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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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th Biennale de Lyon

Lara Almarcegui 〈Mâchefer〉 2017 © Blaise Adi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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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Lyon)에서 열리는 ‘리옹비엔날레’(2017.9.20~1.7)가 14회째를 맞았다. 3회에 걸쳐 같은 주제로 개최한다는 리옹비엔날레의 관례대로 지난 13회와 이번 14회, 2019년 열릴 15회는 ‘모던(Modern)’을 공통분모로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메스(Metz) 퐁피두센터 감독인 에마 라비뉴. 그는 극단의 가치 분리로 인해 고민하고 절망하다 이를 딛고 극복하는 모습을 ‘부유하는 세계’로 보았다고 한다. 이에 90여 명의 작가는 과연 어떻게 전시장을 부유했는지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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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계, 모던을 시각화하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리옹에서 2017년 9월 20일 개막한 제14회 리옹비엔날레(Biennale de Lyon)가 1월 7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국제적이면서도 리옹만의 독특한 특징을 담아내는 리옹비엔날레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3회에 걸쳐 6년간 진행된다. 13회(2016), 14회(2017), 15회(2018)의 주제는 ‘모던(Moderne)’이다. 14회 리옹비엔날레의 감독 에마 라비뉴(Emma Lavigne, 메스 퐁피두센터 감독이자 건축 및 미술사가)는 모던을 “부유하는 세계(mondesflottants)”로 보고, 이를 비엔날레 주제와 제목으로 정했다. 이 주제는 론 강(江)과 손 강(江)에서 태어난 ‘물의 도시 리옹’과도 어울린다. 라비뉴 감독은 부유하는 모던에 대한 동서양적 배경을 각각 ‘우키요에’와 보들레르의 에세이집 《모던한 삶의 화가》(1863)에서 찾았다. 프랑스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는 ‘부유하는 세계의 그림’이라는 의미이고, ‘우키요’란 상류사회의 예술과는 달리 평범한 일반 서민의 덧없는 삶과 생활을 말한다. 또한 ‘모더니티’ 하면 습관적으로 인용하는 보들레르의 에세이 ‘모더니티’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모던한 “예술의 반은 과도기성, 사라지는 순간성, 우연성이며, 또 다른 반은 영원성, 부동성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성 안에서 고민하고 절망하며 극복해내는 것이 근대적 삶을 사는 화가로부터 나온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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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GODINHO Marco/MEDALLA David 〈Forever Immigrant; Cloud Canyons〉 1963~2016 2012, Courtesy de l’artiste, Biennale de Lyon 2017, Courtesy Adam Nankervis_another vacantspace, Courtesy de l’artiste, galerie Hervé Bize, 49 Nord 6Est FracLorraine ©Blaise Adilon 오른쪽 Shimabuku 〈When sky was sea〉 2002 Performance – Video Installation courtesy theartist and Air de Paris,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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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에는 90여 명의 작가가 크게 세 장소, 측지돔(dome géodésique), 쉬크리에르(la Sucrière 설탕공장), 리옹현대미술관(MAC Lyon)에서 각자의 역량을 펼쳤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부유’시켰다. 우선 먼저, 앙투안-퐁세 광장에 설치된 측지돔을 방문한다. 이곳에는 미술가이자 음악가인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Céleste Boursier- Mougenot)의 작품 한 점 <클리나멘(Clinamen)>(2013, ‘클리나멘’은 원자의 무한히 작은 기울어짐이라는 에피쿠로스의 용어)이 설치되었다. 이작품이 설치된 돔은 광장 공원 가운데 있어, 노부부가 산책하다가 들어가고, 한 젊은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들어가기도 하며, 일찍 식사를 마친 직장인이 커피를 들고 들어간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청소년들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려 들어간다. 돔 가운데는 깊이가 얕은 인공 연못이 있고 돔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근 벤치가 놓여있다. 관람객들은 이 벤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이 그대로 비친 듯한 푸른 연못에 수십 개의 둥근 도자기 그릇이 부유하고 있다. 연못 안에는 기계장치에 의해 보일 듯 말 듯한 흐름이 만들어지고, 이 부드러운 물결을 따라 도자기들이 흘러가다가 서로 부딪친다. 그 소리가 마치 고요한 산사의 풍경 소리 같다. 사람들은 청명하고 잔잔한 이 소리가 녹음된 음향이 아닐까 두리번거리며 스피커를 찾다가, 결국 도자기 그릇들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된다. 푸른 하늘에 작고 하얀 조각구름이 흐르는 구름결 소리가 시각화된다. 태초의 원자들이 서로의 부딪침으로 가던 길의 방향에서 미끄러진다(<클리나멘>). 관람객들은 이 소리에 편안히 자신을 맡긴다. 가끔 아기들이 뛰면서 내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나 옹알거리는 소리가 섞이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작품 속에 묻힌다. 덧없는 일상사의 일부분처럼 사람들이 오가고, 무수한 원자들이 부딪쳐 미끄러지듯, 어느새 일상성과 숭고함이 작품을 통해 공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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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SIER MOUGENOT 〈Céleste, Clinamen v3〉, 2017, Courtesy de l’artiste, dela Biennale de Lyon 2017 et de la galerie Xippas © Blaise Adilon

David Tudor 〈Rainforest V–Variation 1〉 2015 ©David Tudor &Composers Inside Electro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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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을 유지한 전시

관객은 이제 1990년까지 설탕공장이었다가 이제는 전시장이 된, 손 강둑에 위치한 쉬크리에르로 이동한다. 배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 한 뒤편부터 보게 되는 쉬크리에르는 지금도 변함없는 설탕공장의 외양이기에, 과연 그 안에 근사한 것이 있을까 싶다. 출입구가 있는 건물 정면으로 이동하면서 보게 되는, 유유자적 흐르는 손 강이 실망스러운 첫인상을 씻어낸다. 안으로 들어가면, 1700㎡의 공간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심마부쿠(Shimabuku)의 사진작품 <하늘이 바다가 될 때>는 언덕 위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에 빨간 금붕어 모양 연들이 바람결을 따라 헤엄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작가 데이비드 메댈라(David Medalla)의 <구름 협곡>(1964~2016)은 공장의 대형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듯, 비눗방울이 천천히 만들어져 끊임없이 나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라져간다.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만지고 싶은 유혹을 겨우 자제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이 작품을 둘러싸고 떠나지 않는다. 이 비누구름 뒤로, 부드럽고 하얀 물결이 흐르고 있다. 한스 하케(Hans Haacke)의 <넓고 하얀 물결>은 운동장만한 하얀 실크천 아래로 몇 대의 대형 선풍기가 돌아간다. 이 장치에서 만들어지는 바람에 의해 실크천은 시시각각 팔락거리며, 햇빛 아래 부서지는 파도처럼 하얗고 반짝거리는 빛의 결을 시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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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MEIRELES Cildo 〈Babel〉 2001, Courtesy de l’artiste,
de la Biennale de Lyon 2017 et Finnish National Galle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 Helsinki,Finland N-2002-14, Kiasman
Ystävätry._Friends of Kiasma ©Blaise Adilon
오른쪽 NETO Ernesto 2017, Courtesy de l’artiste,
de la Biennale de Lyon 2017, de la galerie Max Hetzier © Blaise Adilon

아래 HAACKE Hans 1967-2017, Courtesy de l’artiste,
de la Biennale de Lyon, 2017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 Hans Haacke _ Artists Rights Society ARS © Blaise Adilon © Ada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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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현대미술관에는 청각적 요소를 담은 작품들이 지배적이다. 사실 소리만큼 예민하게 부유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미술관 입구에는 브라질의 개념미술가 칠도 메이어레스(Cildo Meireles)가 100대의 서로 다른 라디오를 쌓아올린 <바벨(Babel)>(2001)이 있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라디오들은 각각 최저 볼륨으로 켜져 있어 귀 기울이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데이비드 튜더와 컴포저 인사이드 일렉트로닉(David Tudor And Composers Inside Electronics)의 <우림V>가 넓은 전시장에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다. 다양한 일상 도구나 미완성의 버려진 오브제가 전시실의 허공에 매달려 부유한다. 오브제는 각각 다른 소리를 내고 있어, 관람객들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거나, 이상한 모습의 모빌을 뒤쫓으며 귀 기울인다. 브라질 설치작가 에르네스토 네토(Ernesto Neto)의 다양한 스타일의 설치작품은 꿈속의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의자 위에 올라서서 작품 윗면을 보면 숨어 있는 부유하는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에르네스토 네토의 작품이 펼쳐지는 한 쪽에 장 아르프(Jean Arp)의 하얀 조각 <쉬고 있는 잎>(1959)을 가져다 놓은 것은 기막힌 센스였다.

이외에도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설치작품, 작품과 음악의 조화, 퍼포먼스,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리옹비엔날레 ‘특별전’이 있다. 바로, ‘라투레트 수도원(Couventde La Tourette)’에서 열리는 이우환의 <기억을 넘어서>이다. 이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르 코르뷔지에의 17개 건축물 중 하나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독하게 펼쳐지는 수도원 건물 내에, 이우환은 그와 대립하거나 화해하면서, 때로는 르 코르뷔지에보다 더욱더 강하게, 때로는 더 약한 태도로 어르고 달래며 대화의 기술을 시각화했다. 그러면서도 이우환의 작품에는 수도원 특유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지배한다. 수도원 내부가 자연으로 연장되고, 자연의 빛이 수도원 내부를 감싼다. 에르네스토 네토가 천으로 부드러운 공간을 연출했다면, 이우환은 한지로 정갈하고 단아한 공간(, 2017)을 재창출했다. 한스 하케가 부드러운 비단천과 선풍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얀 파도를 연출했다면, 이우환은 유리판과 그 위에 놓인 돌(, 2017) 그리고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풍경과 빛으로 자연의 파도를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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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생 마리 드 라 투레트 수도원(Couvent Sainte-Marie de la Tourette) ©Marc Chauv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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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유럽은 차고 넘치는 미술 축제를 누렸다. 10년마다 개최되는 제5회 뮌스터조각프로젝트(독일), 5년마다 개최되는 카셀도큐멘타(독일, 그리스), 57회 베니스비엔날레, 15회 이스탄불비엔날레(터키)가 열렸고, 또한 이러한 거대행사와 함께 으레 진행되는 중요 전시까지 합치면 한 해를 전시 관람으로만 보내도 부족할 정도였다. 전시가 많다 보니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은 어렵고, 가서 직접 부딪쳐 보리라는 심정으로 관람했다. 그런데 익히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이해가 쉽지 않다. 작품이 생각을 유도한다는 것은 훌륭하긴 하지만, 수천 점의 작품이 제각각 생각을 요구하니 생각 용량이 초과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면에서 리옹비엔날레는 전시 의도, 제목, 주제, 작품 등이 모두 일관성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고, 아니 이해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느끼면 되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마치 실컷 울고 난 다음처럼, 오래간만에 마음이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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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심은록 |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