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AK HOON
ARTIST REVIEW
〈Halaayt〉 종이에 아크릴 76.5×57cm(각) 2022
곽훈은 1941년 출생했다. 서울대 서양화과,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 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미술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75년 미국 이민을 택했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LA시립미술관장이던 조신 양코의 눈에 들어 1981년 첫 전시를 열고 미국 화단에서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에는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본 선화랑의 지원이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지난해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강렬한 색감과 터치로 추상과 구상이 뒤섞인 세계를 구축해 왔던 곽훈의 개인전이 선화랑에서 열렸다. 1980년대에 작업했던 〈기(氣)〉, 1990년의 대표작 〈겁(劫)〉 연작과 함께 신작 〈할라잇(Halaayt)〉 연작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특히 신작 〈할라잇〉 연작은 그가 태고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선사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강렬한 행위성과 역동적인 터치를 보여준다. 곽훈은 오랜 세월 쌓아 온 회화의 궤적을 뒤로 하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모험하고 있다.
〈White Warrior〉 기록영상 스틸컷 연출/감독: 박문희 안무/퍼포머: 조우채 촬영, 편집: 마필 제공: 박문희
침묵의 목소리
윤진섭 | 미술비평
Ⅰ “곽훈의 그림들 속에는 역사에 대한 성찰이 내면화돼 있다. 칠하고, 긁고, 입히고, 닦아내는 부단한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이 역사성은 일종의 은유로 화면에 고착된다. 그것은 서구의 역사가 아닌 동양의 역사이며, 한국의 역사다. 방법론은 유사하되 문화적 코드의 원류는 서로 다르다. 그러한 역사가 작품에서 현재화하는 방식은 시간성이다. 작가의 행위를 매개로 작품에 침투하는 이 시간성은 부단한 행위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앞에 인용한 문장은 곽훈의 선화랑 초대전 도록 맨 첫머리에 수록한 나의 글 전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곽훈의 예술 행위를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핵심어로 ‘역사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은유적 형태로 화면에 나타난다고 썼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회화의 독특한 형식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림은 점, 선, 면, 색이라고 하는 조형 요소의 다양한 변주로 이루어진다. 점이 여러 개 모여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면 선이 되고, 선이 여러 번 겹치면 면이 되는
이 단순한 원리가 회화를 생성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색은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그러할 때, 곽훈은 가장 기본적인 이 네 가지의 조형 요소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되, 추상을 기조로 하여 구상의 흔적이 엿보이는 풍(風)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것이 대략 지난 50여 년간 추구해 온 곽훈 회화세계의 대강이다.
곽훈 작업의 또 하나 특징을 꼽자면 바로 행위성이다. 곽훈에게 이 행위성은 대형 화면에 속사(速射)처럼 작렬하는 순간적인 붓질을 통해 나타난다. 곽훈 회화의 이러한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가 바로 이번 선화랑 초대전에서 대거 소개된 〈할라잇(Halaayt)〉 연작이다.
‘신의 강령’을 뜻하는 이 할라잇은 이누이트어(語)이다. 그렇다면 곽훈은 어떤 이유에서 이 독특한 단어를 작품의 명제로 썼을까? 그것은 곽훈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에서 유래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곽훈은 미국 알래스카 지역을 여행하다 해변에서 다량의 고래 뼈를 목격하게 되는데, 그때 받은 충격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때 그는 고래 뼈의 더미를 바라보며 망망대해의 한복판에서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이누이트족(族)의 사냥 장면을 뇌리에 떠올렸다. 이른바 모티브에 착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구상은 곧장 착수되지 못했다. 작품이 구체화되기에 이른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나서부터다.
곽훈에게 반구대에 그려진 고래들을 보는 순간은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이야말로 고래 뼈라고 하는 모티브가 자기 자신에게 ‘역사화’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곽훈에게는 이국(異國)에 지나지 않는 알래스카에서 본 고래 뼈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반구대에서 본 고래 그림들이야말로 친연성을 지님은 물론, 문화적 코드의 원류로 작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앞의 인용문에서 “그것은 서구의 역사가 아닌 동양의 역사이며, 한국의 역사다. 방법론은 유사하되 문화적 코드의 원류는 서로 다르다”라고 쓴 이유이다.
Ⅱ 작가에게 상상력은 작품에 윤기를 부여하는 기름과도 같은 존재이다. 상상력이 빈곤한 작가는 자연을 바라보며 역사성을 환기해 낼 수 없다. 만일 십수 년 전의 어느 날,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알래스카의 바닷가에서 곽훈이 고래 뼈의 더미를 바라보며 상상력을 발휘해 태고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다면, 그리고 다시 십여 년 뒤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의 흔적을 보며 혈연의 친연성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의 〈할라잇〉 연작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 이누이트족의 어떤 관습과 사고가 곽훈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의 어떤 상징과 의미가 작품의 제작을 이끌었을까? 내가 아는 한, 곽훈은 화가이기 이전에 인문학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지적 호기심이 유달리 강한 작가이다. 그런 그이기에 고래 뼈의 발견이 촉발한 지적 호기심에 이끌려 한 미국 서적에서 ‘할라잇’이라는 이누이트어를 찾아내게 됐던 것이다.
여기서 고대 이누이트인들에게 고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영혼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것은 고래를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로 바닷가 암벽에 새긴 반구대 주변의 한반도 선사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의미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래를 잡는 포경(捕鯨)의 행위는 ‘신을 육지로 모셔오는 의식과도 같은 영적 트랜스 단계, 즉 신의 강령’을 의미하는, ‘할라잇’이었던 것이다.
Ⅲ 곽훈의 〈할라잇〉 연작은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서 고래를 잡는 어부들의 모습을 추상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는 바다의 표면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쳐오르는 거대한 고래의 몸통이 일순간에 그은 거친 나이프 터치로 나타나 있다. 색깔은 검정과 회색, 흰색 등 단색조에 부분적으로 푸른색이 가미된 형태다.
이 장면들은 작은 쪽배에 몸을 의존한 채, 파도처럼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어부들의 공포심을 표현한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추측되는 형상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이 그림들은 어부들의 심리에 관한 표현이란 좁은 해석에 갇힐 우려가 있다.
논의를 더 진전시키기 전에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최근의 〈할라잇〉 연작에 이르러 터치의 진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곽훈의 최근 붓질은 1980년대의 〈기(氣)/Chi〉 연작이나 90년대의 〈겁(劫)/Kalpa〉 연작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대담하며 보폭이 큰 것이 특징이다. 80대 연배의 동작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세가 강하고 박력이 넘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행위성’이다. 그의 그림은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킬 정도로 물감과 붓, 그리고 나이프로 치르는 한판의 퍼포먼스에 비견될 수 있다.
아마도 작가는 이 연작을 그리면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아주 큰 대형의 캔버스는 아닌데도 광포한 붓질과 역동적인 구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작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분출하는 감정을 색채와 붓 터치에 담아 캔버스 위에 표현하는 것이 지금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견지해 온 곽훈 회화의 기조라고 한다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것 또한 곽훈 회화의 특징이다. 새로운 회화적 경지를 향해 온몸으로 모험심을 불태우는 곽훈의 모습에서 나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불굴의 시시포스의 모습을 본다.
Ⅳ 세계에 대한 곽훈의 이처럼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모험적인 태도는 급기야 〈할라잇〉 연작에 이르러 ‘숭고의 미학’을 낳았다. 그리고 그러한 숭고의 이면에는 운명에 대한 공포가 깊숙이 드리워져 있다. 지구상에 인류가 태어난 이래 거친 자연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싸울 때 느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휘장처럼 화면의 중앙을 가로질러 내리꽂힌 짙은 검정색의 몸체로 상징되는 고래를 통해 육화돼있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이 열려있는 것처럼, 곽훈의 〈할라잇〉 연작 또한 열려있다. 곽훈의 그림은 유랑의 산물이다. 새로운 회화를 찾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방랑을 거듭하는 자에게 대지는 늘 열려있게 마련이다. 회화의 새로운 지평은 열린 의식으로 모험심을 발휘, 새로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를 찾아 헤매는 자에게 순수의 속살을 보여주는 법이다. 아예 그런 의식조차 없거나, 이미 개척해 놓은 땅에 안주하여 편안한 거처를 마련한 것에 안도하며 깊은 잠에 빠진 자에게 예술은 냉정하게 대문의 빗장을 닫는다.
역사는 공평하다. 훗날 미술사는 냉정한 시선으로 작품의 옥석을 가리게 될 것이다. 곽훈 또한 이러한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나, 그가 지닌 미덕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기는커녕 오히려 날이 갈수록 배가되는 열정과 모험으로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에 있다.
Ⅴ 1980년대의 〈기(氣)/Chi〉 연작에서 90년대의 〈겁(劫)/Kalpa〉 연작, 그리고 현재의 〈할라잇〉 연작으로 이행해 오면서 곽훈의 그림은 다색에서 단색으로 넘어가는 특징을 보인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른바 다변에서 침묵으로의 전이다. 그렇다면 그 침묵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곽훈의 〈할라잇〉 연작의 무채색 화면에 깃든, 마치 오랜 전설처럼 전승돼 온 태고의 깊은 침묵적 서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차원 회화가 지닌 형식이 내뿜는 고유의 아우라를 그런 서사를 통해 느낀다. 그것은 오로지 회화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일 것이다. 침묵의 목소리 – 나는 그 음색을 통해 곽훈이 역사 속의 선사인들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환청처럼 듣는다.
〈Chi -Ⅰ氣〉 캔버스에 혼합재료 367×214cm 1988
〈Kalpa 劫〉(사진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213.5×183cm 1992
〈Halaayt〉 캔버스에 아크릴 193.3×130.3cm 2022
〈HOON KWAK〉선화랑 전시 전경(6.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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