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된 ‘잃어버림’

이산(離散)의 기록

마이클 라코위츠: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칼후의 북서 궁전, F실(室),
남동쪽 입구; S실, 넘서쪽 입구)
2023. 5. 10 – 7. 30 바라캇 컨템포러리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이산(離散)은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도 타지로 떠나야만 했던 이들이 있었고, 6.25 전쟁으로 만들어진 38선은 여전히 작동하는 이산의 장벽이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임에도 이산가족 문제가 (왠지) 흐릿해져 가는 이유는 아마도 지속해서 감소하는 생존자의 수 때문일 것이다.

이라크계 유대인인 마이클 라코위츠 Michael Rakowitz 역시 이라크에서 망명한 가족의 후손으로서 이산의 아픔을 공유한다. 그는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쉬이 소실되지 않기를 바라며 민족의 ‘잃어버림’을 이야기로써 계승하고자 한다. 마이클 라코위츠 본인은 한 번도 이라크에 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나 조부모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고국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마구 흩어져 타향에 이식된 이들은, 그 사회의 가장자리에 벌거벗은 자들로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는 기존 권력에 밀려 경계 바깥으로 내쫓김당한다. 매일의 생존 투쟁은 이라크인들이 즐겨 먹는 ‘대추야자 date palm’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인 대추야자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라크 사람들의 주요한 소득원이기도 한 대추야자는 신년을 기념하며 나누어 먹고, 새로 태어난 아이를 축복하며 입에 물려주는 상징적인 산물이다. 오늘날에도 널리 섭취되고 있는 대추야자는 UN의 대이라크 제재(1990-2003)로 여러 유통 경로를 거쳐 원산지인 ‘이라크’를 감추고, 레바논산으로 둔갑하여 미국에 수입되었다. 작가는 이라크로부터 미국까지 제품을 수입해 오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 마치 이라크 사람들이 겪는 망명의 여정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제재가 해제되었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수입되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직접 대추야자를 이라크로부터 수입하기로 한다. 〈RETURN〉은 대추야자가 본래의 이름을 찾게 되는 지난한 과정에 대한 촘촘한 기록이자 작가 자신의 정체성 탐구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족의 역사를 되돌리고 이라크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대추야자 제품을 들어 올리며 설명하고 있다.

외조부가 직접 만들었던 대추야자 시럽은 1975년 그의 작고 이후 10년간 냉동고에 보관되며 새해마다 고향을 추억하게 했다. 1985년 마지막 대추야자 시럽이 사라지자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대추야자를 샀어야 했는데, 제품 대부분은 캘리포니아 산이었다. 마트를 열심히 뒤진 끝에 레바논산을 찾았는데 판매원 찰리 자하디가 제품 출생의 비밀, 바로 바그다드 출신임을 알려줬다고 한다. ‘잃어버림’은 구전되어 민족의 유산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특수부대원 코디의 발라드(영상 스틸), 2017, 1채널 영상, 14분 42초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미군 모습을 한 피규어 ‘특수 부대원 코디’는 정체성에 몰두하는 작가의 유령이다. ‘코디’는 박물관을 떠돌며 진열장 속에 갇혀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봉헌 조각상 유물들에 “여기 있으면 안 돼.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라며 탈출을 권한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은 이라크인들이 겪어온 소실의 표지석이다. 기원전 575년에 건설된 이슈타르의 문은 발굴된 이래 부분적으로 약탈당하여 패권국들의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ISIS에 의해 파괴되었다. 전시 제목이자 1층 전체에 설치된 작품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 F실(室), 남동쪽 입구; S실, 남서쪽 입구)》는 작가가 재현한 옛 궁전 공간의 정확한 위치를 가리킨다. 작품은 또한 궁전의 실제 크기로 제작되어 북적이던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미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아랍어-영어 신문과 중동 음식 포장재를 활용해 잃어버린 벽화를 재구축한다. 원본 석판에서 사라진 부분에는 고고학적 변천사나 ISIS의 파괴 이전에 이미 현지에서 약탈당하거나 분실되었음을 나타내는 레이블이 표시되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복원이 아닌 서구를 떠도는 유령 haunting이라 부르며, 서성이는 기억과 관념들을 동시대로 소환한다. 새롭게 세워진 벽은 과거를 향수 nostalgia에 남기지 않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으로 변경시킨다.

비워진 공간은 약탈당한 유물이 원래 있었어야 하는 자리다.

노란 가방은 고고학적으로 우주 universe를 상징한다. 구찌 아님 주의.

누군가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시위대의 외침은 헛되고, 예술 작품은 전쟁을 끝낼 수 없다’라고. 그럼에도 작가가 헌신적으로 프로젝트에 전념하는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난민들이 혼자가 아님을, 연대하고 있는 우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잃어버림’을 동시대에 소환하고 재현하고 되돌리는 노력은 힘이 들고 수고롭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내몰린 자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전시 전경

글, 사진: 문혜인
자료: 바라캇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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