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면 창작실험실: THE TRAKTeR》

충청북도자치연수원 내 구 농기계훈련관

2023.12.8~1.31

정소영 기자

임승균 〈Temporary Structure〉
알미늄 파이프, LED 디스플레이, 출력된 사진, 필름지, LED조명, 버티컬 블라인드, 수집된 오브제, 식물 가변 크기 2023

지역 유휴공간의 활용, 새로운 창작을 견인하다

예술에 대한 관심 증대와 인구 감소에 의한 지방 소멸 대응책으로 지역민을 위한 유휴공간 활성화 사업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에 지난 12월 8일, 충청북도자치연수원내 농기계훈련관으로 쓰이던 공간에서 《가덕면 창작실험실: THE TRAKTeR》 전시가 개막했다. 충북문화재단이 주최한 이번 전시는 지역 특성화 매칭펀드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메세나협회, 벽산엔지니어링의 후원아래 월간미술의 전시기획으로 진행되었다.

전시명 《THE TRAKTeR》는 농기계 트랙터(traktor)에서 착안해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 ‘-er’을 붙여 동사가 아닌 명사로서 앞으로 가덕면 창작실험실에서 전개될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예술 활동과 공간의 변화 가능성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를 포함해 페인팅, 조각, 키네틱 아트,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는 고정원, 김윤섭, 김준서, 이창운, 임승균, 황학삼이 참여했다.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고정원의 〈시간〉은 훈련관에서 사용하던 목판을 그대로 재활용해 재해석했다.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버려진 사물을 이용해 설치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는 간판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수집된 간판을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한다. 작품 〈시간〉과 〈시그널〉 역시 전시 공간에서 사용하던 간판을 재활용한 작업이다. 유일하게 붓으로 ‘안전제일’이라 그린 옛 간판에 조명을 부착해 언어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지만 간판의 원본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작업은 간판이 갖는 비언어적 표기와 언어적 가독성 사이의 회색지점을 나타낸다.

고정원의 방 옆으로 분리된 훈련관의 교수실과 부품실 공간에서는 김윤섭의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회화 자체에 대한 유희를 실험하는 작가는 고전 회화에 표현되는 형상을 차용해 온라인에서 수집한 현대적 이미지들을 통해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 이번 전시 작품 〈오늘의 현대미술시리즈 여름-가을 2〉와 옆 방으로 이어지는 〈사악한 계절 2〉는 중세시대 종교화에 등장하는 윤리와 현대의 삶에서 사라져가는 윤리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반영했다. 특히 전시 설치 기간 동안 벽화로 작업한 김윤섭의 회화적 실험인 〈사악한 계절 2〉는 회화의 깊이감을 배제하고 선만을 활용한 드로잉 벽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상징 변화를 시도했다.

황학삼 〈불완전한 기둥〉
F.R.P, 철 가변 크기 가변 설치 2016

김윤섭 〈사악한 계절 2〉
아크릴릭, 천 가변 설치 2023

김준서 〈Metachorus〉
엔코더모터, 제작 PCB, 아두이노, 19인치 모니터, 모니터스탠드, 금속 단상, 볼스크류, 프로파일, v-slot slide, 스피커, Kinect v2, 리미트 스위치, 485통신, 4pc 800x500x250cm(26채널 HD) 13분 2023

 이창운 〈편도여행〉
동력장치, 스테인레스 스틸, 스틸 볼, 동작(초음파)센서, 와이어 20,000×6,000×4,200cm 2023

고정원 〈시그널〉
수집된 간판, 혼합재료 60x250cm 2023

사진: 박홍순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홀에는 이창운의 〈편도여행〉이 전시되었다. 20m가 넘는 긴 레일을 따라 놓인 작품은 도시의 복잡한 건물 사이사이를 이동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나타낸다. 공을 옮기는 동력장치를 제외하고 오롯이 정교하게 계산된 수평과 수직의 구조물 사이를 오가는 구슬은 수직으로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고 회전형 타워를 통과하며 불안전한 현대의 삶을 표현한다.

주변에서 관찰한 환경과 사물을 이용해 주제를 표현하는 임승균는 기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적 있는〈Temporary Structure〉를 이번 전시 공간에 맞춰 변형했다. 시시각각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공간의 색과 구획을 나누는 구조물은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구성한다. 대량의 파일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현상을 추상 회화처럼 구현한 미디어 작품과 프린트는 몽환적 공간 안에서 시공간의 초월을 더욱 부각시킨다.

건축에 사용되는 긴 철근 구조물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인간 조각상은 인체의 굽은 등뼈까지 살려낼 만큼 사실적이지만 형태가 없는 얼굴은 추상적이다. 조각의 표면과 구조적 실험을 시도하는 황학삼의 〈불완전한 기둥〉은 절박하게 기둥에 매달려 있는 조각의 형상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형태를 표현했다. 바로 옆 외롭게 서있는 작품 〈서있는 사람〉은 여러 개체로 이뤄진 군집 조각상에서 하나만을 떼어와 위태로운 인간의 모습을 관조하는 또 다른 인간의 형태로 구성했다.

전시 마지막은 김준서의 〈Metachorus〉가 장식했다. 26명의 메타휴먼 합창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세월을 보여주는 작품은 관객이 자리에 앉기 전까지 화면에 클로즈업된 성가대원의 입과 눈동자를 통해 긴장되고 어색한 인간의 초초함을 표현한다.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가 합성된 두 곡은 공간을 메우는 합창의 감동과 함께 화면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메타휴면을 통해 복합적인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12월 27일까지 예정되었던 전시는 2024년 1월 31일까지 연장해 진행한다.

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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