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경 : 바람이 구름을 걷어 버리듯

2018. 1. 22 – 3. 13

신한갤러리 역삼

http://www.shinhangallery.co.kr


이상적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x112cm, 2017, 전희경 (사진출처 : 신한갤러리 역삼)

⠀⠀⠀⠀⠀⠀⠀⠀⠀⠀⠀⠀⠀⠀⠀⠀⠀⠀⠀⠀⠀⠀⠀⠀⠀⠀⠀⠀⠀⠀⠀⠀⠀⠀⠀⠀⠀⠀⠀⠀⠀⠀⠀⠀⠀⠀⠀⠀⠀⠀⠀⠀⠀⠀⠀⠀⠀⠀⠀⠀⠀⠀⠀⠀⠀⠀⠀⠀⠀⠀⠀⠀⠀⠀⠀⠀⠀⠀⠀⠀⠀⠀⠀⠀⠀⠀⠀⠀⠀⠀⠀⠀⠀⠀⠀⠀⠀⠀⠀⠀⠀⠀⠀⠀⠀⠀⠀⠀⠀⠀⠀⠀⠀⠀⠀⠀⠀⠀⠀⠀⠀⠀⠀⠀⠀⠀⠀⠀⠀⠀⠀⠀⠀⠀⠀⠀⠀⠀⠀⠀

 우리가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각자의 이상향을 만들고 꿈을 꾸며 살아왔듯, 작가 전희경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화가로서 고민하고, 회화로서 이루려 한다. 작가는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 발생하는 괴리감을 극복하려는 한 시도로서 이상향의 이미지를 담은 회화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초기 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전희경의 캔버스는 다채로운 색감을 바탕으로 보다 과감한 필치의 붓질과 물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화면을 더욱더 추상화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거의 10여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축적된 전희경의 작품에서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러한 추이가 작가의 심리적인 변화에 기인하여 발생한다는 측면이다.

전희경은 크게 세 번의 시기에 걸쳐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태도에 차이를 보인다. 가장 초기의 작업부터 살펴보자면, 이 시기 그녀는 처음으로 현실과 이상이라는 양극단의 세계 사이의 공간에 주목하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쉽게 도달할 수 없기에 좌절하지만 반대로 꿈꿀 수 있기에 견딜 수 있는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전희경 역시도 화가로서의 자신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평가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느꼈던 다소 막막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심정은 그녀의 붓 끝에 응축되어 캔버스에 고스란히 스며들었으며, 이 시기 제작되었던 ‘-살이’시리즈 등에서는 당시 방황하고 아파하던 그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후의 작업으로 나아감에 따라 전희경은 사이공간(in between) 에서 겪었던 내면의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화면에 제시하는데 주력한다. 얼핏 동양 산수화의 모습을 닮은 이 시기의 작품들은 지난한 삶의 도피처로서 무릉도원과 같은 의미로 탄생된 그녀만의 유토피아다. 화면 속 요소들이 서로 뒤엉키고 흘러내리며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그녀의 유토피아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평온한 낙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살아온 지난 삶의 모습들이 오롯이 투영된 결과물이며, 초기작업의 연장선에서 현실을 거부하는 동시에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 그 자체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까지 전희경에게 ‘그림 그리기’란 자신이 생존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방식으로 수행되었던 것 같다.

뜨거울 해가 저물고, 어둠이 뒤덮힌 밤,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16cm, 2017, 전희경 (사진 출처 : 신한갤러리 역삼)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캔버스는 최근의 작품들을 통해서 어느새 내면의 이상적 상태로 나아가려는 단계로 이행되었다. 특히 전희경은 이번 전시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을 통해서 이러한 변화를 꾀하는 시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간의 작품들이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흐트러짐 없이 이를 담담하게 직시하는 태도로 변모한 듯 하다. 특히 표현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간 보여주었던 유기적 형태의 자연요소를 더욱 추상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모습이다. 그녀의 화면은 이전보다 더 힘있고 역동적인 붓질로 가득 채워졌지만 여백의 효과 때문인지 한숨을 고르듯 오히려 여유롭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의 변화는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면의 이상적 상태로 나아가려는 태도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인데, 최근에 전희경은 흐트러짐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 ‘선정(禪定)’의 경지에 관심을 둔다. 선정은 불교의 근본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로 전희경이 그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이상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끝에 찾아낸 해답이다. 자신이 지금껏 몰두해 오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동안 작가의 이상향에 대한 관심도 어느덧 자연 그 자체로 옮겨지게 되었다. 존재 자체로 완벽한 자연의 모습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자 전희경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 경지(선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 물, 바람, 구름 등의 자연적 요소들이 시시각각 변하면서도 고유의 성질을 잃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그대로 닮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에 자리한 근심과 잡념, 욕망이 바람에 씻겨 흘러가 듯 말끔히 걷히기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들은 비단 전희경 개인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혹은 예술가로서 직면한 문제들은 하나같이 오늘날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지연(신한갤러리 역삼 큐레이터)

⠀⠀⠀⠀⠀⠀⠀⠀⠀⠀⠀⠀⠀⠀⠀⠀⠀⠀⠀⠀⠀⠀⠀⠀⠀⠀⠀⠀⠀⠀⠀⠀⠀⠀⠀⠀⠀⠀⠀⠀⠀⠀⠀⠀⠀⠀⠀⠀⠀⠀⠀⠀⠀⠀⠀⠀⠀⠀⠀⠀⠀⠀⠀⠀⠀⠀⠀⠀⠀⠀⠀⠀⠀⠀⠀⠀⠀⠀⠀⠀⠀⠀⠀⠀⠀⠀⠀⠀⠀⠀⠀⠀⠀⠀⠀⠀⠀⠀⠀⠀⠀⠀⠀⠀⠀⠀⠀⠀⠀⠀⠀⠀⠀⠀⠀⠀⠀⠀⠀⠀⠀⠀⠀⠀⠀

Copyright © 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