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윤 〈통과되는 밤〉(사진 가운데) 알루미늄, 모터, 모피, 반복재생 가변크기 2018. 사진 박흥순

[Exhibition Focus] 관객의 재료

예술작품은 관객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말은 이제 당연한 전제가 되었다. 이 전제는 관객이 능동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당연시하면서도 관람에 대한 모든 것을 관객의 재량에만 어물쩍 맡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무엇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가. 다시 말해 관객은 각자 무슨 재료를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나는가. 4월 25일부터 8월 23일까지 블루메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관객의 재료〉는 관객 스스로에게 자신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흥미로운 전시다. 관객은 손경화, 우한나, 유비호, 이병찬, 장성은, 정성윤, 조현, 최성임이 각자의 재료로 선보인 작품을 보는 동시에 전시장에서 제공하는 ‘도구’로 자신만의 재료를 가늠해보고 구축할 기회를 갖게 된다.

장성은 〈Television 12〉 라이트 제트프린트 100×60cm 2010

정혜연| 홍익대 교수

사회적 거리두기와 감정 재료 사용하기

사회적 거리두기는 법적인 규제이든 사회 윤리적 권고이든 우리 일상의 행동지침이 되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만들어냈다. “절대로”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 그리고 살아가기 위한 식재료와 생필품 조달과 같은 극단적 생존 활동이 생겨났고, 생존 활동 외에 일상생활의 행동 방식과 은신의 반경은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사회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은 당연시하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어떤 것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 외부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되면 특히 외부 활동 중 다시 시작할 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의 가치, 사고, 성격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대치와 예상치에 따라 다르나 외부적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을 기질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유전과 관련되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공통적 유형이 나타난다고 한다. 블루메미술관의 〈관객의재료전〉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이 작품의 재료라고 말한다.

미술작품의 재료는 오랫동안 순수미술의 재료라고여겨지던 연필이나 펜, 유채, 수묵, 종이, 나무, 돌, 금속, 도자기와 같이 재료의 물질적 성격을 드러내는 재료도 있고 영상, 복합매체, 사진 프린팅, 설치와 같은 미디어 재료도 있다. 또한, 금속선, 플라스틱 비닐봉지, PVC 물질, 다양한 느낌의 천, 패브릭, 리본, 먼지, 실, 비누와 같이 일상에 존재하는 재료들이 미술재료로도 쓰인다. 이와 같은 유형의 재료 외에 소리, 냄새, 촉각 등 무형의 형태도 재료라 할 수 있다. 무형의 재료는 시각적 재료보다 더욱 적극적 일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상태가 달라진다.

최성임 〈집〉 PP밴드, 아크릴, MDF, Led조명 483×415cm 2020

조현 〈Wallflower〉 설치광경, VR, 컨트롤러 가변설치 2018

날것의 상태: 작가와 관객의 감정적 재료

〈관객의 재료〉 전시에서는 작가의 내면적 기질도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의 재료라고 말한다. 외부에 반응하는 작가의 성격과 감정이 작품 제작의 원료, 즉 재료라는 것이다. 감정적 재료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보다 훨씬 날것의 상태이다. 아직 가공되기 이전으로, 요리가 작품이라면 작품의 물질적 재료는 요리 이전의 식재료이고, 식재료에 대한 그 사람의 취향, 입맛, 감정들도 요리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재료가 된다.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만약 감정적 재료가 유형의 물질처럼 예술작품의 “재료”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기질과 감정도 재료가 된다. 예술작품은 작가가 손이나 혹은 다른 도구로 제작한 그 상태가 완성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해석을 포함하여 존재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유무형재료의 사용은 작가의 발견과 선택에 따르는데, 여기에 작가의 감정적 재료를 포함한다면 관객이 발견, 선택하는 감정도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관객의 재료〉 전시 안에서 유효한 이유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 유형의 재료에 일상적 재료가 많다는 데 있다. 이병찬 작가는 플라스틱비닐과 조각들, 소리 등을 사용한다. 우리 일상에 언제나 존재하는 물질이다. 정성윤 작가의 털과 같은 인조 모피는 기괴해 보이기도 하나 우리의 머리카락과 닮아있는 패브릭이다. 우한나 작가가 사용하는, 라푼젤이 머리를 묶을 때 썼음 직해 보이는 리본과 다양한 패브릭도 우리의 의복에 흔히 등장한다.

작품 옆에는 마치 라벨처럼 작은 박스가 존재하는데, 작가는 작품당 3가지의 감정 재료를 자기의재료라 말한다. 작가는 “새로운 방법의 시도”, “충동적으로 시작하는 행동”, “새로운 자극에 대한 탐색”,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 “피부에 닿는 것에 대한 민감함”, “시각적 변화, 움직임에 대한 민감함” 같은 감정의 재료 중에 3개의 감정이 자신의 재료라고 말하고, 각기 다른 색인 레고 블록들로 제시한다. 관객은 작가가 제시한 3가지 감정 재료 중 일부 혹은 모두 그리고 레고 블록의 양도 선택하도록 이끌린다.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상담전문기관, ‘그로잉맘’이 고안한 내적재료(다섯가지로 나누어진 기질)를 상징하는 레고조각을 각 작품들에서 취해 조립해보는 공간

나를 알아가기 그리고 작가되기

작품 앞에서는 레고 블록을 “선택”할 뿐, 관객은 “당신을 이끄는 다섯 가지 기질”이라는 전시 마지막의 활동코너에 가서 레고를 조립하게 된다. 자신이 고른 레고의 색은 “1) 빨간색: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 2) 파란색: 낯선 자극에 대해 피하는 정도, 3) 노란색: 감정과 관계에 대한 태도/감수성과 친밀감, 4) 초록색: 오감각에 대한 반응 정도/지각민감성, 5) 핑크색: 과제를 대하는 태도/반복과 몰두”라는 기질적 특성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색을 많이 고르느냐에 따라 이러한 기질이 있을 수도 있음에 자신이 외부에 어떠한 감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택된 색채가 5가지 중 어떤 것이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유형화하는 기질 테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의 재료〉 전시 관람 중 작품에서 추출된 관객 자신의 감정 재료는 추후 레고를 조립하면서작가의 창조 행위를 이어나가게 된다. 즉 작가가 감정의 재료를 작품으로 만들 듯 관객도 레고를 조립하며 나의 재료로 작품을 창작한다. 작품을 보면서 선택한 레고의 감정은 작품 앞에서 레고를 끼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한 감각의 재료로 고른 레고를 “관람객을 위한 창조의 공간”에서 조립하며 자신을 새롭게 알아간다. 다시 말해 감정적 재료가 시각화된 레고 블록을 자신만의 형태로 창조하여 자신이 어떤 외부적 반응을 하는 사람인지 발견하는 동시에 그 재료로 작가처럼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한다. 관객은 레고를 고른다는 반응을 넘어 “관객의 재료”로 창작자의 위치에 대등하게 서게 된다. 왜냐하면 제공되는 레고는 완성품의 조립을 요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 형태의 기본인 레고로 만드는 사람의 아이디어와 시각적 창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관객을 구성하는 재료와 작가의 재료가 서로 반응하고 사용하여 예술적 경험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 접근성의 벽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이 의도하는 내용이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작가들은 차별, 혐오, 불평등, 위선, 탐욕, 이성의 부재, 중독, 환경오염이라는 사회문제(이만열, 《질문하는미술관》, 앤길, 2019)를 작품을 통해 고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이용하는 재료는 물리적, 물질적, 언어적인 것, 순간적인 것에서 항구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당신을 이끄는 다섯 가지 기질”은 작품이 담고 있는 의도와 분류가 불가능한 다양한 재료적 표현을 레고 블록이라는 매개체로 연결하도록 한다. 이 과정은 작가와 관객이 서로에 대한 적극적 사용이기에 작가와 관객이 “예술품 이용”에 관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게 된다.


●  < 월간미술 > vol.424 | 2020.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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