시간, 다시 찾은 공간〉(2022)에서 작가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들을 수 있던 사운드스케이프를 공유한다. 16개의 나무 기둥에서는 작가의 아내가 해가 떠오르고 지는 시간대에 들려오는 소리에 응답하며 연주한 피아노 선율이 나온다. 숲으로 둘러싸인 작가의 집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크기가 다른 기둥들은 집 주변의 나무들을 표현한 것일까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작품의 제목 때문인지 지난해 읽은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 나오는 한 구절이 입가에서 맴돈다.
“우리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12

〈템페스트〉 목재, 3채널 초지향성 스피커, EMF 사운드 전환장치 가변설치 2022

김준 작가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도시 공명》 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도시 공명》         작가 인터뷰 영상 참고. www.youtube.com/watch?v=jFIgo2mxtf8
  2. emf- berlin2012.tumblr.com/
  3. 2019년 김준은 송은미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송은에서의 개인전 혜택이 주어진다.
  4. Christoph Cox “Invisible Cities: An Interview with Christina Kubisch” Cabinet no.21 Spring 2006 www.cabinetmagazine.org / issues/21/cox_kubisch.php(2022년 11월 30일 검색)
  5. 위의 책
  6. 머레이 셰이퍼 지음 한명호 · 오양기 옮김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홍성: 그물코) 1993 p. 21
  7. 위의 책, p.16
  8.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도시 공명》 작가 인터뷰 영상 참고. www.youtube.com/watch?v=jFIgo2mxtf8
  9. 김준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2021년 11월 17일)
  10. Christina Kubisch “About My Installations” A Different Climate: Women Artists Use New Media Städtische Kunsthalle, Düsseldorf, 1986; republished in Caleb Kelly (ed.) Sound London and Cambridge: Whitechapel Gallery and The MIT Press, 2011 p.194~199
  11. 머레이 셰이퍼, p.80
  12.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멀고도 가까운』       서울: 반비 2016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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